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신명기 7장 성경강해 복음말씀] 하나님께 신실하라(신 7:1-11)

두란노 서원 2022. 11. 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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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7장에서는 가나안 족속과 우상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하나님이 내렸다. 가나안에는 7 족속이 살고 있었다. 이미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는 우상이 만연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면 안 된다. 가나안에 있는 우상을 모두 타파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성도도 세상에서 우상을 숭배하며면 안 된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신실하라(신 7:1-11)

 

Ⅰ. 우리가 우상 및 우상 숭배자들과 교제함에 대해 아주 엄격히 주의를 주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자들은 무익한 흑암의 일과 교제해서는 안 된다. 이런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저들에게 분부되었다.

 

1. 그들은 “저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다”(1, 2절). 여기에는 이스라엘에게 잔인한 일을 행하라는 명령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선한 일이며, 그 때와 장소에 필요하고 용납 되는, 명예로운 일이다.

 

(1) 하나님은 여기서 자신의 역할을 행하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이끄시고”, 현재 그 땅의 점령자들인 여러 민족들을 그들 앞에서 내쫓으시리라는 약속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분의 힘은 불가항력적이므로,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약속은 파기할 수 없으므로 그분은 그 일을 하실 것이다. 이제,

① 여기에는 이들 이방 민족들의 이름과 수효가 나온다(1절). 그들은 모두 “일곱” 민족들로서, 7대 1이란 커다란 불균형이다.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영역과 한계를 그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이방 민족들의 이름이 낱낱이 열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잔학 행위는 거기까지만 미쳐야 하고 그 이상 더 나아가서는 안 되며, 그들이 임무를 수행한다는 목적 아래 그들의 진로에 가로놓여 있는 모든 민족을 멸해서는 안 된다. 그 파멸의 물결은 여기에 머물러야만 한다. 여기에 여러 민족에 대한 이런 한계 설정이 명백히 되어 있는 것은, 후 세대가 이것을 하나의 전례로 생각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 사건이 다른 민족을 하나도 살려 두지 말라는 야만적인 율법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이런 잔학 행위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었다 하여 본받을 일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수많은 짐승이 희생 제물로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던 구약 시대에 있었던 일이요, 지금은 모든 속죄 제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드려진 그 위대한 제사에 의해 완성되고 폐기되었으므로, 인간의 피는 당시보다 더욱 귀중하게 되었고, 아무리 큰 권력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피를 함부로 흘릴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② 그 민족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크고 힘이 세다는 점이 여기서 인정되고 있다. 그들은 그 땅에 오랫동안 뿌리박고 살아왔는데, 이스라엘이 나그네처럼 거기에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수도 더 많고, 체구도 훨씬 더 크며, 이스라엘보다 더 전쟁에 숙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조건이 이스라엘 앞에서 쫓겨나게 되는 그들의 운명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원수의 강함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을 더욱 찬양하게 해 줄 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한 것이다.

 

(2)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라고 명령한다. 너희는 “그들을 쳐서 진멸할 것이라”(2절).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신다면, 이스라엘이 그들을 맞아들여서 소작인으로나 공물을 바치는 속국인들로나 혹은 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과는 어떤 종류의 계약도 맺어서는 안 되고, 어떤 자비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이런 잔학 행위는 다음과 같이 지시되어 있다.

① 그들(이방민족)과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의 사악함에 대한 벌이다. 아모리 족속의 악행이 이제 충만해졌으니, 시간이 오래되면 될수록 마침내 그 형벌은 더 혹독한 것이 된다.

② 만일 그들이 살아남게 되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피해를 줄 것이므로, 그런 불행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가증스런 백성들이 거룩한 씨를 부패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들이 거룩한 씨와 혼합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참된 예배가 상실되기보다는 이 모든 생명체가 지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정욕을 이와 같이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것이 너희 자신의 과실이 아닐진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롬 6:4) 하신 약속에 의해 온갖 정욕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욕들과 타협하지 말고, 거기에 어떤 자비도 베풀지 말고, 다만 그것들을 금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서 철저히 파멸시키자.

 

2. 이스라엘은 진노의 칼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과 혼인해서는 안 된다(3, 4절). 가나안 족속들의 가정들은 오래되었다. 그래서 아마 그들 중에는 “존귀한” 집안이라고 불리는 가문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들에게는 하나의 유혹이 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이스라엘 족속들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이름을 가진 자들에게는 자기들의 혈통을 높이기 위해 그들과 결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 유혹이 될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 나라와 친분을 맺으면 그 나라를 섬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경외심은 이 모든 조건을 압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과 통혼하는 것은 불법인즉, 이는 그것이 위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홍수 이전의 옛 세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주었음이 증명되고 있다(창 6:2).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불경건하고 불신앙적인 결혼으로 인해 자기들을 망쳐 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통혼을 하면, 악인이 개종할 가능성보다는 선한 사람이 타락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게” 할 것이라는 경고는 지극히 합당한 말씀이다. 솔로몬은 이 점에서 그의 우매함으로 인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우리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에 대해 민족적인 회개가 있었고, 또 개혁을 위해 고심한 사실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스 9, 10장; 느 13장). 그리고 신약성경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고후 6:14). 배우자의 선택이 적어도 신앙의 정당한 고백의 한계 안에서 성립될 수 없을 때는, 그들의 만남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약속할 수 없다. 여기에서 시리아역 성경의 한 구절을 이 명령의 이유로서 첨가하겠다. 즉 “우상 숭배자들과 혼인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들의 우상들과 혼인하는 것이다”(3절).

