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족보 중에서 이삭의 자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삭 - 약속의 자녀(갈4:28-31)
1. 족보 - 메시아의 혈통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족보에 관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 이삭의 후손이면서, 야곱의 후손이어야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고 구약에 약속된 모든 축복에 해당됩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면 구약의 약속에는 해당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이삭의 자손이면서 이스마엘의 자손이면 안 됩니다. 꼭 이삭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이삭의 자손이면서 에서의 자손이어도 안 되고 야곱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혈통적으로 분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이삭의 자손이면서 야곱의 자손이어야 구약의 모든 약속과 기업을 받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어떻게 적용됩니까? 아브라함이 가졌던 신앙을 내가 갖게 될 때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떤 믿음입니까? 자기가 자식을 전혀 낳을 수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낳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나갔을 때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심히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므로 하나님이 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이삭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몇 명입니까? 여덟 명입니다. 자녀들이 많으면 상속권을 누가 갖습니까? 장자가 갖습니다. 구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속권을 갖는 사람이 장자이고 이 장자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제사권을 갖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아닌 부모에게 제사를 드리는 직분을 갖습니다. 이 상속권은 장자가 갖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권을 받은 장자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됩니다. 레위인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면 레위인은 누구 대신이냐 하면 장자 대신입니다.
민수기 3장을 보면 일반 백성들의 첫 번째는 장자 1명당 레위인 1명을 해당시켜서 그 가정의 제사장을 삼게 했습니다.
민3:12-13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민3:41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난 것의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그러면 상속권을 받는 사람은 무슨 축복을 받습니까?
➀ 제사장의 축복을 받습니다.
➁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가나안 땅, 오늘 우리로 말하면 천국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➂ 영적인 혈통을 갖게 됩니다.
상속권 가운데 재산 상속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상속권을 이어받으면 아버지에게 주신 축복 속에 반드시 메시아가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리스도, 메시야가 태어나는데 자녀들이 태어나면 아버지는 그 자녀들 속에 메시아를 기다리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결혼을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성혼선언을 할 때 이렇게 합니다. 교회에서 성혼선언을 할 때 주례 목사님이 말씀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오늘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 하노라”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고 앞으로 올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않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야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올 줄로 믿으니까 결혼실을 할 때 이렇게 합니다. “오늘 이 부부에게서 메시아가 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여호와의 축복을 선언 하노라”
그들은 모든 축복의 근원을 이것으로 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런데 여기서 상속권을 받을 때 가장 중요한 축복이 메시아의 혈통이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혈통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혈통이 되지 못하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축복 중에 가장 중요한 축복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누구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까? 그런데 그 장자권을 누가 받아요? 첫 번째 낳은 아들이 받아야 합니다.
2. 이스마엘의 신앙, 이삭의 신앙
아브라함이 첫 번째 낳은 장자의 이름은 이스마엘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비유합니다. 다른 여섯 명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미디안 족속이 있습니다. 그들도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대로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치지도 않고 두 명의 아들을 대표로 꼽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입니다. 야곱과 에서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이삭의 혈통이 되려면 누구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적 신앙도 있는 겁니다. 이삭이 가진 신앙을 가져야 하는데 잘못하면 이스마엘적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집사도 됩니다. 장로도 됩니다. 목사도 됩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면서 이삭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스마엘로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이삭이 가진 신앙은 무엇이고 이스마엘이 가진 신앙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누구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다면 우리들 중에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이삭과 같은 믿음이고, 어떤 사람은 이스마엘과 같은 신앙입니다. 두 가지 중의 한 가지일 겁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이면서 이삭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신앙이 되었다가도 잘못하면 야곱이 아닌 에서의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잘 비교해야 합니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전체가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마엘과 같은 신앙은 되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스마엘의 신앙을 가졌다면 이삭의 신앙으로 바꿔야 합니다. 지옥 갈 분들은 안 바꿔도 됩니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처음에는 한 집에 살았습니다. 똑같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살았습니다. 지금 다 똑같이 교회에 다닙니다. 한 집에 사는 겁니다. 하나님을 다 같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큽니다. 먼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행세도 더 잘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쫓겨나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살 때 보니까 여기가 가나안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이스마엘 자손은 여기 붙어살아요. 가나안 땅에 살지 못하고 가나안 땅 밖에 삽니다.
