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히브리어 성경공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가라사대에 대해서 말씀하고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한다는 히브리어 동사 아마르입니다. 아마르는 하나님이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인간이 말할 때도 히브리어 동사 아마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보통 하나님이 가라사대라고 말씀할 때 아마르 동사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어 아마르의 동사의 용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אמר (559 아마르) 말하다 say
아마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말하다'를 의미하며 여기서 '이야기하다, 생각하다(마음으로 말하는 것), 의도(기도)하다, 선언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300회 나온다.
아마르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직접적인 대화에서 나온다. 이때 주체는 하나님(창 1:3), 에덴동산의 뱀(창 3:1), 두려워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숨고자 한 아담(창 3:10), 완고한 선지자를 전환시키려고 한 발람의 당나귀(민 22:28),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군마(욥 39:25), 바다 속에 있는 지혜의 거처를 부인하는 바다(욥 28:14), 왕을 찾는 숲의 나무들(삿 9:8)이다. 이 동사가 문자적인 문맥들, 의인법우의, 그리고 엄격한 설화에서 이용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대다수의 용례들은 영어의 say와 같이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아마르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 7일간의 창조사에서 10번 나타난다(창 1:6, 창 1:9, 창 1:11, 창 1:14, 창 1:20, 창 1:24, 창 1:26, 창 1:28, 창 1:29). 여기서 이 단어는 통상적인 것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그것이 표현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신적 명령의 말씀, 곧 '창조적 말씀의 전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 33:9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굳게 섰도다'(롬 4:17)라는 말이 증명한다. 더 깊은 의미의 창조적 말씀에 대하여는 시 33:6; 사 40:26; 요 1:1-3; 히 1:2; 히 11:3; 골 1:16등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이런 창조적 말씀은 모든 인간적인 말과 다르다. 그 말씀은 공허하지 않고 (신 32:47; 사 55:11) 강력하며, 전능하며, 최고의 창조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래를 선포하고 그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예언적 말씀이기도 하다. 이 창조 기사에서 이러한 신적 말씀의 특성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참조, Lange, Von Rad).
(b) 아마르는 때로 '약속하다 promise'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왕하 8:19),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소유하도록 하신 약속(느 9:15), 혹은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멸할 기회를 얻으리라고 한 하만의 약속(에 4:7)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에서 이 동사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c) 아마르는 '명령하다 command'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 단어가 하나님이나 유능한 어떤 권위 있는 사람에 의해 언급되는 경우에 그렇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창 12:1).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명령(차와)으로 실행하였다(수 11:9).
그리고 아마르는 성전 정화 이후의 제물에 관한 히스기야의 명령(대하 29:24), 하만과 그의 아들들을 매닮으로써 유대인을 도살하라는 포고를 번복시키라고 한 아하수에로의 서신 명령(에 9:25)에서 발견된다.
(d) 아마르는 몇몇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 8:17, 시 14:1에서 '마음에 이르다'라는 표현은 '생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자주 사용되지는 않지만, 흥미 있는 용법은 '공언하다, 말하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이다. 모세는 연설을 끝내면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기로 맹세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신 26:17-18).
아마르는 '당당하게 행동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저희가 지꺼리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시 94:4).
사 61:6에서 이 의미는 좋은 의미의 '자랑하다' boast인 것 같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참조: T. E. Mccomiskey; BDB; KB).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에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의 선지자들에게 주어졌으며, 그들은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말과 기록으로 전달했다. 특히 왕정 시대의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아마르)"이란 공식 문구로 이 말씀을 인용하였다. 볼프(H.W.Wlff)와 베스터만(C. Wester mann; Basic Forms of prophetic Speech, trans. by H.C.White, Westminster, 1967)과 다른 학자들의 저서가 나온 이후, 이것은 편지를 전달하는 사자가 그를 보낸 사람의 이름으로 그 편지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하는 세속적인 문구와 비슷한 사자 공식 문구(messenger formu1a)로 간주되었다. 강조점은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출처에 있다. 이 메시지는 선지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공식 문구는 예레미야서에서만도 130회 이상이나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 공식문구는 계시자이신 하나님께 강조점을 둔다. 그렇지만 예레미야에게 명령하셨다는 말이 이 책의 첫 부분에서 l회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이 공식 문구로 시작되는 단편들만이 아닌, 이 책 천체가 그에게 반역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공식 문구는 나와있지 않으나 두루마리 문서에 대해 계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목하라. "내가 네게 말하던(다바르)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다바르)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렘 36:2). 아마르라는 말에는 마술적인 요소는 없다. 그 권능은 화자이신 하나님에게 있다. - R.L.Harris.]
