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성경지명 성경공부] 느부갓네살이 통치하던 바벨론 Babylon

두란노 서원 2021. 5. 3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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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지명 성경공부 중에서 느부갓네살이 통치하던 바벨론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구 바벨론과 신 바벨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 바벨론은 바벨탑이 세웠던 창세기에 나옵니다. 니므롯이 구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신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던 제국입니다. 구 바벨론에는 바벨탑이 세워졌다면 신 바벨론에는 금신상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줄기가 그대로 흘러내려갔습니다. 성도는 복음의 영적 줄기가 흘러내려가야 합니다. 복음적인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교회는 거짓 복음을 모두 무너뜨리고 참 복음인 진리만을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지명 연구 : 바벨론 Babylon

 

1. 위치와 명칭

1) 현대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으로 약 80km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바빌로니아의 정치, 종교의 수도이며 유브라데 강가의 도성이다.

2) 약 890Ha의 폐허지는 바그다드 남쪽 약 80km, 힐라 북쪽 8km에 있다.

3) 고대의 장소는 북쪽의 바빌 언덕들로, 중앙의 카츠르('성채'[the Citadel])로, 남쪽의 메르케스(Merkes), 아므란 이븐 알리 차흔( jAmran Ibn Ali Sahn), 호메라(Homera)로 표시되어 있다.

4) 히브리어 בבל(바벨)은 창10:10과 11:9을 제외하고 영어 역본들에서 헬라어 Babulon(바뷜론)에 근거하여 바벨론(Babylon)으로 번역되었다.

5) 가장 오래된 성경 밖의 문헌 명칭은 수메르어 카-딘기르-키(ka-dingir-ki:'신의 문')이다. 이것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후대 바빌로니아 바브-일리(Bab-ili)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또한 히브리어 בלל(발랄:'혼동시키다')이 어원으로 창11:9에 나타난다.

6) 구약과 신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께 적대적인 집단을 뜻하는 데 사용되었다. 바벨론은 틴. 티르. 키(TIN.TIR.KI:생명의 나무)로 불리었고, 후대에는 에. 키(E.KI:운하 지대)로 불리었다. 바벨론의 일부분에 적용된 다른 명칭들은 수. 안. 나(SU. AN. NA:하늘의 손, 높은 벽)이었다.

2. 역사적 변천

1) 설형 문자 문헌에서 바벨론에 대한 최초 언급은 우르의 제3왕조 시대(주전 약 2113~2006년)이다. 이 당시 바벨론은 주 도시로서 그리고 통치자의 소재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2) 이신 라르사(Isin-Larsa) 시기(주전 2017~ 1794년)에, 바벨론은 아모리 왕조하에서 작은 독립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3) 도시는 함무라비(주전 1792~1749년) 시기동안에 더 강성하여졌다. 이 당시 바벨론은 남부 메소보다미아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장하였다.

4) 카스족(Cassite)과 바벨론 중기 시기에, 바벨론은 남부 메소보다미아의 수도로서 그 위치를 어렵게 유지하였다.

5) 앗시리아가 건국되자, 앗시리아는 바벨론을 지배하려 하였다. 앗시리아 왕 투쿨티-니누르타(Tukulti-Ninurta) 1세(1244~1208년) 치하에서 바벨론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곧 회복하였다.

6) 디글랏빌레셀 3세(주전 745~727년)가 바벨론을 점령했을 때, 그는 바벨론에 독립 왕국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7) 갈대아인 므로닥 발라단은 살만에셀이 죽자 독립 왕국임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사르곤 2세(주전 722~705년)는 710년에 그를 전복하였다. 사르곤이 죽자 므로닥 발라단은 복귀하였고 바벨론은 다시 중심지가 되었다.

8) 에살핫돈(680~669년)은 바벨론을 재건하고 말년에 왕국을 나누어서 두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샤마쉬-슈무킨(Shamash-shumukin)은 바벨론을, 앗수바니팔은 앗시리아를 물려받았다. 앗수바니팔은 바벨론을 포위해 정복하였다.

9) 626년에 나보폴라살은 바벨론에서 악갓(Akkad)왕으로 선포하고 그와 그의 후계자인 느부갓네살 3세는 앗시리아 제국 대신에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건설해 나갔다. 신바벨로니아 제국의 수도로서 바벨론은 공공건물과 요새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10) 바벨론은 수많은 반역의 중심지였다. 주전522년에는 니딘투-벨(Nidintu-Bel)과 아라카(Araka;521년)가, 주전 482년에는 벨쉬만니 (Bel-shimanni)와 샤마쉬-에리바(Shamash-eriba)가 반란을 일으켰다.

11) 페르시안 제국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되자 바벨론은 저항하지 않았고 새로운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2) 주전 312년에 바벨론이 공략된 이후, 알렉산더의 계승자인 셀류코스 1세(Nicator)는 티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셀류시아(Seleucia)를 창건하였다. 바벨론 주민들은 점차 셀류시아로 이주하였고 바벨론은 방치되었다.

13) 바벨론의 도시 조감도에 대한 정보는 설형문자 문헌들과 발굴품들에서 얻을 수 있다. 문헌들 대부분은 웅거(Unger)가 수집하였다.

14) 도시의 장엄함과 이에 수반되는 세계적인 도시의 분위기는 바벨론의 명성을 드높였고,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도덕적인 방종과 호사스러움으로 유명하였다(참조. 사13:2-22렘25:12).

15) 신약에서 바벨론은 로마의 퇴폐적인 것들을 나타내는 데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벧전5:13 계14:8).

 

3. 발굴

1) 주전 460년경 할리카르나수스(Halicarnassus)의 헤로도투 이래로 많은 여행자들은 바벨론 방문 기록을 남겨 놓았다.

