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 지명 강해 설교문 중에서 다메섹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다메섹 Damascus
1. 지명의 유래와 위치
1) 지명은 히브리어로 דמשק(담메섹), 헬라어로 Δαμασκος(다마스코스)이다.
2) 서남 아시아의 바라다 강변, 시리아의 주요한 도시이자 수도인 다메섹은 안티레바논 산맥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쪽에 헬몬 산이 뻗어 있다.
3) 고대 도시에 포함되는 다메섹의 대부분 지역은 바라다 강의 서편에 있으며, 북쪽 강변으로는 교외 지역이 근대에 확장되었다.
4) 다메섹이란 명칭은 투트모세 3세(주전 1484-1450년)의 정복지 가운데 처음으로 나타난다. 다메섹은 아케나톤(주전 1372-1354년) 때까지 애굽의 일부로 있었다.
2. 성경적 배경
1) 다메섹은 성경에 61회나 언급되어 있다.
2) 아브라함이 사로잡혀 가던 조카 롯을 구출한 장소이며,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출신지로 추정된다(창14:15창15:2).
3)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은 영향력 있는 도심국가의 하나였던 다메섹을 정복하여 그곳에 수비대를 주둔시켰다(삼하8:5,6).
4) 솔로몬 왕 때 소바의 르손이 다메섹을 점령하여 아람의 수도로 삼았다(왕상11:20).
5) 벤하닷이 다메섹 왕으로 있을 때 유다와 이스라엘은 전쟁과 제휴가 반복되는 관계를 가졌다.
6) 이스라엘이 여로보암 2세 때 일시적으로 점령하였지만 다시 빼앗겼다(왕하14:28대하28:2-5).
7) 주전 734-732년경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셋 왕에 의해 점령당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갔다(왕하16:7-9).
8) 신약시대 때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를 만나고 여기서 회심했다(행9:2-18).
9) 바울이 전도시 그 지역 방백들의 위협과 박해를 피해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을 탈출했다(고후11:32,33).
3. 지역의 역사적 변천
1) 다메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도시 중의 하나다. 주전 15세기의 이집트 비문에 의하면 그 도시는 도시 국가의 수도였다.
2) 성경시대 동안에 그 도시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에게 지배되었다(삼하8:5,6대상18:5). 그리고 후에 이스라엘과 평화를 유지했다.
3) 주전 732년에 다메섹은 디글랏 빌레셀 3세(745-727년)에 의해 앗수르에 정복되었다. 그리고 주전 333-332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했다. 그가 죽은 후(주전 323년) 다메섹은 셀류키드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주전 64년에는 폼페이 대제에게 정복되었다.
4) 주후 1세기 때 기독교 공동체는 다메섹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도시는 교구의 자리가 되었다.
5) 주후 635년에 모슬렘에 의해 정복되었고, 주후 762년에 바그다드가 세워지기 전까지 다메섹은 칼리프 거주 지역이었으며 요새화되었다.
6) 주후 1076년에 셀주쿠 터키에 의해서 점령되었고, 1154년에 이집트에게 멸망되었다. 3차 십자군 전쟁 때에 다메섹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술탄인 살라딘에 사령부로 바뀌었다.
7) 주후 1401년에는 몽고 정복자 티무르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곧 재건되었고, 오스만 터키에 의해서 1516년에는 이집트로부터 벗어났다.
8) 다메섹은 주후 1832년에 다시 이브라임 파샤에 의해서 이집트 속국이 되었고, 주후 1841년에는 시리아의 일부분으로서 오스만 제국에 회복되었다. 주후 1860년 회교 인구의 급증은 기독교의 파멸을 가져왔고 많은 기독교인의 학살을 초래했다.
9) 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터키, 독일 군대가 수에즈 운하의 획득을 위해 다메섹에 주둔하였고, 주후 1918년에는 연합군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후에 이라크 왕이었던 파이잘 1세는 다메섹을 아랍 독립 국가의 수도로 만들었고, 1920년 3월 다메섹에 시리아 국회에 의하여 시리아의 국왕으로 발표되었다.
10) 그후 다메섹은 프랑스의 영향하에 있었는데 1940년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함으로 다메섹 또한 독일에 종속된다. 1941년 연합군은 시리아를 공격하고 다메섹을 정복했다. 1946년에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11) 1992년 현재 인구 1,451,000명이다.
4. 과거와 현재의 모습
1) 주후 636년부터 아랍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다메섹은 주로 경제적 중요성을 가졌고 정치나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유지하였다. 주후 1401년에 있었던 몽고 제국의 약탈은 최악이었지만 다메섹은 시리아의 지도적인 도시와 수도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2) 다메섹은 예부터 군사 상업상 중요한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이었기에 언제나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의 다메섹은 오래된 좁은 거리와 복잡한 골목과 더불어 넓은 도로를 가지고 있다.
