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마태복음 20장 예수님 말씀]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두란노 서원 2021. 11. 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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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에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포도원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이 비유는 성화에 관한 비유가 아닙니다. 열심히 일찍 나와서 일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초점이 아니라 포도원 주인의 은혜로 들어와서 일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초점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나중에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나누어 줍니다. 일을 많이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 이 비유의 동기 : 베드로의 질문 - 젊은 관원의 사건과 근심하며 돌아간 젊은이...

주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답변하셨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의 질문에서 매우 잘못되고 거짓된 어조를 탐지해 내셨다. 그래서 그를 꾸짖고 책망하고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시기 위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의 해석의 열쇠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먼저 된 자가 누구인가? 질문자인 베드로를 위시하여 제자들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열성적이며 충성스러운 중진 일군들, 그렇게 봉사하고 충성한 것이 잘못이고 나중 되는 것이 좋은 것이란 의미가 아니다. 이런 먼저 된 자들에게도 위험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이런 위험성이 없는 기독교인은 없다. 우리에게는 원수요 영혼의 대적자가 있기 때문이다. 초신자에게만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도 위험성이 항상 따른다.

* 이 비유 중에 우리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는 원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삶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의 원리에 맨 마지막에 온 자들도 처음부터 일한 자들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나이가 늙어 개종한 자들에게 종종 찾아드는 낙심, 너무 늦었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의 늦부분에 개종한 사람들은 때때로 구원이 그에게 좀 늦게 임하였고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을 미끼로 삼는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우리 주님이 열한 시에 그들을 불러 일터로 보낸 사실이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의 강조점은 오히려 먼저 온 사람들에게 있다. 이 비유의 중요한 목적은 먼저 된 자들에게 교훈하시고 엄숙한 경고를 하시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포도원에 이른 아침부터 보냄을 받은 이 사람들은 왜 마지막에는 그렇게 슬픈 인물로 나타났습니까?

2저가 품꾼들과 약속하여...” 맨 처음 사람들의 경우에만 되어진 것. 그들은 계약을 맺으려고 노력하는 경향 어떤 것들을 명문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 곧 그들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의식하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일하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일을 평가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역시 평가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간직하여 둔다. 그들은 얼마나 시간을 소비하였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일을 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 종일 더위와 수고를 견딘 것 - 을 간직한다. 이 사람들은 최초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즉 그들이 은혜의 원리를 잊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받을 것을 기대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더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완전히 논리적이었다. 그들은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고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감정을 갖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더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행복과 기쁨은 다 사라져 버렸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는 대신에 비참해지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이것은 그들이 모든 것은 은혜로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실에서 결과된 것이다.

결국 먼저 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멸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질투도 포함된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탕자 비유 중 맏아들의 경우. 이 경향은 충실하고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간교한 방법으로 들어와 시험한다. <다른 사람들을 많이 주는 것은 주는 자의 뜻인데> 내 것이나 받으면 되었지 남을 간섭하고 질투하는가?

가장 심각하고 무서운 일은 그들의 마음속에 집주인이 불공평하다는 감정을 가진 점이다. “네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세어보아라. 그런데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 다른 친구들을 보아라. 그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그가 얻은 것을 보아라라고 마귀가 유혹한다.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에게 한데나리온을 주다니 - 한 시간만 일한 사람과 똑같이,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라고 느낀다.

* 이에 대한 치료책은 하나님의 왕국을 지배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우리가 항상 알고 있는 것과 같지 않고 전혀 다른 무엇이라는 인식이 필요. 과거의 생활 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나의 모든 생각은 달라져야 한다. 나는 옛 생각의 개념들을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매매나 권리의 개념을 가지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했다 해서 나는 무엇인가 대가로 받을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고 논쟁하는 것처럼 잘못된 영은 없다.

{} 자동판매기식. 내가 무엇을 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을 얻을 자격이 있다. 기도, 헌금, 봉사. 우리는 매매하는 정신에서 벗어납시다. “만일 내가 이것을 하면 그러면 저것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식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나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인식. 성경에는 상급에 대하여 가르친다. 상급조차도 은혜에 속한 것이다 - 주님은 그들에게 주어야 할 필요는 없으시다.

* 하나님과 흥정하지 말자. 하나님과 약속을 맺으려 한다면 그것밖에 더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없다. 나중 온 자들은 약속하지 않았다. 상당하게 주리라. 그들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면 우리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많은 것을 틀림없이 받게 된다.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상을 이미 받았노라고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졌다. 그것이 그들의 원하는 바였고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전부였으며 더 이상 가질 수 없다.

* 우리는 나의 일에 대한 기록이나 계산을 하지 말자. 하나님으로 하여금 계산을 기록하도록 하자. 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자. 계산을 기록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계산방법은 우리들의 물질적인 전망과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나중된자... 모든 것이 뒤바뀐다. 전 세계가 은혜로 인하여 뒤바뀌어진다. 연약한 가운데 강단으로 나아가나 능력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갔다가 바보와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낙심된다. 결과를 의식하지 말고 일만 하라 기록은 하나님이 하신다. 마25장의 양과 염소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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