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창세기 4장 주석 강해설교] 가인과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후손들(창 4:1-26)

두란노 서원 2021. 8. 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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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4장 주석 강해설교 중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후손들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는 받았습니다. 가인이 화가 나서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인의 족보가 제일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구속사 관점에서 보면 선택받지 못하고 저주받은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5장에 아담의 후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선택받은 자를 상징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고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와 가인의 후손들(창 4:1-26)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得男)하였다 하니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아담은 아내와 동침하였고 아내는 잉태하여 가인을 낳았다. ‘동침한다는 원어(야다)안다는 뜻으로 성 관계를 가진다는 뜻도 있다. 아담은 첫아들 가인을 얻었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원어(에스 예호와)여호와의 도움으로라는 뜻이다.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다. 농업과 목축업은 인류 역사의 아주 초기로부터 있었던 가장 오래된 직업들이었다.

[3-4a]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원어(미케츠 야밈)날들의 끝에서라는 뜻인데, 상당히 많은 날들이 지난 것 같다. 영어 성경들은 시간이 지나면서’(in the course of time)(NASB, NIV)라고 번역한다.

어느 날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다. 훗날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곡식 제사 즉 소제는 정당한 제사의 한 방식이었다. 한편,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렸으며 후에 그것도 모세의 율법에 규정될 정당한 제사 방식이었다.

[4b-5a]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열납한다’는 원어(솨아)유의한다, 존중한다.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을 존중하고 인정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과 그들의 제물에 대해 차별하신 까닭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라고 기록한다.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린 것은 ‘첫 새끼와 그 기름이라는 그의 제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점이라고 본다.

첫째로, 아벨의 제물은 정성 어린 제물이었다. ‘첫 새끼’는 짐승 중에 가장 귀한 것을 가리킨다. ‘기름이라는 원어(켈렙)가장 좋은 부분이라는 뜻이 있다. 민수기 1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소득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고 레위인들은 그들이 받은 모든 예물 중 그 아름다운 것을 취하여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한다(29-32). 거기에 세 번이나 나오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원어가 바로 이 단어이며 영어성경들은 가장 좋은 부분이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 NIV). 신명기 6:5는 우리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명하였다. 잠언 3:9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라고 교훈한다. 아벨은 바로 이런 정신으로 정성 어린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둘째로, 아벨의 제물은 피가 있는 제물이었다. 그것은 믿음이 없이는 드릴 수 없는 제사이었다. 아벨은 자신이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며 장차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속(代贖)하며 구원할 구주를 보내실 것을 믿고 바라본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면서 입히신 가죽옷을 통해 깨달았든지, 혹은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말미암아 받은 진리이었을 것이다. 죄인이 오직 대속하실 구주의 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진리이다(8:20; 1; 9:7, 12; 10:19; 고전 11:25; 13:9). 그러므로 레위기 17:11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말하였고, 히브리서 9:22는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의 두 가지 조건을 교훈한다고 보인다. 하나는 정성이고, 다른 하나는 속죄의 피이다. 특히 속죄의 피는 성경 전체에 계시되어 있는 근본적인 진리이다. 죄인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아벨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예표이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대속제물이 되셨다(20:28). 우리는 그의 피로 죄씻음과 거룩함을 얻었다(9:12; 10:10, 14).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3:16).

 

5b-8, 가인이 아벨을 죽임

[5b-7a]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다. ‘안색이 변하였다는 원어는 얼굴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그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엎드려 회개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교만하였고 심히 분노하며 얼굴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그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시며 그것이 정당치 않다고 지적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는 구절의 원어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열납되지 않겠느냐?”라고 번역되기도 한다(Syr, Vg, KJV, NIV). 하나님의 말씀은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한다.

[7b]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이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은 선과 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선을 행치 않으면 악을 행케 될 것이며 악을 피하려면 선을 행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큰 죄를 짓는 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4:17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라고 말한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원어는 그의 소원은 네게 있으며 너는 그를 다스릴 것이라”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KJV). ‘그의 소원은 아벨에 대한 소원 즉 아벨을 이기고 지배하려는 소원을 가리키며 또 그는 아벨을 다스릴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으로 보인다.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그들이 들에 있었을 때 가인은 일어나 그 아우 아벨을 죽였다. 그의 교만과 불쾌함은 분노와 시기심과 미움으로 발전했고 마침내 살인의 행위로 나타났다. 이것이 인류 역사 최초의 살인 사건이었다.

죄가 전혀 없었던 세상에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살인이라는 추한 죄악이 나타났다. 선하게 창조되었던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 속에 이런 무서운 죄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와 시기와 미움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육신의 일들을 행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5:19-21; 21:8; 22:15).

 

본문은 인간의 죄성을 증거한다. 가인 속에는 교만과 시기심과 미움과 분노가 있었고 그것은 살인에 이르게 하였다. 이것은 모든 죄인들에게 있는 죄악 된 성질이다. 우리는 이런 죄악성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며 그런 자는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요일 3:15). 본문은 의인의 죽음을 증거한다. 인류의 역사상 많은 무고한 자들, 특히 순교자들의 억울한 피흘림이 있었다(23:35; 6:9-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9-15, 가인에게 내리신 벌

[9-10]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찾아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거짓말을 하며 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하였다. 가인에게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벨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지라도, 그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살인 사건을 다 알고 계셨다.

[11-12]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인에게 징벌을 선언하신다. 그 징벌은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저주는 두렵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내용이었다.

