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 예배는 맥추 감사 주일로 드려지게 됩니다. 맥추절은 구약의 절기로서 밀을 수확하던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서 수확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맥추절은 신약에서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일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제2차 세계선교 여행(3)” (행18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사도행전 18:1~28
요절: “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 18:9-10)
주제: 바울 일행은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 동안 교회를 개척하다
오늘은 7월 첫째 주일로 상반기를 보내고 하반기가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는 대부분 오늘 맥추(麥秋)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세계 교회에서 한국교회만 맥추감사절을 따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해의 상반기를 지켜 주신 은혜를 감사해서 절기 헌금(맥추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시대와 개혁교회 시대에는 농경사회에서 밀과 보리의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산업과 정보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농경의 영향이 점점 희박하니 한국교회는 1980년대부터 하반기를 시작하는 7월 첫째 주일에 맥추감사절로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보니 기독교의 3대 절기인 성신강림주일(오순절)을 맥추감사절로 대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만 해도 한달 전인 6월 5일에 오순절(성령강림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 교회는 이날을 지키지 않고 오늘 맥추감사절로 대신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절기는 전세계에서 지키는 것이니 이를 지키며, 또 오늘처럼 한국교회가 독특하게 지키는 맥추감사절(가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과 구분)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찬송가 교독문에도 105번과 106번이 “감사절(1)” “감사절(2)”가 있어서 두 감사절을 지키도록 되어 있으면서 135번과 136번에는 “성령강림(1)” “성령강림(2)”도 있습니다. 한국교회 찬송가만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베델성경공부(루터교)를 집필한 구약학자 게하르트 폰 라트(G. von Rad, 1901-1971)에 의하면 신구약의 구속사(Heilsgeschichte=Salvation History)의 역사적 신앙고백(Historical Credo)는 신 26:5-11이라고 합니다. 40년 동안 광야교회 시절은 인도해 주신 역사적 믿음 가운데 드리는 구체적인 감사의 예배가 훗날 골고다 언덕에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십자가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에서 자란 햇곡식을 먹을 때까지 만나를 먹었는데, 약속의 땅에서 농사하여 거둔 곡식의 맏물을 추수하여 제사장들에게 가져가면(신 26:2-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A Syrian ready to perish was my father)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이집트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고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제가 주님께서 제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우리가 맥추감사절이든 추수감사절이든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내일은 또한 216주년을 맞이하는 미국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입니다. 미국이 잘 되어야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사도행전 18장을 강해합니다. 행 18장을 통해 바울 일행의 제2차 세계선교 여행과 제3차 세계선교 여행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2차 세계선교의 최종 목적지는 고린도였습니다. 이곳에서 18개월 동안 머물면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그리스 반도의 남부지역]의 수도(capitol)로서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가는 도중에 네로 황제가 공사를 시작했다가 그의 죽음과 함께 중단 된 것을 188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프랑스 자본) 1893년에 완공된 고린도 운하(길이 6.3km, 폭 24m, 높이 78m, 수심 8m)가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연결해 줍니다. 헬라 본토에서 페로폰네소스반도로 나가는 바로 길목에 있어서 육로와 수로로 상업상 교통이 빈번한 곳입니다. 고린도에는 잡다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었고, 궤변학자(詭辯學派 말쟁이, sophist)들 때문에 각종 연설, 토론, 변증, 논쟁이 많았습니다. 각 곳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각종 우상을 섬겼고 매년 5월이 되면 시내에서 7km 떨어진 아크로고린도(돌산, 해발 575m)에 있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에 전국 각지에서 미녀들(여성 성창 cultic prostitute) 1000명이 모여, 각처에서 모이는 남자 청년들과 자유분망한 성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사치와 소비가 극에 달했고 일년 내내 윤리적으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이러한 곳에 바울은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는 일은 날마다 영적 전투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 전서(에베소에서 작성)와 후서(마게도냐에서 작성)에서 보듯이 교회내에서 신앙적 질문이 많아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일일이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1. 고린도 교회 개척과 양육(행 18:1-17)
(1) 이후에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해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3)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니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6)그들이 대적하여 방해하니 바울이 옷을 떨어 말하기를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8)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님을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침례]를 받더라(9)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11)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12)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13) 말하기를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14)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이상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여러분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15)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여러분들이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16)그들을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17)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니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
1-3절.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한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서쪽으로 64km 떨어진 고린도(Corinth “뿔”이란 뜻)에 도착했습니다.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는 고대 헬라의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이었고 매우 음란했던 도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Aquila)라 하는 본도(Pontus, Pontos, 흑해 남부지방의 지명으로 예수님 당시 총독인 빌라도의 고향 ‘본디오 빌라도’)에서 난 유대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년경 통치)가 AD 46년에 로마 지역을 강타한 지진 후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하였기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Priscilla)와 함께 이달리야(Italy)로부터 새로 온 부부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가서 직업(장막을 만드는 일 tent-making)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였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같은 직업인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는 일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섭리였습니다. 바울은 장막업으로 재정을 확보하여 자력 선교를 하였습니다.
