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지명 원어 설교문 중에서 두아디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두아디라 Thyatira
1. 명칭과 의미
1) 헬라어로 θυατειρα(튀아테이라)라고 표기한다.
2) '성읍, 희생' 등의 의미를 갖는다.
2. 위치
1) 소아시아의 서부 고대 리디아 지방의 한 성읍이다.
2) 버가모(pergamum)의 남동쪽으로 60Km 떨어진 헤르무스(R.Hermus) 강의 지류 리쿠스(R. Lycus) 강의 북방에 나란히 전개되어 있는 비옥한 평원에 위치해 있다.
3) 북쪽의 버가모와 남남동쪽의 사르디스 사이에 있는 도로상에 자리하고 있다.
4) 아시아의 가장 남단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며, 현재 터키의 도시 아키사르(Akhisar)와 동일시되고 있다.
3. 건립 배경
1) 두아디라에 관한 초창기 역사에 대하여 현재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2) 주전 3세기경 셀레우코스 Ⅰ세(seleucus Ⅰ, 주전 322-280년)에 의해 두아디라가 재건립되었다고 한다.
3) 실제로 두아디라가 중요성을 띠게 된 시기는 도시 재건립 후 마게도냐 군인들이 주둔하면서부터이다.
4) 전설에 의하면 두아디라라는 이름은 셀레우코스가 자기의 딸 θυγατηρ(튀가테르)의 출생 소식을 듣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명명한 이름이라고 한다.
4. 성경에 나타난 두아디라
1) 빌립보 교회의 최초의 부인 신자인 자주 장사 루디아가 살던 도성이다(행16:14).
2) 계시록에 등장한 유명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의 하나가 이곳에 있다(계1:11).
3) 두아디라 교회가 사업, 사랑, 믿음, 인내의 행위로 칭찬을 받았다(계2:19).
4) 이세벨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교도 여자가 자칭 선지자라고 주장하면서 우상과 행음으로 책망을 받았다(계2:20-21).
5. 복음의 전파
1) 두아디라에 기독교 복음이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전파됐는지 확실하지 않다.
2) 행19:10에 근거한 가능성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에 바울의 조력자들과 개종자들이 전파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요한이 계시록을 작성했을 당시 두아디라에 이미 '사랑과 믿음과 인내'로 칭찬받으며, 그 성장의 역사에 있어서도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라고 할 만한 아주 강력한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6. 두아디라의 이방신
1) 두아디라에서는 많은 이방신들을 섬겼는데 이방신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숭배를 받은 신은 태양신 아폴로와 동일시되는 티림노스(Thrimnos)와 여신 보레이테네(Boreitene)가 있다.
2)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언급한 "그 눈이 불꽃과 같고 그 발이 빛나는 주석과 같은"(계2:18)이라고 표현한 것도 두아디라의 태양신을 의식한 것에서 나온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3) 로마 제국 치하에서의 태양신 숭배는 황제 숭배 제의와 결합되어 나타났다.
4) 또 다른 종교적 제의는 무속 종교인 삼베데(Sambethe) 제의로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이 사당의 여제사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두아디라 교회의 일원으로 묵인되고 있던 이세벨을 여선지자로 용인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더 그럴 듯하다.
7. 두아디라가 들은 책망
1)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인내로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요한 계시록이 씌어지던 주후 95년경에 두아디라 교회의 소수 교인들은 이세벨이라는 한 여인을 추종하게 되어 책망을 듣게 되었다.
① 이세벨을 가르치게 허용했던 일.
② 그녀가 그리스도인들을 꾀어 음행을 범하도록 용납한 일.
③ 그녀가 그리스도인들을 꾀어 우상에게 바친 것들을 먹도록 허용한 일.
④ 그녀가 전혀 뉘우치지 않도록 관대했던 일.
이 모두가 책망을 듣는 게 원인이었다.
