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전도서 6장 주석 성경말씀] 돈과 재물이 헛됨(전 6:1-12)

두란노 서원 2021. 9. 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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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도서 6장 주석 성경말씀 중에서 돈과 재물이 헛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혼에 관한 것은 돈으로 되지 않습니다. 젊어서는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후회하게 됩니다. 돈이 최고인 줄로 알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가까워 오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입니다. 돈과 재물은 때가 되매 사라집니다. 그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영원의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돈과 재물이 헛됨(전 6:1-12)

 

[1-2]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 . . .

본문은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라고 말한다. ‘폐단이라는 말은 불행한 일을 말한다. ‘중한 것이라는 원어(랍바)많은 것, 흔한 일’(KJV, NASB)이라는 뜻이다.

본문이 말하는 어떤 사람은 물질적 부나 세상적 성공에 대한 소원을 가졌고 또 그것을 하나님께 받았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고 재산을 모았고 또 세상적으로도 출세하여 명예도 얻었다. 그러나 그는 몸에 심각한 병이 들었거나 큰 환난과 재난 때문에 그것을 누릴 힘이 없었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누렸다. 참 기가 막힌 불행이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런 상황을 헛되어 악한 병이라고 표현하였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왕위에 올라 권세와 영광을 얻었다고 생각한 지 3일 만에 모반을 당해 폐위된 왕도 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었으나 대형사고나 큰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물러난 자들도 있다. 아내가 버스비까지 절약하며 직장 생활하고 저축하여 집을 장만했으나 몸에 중병이 들어 죽고 후처가 들어와 누리는 경우도 보았다.

디모데전서 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게 하라]”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 자체에 소원을 두지 말고, 우리의 소원을 오직 하나님께 두자. 이제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3-6]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 . . .

본문은,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본문은 사람이 이 수고롭고 허무한 세상에서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낙태된 자가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 한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죄로 인한 형벌의 처소인 무덤과 지옥을 가리킬 것이다. 세상의 삶도 수고롭고 허무한데, 죽은 후에 지옥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100명의 자녀를 낳은 것이 무슨 복이며, 1,000년의 갑절을 사는 것이 무슨 복인가? 오히려 낙태된 자는 슬픔도, 불행도, 허무도 모르므로 더 낫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왕의 권세와 영광을 누렸고 자녀를 70명이나 낳았으나 그 자신은 전쟁에서 죽었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예후의 반란 때 창에서 내려 던지워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아들들 70명은 공부하는 도중에 몰수히 목 베이는 죽임을 당하였다.

심령의 낙은 단순히 육신적 만족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령의 참 평안에서 나오는 복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4:7-8에서 고백하기를,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물질의 복, 자녀의 복, 장수(長壽)의 복을 구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평강의 복을 항상 구하며 누리자.

[7-9]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 . . .

본문은,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다. 사람의 수고는 결국 다 그의 입을 위한 것, 즉 먹고 입고 사는 그의 육신의 생활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한다. ‘식욕이라는 원어(네페쉬)영혼이라는 단어이지만, 사전에 욕구, 식욕이라는 뜻도 있다(BDB). 그러나 그 영혼의 만족이 없다고 번역해도 뜻이 된다.

본문은 또,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말한다. ‘그 가난한 자는 앞에서 말한 지혜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지혜자가 비록 가난할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처신하는 일이나 그래서 돈을 버는 일에서 우매자보다 분명히 나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도 다 허무하다고 말한다. 그의 수고가 그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하고 그들은 다 똑같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또,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은 실제로 낙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심령의 공상이라는 원어(할라크 나페쉬)영혼의 걸음이라는 말로서 영어성경들은 영혼의 욕구하는 바’(NASB) 혹은 욕구의 배회’(KJV, NIV)라고 번역하였다. 심령으로 아무리 좋은 욕구를 가져도 실제로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사람이 수고한 후에 먹고 마시며 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처신하는 지혜를 가지며 또 실제로 낙을 누릴지라도, 그런 것이 결국 헛되며 바람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낙을 누림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헛된 것임을 알고, 우리는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어야 한다.

[10]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 . . .

본문은,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다”고 말한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 전도서 1: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하늘도, 땅도, 산도, 바다도, 해와 달과 별들도 다 옛날부터 불러오던 것들이다. 만물이 다 그러하다. 인간도 그렇다. 사람은 창조 때부터 사람(아담)으로 불리었다.

또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귀하게 지음 받았으나 그의 육체는 흙으로 지음 받은 연약한 존재이며 그가 죄를 지은 이후에는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이다. 인간은 피조물이요 죄인이다. 그의 허무함과 불행은 특히 그의 죄인 됨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는]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보다 강한 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킬 것이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겸손하게 엎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과 같은 존재라고 고백하였다(18:27). 욥기 25:6은 인생을 벌레와 구더기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르셨다(41:14). 많은 고난을 받은 사도 바울은 자신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라고 말했다(고전 4:13). 이런 존재인 사람이 하나님과 다투는 것은 교만한 일이요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하게 섬기며 그의 모든 말씀을 다 믿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피조물이며 죄인임을 알고, 결코 하나님과 다투지 말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그의 모든 계명들에 순종하자.

[11-12]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 . . .

본문은,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고 말한다. ‘이라는 원어(데바림)말들혹은 일들이라는 뜻이다. 전도서 12:12여러 책을 짓는 것이 끝이 없다”고 말한다. 전도서 2장에서 솔로몬은 많은 일들을 해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집들도 건축해 보았고 포도원과 과원도 만들어 보았으며 합창단도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말들이 많을수록 헛된 말도 증가하고 일들이 많을수록 헛된 일도 증가한다. 이 세상에 헛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며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본문은 또,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토브 좋은 것, 행복’)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身後)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라고 말한다. 사람의 일생은 그림자같이 허무하다. 그것은 붙들어 둘 수 없고, 덧없이 빨리 지나간다.

그러므로 다윗 왕은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고 고백했다(대상 29:15). 욥기 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하였고, 시편 144:4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라고 하였다. 야고보서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했다. 이런 인생에게 무슨 낙이 있고 무슨 행복이 있는가? 또 죽은 후에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세상만사의 헛됨을 알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일, 즉 믿는 일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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