4-5절. 고린도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회당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릴 때부터 습관대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가서 예배드리면서, 강론시간에 설교하였습니다. 바울은 설교시간을 통하여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습니다. 베뢰아에 남겨둔 실라(Silas)와 디모데(Timotheus)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 고린도에서 바울과 재회합니다. 5절에 사도바울은 ‘영안에(in the spirit)’[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로 되어 있음] 붙잡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했습니다. ‘강론하다’는 원어(디아레고마이)는 논리적으로 변론한다는 뜻이고, ‘밝히 증거하다’는 원어(디아마르튀로마이 diamarturomai)는 ‘열심히 증거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전하는 말씀을 가급적 논리적으로 증거하고 또 영에 붙잡힌 바 되어 열심을 다해 전해야 할 것입니다.
6절. 바울의 전도 사역에는 항상 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혼)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싫어하며 방해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하자, 바울은 옷을 떨어버리고 말하기를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바울은 그들과의 단절을 분명히 선언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마 10:14).
7-8절. 바울은 거기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스도(Justus)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은 회당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을 위해 집회 장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가족들로 더불어 주님을 믿으니 말이 많은(궤변) 고린도 사람들도 듣고 믿어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항상 상반된 반응을 가져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사역에서 그러했다면, 하물며 오늘날 우리들의 사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 사람 하면 견유학파(犬儒學派) 디오게네스(Diogenes the Cynic, BC 412-323)를 기억합니다. 그는 오늘날 터키(튀르키예)의 흑해 연안인 시노페 출신인데 고린도에 와서 견유학파(κυνισμός, the Cynic, 犬儒견유란 ‘흰개’ 뜻)를 실천하였습니다. 견유학파 철학자는 BC 400년 후반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였는데 그는 제자들을 개를 훈련하는 장소인 Κυνόσαργες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학파가 견유학파(犬儒學派)라 불리우게 되었답니다. 디오게네스도 그의 뒤를 따라 고린도에서 무숙자(homeless)로 도자기로 된 통 안에서 살면서,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다니면서 이 어두운 세대를 밝히는 청년들을 찾고 다녔답니다. 견유학파(흰개처럼 냉소적 논법으로 자연과 역행하는 생활을 비판)에게 삶의 목적은 자연과 일치하여 미덕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추론 생물로서 사람들은 엄격한 훈련과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살면서 부, 권력 및 명성에 대한 모든 전통적인 욕구를 거부하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조롱하는 관습을 무시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모든 소유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단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극도의 사치와 부요와 향락의 고린도 문화와 정반대로 살아가는 운동이어서 훗날 기독교에 금욕주의적이며 수사학적인 수도원 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명언 중 대부분은 그의 추종자들 덕분에 간직되었습니다. “지혜는 젊은이에게는 제동장치이고, 노인에게는 편안함이며, 가난한 자에게는 재산이고, 부자에게는 장식품이다.” “모욕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한다.” “아첨꾼 옆에 있느니 까마귀와 사는 것이 좋다: 까마귀와 있으면 죽을 때 살이 뜯기지만, 아첨꾼과 있으면 산 채로 뜯기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56~323년, 33세 별세)이 세상을 정복하고 꼭 만나고 싶은 디오게네스를 찾아 먼 길을 여행해서 고린도에 그의 거처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그를 궁궐로 초청했지만 거절했기에 직접 그를 찾아온 것입니다. 겨울이 시작된 12월 초라 그는 누워 한가롭게 햇빛을 쬐고 있었답니다. 대왕이 그에게 인사하면서 “짐은 알렉산더 대왕이요” 하니 “나는 디오게네스, 개요” “짐이 두렵지 않소?” “당신은 선한 자가 맞소?” “그렇소”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선한 자를 두려워 하세요?”라고 했답니다.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니, 그는 대왕이 햇빛을 가리고 계시는데 비켜주는 것이 자기 소원이라고 함으로 또 한번 알렉산더를 놀라게 했답니다. 대왕은 크게 웃으면서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아닌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구나” 그 말에 디오게네스가 대꾸하기를 “내가 디오게네스가 아니라면 폐하를 제외한 그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좋습니다”고 했답니다. 이에 알렉산더는 속으로 “당신이 진정 세계를 정복한 사람이오”하고 감탄하며 돌아갔답니다. 고린도가 이런 곳이었습니다.