계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이것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다음에 에서와 야곱은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 에서는 어디서 삽니까? 천국은 못 들어가고 천국 언저리를 돌다가 죽습니다. 아예 천국 사람들은 천국까지 오지도 못하지요. 그러나 이들은 갈 것 같다가 못 오고 맙니다. 이삭과 이스마엘, 우리는 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신앙 상태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이스마엘 아니면 이삭입니다.
3. 두 여자, 두 교회
그런데 뭐가 달라서 이스마엘은 이런 서러움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머니가 달라서 그렇습니다. 이스마엘의 어머니는 하갈입니다. 이삭의 어머니는 사라입니다. 이스마엘의 어머니는 종이었습니다. 사라는 자유자입니다.
종이라는 말은 노예를 말합니다. 이스마엘의 비극은 어머니가 달랐다는 겁니다. 이 세상의 비극은 여자로 시작해서 여자로 마칩니다.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 여자입니다. 예수님은 또 교회를 여자(신부)로 묘사했습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문제는 뭐냐면 여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롬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누가 달랐습니까? 어머니가 달랐습니다. 그러면 이 어머니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신약적인 의미로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설명합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 여러 아들이 있지만 두 아들을 대표로 해서 내가 얘기를 해보겠다는 겁니다.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 아들을 소개 전에 누구부터 소개합니까? 어머니인 여자를 먼저 소개합니다.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 구약에 나타난 모형이라는 것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갈4:22-24)
성경에서 교회는 여자를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나옵니다.
➀ 첫 번째 여자입니다.
계12:1-2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한 여자는 달을 딛고 서서 머리에는 해가 있고,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해를 옷 입듯 합니다. 별이 또 열두 개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결한 여인, 참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말합니다. 달은 구약을 가리킵니다. 해는 신약을 가리킵니다. 열두 별은 열두 사도를 가리킵니다. 구약의 터 위에서 신약을 옷 입듯한(복음을 옷 입듯한) 여인(교회)입니다.
➁ 두 번째 여자가 있습니다.
계12:3-4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또 한 여자는 붉은 짐승을 탄 음녀, 이것은 타락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여자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구약에 유대교가 타락하니까 두 음녀라고 에스겔서에 나옵니다. 그래서 특별히 여자는 성경에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한번 정리합니다.
4. 어머니가 다르다.
이삭과 이스마엘을 믿으면서 한 사람의 신앙,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까? 교회가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겁니다. 교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와 설교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교인되고, 집사 되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도가 성숙하고 양육받고 교인 노릇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없어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단체가 아닙니다.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기 때문에 나 혼자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엡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손과 발이 떨어져 혼자 다니면 그게 뭡니까? 팔 혼자 살 수 있습니까? 입이 있어서 먹습니까? 배가 있어서 소화를 시킵니까? 그것은 썩어 문드러지는 겁니다.
여기서 두 가지 신앙이 나오려니까 두 가지 뭐가 나와야 합니까? 교회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교회가 나오는데 하나는 하갈이라는 여인입니다. 또 하나는 사라입니다. 하갈이라는 여인은 신분이 종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으니까 종을 낳았습니다. 사라는 자유자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니까 종이 아닌 아들을 낳아 버렸습니다.
교회가 신자를 낳는 겁니다. 성경에는 말하는 두 가지 신앙, 성경에서 말하는 두 가지 믿음, 성경에서 말하는 두 가지 형태의 신자들, 두 가지 형태의 교회를 구분할 때 이삭과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으로 구분합니다. 하갈과 사라입니다. 그런 의미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읽어봅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니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 시내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산입니다.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지금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고 있을 당시의 유대교입니다.) -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갈4:22-25)
5. 육체를 따라 난자, 약속을 따라 난 자
예루살렘 같은 데라고 했으니 또 그런 곳을 말합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그러한 신앙을 가진 곳,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습니다.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났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육체를 따라 난 신앙이라면 여러분의 신앙은 이스마엘의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약속을 따라 난 자손이라면 이삭의 자손입니다. 신앙 형태가 두 가지로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있고, 약속을 따라 난 자가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약속을 따라 난 이삭이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육체를 따라 나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되어 버립니다. 쉽게 우리에게 맞춰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은 교인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교인들이 그 의미를 잘 몰라요.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새벽기도 잘 나오고 헌금도 잘 내고 아주 열심히 있으면 믿음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열심과 믿음은 전혀 다른 겁니다. 열심은 식을 수도 있습니다. 믿음 없는 열심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열심을 내가 파르르 식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옛날이 좋았는데” 합니다. 좋았으면 뭘 합니까? 지금 잘해야지요. 믿음은 변함이 없는 겁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할 때는 ‘약속’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약속이 없는 믿음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믿습니다!” 했습니다. 옆에서 “뭘 믿어?” 물어보면 “그냥 믿습니다.” 이런 식이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가장 많이 강조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두 개의 믿음 장을 썼습니다. 히브리서 11장, 로마서 10장은 믿음장입니다. 로마서 10장에서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성경의 원 이름은 구약과 신약입니다. 옛언약, 새언약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하신 약속, 새날에 하신 약속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고. 신약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원이름을 언약 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는 것은 “이 성경책 안에 있는 약속을 믿습니다” 하는 겁니다. 믿음은 약속을 믿는 겁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도 그런 믿음은 있어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합니다.