2) 이에 대해 기록한 계시록 기자에 대하여 세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① 육체적인 음행이 기독교인 신앙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성적인 방종이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② 구약에는 우상숭배와 다른 신들에 대한 예배가 간음으로 기술되어 왔는데 이교도들의 일면인 그들의 계속된 방종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③ 당시 두아디라에는 많은 직조 조합이 있었는데 생계 유지를 위해서는 조합에 가입해야만 했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사회적인 행사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8. 고대 두아디라에서 발달한 산업
1) 두아디라는 결코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리쿠스 계곡의 주요 도시였다.
2) 여러 비문을 통하여 이곳에 유익한 산업들이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3) 구리 세공업, 제혁(製革) 업자, 가죽 제품 제조업자, 염색공, 모직공, 면지공 등을 포함한 수많은 산업과 그들이 각 업종별로 이룬 동업자 조합이 있었다고 한다.
4) 이러한 동업 조합들은 두아디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종교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9. 두아디라 교회의 루디아
1) 바울이 빌립보에서 만났던 두아디라 출신의 여인이다.
2) 두아디라로부터 빌립보로 자색옷을 가져와서 팔았던 루디아는 바울의 복음을 듣고 개종하게 되었고 결룩 그녀의 모든 가족들도 세례를 받게 되었다. 바울이 복음 사역을 할 때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10. 자색(紫色)
1) 적색-자색의 범위 내에 속하는 다양한 색깔을 포괄하는 색으로서 고대의 염색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색이다.
2) 자색은 귀한 색으로 간주되었는데 장막의 기물들과(출26:1,31) 제사장들의 예복(출28:4-6출39:1,28,29) 등을 염색할 때 사용되었다.
3) 히브리인들에게 자색옷은 탁월함과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믿어왔기에 미디안 왕들은 자색옷을 입었다(삿8:26).
4) 신약에서의 자색은 경제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루디아가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집안이 부요했음을 알 수 있다.
원어설교 : 두아디라 Thyatira
두아디라 θυατειρα : 뒤아테이라 Thyatira
계2:19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는 서부 소아시아의 한 성읍으로 염료산업과 금속 세공을 통한 동업자 조합이 많던 곳입니다. 이 동업 조합을 볼 때 두아디라의 정치·경제·사회·종교적 생활 등이 뛰어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곳에 교회가 시작된 것은 루디아를 통해서일 것입니다(행16:14).
1. 사단은 음흉한 흉계를 꾸밉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한 것에 대해 예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이 바알을 섬기도록 한 여인으로(왕상16:31),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시킬 것에 대비해서 이세벨을 거짓 여선지자로 지칭합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인들은 거짓 선지자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이 여선지자는 성도들에게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경건하다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척하였듯이(요8:38)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성도들에게 나타납니다(고후11:4). 현대의 이세벨은 더욱 교묘합니다. 육체적 정욕을 정당화시키고 의미 있는 삶보다 자기가 만족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세벨과 같은 사단의 흉계에 넘어가더라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떤 유혹에서도 성도를 성화시킵니다
사단의 속임수의 깊이는 인간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단과 직접 대항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요셉은 젊을 때 성적 유혹을 받습니다. 주인의 절대 신뢰를 받는 요셉에게 여주인이유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때문에 유혹을 물리칩니다(창39:9).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애매한 고난처럼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이겨나가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오히려 이는 요셉의 하나님께서 연단하고 계심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사단이 밀 까부르듯 유혹했습니다(눅22:31). 결국 그는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더 이상 사단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15)라고 물으심으로 사단의 덫에서 꺼내시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셨습니다.
3.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나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예수께 책망을 받습니다(계2:4).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보다 나중에 더 좋게 발전하는 교회였습니다(계2: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사랑의 깊이가 깊어져 그 사랑의 필요 뿐 아니라 그가 바른 사람이 되도록 어떤 사랑을 주어야 할지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자라야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바랄 수 있는 소망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크냐' 정돈하던 제자들이 순교의 걸음을 걸었듯이(막10), 선교 여행에 지쳐 도망간 마가가 다시금 바울에게 인정받았듯이 신앙의 성장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안타까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자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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