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15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외식하는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행동에 옮기지는 않으면서 말로만 가르친다고 하는 외식 주의자들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합니다. 지금도 율법주의자는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율법으로 온전하게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들도 구원받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도 구원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식 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거짓 복음에 빠져 잘못된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마 15:7-11)
7절 휘포크리타이 칼로스 프로에페튜센 페리 휘몬 헤사이아스 레곤
마 15: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15:7
외식하는 자들아 -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불렀던 첫 번째 기록이다. 여기서 '외식하는 자'(휘포크리테스)란 원래 '대답자'란 뜻이었으며, 이것이 발전하여 '배우'란 의미가 되었다. 물론 여기서는 자신의 본모습과 겉모습이 다른 위선자란 의미이다(6:2). 한편 예수께서는 특별히 의식에 대해 단호히 책망하셨는데 이는 당시 형식주의와 의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교를 특징짓는 것이 바로 외식이며 위선이었기 때문이다.
외식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원인에서 발생되는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1) 소극적 의미의 외식 : 이는 자신의 외식에 대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대개 선조들의 유전이나 인습 등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며, 종교적 의무를 완성하는 것이 최선의 삶인 것처럼 착각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江水) 같은 기름 보다도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더 기쁘게 하는 것" 임을(미 6:7,8)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2) 적극적 의미에서의 외식 : 이는 자신의 행위가 외식인 줄을 알면서도 자신의 기득권(旣得權) 수호나 기타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종교적 행사나 규례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로마 정부와 밀착되면서부터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을 망각해 버리고 종교적 허울 만을 내세워 자신의 위치를 수호하기에 급급하였다.
이사야가... 잘 예언하였도다 - 예수께서 70인 역(LXX)에 따른 사 29:13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인용하신 것이 아니라 위선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묘사를 나타내기 위해 단지 4행(行)만을 선별하여 축약 인용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종교를 형식주의 종교로 전락(轉落)시켰다. 바로 이러한 점에 예수를 성경의 증거를 들어 책망하고 계신 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왜 이 말씀을 인용하셨을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이사야 당시나 예수 시대나 경고를 받은 사람은 유대인들이었다. (2) 그들은 예루살렘(종교 중심지)에서 왔다. (3) 그들은 알맹이 없는 형식주의적 종교를 일삼는 자들이었다. (4) 더욱이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조상들의 전통을 고수(固守)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은 실제로 고수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이사야가 예리하게 비판을 하였던 위선과 가증한 것에 얽매인 조상들의 정신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8절 엥기제이 모이 호 라오스 후토스 토 스토마티 아우톤 카이 토이스 케일레신 메 티마 헤 데 카르디아 아우톤 폴로 아페케이 아프 에무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15:8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 이는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있으면서도 입술로만 공경한다고 하는 이율배반적(二聿背反的)인 신앙 형태를 꼬집는 말이다. 이런 신앙 형태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는 간교한 위선. (2) 율법의 근본정신이자 원목적인 진정한 회개와 사랑 없이 율법의 문자적 규정만을 지키고서는 마치 의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형식적인 위선 등이 그것이다.
9절 마텐 데 세본타이 메 디다스콘테스 디다스칼리아스 엔탈마타 안드로폰
마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 여기서 '계명'에 해당하는 '엔탈마타'는 종교 생활의 실천적 규칙 모두를 말한다. 따라서 '사람의 계명'이란 인간 자신의 방법에 의해 즉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인 발상애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실로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외형이 화려한 경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헛될 뿐이다.
한편 본문에 대한 히브리 성경의 원 의미는 '그들이 나를 경외하는 것은 그들이 가르침을 받은 혹은 기계적으로 배운 사람의 계명에 의한 것이다'인데 이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단순히 기계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독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 여기서 '헛되이(마텐)란 '열매가 없는', '아무런 목적이 없이'란 뜻으로 그릇된 목표를 위해 수고하는 것은 처음부터 목표가 없었던 것과 같이 공허하다는 것이다. 실로 여호와 신앙에 근거하지 않은 외식적 경배 행위는 종교적, 윤리적 결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허무한 경배일 뿐이다(말 1:6-10).
10절 카이 프로스칼레사메노스 톤 오클론 에이펜 아우토이스 아쿠에테 카이 쉬니에테
마 15: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5: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 예수께 질문하러 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에 대한 존경과 계층적 차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적대자들과의 논쟁을 마치신 예수께서는 그의 파격적(破格的)인 말씀에 의해 당황하고 있는 무리들을 가까이 불러 더 이상 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말에 미혹되지 않도록 종교와 윤리의 본질, 즉 내적 정결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11절 우 토 에이셀코메논 에이스 토 스토마 코이노이 톤 안드로폰 알라 토 에크포류오메논 에크 투 스토마토스 투토 코이노이 톤 안드로폰
마 15: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5:11
입에 들어가는 것... 입에서 나오는 그것 - 입에 들어가는 것은 음식을 의미하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을 통해 밖으로 표출되는 인간의 정서(情緖)와 사상을 가리킨다(17-20절). 이러한 측면에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위생적인 불결함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도덕적 의의를 가질 수는 없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을 더럽게 하는 것은 외형(형식)적인 불결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발산되는 부도덕한 언행과 인격 등 영적인 요인으로 그 해독은 오히려 아주 치명적인 것이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더럽게 하다'는 헬라어 동사 '코이노이'는 '저속하게 하다', '품위를 떨어뜨리다'(makes common)란 의미로 부정하다고 취급된 음식을 구분해둔 레위 제사법에서 유래한 종교적 용어이다. 한편 저속한 일에 참여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의식적으로 불결한 것이기 때문에 '더럽게 하는 것'으로 번역된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레위 제사법상 부정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발생하는 더럽힘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 음식 자체가 지닌 더러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을 어기는 불순종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음식은 인간의 영적 순결과 도덕적 청결은 무관하다(딤전 4:3, 15). 실로 인간의 부정은 오직 인간의 불순종에 있는 것이지 물질적인 것에 연유하지 않는다. 한편 11절의 말씀은 초대 교회 당시 이방인에 대한 선교 과정에서 야기(惹起)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중요한 척도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행 10:9-16:11; 롬 14:13; 고전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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