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성경 족보론] 아브라함 -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출 3:15)

두란노 서원 2020. 5. 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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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족보론에서 아브라함의 족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 -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출 3:15)

1. 하나님의 이름

 

모세가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가시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3:6-8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 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냅니까? 나는 못 갑니다.”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표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름은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엘, 엘 샤다이, 아도나이,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름이 바로 여호와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이게 하나님이 이름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여러 차례 나오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표호이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하나님이 이 이름을 중요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계신다면 우리도 그 의미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겁니다.

 

2. 족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와 우리들의 족보, 생명 책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공부를 합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족보를 따져 올라가면 맨 위에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가니까 촌수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아들이 하나님 보고 하나님 아버지그러면 나는 뭐라고 합니까?”

이것은 영적인 혈통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거듭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런데 이제 믿음의 혈통을 따라 올라가도 하나님이 나옵니다. 하나님인데 그중에 결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이름이 있습니다.

‘0 0 0’ 여기 제 이름이 있습니다. 뒤에 ‘0 0’이라는 이름은 제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있는 성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조상의 이름입니다. 자기 족보를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이름입니다. 우리 조상의 이름을 다 잊어버려도 좋은데 성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성이 없습니다. 이름 앞에 붙이는 게 없어요. 그래서 여호수아눈의 아들 여호수아라고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서 그 사람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이름을 표시하는 게 성인데 이스라엘에는 성이 없습니다. 거리에서 김 씨와 최 씨가 만났다. 그러면 이름은 따질 필요 없이 김 씨 집안이 최 씨 집안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겁니다. 성이 이미 족보를 나타내는 겁니다.

성은 제일 위에 있는 조상의 선조를 나타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제일 선조는 하나님입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선조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씨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붙이고 다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그들의 성씨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이것 한마디로 통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외에는 구원의 족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택했습니까? 아브라함을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몇 명 낳았습니까? 여덟 명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서 이삭만 선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이스마엘로 빠져 버린 사람은 이스라엘의 족보에 들지 못합니다. 반드시 이삭의 후손이어야 합니다. 이삭의 후손도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야곱과 에서입니다. 쌍둥이로 같은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어도 에서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한 교회에서 예수님 믿고,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예수님 부르고, 한 교회에서 한 목사님을 섬겨도 여기서 구원받을 자가 있고 구원받지 못할 자가 있습니다. 천국 갈 자가 있고 못 갈 자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모든 성도들이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될 줄로 믿습니다.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야곱의 후손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몇 지파가 되었습니까? 열두지파입니다. 열두 지파 속에 속한 사람들만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이 가문에 들어야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에서의 지손 에돔 족속은 가나안 땅 부근에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 부근에 에돔 족속, 이스마엘 족속들이 살았습니다. 하늘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이삭의 자손이면서, 야곱의 후손인 사람들만 살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구약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이 세 사람의 족보에 들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에서의 자손, 아말렉 족속이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이렇게 정확합니다. 이것이 신약의 모형입니다. 열 가지를 잘해야 하는데 아홉 가지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열 가지가 다 정확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말씀의 분별력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믿든 저렇게 믿든 아무튼 믿지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겁니다.

 

유교, 불교, 천주교가 다 같이 선한 일을 하라고 하니까 아무거나 열심히 잘 믿으면 된다는 식이라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반드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구약 속의 이스라엘 자손이 족보에 대하여 이 정도의 확신을 가졌듯이 우리도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이 말이 무슨 말인가 알겠습니까? 이 말은 나는 이스마엘의 하나님도 아니고, 에서 족속의 하나님도 아니고, 애굽 족속의 하나님도 아니다. 반드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에 반드시 이 세 사람에게 한 약속만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약속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어떤 족속이 되어야 합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약속해 주신 것이 있습니까?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많은 축복을 주셨지만 그 모든 축복 가운데 가장 위대한 약속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가 기업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가 기업에 해당이 되려면 이들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구약시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되려면 육적인 때이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내가 가지면 됩니다.