3) 다메섹은 강과 운하에 의해 물이 공급되는 사막 가운데 있는 녹지대로 옛부터 과수원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그 도시는 무화과, 아몬드, 올리브, 그 주변 지역에서 나는 다른 과일들을 가지고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4) 오래전부터 다메섹은 마른 과일 포도주, 양모, 견사, 비단 등으로 유명했으며, 구도시는 수공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산업으로는 비단 직조 기술과 가죽 제품을 만드는 기술, 금은 세공품 등이 유명하다. 수세공 산업은 매년 열리는 다메섹 무역 박람회 장소에서 볼 수가 있다.
5. 유적
1) 그리스도인을 위한 직가라는 거리가 있는데 바울이 광주리로 내려온 창문 달린 성벽이 있다. 바울이 환상을 본 장소와 아나니아의 집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2) 다메섹은 200개 이상의 회교 사원이 있다. 그중에 70개만 사용되어지고 있다.
3)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원은 우마야드 사원과 또 대사원이다. 그 사원들은 4세기 말까지는 기독교 교회였었다. 그런데 그 사원은 세례 요한의 머리라고 여겨지는 것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의 성당으로 불리워졌다. 다른 주목할만한 사원은 시나니냐 사원이다.
4) 국립 도서관, 국립박물관, 다메섹 대학 등이 도시 안에 있다. 국립박물관 안에는 성경 연구를 위한 사람을 위해 우가릿에서 나온 나스삼나실과 마리실을 제공하고 있다.
원어설교 : 다메섹 Damascus
다메섹 דמשק : 담메섹 Δαμασκος : 다마스코스 Damascus
행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다메섹은 시리아의 한 도시로서 옛날부터 군사상, 상업상으로 매우 중요한 도로가 이곳에서 교차한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언제나 상업 및 종교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히브리어 דמשק(담메섹)은 외국어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의미는 분명치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 왔을 때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행9:2) 이후 다메섹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 다메섹은 사울이 변화되었던 곳입니다
본래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나서(행21:39) 전통적인 유대인 가문에서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습니다(빌3:5). 그는 같은 나이의 유대인들보다 더욱 열심히 유대교를 신봉했습니다(갈1:14). 사울은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그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을 향한 것도 또다른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고 회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철학과 변증이 활발한 당시에 사울을 회심시키시고 그를 당신의 복음 증거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행9:4-6).
2. 하나님은 내면의 변화를 먼저 일으키십니다
사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기독교인들을 사기꾼이나 미치광이로 취급하였고, 기독교는 이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가 살아서 자기 앞에 나타났을 때 사울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신념이나 가치관들이 모두 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로 말미암아 자신을 깊이 돌이켜 보고 기도하는 내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인격적인 변화는 아무리 급격한 것이라 할지라도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돌이켜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은 외적 변화도 일으키십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눈에 비늘이 덮여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9:9). 그런 중에 하나님은 그곳에 아나니아를 예비하시고 그의 눈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9:10-18). 그 후에 사울에게는 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원수처럼 여겼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제는 친구요 형제가 되었습니다(9:19). 반대로 과거에 의기투합하여 교회를 탄압하는 일에 생사를 같이 했던 바리새인들과는 원수가 되었습니다(9:23). 이러한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은혜를 받게 되면 이전의 불의한 것과는 멀어지고 자연히 복음과 관련된 일에 가까워집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성도 자신의 노력과 관심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복음과 교회를 기뻐하는 마음을 주시며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를 때 우리는 현저한 외적 변화를 체험하게 되며, 마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처럼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약 성경 인물 요약 설교문] 헤롯 안디바 -세례 요한을 죽인 부도덕한 왕 (0) | 2020.09.13 |
---|---|
[12 제자] 마태 - 사도로 쓰임받은 세리 (0) | 2020.09.13 |
[신약 인물 요약 설교문] 헤롯 대왕 - 유아 학살을 자행한 잔인한 피의 대왕 (0) | 2020.09.12 |
[신약 인물 설교말씀] 마리아 -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0) | 2020.09.11 |
[신약 지명 연구 설교문] 네압볼리 Neapolis (0) | 2020.09.08 |
[신약 성경 지명 설교문] 나인 Nain (0) | 2020.09.05 |
[신약 인물 설교말씀] 요셉 - 마리아와 결혼한 의로운 자 (0) | 2020.09.05 |
[하나님 나라] 겨자씨 비유(막 4:30-32) (0) | 2020.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