“여러분 부자 될 줄로 믿습니까?” “복 받을 줄로 믿습니까?”
“하늘 창고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실 줄 믿습니까?”
그냥 믿는 것은 아무 믿음도 아닙니다. 그 기도는 응답될 수 없습니다. 어떤 게 믿음입니까? 믿음에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약속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하나님도 나에게 약속 지키실 줄로 믿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하고 “하나님 주실 줄 믿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혼자 믿어라” 하시는 겁니다. 믿음은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약속이 없는 인간들의 믿음은 신념이라고 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없는 믿음은 이런 믿음입니다. “무조건 하나님이 도와주실 테니까 잘될 거다.” “부자될 거다” “우리 교회가 몇 천 명으로 부흥할 거다.” 그것에 대한 약속 없이 혼자만 그렇게 하는 것은 신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약속에 근거한 믿음이 아니면 가짜입니다. 그것은 신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도 신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약속에 근거한 겁니다.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떠한 약속을 믿는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병 고치는 약속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능력 받는 약속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복 받는 약속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교회가 부흥하는 약속도 있습니다. 모든 약속이 있습니다.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금식과 기도를 하면 능력이 나타난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십니다. 우리가 약속대로 시행만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약속을 성취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은 천국에 관한 약속입니다.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믿음이 약속에 근거한 믿음이 되어야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약속에 근거한 신앙이 되지 못하면 육체에 근거한 신앙이 됩니다. 약속에 근거하는 신앙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이 말씀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없이 무조건 믿습니다. 하면 자연적으로 육체에 근거합니다. 내가 뭘 잘해야 하고, 새벽기도를 나가야 되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적으로 율법적이며 육체적인 신앙이 됩니다. 육체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신앙이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약속에 근거한 이삭과 같은 신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구분도 하지 못합니다. 구약의 약속이 뭘 의미하고 신약의 약속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약속에 대하여 모르면 자연적으로 육체적인 신앙이 되고 맙니다.
6. 종의 신앙, 아들의 신앙
육신에 근거한 신앙을 율법주의적 신앙이라고 하면서 종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종의 신앙은 육체에 근거하기 때문에 내가 성령의 불이나 받고 그래야 구원받은 줄 압니다. 신앙의 유형은 이삭과 이스마엘 둘 중의 하나인데 이스마엘의 신앙은 육체에 상관된 겁니다. 아들의 신앙은 약속에 근거한 겁니다.
종의 신앙은 확신이 없습니다. 기업이 없습니다. 내가 가나안 땅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 불안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천국에 갈 것인지 아닌지 확신 하지를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확하게 못 갑니다. 종의 신앙은 정확하게 천국에 못 갑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 기업을 받는 일에 대하여 걱정이 없습니다. 아들은 내가 이 집 자식인지 아닌지 분명하거든요.
종은 열심히 일하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 이 집 자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주인하고 관계가 안 좋으면 오늘이라도 나가야 합니다. 그런 불안감이 있습니다. 이런 신앙,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신이 없는 신앙은 바로 이스마엘, 종의 신앙입니다.
어느 정도 확실해야 하는지 압니까? 여러분들의 성이 있습니다. 그 성은 여러분의 아버지의 성이요, 여러분은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확신하십니까? 그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 제가 열 번 이상 물어보면 화를 낼 겁니다. 자기 부모님에 대하여 의심할 때가 있었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천국을 갈 것인가 아닌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안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아이코 하는 겁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오늘날 이런 신앙인이 많이 있습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약속 있는 신앙은 안 그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되는가에 관계없이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틀림없습니다.
