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7장 강해설교 중에서 이스라엘 멸망과 임마누엘 징조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합니다. 앗수르를 통해서 사마리아가 멸망을 당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대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임마누엘의 징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령에 잉태되어 탄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멸망과 임마누엘 징조 사건(사 7:1-25)
1-9절,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
[1-2절]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 . . .
유다 왕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 곧 유다 왕에게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고 고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 다윗 때는 이스라엘이 아람을 지배하기도 했었다. 또 다윗 집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수들의 거대한 세력 앞에서 유다 왕은 두려워 떨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죄로 인해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3-4절]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 . . .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유다 왕 아하스가 악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그것은 유다의 경건한 자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이었고 또 하나님의 긍휼로 악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그 아들 스알야숩과 함께 아하스를 만나게 하셨다. 스알야숩이라는 말은 ‘남은 자가 돌아온다’는 뜻으로 그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은,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즉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다고 표현하셨다.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은 화덕에서 불타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화덕에서 꺼내져, 불이 꺼져 가는, 그래서 연기만 많이 나는 나무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세력은 꺼져 가는, 연기 나는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들이 앗수르 왕에게 패망할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유다 왕은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들로 인해 낙심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9절] 아람과 에브라임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 . . .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곤하게 하고 우리를 위해 그것을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은 동맹을 맺고 유다를 쳐서 파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자는 계획까지 세웠지만, 그 계획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세워지고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뿐 아니라, 온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라도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65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하여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과 그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주전 733년경)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4-727년경)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열왕기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 때에(주전 722년경)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년경)에게 망하였고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17:1-6). 그 후 앗수르 왕 에살핫돈(주전 681-669년경) 때에 왕은 사람들을 앗수르 지역에서 옮겨 사마리아 여러 성들에 두었고(왕하 17:24) 이로써 유다 나라의 회복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려 했다. 65년의 기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모르나, 아하스 2년(주전 740년경) 때로부터 에살핫돈이 므낫세 왕을 포로로 잡아간 때(주전 675년경; 대하 33:11)까지의 기간이 대략 65년이 된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선지자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앗수르 왕을 의지했고 다메섹 신(神)들을 의지했다. 역대하 28:16, 23, “그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아하스 왕은]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끝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에게 굳건한 믿음이 필요함을 말씀하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은 범죄하면 약해진다. 유다 왕 아하스는 우상을 섬긴 악한 왕이었다. 그 결과, 아하스와 유다 나라는 매우 약해졌다. 그들은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의 침공 앞에 이제 두려워 떨고 있다. 성도가 범죄하면 약해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확신치도 못한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담력을 가진다.
둘째로, 하나님의 허락 없는 인간의 계획은 다 헛되다. 아람은 이스라엘과 동맹하여 유다를 침공하고 정복하려 계획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왕까지 내정하였다. 그러나 본문 7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였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시편 127:1-2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말했다(약 4:15).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는, 사람의 모든 계획들이 다 헛됨을 알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자. 본문 9절은,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서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하려 하였었다(왕하 16: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이사야 26:3-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우리는 개인의 생사화복이나 국가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알자. 세계 역사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알자.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자.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굳게 의뢰하였다(딤후 1:12).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자.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모든 말씀과 약속을 믿자.
10-16절, 임마누엘의 징조
[10-12절]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 . . .
여호와께서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징조’라는 원어(오트)는 ‘표적’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표적을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하스가 하나님의 예언, 곧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기 나는 두 나무토막’에 불과하며 그 나라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신앙적인 아하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려 하신 것 같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어떤 표적을 보고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좋을 것이다. 그 표적이 그에게 참 믿음을 갖는 동기가 되어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게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거절하며 말했다.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그것은 그가 믿음이 강하여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무시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시험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에 인간의 이성의 판단을 믿었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였다.
역대하 28:16, “그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보내어 도와주기를 구하였으니.” 역대하 28:22-25,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훼파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 이것이 아하스의 불신앙적 상태이었다.
[13-14절]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 . .
이사야는 말한다.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는 아하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힘쓰고 앗수르를 의지하려 한 것은 사람들과 하나님을 괴롭게 한 일이라고 책망하듯이 지적하면서 이제 하나님께서 주실 놀라운 한 징조 혹은 표적을 선포한다. 그것은 아하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뜻의 선포이었다. 그것은 임마누엘이라고 불린 메시아의 초자연적 탄생에 대한 예언이었다. ‘징조’ 혹은 ‘표적’이라는 말은 임마누엘의 초자연적 탄생에 맞다. ‘처녀’라는 원어(알마)는 단지 ‘젊은 여자’(RSV)라는 뜻이 아니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 처녀’를 가리킨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용법이나 고대 헬라어 70인역이나 또 신약성경의 적용에서 분명하게 증거된다.
구약성경의 몇 가지 예를 보자. 창세기 24: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알마)가 물을 길러 오거든.” 이 단어는 16절의 ‘처녀’라는 말(베술라)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출애굽기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알마)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아가 1: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아가 6: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알마)가 무수하되.”
신약성경의 적용에서도 분명하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파르데노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또 사도 마태는, 그 모친이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고, 그 남편 요셉이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고, 천사가 꿈에 나타나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했고, 이사야 7:14의 예언의 성취이며, 또 요셉이 주의 천사의 분부대로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하였다(마 1:19-25). 누가도 예수께서 처녀를 통해 탄생하셨음을 확실히 증거하였다(1:34-35).