 

요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신약시대에는 혈통, 육신, 계통, 등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 어떤 교파에 속하여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믿음이냐를 따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 이삭이 가진 믿음, 야곱이 가진 믿음을 가지면 이들의 후손이 됩니다. 이들의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가진 믿음을 우리가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정확한 믿음을 갖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거리감이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교리적인 면에서는 극과 극입니다. 교리가 다르다는 말은 믿는 바가 다르다는 겁니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교리가 다르다는 말은 믿는바 내용이 다르다는 겁니다.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옳지 서로 다른 둘이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 아들, 그들 중에 하나지 모두 다 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이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 말을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 말을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주기도문을 보면 정확합니다. 주기도문은 귀신을 쫓아내는 주문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이렇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나님과 너희 관계를 만들어 놓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기도하는 목적이 너희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인지 분별해 보라는 겁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이지 주문을 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고백은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믿습니다.” 고백하는 겁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시나요.

주문 외우듯이 하지 말고 여기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하나님 했을 때 이 말은 하나님은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둘째, 이삭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면서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셋째,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혈통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됩니다.

 

3. 구원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고 그처럼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롬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후사라고 하는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 그 사람의 모든 축복과 재물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헬라오로 휘오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여러 아들 가운데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아들을 말합니다.

 

히11:17-18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아브라함의 아들은 여러 명이 있었지만 그의 독생자는 이삭입니다. 예수님이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왜 독생자라고 했을까요? 우리를 독생자 만들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독생자입니다. ? 하늘의 모든 축복을 상속받는 기업의 후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후사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독생자와 같은 말입니다.

 

롬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도 갖는다면 우리도 그와 같은 후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롬4:22-24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데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의롭다 함을 받을 때 우리도 아브라함의 독생자, 후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로마서 4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갈라디아서 3장에도 계속해서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 어떤 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받았을까요?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셨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고 나도 그렇게 참여해야 하는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겠습니까? 입으로만 안 됩니다. 보통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4. 과연 아브라함은 언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첫째,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라고 말합니다. 둘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을 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둘 다 틀립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해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면 여러분도 그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독자를 바칠 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번제단을 쌓고 나무를 올려놓고 기름을 붓고 수족을 묶은 다음에 목을 찔러 피를 다 받아내야 합니다. 그다음에 불살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드릴 수 있습니까? 만약에 아브라함이 그렇게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면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못하고 어떻게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못한다면 벌써 신앙에 모순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해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다면 그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면 후손 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독자가 아닌 여러 명 중의 하나만 드리라고 해도 못합니다. 요즘 교인들을 진단해 보겠습니다.

 

첫째, 아들을 바치는 것은 고사하고 예수 믿으면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면 30%이상이 예수를 버릴 겁니다.

둘째, “교회를 다니면 직장을 갖지 못한다.” 즉 취직을 안 시켜 주면 예수님을 버릴 사람 많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직장 때문에 교회를 못 다니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으면 구속시킨다.”면 현재 교인들 가운데 80%80% 이상은 신앙을 버릴 겁니다. 그런데 아들을 드려요? 절대 못합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에 가서 절하지 않으면 구속시킨다고 하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서 절을 했습니까? 목사님들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범하게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지를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친 것이 창세기 22장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창세기 15장입니다.

창15: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을 때 의로 여기셨는데 이렇게 믿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5세쯤 되었습니다. 사라도 늙어 가는데 아브라함은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지 못하니까 집에서 기르는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반드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라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밖으로 인도하셔서 하늘의 별들을 세게 하십니다. 하늘의 별들 중에 인간이 눈으로 확인하고 셀 수 있는 별들이 300개쯤 된다고 합니다.

 

옛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에는 별이 3000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리가 가질 때 우리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바라볼 때 천국 갈 자격이 있는 것 같습니까? 없습니까? 천국 갈 자격은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솔직히 보면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경건해요? 불경건해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볼 때는 실망할 수밖에 없어요. 자격이 없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했으니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씻어 주신다고 약속했으니 그렇게 된 줄로 믿습니다.

