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중에서 맹세에 대해서 새로운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이나 함부로 맹세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상에게 맹세하면 안 되고 세상의 어떤 형상으로도 맹세하면 안 됩니다.
맹세에 대한 예수님 말씀(마 5:33-37)
33절 팔린 에쿠사테 호티 에르레데 토이스 아르카이오이스 우크 에피오르케세이스 아포도세이스 데 토 퀴리오 투스 호르쿠스 수
성 경: [마5:33]
주제1: [메시야 왕국의 새로운 기준]
주제2: [맹세에 대한 새 법]
헛 맹세를 하지 말고...너희가 들었으나 - 마태는 이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옛사람에게 말한 바에 포함된 것은 구약성경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출 20:7; 레 19:12; 민 30:2; 신 5:11;6:3;22:21-23 등의 내용을 정확하게 축약한 요약문이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거짓 맹세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서약을 깨뜨리는 것을 금지하였다. 일단 여호와의 이름이 언급되면 그 이름을 걸고 맹세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갚아야 할 채무(債務)가 되는 것이다. 마태는 23:16-22에 나오듯이 논쟁을 위한 배경 속에서 다시 이 주제를 다루는데, 거기에서 훌륭한 예(例)들을 많이 들고 있다. 여기에서의 배경은 분명히 논쟁을 위한 것은 아니고 다만 예수가 천국과 그 나라의 의를 어떻게 구약과 관련시키는가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34절 에고 데 레고 휘민 메 오모사이 홀로스 메테 엔 토 우라노 호티 드로노스 에스틴 투 데우
성 경: [마5:34]
주제1: [메시야 왕국의 새로운 기준]
주제2: [맹세에 대한 새 법]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메 오모사이 호로스), 문법적으로 부정과거 부정사의 문형으로서 이를 정확히 해석하면 '절대 맹세하지 말라'는 강한 명령문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맹세 자체의 무용성(無用性)을 강조하는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실 예수께서는 법정에선 스스로 맹세하셨다(26:63, 64). 그리고 사도 바울도 자주 맹세와 서약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롬 1:19; 고후 1:23; 갈 1:20). 그런 점에서 본문에서 제시하는 바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유대인들이 범해 온 습관적이고, 진실치 못하고 위선적(형식적)인 맹세를 단호히 거부하는 명령으로 보아야 한다. 만일 진실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마련된 맹세라는 제도가 영리한 거짓과 궤변적인 속임수를 사용하는 기회가 되어 버린다면 예수는 그것을 폐기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방향은 근본적으로 순전하고도 일관된 진실성이 중요하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전혀 맹세하지 않는다면 그릇된 맹세를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실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있어서의 맹세는 맹세 그 자체가 지니는 언어의 유희(遊戱)와 자기 합리화(合理化) 및 자기변호의 추악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로도 말라 - 예수는 사람이 무엇으로 맹세하든 간에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모든 맹세가 묵시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이는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 심지어는 머리카락 조차도 하나님의 통치와 소유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본문의 '하늘'은 원래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이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곧 그 창조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 이는 사 66:1을 암시하는 표현으로써 절대 주권을 가지시고 하늘의 보좌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해 주고 있다(행 7:48). 실로 그 초월한 권위를 지니신 하나님의 보좌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경솔하고 습관적이며 또 위선적인 맹세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같은 맹세는 철저히 삼가해야만 한다.
35절 메테 엔 테 게 호티 휘포포디온 에스틴 톤 포돈 아우투 메테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호티 폴리스 에스틴 투 메갈루 바실레오스
성 경: [마5:35]
주제1: [메시야 왕국의 새로운 기준]
주제2: [맹세에 대한 새 법]
땅으로...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 하늘을 당신의 보좌 삼으신 하나님은 또한 땅을 당신의 발등상으로 삼으시고 그곳을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땅' 도 맹세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큰 임금의 성임이요 - 시 48:2;99:2 의 내용을 암시한 표현이다. 그런데 마태는 본문을 '...으로 맹세하다'(옴뉘나이 엔)는 앞의 두 묘사(하늘로, 땅으로)와는 다른 히브리적인 표현법인 '...을 향하여 맹세하다'(옴뉘나이 에이스)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예루살렘에로의 지향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적 변형(變形)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궁극적 본향(本鄕)이요, 지향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기도와 맹세 등 각종 종교적 행위를 함에 있어서 항상 예루살렘에로의 눈길을 돌리곤 하였다. 한편 '큰 임금'이라는 말 앞에는 관사가 붙어있다. 이것은 곧, 그 임금이 너무도 잘 알려진 탁월한 존재임을 강조한다고 본다. 따라서 '큰임금'은 모든 역사를 통해 잘 알려진 탁월한 왕, 곧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25:34).