육체적인 신앙은 변동이 많습니다. 끓었다가 식었다가 합니다. 잘했다가 못했다가 합니다. 열심을 냈다가 못 냅니다. 육체의 기분에 상관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은 약속이 영원하기 때문에 꾸준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중에 어떤 신앙인가를 구분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집사니까 이스마엘은 아니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목사 중에도 이스마엘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들과 대화하면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삭의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약속을 따라가야 한다.
갈4:28-29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옛날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못 살게 군것처럼 지금도 육체로 난 자가 성령으로 난 자를 핍박합니다.
갈4:30-31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우리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입니다. 이런 자녀가 될 때 이삭의 자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이삭의 자손, 다시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다니면서 그중에 특히 두 가지 형태의 교인이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났다 할지라도 결코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가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와 여러분은 이런 신앙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약속의 신앙, 그러면서 이삭의 자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7. 약속의 자손이 되는 방법
약속의 자손이 되는 방법을 지금부터 배워 보겠습니다. 약속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약속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고 어떻게 믿음이 납니까? 믿음은 약속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약속에는 두 가지 약속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옛 언약과 새 언약입니다..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십자가 이전에는 구약, 십자가 이후에는 신약입니다. 성경의 약속은 사람과 사람의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구약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개별적인 약속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전체가 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이 이 담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시고 이방인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게 신약입니다. 우리는 신약에 해당되기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반드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 태어나야만 구원받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금 구약은 우리에게 해당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신약만 해당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약은 히브리서 10장이나 고린도전서 10장에 ‘구약은 신약에 대한 거울이요, 그림자요, 모형도’라고 했습니다.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히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신약은 천국 가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데 모든 것을 이 성경에 비춰보면 옳고 그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이단들이 ‘천국 가기 위해서는 문선명을 믿어야 한다. 박태선을 믿어야 한다’ 별소리를 다 하는데 그것을 천국 가는 약도인 성경에 비춰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천국가는 약도, 모형도가 구약에 다 나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다가 애굽 땅으로 왔습니다. 이제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홍해 바다 건너서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을 건넙니다. 이 여정이 우리가 천국 가는 약도입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찬송가 중에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팔레스틴 땅에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가나안 천국을 들어가려 하는 겁니다. 이 가나안은 우리의 천국에 대한 모형입니다. 그러면 어디를 건너야 합니까?
➀ 홍해 - 홍해는 세례를 말합니다.
➁ 광야 - 광야는 교회생활입니다.
➂ 요단강 - 요단강은 중생, 거듭남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천국에 갑니다.
여러분이 세례 받고 교회생활을 하고 거듭나면 무난히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보이는 이것을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는가? 왜 여기서 잘못되었는가? 이걸 공부해 보면 왜 오늘날 교인들이 천국을 못 가고 구원받지 못하고 방황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구약성경이 모형과 그림자와 약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입구까지 와서 실패했습니다. 문턱에서 실패해서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대부분 교인들이 천국 문턱까지는 옵니다. 그런데 그 문턱을 못 넘어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뭘 믿었습니까? 애굽에서 430년을 살았습니다. 오래 살았기에 그곳이 고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 “이삭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 “야곱아, 네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내가 반드시 그 백성을 가나안 땅에 데려다 놓겠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어려운 일을 자꾸 당하는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기 위함입니다. 노예가 되고, 재앙을 받고, 억지로라도 쫓겨 나오게 되었습니다.
조상들이 다 죽고 약속을 잊어버렸더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고 이 백성을 반드시 다시 데려다 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가나안 가는 조건은 무엇에 의하여 갑니까? 오직 하나, 조상들에게 한 약속 때문에 가는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천국 가는 것도 오직 약속 때문에 갑니다. 이걸 모르면 이삭의 자손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천국 갈 약속이 있습니까?
그런데 잘하면 가고, 못하면 안 간다면 그건 약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에 달린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약속 때문에 천국에 갑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입니다. 약속을 믿으면 이삭의 자손이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가나안 땅에 데려다 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천국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나는 이 약속을 믿습니다.
