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사무엘상 3장 복음 설교말씀] 엘리와 그의 집에 내린 두 번째 위협(삼상 3:11-18)

두란노 서원 2022. 11.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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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장에서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는다. 자기 아들들의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아들들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제물에 손을 대고 제사를 우습게 여겼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의자에 떨어져 죽는다. 성도는 복음을 가르쳐야 한다. 자녀에게 십자가 복음을 가르쳐 구원받게 해야 한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엘리와 그의 집에 내린 두 번째 위협(삼상 3:11-18)

 

Ⅰ. 서론적인 이야기가 끝나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의 집에 관한 선언을 말씀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그에게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얼마나 축복된 인간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여 주지 않으셨다. 젊은이들은 대개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무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심부름꾼으로 삼기 위해 찾아오셨다. 실은 이것이 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선포가 그 자신에게도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의 아들들이 엘리의 아들들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지만 기대만큼 훌륭한 인물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되었을 때 매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8:3).

그 선포의 내용은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전해 준 것과 비교할 때(2:27) 짧은 것이다. 사무엘이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하늘나라에 관한 것이라고 하여도 어린아이들의 기억력을 지나치게 과신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전 장에서 선포한 경고를 재가하고 그 선언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는 것은 매우 슬픈 소식이요, 진노를 발하는 선포이다. 아마 그 경고를 듣고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디어 이런 재차의 경고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하늘의 경고를 무시하면 할수록 이는 더욱 확실히 임할 것이며 그들의 멸망이 더욱 심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미 선포한 경고 가운데서 그 죄악과 이에 따른 형벌이 재확인되었다.

1. 그 죄에 관해서 이는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13절)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이미 말한 바가 있고, 여러 번 그 자신의 양심이 자기 자신에게 이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는 우리가 잘 아는” 죄악이며, “우리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노라”고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죄악은 얼마나 큰 것이며, 우리가 받을 멸망 또한 역시 얼마나 극심한 것이 되겠는가! 간단히 말해서 그 죄악은 “그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그가 이를 금하지 않은 것이다.” 또는 히브리어의 표현 그대로 “그들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한 것이다.” 만일 엘리가 그의 노여움을 아들들에게 나타내 보였던들 그 정도까지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나무라기는 하였으되, 그들의 잘못에 대해 벌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대제사장과 사사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인데도 그들의 잘못 사용되는 권력을 빼앗아 버리지 못했다.

 

(1) 죄인들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자청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타락시킨다(왜냐하면 각 사람은 자기의 욕심에 끌려 미혹될 때 시험을 받기 때문이다. 약 1:14).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려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 뿐만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도들과 천사들로부터도 미움받는 존재가 된다. 죄악은 멸망을 자청하는 것이며 인간을 가장 비열하게 만드는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였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사람들 앞에서 유린하였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이 그들 스스로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저주를 자청한 셈이다.

 

(2) 다른 사람들의 죄를 중지시킬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중단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남들의 죄악에 스스로를 동참시킨 결과가 되며 따라서 책망을 함께 받아야 한다. 만일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여야 할” 칼을 가지고 있는 당국자가 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2. 그 형벌에 관하여 “이는 내가 그의 집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셨다(12, 13절).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대해 두고두고 저주를 내리시겠다는 뜻이다. 그 자세한 형벌의 내용은 전에 이미 말씀되어진 바가 있다. 그것들이 여기서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가 보충되었다.

 

(1) 그 형벌이 선포될 때 온 이스라엘이 무서움에 떨며 놀라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11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라고 하셨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의 아들들이 쓰러질 때, 엘리의 목이 부러지고 엘리의 집이 흩어지리라는 소식을 듣게 될 때 크게 두려워하며 놀랄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이 어찌 그리 무서운지요! 하나님의 심판이 푸른 나무에 떨어지면 이를 당장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다른 사람에게 내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시 119:120).

 

(2) 이 무서운 형벌의 결과가 반드시 실현될 것이며 끝까지 실현될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라고 하셨다(12절). 그 일이 실현되기 시작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기간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말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어떤 용서를 빌 수 있는 기간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래 있다 시행되어도 드디어 그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완전히 끝맺을 것이며 그 집을 멸망시킬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3) 이 선포가 취소되거나 그 형벌의 시행이 지연되거나 경감되리라는 희망을 전혀 주시지 않았다(14절).

① 하나님은 결코 그 선포를 취소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였다”라고 그 선포에 뒷받침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일이나 심판을 내리시는 일에 있어서 한 번 맹세하신 일은 결코 돌이키지 않으신다.

② 하나님은 결코 속죄물 같은 것 때문에 타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그 죄가 속량 받지 못하며, 그 형벌이 감소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율법에 의한 희생의 제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것으로써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여 주신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에게는 죄의 삯인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신다.

 

Ⅱ. 이 선포가 엘리에게 전달되었다.

 

1. 사무엘은 그 선포를 조심스럽게 잘 간수하였다(15절).