[동의어] (관련성구)
(5001, 나암) 말하다
나암(동사)은 '말하다, 발언하다 utter'를 의미한다. 이 어근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대해서만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어근이 사용되었을 경우에는 말해진 것의 기원과 권위에 대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 어근은 아마 명사적 동사인 것 같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렘 23:31에서만 한번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참조: L.J.Coppes, TWOT).
[동의어] (관련성구)
(5002, 네움) 말함, 발언, 신탁
네움(명남)은 '말함, 발언 utterance, 신탁 oracle'를 의미한다. 이 명사형은 칼수동분사형태를 따라 형성된다(GKC의 Hebrew Grammar, 50a).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76회 나오며, 주로 예언서(렘 167회, 겔 83회, 사 23회, 암 21회, 슥 20회)에서 사용되었고, 예언서 외에서는 단지 20여 회만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사용되었을 때 그 메시지의 기원과 권위에 대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데, 즉 그 메시지가 그 기원과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렘 23:31, 시 36:1 등) 관용적 표현으로만 사용된다.
1. 네움의 의미는 렘 23:31에서 분명히 보여진다. 하나님은 자기들의 말에 네움(5002), 즉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다고 덧붙이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대적하라고 선언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이 기본적인 의미는 겔 13:7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은 참 환상(묵시)을 보지 못했으며 거짓된 점괘를 말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운다고 거짓 선지자들을 비난하신다.
렘 9:22에서 선지자는 '그의 신탁의 말씀의 진실성에 대한 모든 의심을 털어버리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구별하는 말', "이것은 여호와의 네움이니라"라는 말로 그가 받은 신탁을 시작하도록 명령 받는다(C. F. Keil; Jeremiah).
때때로 이 공식 문구는 발언의 중대성들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맹세로 앞에 부가된다(겔 20:3, 겔 20:31, 겔 33:11). 예언서에 나오는 이러한 공식 문구 중 반수 가량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적인 명칭, 즉 여호와와 왕(렘 46:18)으로 이루어져 있다(사 56:8).
슥 12:1은 제목의 형식을 취하며,「네움 예호와」는 '여호와의 선언'이란 의미를 지닌다.
2. 예언서 이외에서 네움(5002)의 용법은 매우 흥미로운 점을 보여준다.
창 22:16에서 천사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네움)을 전한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참조: 히 6:13 이하).
민 24:15 이하에서 발람의 "홀" 예언을 네움, 곧 하나님을 듣고 '말하는 것'(네움)이라고 한다.
삼하 23:1에서 다윗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이 예언의 양자 모두를 상기시킨다(참조: KD). 네움은 하나님의 사역(monergism)만큼 확실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에 항상 붙어 다니는 '영원한'은 그 적용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하나님의 맹세의 특별한 의미는 아브라함 언약(갈 3장, 히 6:16 이하)과 모세 언약(히 7장) 간의 차이에 대한 신약성경의 논의에서 보여진다.
시 110:1에서 "내 주(아도나이)"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네움은 맹세로 시인한 언약을 포함한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 110:4, 참조: 히 7:21).
시 36:1에서는 흥미롭게도 '범죄'는 신 계시를 요구한다: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내 마음속에 악인의 범죄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신탁)가 있다".
잠 30:1은 문제가 많은 구절인데 델리취(F. Delitzsch)는 이 구절을,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즉 아굴의 잠언)은 엄연히 진실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계시라는 개념도 역시 마땅히 포함되는 것 같다: "이 말씀은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이니 그가 이디엘과 우갈에게 이른 것이니라".
[사무엘상 7장 설교 말씀] 미스바 대성회(삼상 7: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