 

찬송가 5453절입니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떠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아브라함에게 별을 보여주면서 자식을 낳게 해 주겠다 약속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보여주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비록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으면 천국 갈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야 할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 가운데 가장 큰 능력은 구속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약속했으므로 그 약속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약속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것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은 우리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요일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약속대로 우리 주님이 나를 데리러 오실 줄을 믿습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롬4:18-24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이렇게 믿으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으면 의로 여기십니다. 신앙은 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보는 겁니다. 나를 과신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보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아브라함의 믿음에 참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고, 그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조상이면서 절대로 이스마엘로 빠지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이 삐뚤어지면 이스마엘 쪽으로 빠져나갑니다. 또 잘못하면 이삭에게까지 갔다가 야곱으로 이어지지 않고 에서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가 다 이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이삭의 자손, 이스마엘의 자손, 야곱의 자손, 에서의 자손을 비교하면서 우리를 경고하며 훈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면 어느 사이에 내가 이스마엘과 에서가 되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린 것은 의롭다 함을 받은 게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낳기 전에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거듭나는 것이며 구원받는 겁니다.

 

5.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

 

이렇게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에게 시험이 옵니다. 이 시험이 바로 모리아 산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시험받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시험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시험은 받을 필요가 없으나 우리가 부족하게 행할 때에 시험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은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주시겠다고 했을 때 믿었습니다.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고도 오랫동안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주시기는 주시는데 사라가 늙었으니까 못주는가 보다. 하나님을 도와 드리자 해서 하갈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고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다고 믿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년 이맘때에 내가 아들을 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웃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사라도 웃었습니다.

 

창17:16-19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웃고, 18장에서는 사라가 웃습니다. 사라는 장막 문 뒤에서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는 믿더니 그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렇게 확신했던 아브라함도 흔들렸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웃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이 안 믿어졌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든 말든 약속을 이루어 주십니다.

 

롬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하나님은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이삭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은 불신앙의 웃음입니다. 그런데 안 낳을 줄 알았는데 자식을 낳아 버렸습니다.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했을 겁니다.

 

그 후회와 더불어 또 한 가지 결심을 했을 겁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불신앙 하지 않겠다.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안 믿고 불신앙 했지만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 앞에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있는 그 상처를 씻어주기 위해서 시험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서 번제로 드려라

 

하나님은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아브라함은 그가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신앙을 시험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은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삭이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이 확실히 믿어진다면 드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 “내가 이 아들을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으로 아들을 드린 겁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행함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린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이삭을 드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줄로 믿고 드린 겁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 뒤에는 이삭을 부를 때면 신앙의 가책이 없어졌을 겁니다. 이삭을 주신다는 약속을 불신앙하고 웃었는데 신앙으로 이삭을 다시 드렸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우리가 가진 믿음을 흔들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돌로 떡이 되게 하여 먹는 것이 몇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까?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 문제입니다.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마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분명히 하나님이 아들임을 선언해 주셨는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했습니다. 이 말은 떡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하라는 겁니다. 떡을 만들어 먹으면 하나님의 아들임에 대하여 의심한 것이 됩니다. 내가 떡을 만들어 먹든지, 말든지, 살든지 죽든지 관계없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게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여러분 거듭나면 시험이 옵니다. 구원의 확신, 나는 거듭났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선언하고 나면 마귀가 흔들어 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런 시험이 옵니다. 첫째는 먹고사는 문제로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시험이 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 마음의 중생의 체험,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체험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환경적 조건, 먹고사는 문제로 되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겁니까? 말씀으로 된 겁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상황을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명하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중생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시작입니다. 나는 어떤 말씀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어떤 말씀으로 거듭났다. 어떻게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 신학 연구] 하나님의 섭리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시키신다. 섭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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