9절. 밤에 주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환상 가운데 오셔서 바울을 격려하십니다. 환상은 사도시대에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충분히 기록되었고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필요성이 없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환상 중에 나타나신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후시대의 모든 전도자들에게 교훈이 됩니다.
10-11절. 주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 28:20). 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은 모든 전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대적하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그 성에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도자는 구원의 도구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전도자는 담대히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년 6개월을 고린도 성에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12-13절. 갈리오(Gallio)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AD 51~52년경) 유대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고소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율법에 예언된 분이시오, 율법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하십니다(마 5:17).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분을 알지 못하여 그분을 미워하였고 그분을 믿는 제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14-17절.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 총독이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사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갈리오는 그들을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는 그 일이 도덕적 사건이 아니고 종교적 사건이라는 이유로 그 고소를 기각한 것입니다. 헬라인들(전통본문)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렸지만 갈리오는 그 일을 상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전도 사역을 막으려는 유대인들의 고소를 이렇게 막으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순교의 잔을 마실 것이지만,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2.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하나님 중심의 사역(행 18:18-23)
(18)바울은 더 여러 날 지내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19)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21)작별하여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여러분들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22)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23)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18절. 바울은 더 여러 날 고린도에 유숙하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파송교회가 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나갔는데,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그 부부의 이름이 언급될 때 두 번 더(롬 16:3; 딤후 4:19) 아내의 이름(브리스길라)이 남편(아굴라)보다 앞에 나옵니다. 그것은 그 아내가 남편보다 더 성경 지식과 믿음이 있었음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부는 바울에게 그를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만한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롬 16:3-4). 바울은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Cenchrea)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약11km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입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2개의 항구가 있었는데 북쪽 항구에서 승선하면 로마로 가게 되었고, 남쪽 항구인 이 겐그레아에서 승선하면 소아시아와 예루살렘 방향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 지명을 케흐리에스(Kehries)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기념하여 항구 방파제에 큰 동상이 있습니다. 로마서를 로마에 전달한 뵈뵈(Phebe) 자매가 이곳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던 여 목회자입니다(롬 16:1).
서원(vow)은 하나님께 맹세하며 약속하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아마 고난과 위험 중에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머리를 깎는 것은 어떤 일정 기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서원은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고 사모할 때 합니다. 서원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시편 15:4는,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라고 합니다.
19절. 바울 일행은 겐그레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너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인데,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지만, 먼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히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고 복음 전도에 대한 불붙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 에베소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20-21절. 여러 사람이 그에게 더 오래 있기를 청하였으나 그는 허락지 않고 작별하며 “나는 다가오는 이 절기를 예루살렘에서 꼭 지켜야 하겠노라. 그러나(전통본문)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여러분들에게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절기는 유월절 혹은 오순절일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여러분들에게 돌아오리라’는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섭리를 믿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며 언제나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바울은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22절. 유대의 총독청이 있던 가이사랴(Caesarea)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수리아 안디옥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로써 그의 2차 세계선교 여행은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복음이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에 심겨졌습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 중요한 도시들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의 선교에 대한 깨달음과 열정과 순종, 전도자 파송과 후원을 사용하셨습니다. 각 곳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구원얻는 사람(혼)들이 생겨났고 교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함께 와서 얼마 동안 지내며 간증하고 사역했습니다.
23절. 바울은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Galatia)와 브루기아(Phrygia)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소위 바울 일행의 제3차 세계선교 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울은 안디옥에 오래 머물지 않고 선교여행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로 인해 불타고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땅은 그가 처음에 전도하였던 비시디아 안디옥을 비롯하여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는 두루 다니며 제자들을 굳게 하였습니다. 전도는 씨를 뿌리며 심는 것이고, 심방은 돋아난 싹에게 물을 주며 보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전도도 필요하고 심방도 필요합니다.