요일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영생을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통하여 우리는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폐단이 생겼습니다. 이 약속은 430년 전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430년 후입니다. 가나안을 가는 중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 율법이 약속을 취소시킬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갈 약속이 주어졌는데 율법을 범해도 갈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가 천국에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에 의하여 가는데 우리가 죄를 지어도 천국 간다는 약속이 취소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약속을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율법이 약속을 취소시킬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율법을 범해도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약속은 했을지라도 율법을 어기면 취소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약속은 모르고 율법만 압니다. 잘해야 구원받는다. 이게 육체를 따라 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약속은 약속이고, 율법은 율법이라는 겁니다. 약속한 것은 약속대로 이루어지고, 율법을 범한 것은 율법대로 징계를 받는다는 겁니다. 율법을 범했다고 해서 약속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갈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율법은 약속을 헛되게 할 효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갈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가나안 땅을 은혜로 주었기 때문에 율법과는 관계없이 약속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갈3:21-22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는 율법과는 관계없이 주십니다. 약속을 이루는 방편이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율법대로 효력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지금 김씨 아들인데 죄를 지으면 김씨에서 다른 성으로 바뀝니까? 안 바뀝니까? 안 됩니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벌은 받을지라도 약속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통 교인들은 약속은 생각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 지옥 간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약속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하고 잘못한 것에 관계없이 약속대로 잘못하면 잘못한 것에 대한 대가는 받습니다.
시89:30-34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치 아니하며 내 율례를 파하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얼마나 확신이 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잘못된 신앙, 육체를 따라 움직이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흔들립니다.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약속을 갖고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천국은 율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약속으로 갑니다. 노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갑니다. 이게 이삭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이삭의 자손인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롬9:7-8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여러분은 그동안 육신의 자녀였습니까? 약속의 자녀였습니까? 육신의 자녀 노릇 많이 했지요? 약속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히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맹세로 보증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 취소되지 않습니다.
히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니까 큰 위로를 받습니다. 천국을 못 가는 조건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파기하면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약속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은 되었는데 이삭의 자손은 못 되었던 겁니다.
8. 광야 여정 - 천국가는 모형과 그림자
왜 약속의 자손이 못 되었는가 다시 한 가지를 더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을 향해 광야를 가는 것은 천국가는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그들이 왜 가나안 땅을 못 들어갔는가를 연구해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왜 우리가 천국에 못 가는가에 대한 모형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연구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가는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가는 도중에 하는 짓거리들이 요즘 교인들이 하는 짓거리들과 똑같습니다. 똑같은 모형들로서 너무나 선명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은 우리의 거울이 도었다고 했습니다.
고전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직통 코스는 열 하룻길입니다.(신1:2) 그런데 이 길을 40년 동안 걸었습니다. 직선 코스로 가면 요단강을 건널 필요도 없습니다. 그 중간에 시내산이 있습니다. 가나안 입구에 야곱의 형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에돔 족속은 자기들도 천국에 안 들어가지만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입구 광야생활의 마지막 끝나는 자리 여기가 가데스입니다.
그런데 애굽을 나와 가데스까지 하나님의 예정 코스를 밟으니까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불신앙 때문에 38년을 뺑뺑 돌다가 요단강을 건너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길은 가나안이 보일 만큼 매우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기는 보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 못 들어갔는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 요즘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예수를 많이 믿어도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들어갑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들어가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보고도 못 들어갔습니다. 왜 못 들어갔느냐? 그 이유가 신명기 1장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가나안 입구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는 말씀입니다.
신1:8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가나안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 얻으라. 이제는 들어가서 얻으면 됩니다. 약속대로 들어가 얻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얼마나 쉽습니까? 모세가 한 말을 보겠습니다.
신1:20-21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모세도 이렇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약속대로 얻으면 되는데 안 얻고 정탐꾼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고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모세가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파별로 한 명씩 열두 명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합니다. 그들의 보고에서 열 명과 두 사람이 달랐습니다.
열 명은 갈 수 없다. 두 명은 갈 수 있다고 갈라졌습니다. 진리는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게 아닙니다. 두 명의 말이 옳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열 명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게 비극입니다. 신명기와 민수기를 번갈아 보면 이랬습니다.
열 명의 보고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들어가기는 틀렸습니다. 거기에는 성벽이 얼마나 높은지 우리 힘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메뚜기입니다. 아낙 자손이 거인인지라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힘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했으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들어가 그들에게 죽어 버린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지 못하는 분이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책임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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