 

3. 그들은 저들의 모든 우상 숭배의 유물들을 파괴해야 한다(5절). 우상 숭배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그것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제단을 헐며, 우상을 깨뜨리며, 목상을 찍어버리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살라야 했다. 이 명령은 이미 앞에서도 주어졌던 것이다(출 23:24; 34:13). 이런 종류의 많은 일들이 경건한 열심을 가진 그 백성들에 의해 행해졌고(대하 31:1), 선한 요시야 왕에 의하여 행해졌으며, 또한 신약성경에서는 마술서를 불사른 사실과도 비교가 된다(행 19:19).

 

Ⅱ. 이런 주의를 주는 합당한 이유.

 

1.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하나님의 선택(6절). 하나님은 다른 어떤 백성과도 이스라엘과 맺은 것과 같은 언약과 교통을 맺으신 적이 없다. 이와 같이 그들을 명예롭게 해 주신 그분께 우상 숭배로 인해 그들이 모독을 돌려서야 되겠는가? 자기들에게 친절을 나타내신 그분을 그들이 업신여겨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이 그들을 들어 모든 백성 위에 뛰어나게 하셨는데,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다른 백성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려서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 외에 다른 백성을 택하지 않으시고 오직 그들만 당신 앞에 특별한 백성으로 삼았으니, 그들이 오직 그 분만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2. 이런 선택을 하신 그 은혜의 무한함.

 

(1) 그들에게는 이와 같은 은총과 칭호를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다”(잠 14:28). 그러나 그들의 수효는 미미했다. 그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는 단지 70명뿐이었고, 거기서 크게 번성했다 해도 수적으로는 이들보다 더 큰 백성들이 세상에 많이 있었다.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7절). 예루살렘 탈굼(Jerusalem Targum: 시리아역 구약성경) 저자는 자기 민족에 대해 “너희는 영적으로 겸손(비천)하고, 모든 민족보다 유순하다”는 과찬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전혀 반대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백성보다 목이 곧고 나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2) 그 선택의 이유는 순전히 하나님 자신의 의사였다(8절).

①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너희를 사랑하셨다. 아버지께서는 그 일이 당신 보시기에 선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유로이 사랑하신다(호 14:4). 멸망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 자신의 행적으로 인해 망한다. 그러나 구원받는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대권(大權)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다.

②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고자 하시므로, 당신의 역사(役事)를 완수하신다. “그 분은 너희 열조에게 하신 서약을 수행하시려고 너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채무자가 아니시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다만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약속에 대해 스스로 채무자가 되셨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불합당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그 약속을 이행하신 것이다.

 

3. 그들이 서약한 언약의 취지는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을 때 하나님도 그들을 향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확실히 하나님께 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했다.

 

(1) 하나님은 당신의 친구들에게는 인애를 베푸신다(9절).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그 민족들의 신들이나 공상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나 조잡한 시구(詩句)의 주제들과는 다른 분이다. 다만 그 분은 하나님이시요, 참으로 하나님이시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그 분은 당신 자신의 약속을 행하실 수 있고 또 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일뿐만 아니라,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의 정당한 모든 기대에 응답하시는 분이다. 그 분은 확실히 언약을 지키시고 자비를 보이시되,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언약에 따라서 자비를 나타내시는 분이다”(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양심껏 지키지 아니하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2계명에 대한 약속의 설명에서 첨가되어 있는 것과 같이) 수천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수천 대까지 이르는 것이니, 그 샘이 다함 없고, 그 흐름이 끝이 없다!”

 

(2) 그분의 원수에게는 정의로 대하신다.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보응하신다”(10절).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① 고의적인 죄인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다. 육적인 마음은 그분을 대적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특별히 더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의 적수들과 야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해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그들은 자신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모든 무기력한 악의를 무시한 채 그들의 목전에서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화살은 “그 얼굴을 향하여” 준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시 21:12). 혹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사 그 심판이 우상 숭배에 대한 정당한 형벌임을 그들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욥기 21장 19절의 “그 몸에 갚으셔서 그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라”는 말씀과 비교해 보라. 비록 보응이 느린 것같이 보이지만, 결코 연기되지 아니한다. 악인들과 죄인들은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잠 11:31). 나는 예루살렘 탈굼이 이 부분에 대해서 허위를 꾸민 것을 그냥 넘길 수 없다. 그것은 미래 상태에 관한 유대 교회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을 오는 세상에서 파멸시키시기 위해, 이 세상에서는 단지 저들의 선행에 대한 상급을 베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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