3. 아볼로의 에베소 사역(행 18:24-28)
(24)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25)그가 일찍 주님의 말씀을 배워 열심으로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침례]만 알고 있더라. (26)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27)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니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28)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대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24절. 알렉산드리아(이집트 고센 땅)에서 난 아볼로(Apollos)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렀습니다. 아볼로는 달변가(로기오스 logios)며 성경에 능통한 자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당시 이집트의 수도이었고 정치적 문화적 학문적 중심지이었습니다. 그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BC 3세기에는 거기에서 구약성경의 70인 헬라어역(LXX)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필로(Philo, BC 20-AD 45년경)라는 유명한 헬라파 유대인 철학자가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공부를 했고 성경을 배웠습니다.
25절. 아볼로는 일찍 주님의 말씀을 배워 열심으로 주님(전통사본)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침례]만 알았습니다. ‘주님의 도’ 혹은 ‘주님에 관한 것’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에 관한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주님’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아볼로는 세례[침례]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았고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분의 교훈들과 기적들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았고,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침례]만 알고 있었고, 성신님 세례는 몰랐습니다. 즉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지 못했던 것 같고 또 ‘성신님의 세례’도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물 세례[침례]를 받았으나 아직 성신님을 받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분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분은 성신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침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마 3:11).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요한은 물로 세례[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신님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5). 아볼로는 아직 사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음을 바로 듣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지 못하였고 성신님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26절. 아볼로는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풀어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더 자세히 설명해준 것입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내용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 약속에 대해 몰랐던 것이나, 특히 그분의 죽음의 대속(代贖)적 의미, 죄사함 받음과 의롭다 하심 얻음 등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천막 만드는 자인 아굴라 부부에게 겸손히 진리를 배웠습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아볼로에게 주신 귀한 은혜요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됩니다. 기독교 신앙 지식은 세상 지식이나 심지어 성경 지식의 많고 적음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천막 만드는 자인 평신도 아굴라 부부라도 성경에 능한 아볼로보다 더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아굴라 부부를 통해 아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았을 것이고 또 성신님의 세례[침례], 즉 성신님께서 성도의 육체 속에 오시고 내주(內住)하시고 역사하심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27-28절.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자 에베소 형제들은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가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성경으로써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능한 아볼로가 복음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 많은 유익을 끼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제3차 세계선교 여행을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차 세계선교는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이어 3차 세계선교는 에베소 교회를 세운 역사를 동참하고 있습니다. 바울 일행과 함께 각처를 순방하며 복음을 전하는 교육 선교에 힘써온 겟세마네 선교회, 신학교, 교회 사역을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올해 하반기를 감사의 주제로 출발합니다. 주님, 범사에 감사하게 하시며 감사의 생활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내일 독립기념일을 맞이하는 미국의 청교도 정신으로 재무장하여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사랑과 정의를 세워 세계를 잘 이끌게 하옵소서. 사도행전의 바울 사도처럼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교육 선교를 통해 세계 복음화를 실천하게 하옵소서. 어떠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예수님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7월 첫째 맥추 감사 주일 낮 예배 대표 기도문
'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3장 예수님 말씀] 구원론 설교-거듭남의 비밀(요 3:3-5) (0) | 2022.07.11 |
---|---|
[사도행전 12장 매일 말씀]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행12:1~25) (0) | 2022.07.08 |
[신약히브리어 사도행전 말씀] 초대 교회 성도 바나바의 헌신(행 4:34-37) (0) | 2022.07.06 |
[신약히브리어성경 요한복음 말씀]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요 2:7-9) (0) | 2022.07.05 |
[히브리서 13장 강해 성경말씀] 사랑과 선행에 힘쓸 것(히 13:1-25) (0) | 2022.06.25 |
[히브리어 성경 사도행전] 복음을 저지하는 사두개인들(행 4:17-19) (0) | 2022.06.21 |
[신약 히브리어 성경 말씀 요한복음] 예수님이 빌립을 전도(요 1:43-45) (0) | 2022.06.21 |
[마태복음 히브리어성경말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 6:32-34) (0) | 2022.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