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로마서 10장 헬라어 주석강해]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척(롬 10:16-21)

두란노 서원 2021. 6. 1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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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로마서 10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척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천국복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주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배척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선민의식이 투철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아들인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음에도 영적으로 둔감하여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율법주의 신앙에 매여있으면 복음을 전해주어도 배척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복음을 전해줄 때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간 영적인 눈이 열려서 복음을 밝히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척(롬 10:16-21)

 

16절 알르 우 판테스 휘페쿠산 토 유앙겔리오 헤사이아스 가르 레게이 퀴리에 티스 에피스튜센 테 아코에 헤몬

롬 10: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0:16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 유대인들은 전파된 복음을 대부분 믿지 않았다. 바울은 이것을 완곡어법(litotes)을 사용하여 말하고 있다. 즉 그들 중 일부 만이 복음에 순종하였다는 의미이다(53:1;고전 10:5).

이사야가 가로되...누가 믿었나이까 - 바울은 사 53:1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확증하고 있다. 바울이 앞절에서 인용한 사 52:7과 본절에서 인용한 사 53:1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고난 받는 종에 의한 구원의 메시지가 거부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초대 교회에서 유대인의 불신앙을 예언하는 구절로 널리 사용되었으며(11:8) 히 예수께서도 공생애 동안 사역하시면서 그 백성이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용하기도 하였다(Bruce).

그리고 역사는 그 예언을 확증해 왔(고전 1:23). 혹자(Calvin)는 이사야가 이 말을 한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의 빛을 우리 안에 조명해 주실 때에야 비로소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특별 계시에 의하여 구원은 내적으로 소명받은 자, 선택받은 자에게 국한되는 것을 보여준다(Calvin).

17절 아라 헤 피스티스 엑스 아코에스 헤 데 아코에 디아 레마토스 데우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울은 결론적 접속사 '그러므로'(아라; so then, KJV)를 사용하여 그의 논리를 결론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는 믿음에 대해서 결론짓기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온다고 정의한다. '들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코에스'로 '듣는 행'(act of hearing)나 '들려오는 것'(that which is heard)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앞절(16)에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할 때 '전하는 바'(아코에)와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앞절과 차이점은 전자는 수동태로 '들려진 말'(was heard)의 의미로 쓰인 반면에 본절에서는 능동태로 메시지를 '들음'(hearing)의 의미로 쓰였다(Hendriksen). 또한 바울은 구원 얻는 신앙 곧 믿음은 듣는 행위에서 나오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레카토스 크리스투)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의미할 수도 있다(Harrison). 따라서 바울은,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福音)근거한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18절 알라 레고 메 우크 에쿠산 메눈게 에이스 파산 텐 겐 엑셀덴 호 프동고스 아우톤 카이 에이스 타 페라타 테스 오이쿠메네스 타 레마타 아우톤

롬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 바울은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불신앙에 대한 이스라엘의 변명의 소지를 철저히 차단시키고 있다. ,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믿음을 얻게 되는 '들음'(hearing)의 기회가 이스라엘에게는 가장 확실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메 우크 에쿠산)'그들이 듣지 못했는가?' (새번역, 공동번역; Did they not hear?, NIV)라는 의미가 좀 더 적절하다.

여기서 헬라어 '''우크'는 부정을 강조하여 '그들이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렇지?'라는 말이다(Dunn, Lenski). 결국 바울은 유대인들이 결코 듣지 못해서, 즉 전도를 받지 못해서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그 소리가...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 바울은 그의 이러한 논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시 19:4를 인용하면서 복음 전파의 편만성(遍滿性)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복음이 전 세계에 완전히 전파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바울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초점은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복음 전파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당시나 초대 교회 시대에 복음이 매우 신속하게 편만히 전파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15:22-24; 12:19; 2:41, 47; 4:4; 17:6; 1:12, 13; 1:6).

