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 예언과 남은 자를 구원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한다. 하나님 백성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니 징계하셨다. 예루살렘이 멸망당했는데 바벨론을 통해서 징계하셨다. 하나님이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는데 남은 자를 구원하셨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도는 마지막 날에 남은 자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구원받은 자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습 3:8-13)
앞에서는 예루살렘의 사태가 아주 처참해 보였다. 그 도성은 이제 오명을 지니게 되었고, 구제 불능이 되었으며, 자비의 증거와 심판의 증거에도 불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녹슨 은"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으리라고 기대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저들은 예언자와 섭리의 사건에도 듣지 않았으니, 이웃 나라들처럼 폐허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보고경탄하라. 그것은 인간의 악을 은혜의 더 찬란한 기회로 삼으신다.
저들은 점점 악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케 하지 못하니, 더 좋은 것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가지라. 교회의 타락을 통애하는 자 들아, 하나님을 기다리라.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기까지, 또 자기 교회를 개혁, 순화시키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자기의 선민으로 성별 하시기 위해 자기의 복음을 보내시기까지 기다리라."
그리고 이 같은 지시와 격려에 따라서 예루살렘의 구속을 위해, "구원을 기다린" 자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것이 드디어는 왔다(눅 2:38). "심판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 (요 9:39).
Ⅰ.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못살게 군 자들을 복수하고, 그의 원수, 곧 영적 원수 바벨론을 파괴시킨 것은 하나의 예형이요, 행복한 조짐이었다. 그는 "노획자들에게로 다가 가" (우리 성경과 다름-8절), "사로잡힌 자들을 인도하며" (시 8:18),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대적하는" 흑암의 권세자들을 정복하실 것이다. 그는 "철장으로 그들을 부수리라" (시 2:5, 9; 11:5, 9). 그의 "뜻을 정함(우리 성경과 다소 다름)은 열국을 소집하고 나라들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만민에게 전파된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모든 민족(열국)이 소환되어, 말하자면 세상에 자기 나라를 건설하려는 주 예수 앞에 하나의 집단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인류의 대다수는 그 소환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는 "자기의 분노를 그들 위에 쏟을 것이다."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받았기" 때문이다. 메시아의 나라가 세워지는 때에, 지상에는 "열국들의 곤란" (눅 21:25), "큰 소란" 이 "전무후무하게" (마 24:21) 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자기의 분노를, "자기의 맹렬한 분노"를 메시아와 그 나라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쏟는가(시 2:1, 2). 그때 "온 땅은 그의 질투의 불꽃에 삼켜지리라."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두 복음에 대한 그들의 적의 때문에 심판을 받으리라.
Ⅱ. 또 하나님은 자기 교회의 피해를 복구하시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자들의 번영과 평화의 재흥을 꾀하시는 때, 그때 그는 저들의 덕과 신앙을 재흥시킴으로써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준비를 시킨다. 이것이 개인에게든 단체에게든, 하나님의 방법이니, 먼저 거룩하게 하고, 그다음에 행복하게 만드신다.
이 약속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저들의 포로 생활이 저들의 우상 숭배를 철저히 근절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열매이니, 죄의 제거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더 멀리, 복음과 그 은총의 거룩한 효력과 우리가 살고 있는 "개혁의 때"를 가리킨다(히 9:10).
1. 인간들의 대화에 개혁이 있으리라는 약속이 있다. 인간의 대화는 지금까지 대체로 부패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게 된다(9절). "그때에 내가 백성을 순수한 언어로 돌아가게 하리라(다소 다름). 즉 내가 지금까지 그들의 모든 선한 예절을 거의 송두리째 파괴시켜 오던 악한 말에서 떠나 순수한 말을 하게 하리라." 회개케 하는 은총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참다운 지혜를 통해서 언어를 순화시킨다는 것을 기억하자.
포로기 후, 유대인들에게는 방언의 개혁이 필요해졌다. 그들이 가나안의 언어를 아스돗의 언어와 혼합시켰고(느 13:24), 더구나 그 고통은 치료되어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저들의 언어는 온갖 불경스러움, 더러움, 거짓 따위에서 순화되어야 했다.
내가 그들을 "선택된 언어" (혹자는 그렇게 읽는다)로 돌아 가게 하리라. 그들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조심성 있게, 신중히 말하게 되리라. 그들이 "말을 골라서 하리라." 일상생활 속의 순결과 경건의 분위기는 어느 민족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전조이다. "부정한 입술을 가졌던 백성" 에게 하나님이 순수한 언어를 주시는 때에는, 다른 은혜, 다른 축복도 따라다니게 된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 예배가 보다 잘 지켜질 것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일치하여 참예하게 되리라. 희생물과 분향 대신에,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라." 기도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신령한 예물이다. 그리고 그 같은 의무에 합당하게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순수한 언어"를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입술이 정결케 되기 전에는,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이름도 오르내리기란 전혀 걸맞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입의 말과 우리의 헌심의 명상이 하나님께 수납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순결한 말을 사용해야 한다. "같은 우물에서 어떻게 쓴 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으리요?" (약 3:9-12)
또한 저들의 언어가 순화된 다음, 저들이 "일심으로," "한어깨"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약속도 있다. "한 어깨" 란 황소들이 끄는 멍에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장일치로 하나님 예배에 힘쓸 때, 그 일도 즐거이 진행된다. 이것도 순수한 언어, 곧 정욕, 탐욕, 육욕 따위에서 정결케 된 언어의 효력이다. 순수성이 일치성의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예절의 개혁이 또한 상호 이해의 길이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로는 순전하고, 그다음으로는 평화적이다."
3. 또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던 자들이 그에게 돌아와 영접되리라고 했다(10절). "에티오피아 강 건너로부터," 혹은 다른 먼 나라에서부터, 그들이 하나님께 기억되리니, 탕자가 먼 나라에서 아버지를 생각한 것과 같다. "멀리 있는," "그의 분산된 딸" 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부르실" 자들 중에서 발견되리라. 어디에 있든지, 비록 "에티오피아(구스)강 건너" 있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권속이다.
" 그들이 내 예물을 가져오리라." 즉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재물로 바치게 되리라(롬 12:1).
4.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행한 온갖 행위를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했다(11절). 그들이 회개자이기 때문에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겔 16:63). 그러나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됨으로써 당하는 수치는 당하지 않으리라. "내가 너희 중에서, 불경스러울 뿐 아니라 겉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위선까지 제하리라. 또 너희 교만을 즐거워하고, 성도를, 성스런 집을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리라." 이들은 "거룩한 산 때문에 교만하였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 속아서 하나님의 심판까지도 업신여겼다. 거룩함을 빙자하여 교만해지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분노케 하는 것이다.
5. 하나님은 거룩하고, 겸손하고, 신실한 백성의 남은 자를 두리라고 하셨다(12절). "내가 너희 중에 곤고하고 가난한 사람을 남기리라." 이들 선택받은 남은 자들은 순전성과 평화를 축복받으리라(13절). 말에도 그렇고 행실에도 그렇게 되리라. "그들은 불의를 행치 않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호세아 5장 주석 성경말씀]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대한 책망(호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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