 

(1)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워있었다.” 아마 사무엘은 자기가 들은 바를 여러 번 숙고하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자리에 누워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양식을 받아먹게 되면, 이를 우리 자신 속에한동안 간직하며, 잘 소화시키는 것이 좋다.

 

(2) 사무엘은 언제나처럼 아침에 제일 먼저 성전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다.” 다른 때에 그가 성전을 연다는 것은 어린 그에게 있어서 매우 자랑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에만은 그러한 일이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당시의 어떤 어린이들보다 그를 더 높여 주고 명예를 씌워 주셨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명예를 자랑하거나 우쭐대지 않았으며, 또 이런 보잘것없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욱 기쁘게 성전으로 올라가서, 성전의 문들을 열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나타내 보여 주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예를 들면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라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은 자로 여겨 주기를 원하신다. 사무엘은 놀라운 이상을 본 그 감격이 지나쳐서 일상적인 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흔히 황홀경에 들어갔던 사람들 모양으로 동료들에게 가서 지난밤에 하나님과 나눈 이야기를 즐겨 털어놓고 싶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을 조심스럽게 자기 속에만 간직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에만 정신을 쏟았다. 하나님과 가졌던 우리의 은밀한 사귐을 지붕 위에서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3) 사무엘은 자기가 본 바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였다.” 만일 엘리가 그에게 화를 내고 그를 꾸짖을까 두려워했다면, 우리는 평상시에도 엘리가 그 자신의 악한 아들들에게는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지만 이 착한 아이에게는 엄중하게 대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랬다면 이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이 이 착한 늙은이를 근심하게 하고 괴롬을 알게 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만일 사무엘이 이 소식을 듣자마자 금방 엘리에게로 달려갔다고 하면, 마치 그가 엘리의 집이 속히 망하기를 바라고, 자기 자신의 집이 엘리의 집이 멸망한 그 폐허 위에 속히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그 이상의 내용을 밝히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선한 사람은 악한 소식 전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특별히 사무엘은 제자로서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 엘리에게 악한 소식 전하기를 싫어했다.

 

2. 엘리가 그 이상의 내용을 상세히 물었다(16, 17절). 엘리는 사무엘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를 불렀다. 아마 그의 침상 곁으로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보고 이를 말하라고 명령했다. 엘리는 이를 알기 위해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고 말함으로) 사무엘에게 간청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움츠러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만일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하면서 위협적으로 명하기도 하였다. 엘리는 그 말씀이 그에게 관한 나쁜 결과를 초래할 예언일 것이라고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신 만큼 모르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든 또는 해롭게 하는 것이든 상관하지 않고 익히 알기를 원한다.

“만일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한 엘리의 엄포는 충실치 못한 파수꾼에게 내려질 무서운 저주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만일 그들이 죄인들을 경고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범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탄핵하여야 할 그 진노와 저주를 그들 스스로가 받아야 한다.

3. 드디어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포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었다(18절). “사무엘이 세세히 말했다.” 사무엘은 일단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였으며, 보다 좋게 꾸며서 말하지도 않았고, 또는 그 예리한 날을 무디게 하거나 그럴듯하게 도금을 해서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가 받은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도 이처럼 말씀에 충실하여야 한다.

 

4. 엘리는 신앙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엘리는 사무엘의 기억이 완전한가를 묻지 않았으며, 그에게 꼬치꼬치 따지지 않았고, 그 선고가 틀림없는 것인가를 묻지 않았다. 그는 그 형벌이 지나친 것이며 또 감당키 어려운 것이라고, 가인처럼 불평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이에 순복했고, 그의 죄과를 받아들였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라고 엘리는 말했다.

엘리는 그 형벌이 다만 일시적인 것이며 그의 후손들에게 망신을 주고 가난하게 하는 것으로만 이해했고, 그의 후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게 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고 기꺼이 순복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집안의 과오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하나님께서 결코 돌이키지 않으시겠다고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그 형벌이 취소되도록 중재 기도를 드리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엘리는 이와 상당히 비슷한 경우에 아론이 취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겸손히 내맡겼다. 그때 아론은 “잠잠하였다”(레 10:3).

 

(1) 그의 짧은 말 가운데는 진리가 표현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여호와시다. 그가 이 심판을 내리셨다. 그의 몽둥이에 대해서는 항거할 수 없고, 그의 선고에는 예외가 없다. 그는 반드시 그 심판을 실현하실 것이며, 그의 힘을 대항할 수가 없고, 그의 정의에 대해서는 도저히 규탄할 수가 없으며, 그의 주권은 쟁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여호와시다. 그는 스스로를 성별 하시며,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는 분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돌림이 마땅하다. 이는 여호와시다.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며 그분은 그의 피조물에 대해 조금도 잘못된 일을 행하시지도 않았으며, 앞으로도 행하지 않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또 조금도 피조물들에게 그들의 잘못 이상을 묻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2)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다.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나는 그분의 처사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다. 그의 하시는 방법은 의로우시며,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그분에게 죄를 범하였으니 만큼 여호와의 노여움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책망을 달게 받아야 하며, 결코 우리의 조물주와 대항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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