2) 투델라(Tudela)의 벤자민(12세기), 니버(Niebuhr,1764), 리치(C.J.Rich,1811-21), 포터(Ker Porter,1818)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폐허지에 대한 측량과 도면을 만들었다.

3) 19세기 초와 중엽에 이 지역에 대한 다양한 발굴과 탐험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포괄적인 작업은 1899년부터 1917년까지 독일 동방회(Deutsche Orient-Gesellschaft)에 의해 이루어졌다.

4) 최근 1956~58년에는 렌젠(Lenzen)에 의해서 이어졌으며 1962년 이후로는(닌마[Ninmah]신전의 보전과 복구를 포함해서) 이라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4. 유적지

1) 현재 바벨론 폐허지에는 텔 바빌(Tell Babil)이 고대의 명칭으로 남아 있다.

2)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통해서 재구성된 것은 주전 6세기 초엽에 느부갓네살 2세의 바벨론이다. 거대한 이중벽의 요새지로 둘러싸인 바벨론은 대략 8.4km 이었다.

3) 이 중에서 바벨론 도성의 12 성문 중에서 제1성문인 이쉬타르문과 이 성문을 통하여 왕궁과 마르둑 신전으로 연결되는 중앙 도로인 '행렬 도로(the Processional Way)', 공중정원, 마르둑 신전터, 지구랏의 폐허지들을 볼 수 있다.

4) 주 도로인 행렬 도로는 유브라데 강과 나란히 뻗어 있으며 이쉬타르문에서 지구랏의 신전탑인 에테멘안키(E-temen-an-ki)까지는 914m 거리이다. 제1 신전인 에사길라(Esagila)는 마르둑에게 헌증되었다.

5) 발굴을 통하여 다른 많은 신전들 뿐만 아니라 나보폴라살과 그의 후계자들의 대궁전들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인하였다.

6) 세월이 지나면서 유브라데의 하상이 높아져 고대 함무라비 시대의 유적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5. 건축술

1) 이 성읍은 섬세한 이중벽 체제로 둘러싸였다. 외벽의 범위는 27km에 이르고, 꼭대기에서 마차가 지나갈 만큼 넓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방어탑이 버티고 있으며 8개의 문들이 있었다.

2) 북쪽에 있는 거대한 이쉬타르(Ishtar)문들이 남쪽의 마르둑 신전 에사길라와 인접한 지구랏인 엔테메난키 성채로 이르는 진행로를 나타냈다. 포장된 길의 길이는 약 920m이다.

3) 이 도로에서 또 다른 길이 서쪽 뚝에 있는 신도시(the New Town)와 고대의 수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거쳐 유브라데 강을 건너 서쪽으로 이르고 있다.

4) 왕들이 궁전 건축에 보인 관심은 성채에 있는 복합 건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궁전의 북동 모서리에서 테라스 형태의 공중정원(hanging gardens)을 만들기 위한 둥근 천장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5) 이 성읍의 광장과 광장에 있는 53개의 신전들에서 많은 것들이 발견되었다. 이 광장의 이름들은 때때로 전체 성읍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 성읍의 빈번한 파괴로 신전들의 내용물들은 많이 없어졌다. 에사길라에 안치된 마르둑 신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승리의 표시가 되었기에 정복자들은 그것을 수도로 탈취해 갔다.

6) 종교와 문명은 대체로 앗수르와 바벨로니아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6. 공중정원들(Hanging Gardens)

주전 605년부터 562년까지 다스렸던 느부갓네살 2세는 바벨론에 사치스러운 건물들을 많이 세웠다. 가장 볼 만한 건물은 정원이다. 바벨론의 공중정원은 너무나 신기해 주전 3세기에 여행자들이 반드시 보아야 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7. 공중의 정글(A jungle in the air)

느부갓네살은 그의 궁전 성벽 내에 정원을 만들었다. 이 정원을 만든 이유는 그의 아내인 메대 공주 아미티스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는 양국 사이의 선린 관계를 위해서 그녀와 결혼하였던 것이다. 메대는 바벨론 북동 지역의 거친 산지 국가였다. 전통에 의하면 아미티스는 궁전 창을 통해 바벨론의 평야 지대를 내려다보며 고향 땅의 언덕과 나무들을 그리워하였다. 공중정원은 그녀의 향수병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중정원들은 문자적으로 '달려 있다'(hang)는 것이 아니라 '달려 있는'(hanging)으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일련의 거대한 계단들 위층에 높게 건설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나무, 관목, 꽃 들은 곧게 자라서 땅에서 보면 마치 정글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8. 신약의 언급

1) 바벨론 포로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면서 유브라데의 바벨론을 말한다(마1:11-12,17행7:43).

2) 계14:8과 18:2에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가 사21:9(렘51:8와 비교)의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유브라데에 있는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에 대한 언급이다. 그것은 계시록에서 일곱 언덕들에 대한 언급에서 분명해진다(계16:19계17:5계18:10,21).

3) 계17장의 일곱 머리가 달린 짐승을 타고 신비한 이름인 '큰 바벨론'을 지니고 있는 자주색의 여인은 로마이다. 일곱 머리를 지닌 제국의 짐승은 로마의 일곱 언덕으로 해석될 뿐만 아니라 로마의 일곱 황제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들 중에 다섯은 이미 무너졌는데 아마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다스리고 있는 인물은 베스파시안이다(계17:10).

4) 벧전5:13에서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에서 바벨론이라는 말은 유브라데 강에 있는 성읍과 나일강의 로마 군대 주둔지를 말하는 것인데 로마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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