또 구약성경의 메시아는 신적 존재로 예언되어 있다.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영원 전에]니라.” 신적 존재인 메시아는 보통 생육법보다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본문에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졌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의 증표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15-16절]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메시아가 5, 6세가 되기 전에 이스라엘 왕과 아람 왕의 땅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한 유다 땅의 보전에 대한 약속도 내포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아하스는 불신앙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표적을 주실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언들과 표적들을 기록하고 증거한 책이다. 우리는 아하스와 같이 헛된 우상을 믿고 섬기지 말고, 무능한 존재인 사람도 의지하지 말고 허무한 돈이나 세상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순수하게 믿고 또 성경을 믿자. 우리는 성경에 가르쳐주신 대로 하나님만 믿고 섬겨야 한다. 오늘날에는 잘못된 사상들과 말들과 풍조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성경을 믿지 않고 가감하는 자유주의, 이성주의를 경계하고 모든 성경을 다 믿어야 한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믿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거짓된 신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주께서는 교훈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고”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11, 24). 사도 바울도 교훈하였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오늘날 거짓된 신비주의가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 방언 등을 조심하고 그런 것들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성경의 건전한 교리와 윤리 교훈에 착념해야 한다.
17-25절, 앗수르 왕의 오는 날
[17절]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 . . .
이사야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장차 여호와께서 에브라임 곧 북쪽 이스라엘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아하스와 그의 백성 곧 유다 백성과 그의 아비 집 곧 다윗 왕가에 임하게 하실 것이며 그것은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라고 말했다.
여호와께서는 앗수르 왕이 오게 하실 것이다. 복과 화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국가에 복을 주기도 하시고 재앙을 내리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부르실 것이다. 앗수르 왕은 이전에 유다 왕 아하스가 도움을 요청했던 자이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라고 말했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그에게 예물로 보내었었다(왕하 16:7-8).
그러나 유다 나라는 장차 그 앗수르에게 화를 당할 것이다.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올라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했고 유다 왕 히스기야는 라기스로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또 앗수르 왕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하므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때에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왕하 18:13-16). 유다 나라에 이런 치욕적인 일이 마침내 일어났었다.
[18-19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 . . .
이사야는 말한다.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본문에는 ‘그날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18, 20, 21, 23절).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 그의 진노하시는 날, 그의 재앙의 날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날이 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작정한 시간표대로 진행된다. 물론, 우리는 인간의 선악간의 행위들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를 이루는 방편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앗수르를 파리와 벌로 비유하셨다. 그것은 그들 침략군들의 수가 많고 신속하고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그로 인한 고통과 해가 매우 클 것을 암시한다. 적군들은 거친 골짜기와 바위틈과 가시덤불과 초장 등 모든 곳에 들어와 그 곳들을 점령할 것이다. 그 땅에는 그들을 피하여 숨을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땅은 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황폐케 될 것이다.
[20절] 그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 . . .
이사야는 또 “그날에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고 말한다. 유다 왕 아하스는 앗수르를 의지했으나 이처럼 유다 나라는 장차 앗수르에게 큰 화를 당할 것이다. 이사야 10:5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사람들을 그의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라고 표현하셨으나, 본문은 앗수르 왕을 세내어 온 삭도 곧 면도칼이라고 표현하였다. 머리털이나 발털이나 수염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와서 그 털들을 다 밀어버릴 것이다. 유다 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곧 존귀한 자로부터 비천한 자까지 다 노략하고 짓밟을 것이다. 장차 유다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21-22절] 그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 . . .
이사야는 또 “그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고 말한다.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른다는 말은 가난한 생활을 묘사한다. 황폐한 유다 땅에 남은 사람들은 가난할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우유와 버터가 많을 것이며 그래서 모든 사람이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농사나 장사가 되지 않으므로 곡식, 과일, 고기 등을 먹지 못하고 주로 뻐터와 꿀만 먹는다는 뜻도 가질 것이다.
[23-25절] 그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그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온 땅에 질려와 형극이 있으므로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질려와 형극 까닭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되리라.”
많은 포도 수확으로 큰 소득을 올렸던 포도원이 장차 가꿀 일손이 없어서 찔레와 가시나무만 무성할 것이다. 온 땅에 찔레와 가시나무가 있으므로 사람들은 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서이든지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보습으로 갈던 산에도 찔레와 가시나무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놓으며 양의 밟는 곳이 될 것이다. 이전에 밭과 포도원이었던 땅은 더 이상 밭 농사나 포도 농사를 하지 못하고 황폐하게 방치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믿자. 본문에는 ‘그날에’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다. ‘그날’은 하나님의 작정된 심판의 날이다.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오실 것이다.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날이 있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있다. 우리 개인을 향해서도, 또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나 우리 국가나 온 세계를 향해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두려워하자.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스라엘로 멸망케 하였고, 유다의 죄악도 유다로 패망의 길로 나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두려워하고 죄를 짓지 말자. 히브리서 2:1-3,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공의로운]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말고 특히 고의적인 죄를 짓지 말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소망하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자는 하나님만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데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산 것이 불행의 원인이었다. 북쪽 이스라엘이 그러하였고 남쪽 유다도 하나님을 찾고 그의 계명에 순복하지 않으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을 불러 그들의 땅을 황폐케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전에 누렸던 풍요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며 그의 계명을 힘써 행한다면, 그들은 평안과 형통을 누릴 것이며, 지금 징벌 아래 있다 할지라도 머잖아 회복의 날을 보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안에 평안과 영생이 있다. 우리는 모든 불경건과 불신앙과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소망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자.
[신약히브리어 성경말씀] 복음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야고보서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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