19절 알라 레고 메 우크 에그노 이스라엘 프로토스 모세스 레게이 에고 파라젤로소 휘마스 에프 우크 에드네이 에피 에드네이 아쉬네토 파로르기오 휘마스

롬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10:19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 바울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듣기는 했지만 깨닫지 못했으므로 거부했다는 반문이 나올 수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반박을 예상하여 앞절에서의 '들음'(hearing)에 관한 질문에서 전환하여 이제 ''(knowing)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도 앞절에서와 같이 헬라어 부정불변사 ''를 사용하여서 부정적인 대답을 암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졌지만 거절한 것처럼 복음의 의미와 불신앙의 결과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거절하였다(Lenski). 그러므로 바울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복음에 대한 앎의 부족이나 깨달음의 결여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Harrison). 결국 이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그들이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으려 하는 마음이 없었던 데서 연유한 것이다(Hendriksen).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 이는 신 32:21인용으로 이 구절은 이스라엘에 대한 모세의 노래 중 일부인데, 초대 교회에서 유대인들의 불신앙에 대한 예언으로 많이 인용되었다(11:11).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사악성을 질책하였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질투를 야기시키는 어떤 일을 추진하게 된 것이. 그 일은 미련한 백성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 '백성 아닌 자'(에프 우크 에드네이)'미련한 백성'(에프 에드네이 아수네토)은 다 같이 이방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단절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었고 또한 어리석은 민족들이었다(Bruce).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관용을 베푸셔서 그가 친히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존귀하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시기와 질투를 유발시켰다.

20절 헤사이아스 데 아포톨마 카이 레게이 휴레덴 토이스 에메 메 제투신 엠파네스 에게노멘 토이스 에메 메 에페로토신

롬 10: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10:20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 바울은 이스라엘이 불순종에 대해 변명할 수 없도록 이전의 증거보다 더욱 강력한 증거를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역설하고 있다. '매우 담대하여'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포톨마'로 '담대한 태도를 취하다'의 뜻을 지닌 '아포톨마오'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온다.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나타났노라 - 이 말씀은 사 65:1의 인용으로 분명히 앞절(32:21)에서 선포된 내용을 더욱 강하게 확증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기까지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철저한 불순종을 증거하고 있다. 울은 이방인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빌어 정의하기를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은 자들'이라 하였다(Dunn).

그는 이방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틀에 박힌 멸시와 배척, 자기 우월주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던 이방인들마저도 복음을 듣고 순종하여 구원이 임했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불순종함으로 구원을 거절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하나님께 구하지도 문의하지도 않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가서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의 기쁘시고 선하신 뜻대로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주권적인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Hendriksen, Calvin).

21절 프로스 데 톤 이스라엘 레게이 홀렌 텐 헤메란 엑세페타사 타스 케이라스 무 프로스 라온 아페이둔타 카이 안틸레곤타

롬 10: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10:21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 - 앞절에서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복음을 순종한 사건을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65:1)을 통해서 인용하였다. 이번에는 역설적으로 사 65:2를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강조하여 지적하고 있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스 라온 아페이둔타 카이 안틸레곤타'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거역을 병행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페이둔타'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나타내는 것이고 '안틸레곤타'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결과로 나타나는 완악한 행동과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Lenski).

이처럼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거역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거나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원래부터, 즉 모세와 선지자들의 시대에서부터 완악하고 반역적인 기질이 있었으며 이러한 기질로 인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서 기인한 것이다(Harrison).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거역을 예수께서도 탄식하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23:37, 38)고 책망하고 있다.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거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베푸셨는가를 탄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종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홀렌 텐 헤메란'은 시간의 범위를 나타내는 목적격으로 '매일'(Michel), '지속적으로'(Cranfield)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다(Dunn). 또한 '손을 벌렸노'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세페타사 타스 케이라스'로 부성애(父性愛)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의 품에 정답게 안아 주기 위해서 손을 벌리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인내와 사랑의 손을 벌리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눅 15:20).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에게 돌아와 그를 사랑하고 순종하게 하려는 뜻을 가지고 끊임없이 그의 백성을 찾고 또 손을 뻗치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무참히 거절하고 말았다(Harrison).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自招)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은 완전한 이스라엘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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