36절 메테 엔 테 케팔레 수 오모세스 호티 우 뒤나사이 미안 트리카 류켄 에 멜라이난 포이에사이
성 경: [마5:36]
주제1: [메시야 왕국의 새로운 기준]
주제2: [맹세에 대한 새 법]
네 머리로도 말라 - 머리가 인간 신체의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만물이 하나님께 관련된 것 같이 우리의 머리도 하나님께 관련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것이다. 더구나 이 머리털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신 바 되었고, 또 그 머리카락의 색이 희고(노령) 검게(청년)하는것(그 연수를 정하시고 생(生)과 사(死)를 정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소관에 속한 것이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을 만드셨고 그것의 모든 원동력과 힘을 조성(造成)하셨다. 진정 인간은 자신의 머리털의 한 터럭도 희고 검게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머리털의 원소유자는 하나님의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인간 자신의 머리로 맹세할 수 없다.
37절 에스토 데 호 로고스 휘몬 나이 나이 우 우 토 데 페릿손 투톤 에크 투 포네루 에스틴
성 경: [마5:37]
주제1: [메시야 왕국의 새로운 기준]
주제2: [맹세에 대한 새 법]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 본문을 헬라어 원문에 더 가깝게 해석하자면 '그러나 너희는 옳다, 옳다라고 말하든지 아니오, 아니오라고 말하든지 하라'고 재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같은 말이 두 번씩 반복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났다. 어떤 랍비들의 의견에 의하면 '옳다'나'아니오'를 반복하여 쓸 경우에는 그것이 맹세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바로 예수가 비난하고 있는 비뚤어진 결의론적(決議論的) 사고라고 생각된다.
같은 말이 중복된 것은 NIV에서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는 것처럼 설교자의 수사적 표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약 5:12). 이렇게 되면 이단락(33-37절)에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첫째 전후 관계로 볼 때 이 구절이 의도하는 것은 구약성경이 지향하는 진정한 방향, 즉 진실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맹세가 핑계로 이용되지 않고 진실성이 위협을 받지 않는 곳이라면 그처럼 무분별하게 맹세를 폐기한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둘째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언약을 세운다'(창 9:9-11; 시 16:10; 눅 1:68; 행 2:27-31). 그것은 하나님께서 때로는 거짓말을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한 것이다(히 6:17). 우리가 또한 바울의 경우로 판단해 본다면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도 맹세를 하였다(롬 1:9 고후 1:23; 빌 1:8; 살전 2:5). 그 이유는 앞에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예수 자신도 맹세를 하고 증언을 하였다(26:63-64). 또 우리는 예수의 설교가 대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5:27-30;6:5-8). 여기에서는 예수가 정식으로 구약의 율법을 논박하고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여야 한다. 즉 율법이 허용(許容)하거나 명령하고 있는 것(신 6:13)을 예수는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가 구약이 지향하는 바에 대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이 권위가 있는 것이라면, 이제 그의 가르침으로 구약이 온전한 형태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D.A. Carson).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 여기서 '악으로 좇아'(투 포네루)란 '악로부터' 또는 '악한 자로부터'(거짓의 아비;요 8:44)로 번역될 수 있다. 결국 본문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하고도 책임감 있는 답변을 회피하고 오히려 그것을 넘어 하나님의 권위를 빌어 구구한 맹세를 하는 것은 분명 '악한 자로부터' 생겨난 허위와 위선에 따른 결과임을 보게 된다. 실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흠을 확신할 수 있는 자는 '맹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도리어 그 옳고 그름을 진솔히, 그리고 단호하게 고백할 수 있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 마태복음 말씀]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마 5:43-48)
[신약 히브리어 성경 마태복음 말씀]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마 5:43-48)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사랑에 관한 새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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