첫째는,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이다. 농사의 수확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 요소인데, 땅이 다시 효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물질적인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둘째는, 너는 땅에서 떠돌며 방랑하는 자가 되리라는 것이다. ‘피하며 유리하는 자라는 원어(나 봐나드)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자라는 뜻이다(BDB). 사람은 누구나 평안을 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사람이 안정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방랑하고 방황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13-14]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은 하나님의 징벌이 너무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또 그는 장차 떠돌며 방랑하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졌다. 이것은 악인들의 두려움이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나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친다(28:1).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그러므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가인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그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표를 주어 만나는 자들에게 죽임을 면케 하셨다. 그 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그가 살인자에게 주신 은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셨다.

 

본문은 죄의 결과를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은밀한 죄를 다 알고 계셨고 그 죄에 대해 벌하셨다. 가인은 이전같이 땅의 효력을 얻지 못할 것이며(물질적 벌) 떠돌며 방랑할 것이며(환경적 벌) 죽음의 두려움을 가질 것이다(심리적 벌). 우리는 모든 죄를 멀리해야 한다.

 

16-26, 가인의 자손들과 셋의 아들 에노스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은 하나님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앞을 떠나 나갔다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섬기는 일을 멀리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가인의 후손들에게서는 경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주신 셋의 아들 에노스 때가 되기 전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줄 몰랐다.

가인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 이라는 원어방랑, 떠돎이라는 뜻이다. 그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는 말씀은 에덴동산의 위치를 추측케 만든다. 만일 에덴동산이 오늘날 지중해 지역이었다면, 에덴동산에서 네 강이 발원하였다는 말씀(2:10-14)이나 그가 에덴 동편에 거했다는 말씀과 조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역이 이전에 높은 산악 지역이었다가 후에 지형의 큰 변화로 바다가 되었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17-18]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가인은 그 아내와 동침하였고 에녹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인류의 초기에는 가족들 간의 결혼이 불가피하였다. 성경은 꼭 필요한 내용을 선택하여 쓴 역사이기 때문에 생략된 것들이 많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아담이 창조된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의 일이었을 것이고, 그때에는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많은 딸들이 이미 출생되어 있었을 것이다. 가인은 에녹을 얻은 후에 한 성을 쌓았는데 그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고 불렀다. 그가 성을 쌓은 것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녹은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22]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하였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는 것 즉 일부일처(一夫一妻) 제도는 하나님의 뜻이다(딤전 3:2). 그러나 라멕은 특이하게 두 아내를 취한 것이다. 그것은 그의 절제되지 않은, 악한 육신적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멕의 아들들에게서 다양한 직업이 나타났다. 라멕의 첫째 부인인 아다의 첫아들 야발은 장막에 거하며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 그가 장막에 거한 것을 보면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유목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는 유목민들의 조상인 셈이다. 둘째 아들 유발은 수금과 통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음악가와 연주가들의 조상이었다. 라멕의 둘째 부인인 씰라의 아들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 즉 대장장이 혹은 철공업자이었다.

[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자기 아내들에게 그가 그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고 말했고 가인을 위해 벌이 칠 배일 것이라는 하나님의 긍휼의 배려를 인용하며 자신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칠 배일 것이라고 말하였다. 가인의 6대손 라멕 속에는, 가인 속에 있었던 악하고 과격한 감정이 있었을 뿐 아니라, 가인보다도 더 뻔뻔스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아벨이 죽은 후, 아담은 다시 아내와 동침하였고 하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셋이라고 불렀다. 셋은 하와가 지은 이름이었다. 이라는 원어둔다, 놓다는 단어(쉬스)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이것은 아벨이 죽은 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의 일일 것이다. 창세기 5:3은 아담이 셋을 얻은 것이 그의 나이 130세 때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전 에덴동산에서의 생활이 얼마 동안인지 모르지만 약 10년 정도만 잡고 가인과 아벨의 출생과 성장에 약 60-70년만 잡아도 아벨이 죽은 후 50-6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 될 것이다.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은 아들 에노스를 낳았는데, 그때에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후반부를 다시 번역하면, “그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시작되었더라,”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더라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 5:6에 의하면,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은 때는 그의 나이 105세 때이었다. 아담이 셋을 낳은 것은 130세 때이며 셋이 에노스를 낳은 때가 105세 때이니, 아담과 하와가 몇 세에 범죄했는지는 모르나, 그들이 범죄한 지 적어도 2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 또 아벨이 살해된 지 상당히 세월이 흐른 후에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이다. 범죄한 아담과 그 자손들은 영적으로 매우 무디어져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찾지도 않았다(14:1-3; 49:12, 20).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가인의 자손들을 통해 인류 사회는 다양화되고 있었다. 가인은 성을 쌓았다. 가인의 7대손 야발은 장막에 거하며 목축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통소 잡은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이었다. 이와 같이, 가인과 그 자손들에게서 건축업, 목축업, 음악가, 철공업 등 다양한 일들이 나타났다. 가인의 자손들에 대한 기록은 셋의 아들 에노스 때의 일과 대조된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성경의 강조점이 있다. 가인 자손들의 문제점은 불경건과 부도덕이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라멕은 두 아내를 취했고 살인까지 했다. 가인의 자손들은 세상일에는 힘썼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며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각자의 재능과 직업을 따라 일상생활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따라 의와 선과 진실을 행해야 한다.

[역대상 5장 주석 설교말씀] 요단 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대상 5:18-26)

 

[역대상 5장 주석 설교말씀] 요단 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대상 5:18-26)

안녕하세요. 오늘은 역대상 5장 주석 설교말씀 중에서 요단 동편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요단 동편에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지파가 분배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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