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에서의 사역과 사건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을 했습니다. 바울은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제3차 세계선교 여행(행 19:1~41)
요절: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군중 앞에서 이 진리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행 19:8-9)
주제: 바울 일행은 에베소에서 이년 삼 개월 동안 교회를 개척하여 양육하다
오늘은 사도행전 19장을 강해하겠습니다. 18장은 고린도에서 사역을 마치고 에베소와 가이사랴를 경유해서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출발할 때에는 바울과 실라와 누가였지만 돌아올 때는 이들 이외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동행해서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고 잠시 휴식 후 다시 제3차 세계선교 여행을 출발합니다.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을 세우면서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양육합니다.
1.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행 19:1-7)
(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2)묻기를 “여러분들이 믿을 때에 성신님(the Holy Ghost)을 받았느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저희는 성신님이 계심을 듣지 못하였노라,”(3)바울이 묻기를 “그러면 여러분들이 무슨 세례[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기를 “요한의 세례[침례]입니다.”(4) 바울이 말화기를 “요한이 회개의 세례[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님이라” 하니(5)그들이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니(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신님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대언도 하니(7)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1-2절.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일찍 복음을 배웠고, 예수님에 대하 많은 지식이 있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나 세례[침례]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신님의 세례는 몰랐다고 행 18장 마지막 부분에서 읽었습니다(행 18:24-25). 고린도에서 에게해를 건너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 일행과 만났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성신님의 세례[침례]를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행 18:26). 그리고 아볼로는 바울의 부탁으로 고린도에 건너가 교회를 담임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고린도에 있는 [바울기념교회 The Church of Saint Paul at Ancient Corinth, Greece 정교회]를 방문하면 1858년의 지진 후 신(新) 고린도에 지어졌습니다. 교회입구 좌측벽에 담임목회자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1대 사도 바울, 2대 아볼로, 3대 실라, 4대 소스데네, 순서로 되어 있고 현재 담임목사님은 89대라고 적혀있습니다. 오른쪽 벽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이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2대 담임 교역자가 된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에, 사도바울은 윗지방, 곧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지나(행 18:23)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몇 개월 전에 2차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가는 길목에 에베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면 여러분들에게 돌아오리라”라고 말했던 대로 에베소에 온 곳입나다(행 18:21).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여러분들이 믿을 때에 성신님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그들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성신님이 계심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라는 용어는 주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키지만, 바울이 만난 그 제자들이 과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볼로의 가르침이나 혹은 어떤 다른 이들의 전도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마음이 있었으나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도리를 확실히 알지 못한 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도 받지 않았고 성신님 세례도 받지도 못했습니다. 아볼로가 바울 일행에게 대답한 대로 그들도 성신님 세례[참례]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신약시대 성도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신님을 선물로 받는 것은 특권이며 큰 복입니다(갈 3:2). 그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이었습니다(요 14:16).
3-5절. 바울이 그들에게 무슨 세례[침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세례[침례] 자 요한의 세례[침례]를 받았다고 대답합니다. 그 제자들은 확실히 신앙 지식에 있어서는 부족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요한이 회개의 세례[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님이라.” 하니 그들은 듣고 즉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6-7절.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신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신자들에게 안수할 때 성신님이 오신 것과 같았습니다(행 8:17). 하나님께서는 두 경우 다 사도들을 통해 새 성도들이 성신님을 받게 하셨습니다. 에베소 제자들은 성신님을 받은 증거로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수는 약 열두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의 개척 멤버가 되었을 것입니다.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신약 시대에 사는 구약적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을지는 몰라도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신님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신님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약속된 분이시며 그분을 선물로 받는 것은 신약 성도의 특권과 복입니다. 성신님께서는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로 인격의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봉사의 힘도 주십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초자연적 은사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거스르는 모든 죄를 버리는 것과 거룩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성신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속에서 죄를 멀리하고 거룩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에베소에서의 사역(행 19:8-22)
(8)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니(9)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군중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니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10)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님의 말씀을 듣더라.(11)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12)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마귀도 나가더라(13)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마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14)유대인의 어떤 제사장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15)마귀가 대답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16)마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18)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회개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20)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1)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말하기를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22)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8절. 바울은 에베소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the rule of God)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살던 불경건한 생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에게 복종하는 삶입니다. 강론하다는 원어(디아레고마이 dialegomai)는 논리적으로 말한다는 뜻이고, 권면하다는 원어(페이도 peido)는 설득하며 권한다는 뜻입니다. 전도자는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9절. 어떤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군중 앞에서 이 말씀을 비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버려진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씨가 길가에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회개하며 통회하여 온유해진 마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전도자를 거절한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the school of one Tyrannus)에서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복음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이 정확하게 어딘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도서관 앞의 광장이 있는데 그 오른편에 있는 관공서나 교육기관의 2층에 있는 학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말 ‘서원’은 헬라어 ‘스콜레’인데, 이 단어에서 영어 school이 파생되기는 했지만, 본래는 토론이나 논쟁도 벌어지고, 강연도 이루어지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여가를 즐기기도 하는 다목적의 공간이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시대에는 이런 스콜레가 흔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두란노 서원은 에베소에 살고 있던 공무원 티란노스(Tyrannus)라는 사람의 스콜레(school)를 일컫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대본 중 하나인 베자 사본(Codex Bezae, 4세기 말~5세기 초 사본, 1546년까지 리용 박물관에 소장됨. 1562년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에게 인계됨.)에 의하면, 오전에는 주인인 티란노스가 자신의 스콜레를 사용했기 때문에, 바울과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티란노스가 사용하지 않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의 스콜레를 매일 이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무더운 에베소에서, 그 시간은,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점심식사를 한 뒤에, 시에스타 즉 낮잠을 즐기는 시간[오침]이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정 장소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바울과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음을 자는 시간 동안에, 바로 그 시간에 비어있는 티란노스의 스콜레에서, 날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개척교회와 신학교 개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많이 섞여 있는 교회는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교회는 교인수가 적어도 진실하고 순종하는 자들이 모여 한 마음, 한뜻으로 서로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며 목사는 바른 말씀을 열심히 전하며 회중은 그 말씀을 열심히 받을 때 교회다운 모습을 가집니다.
10절. 바울이 이같이 이 년 동안을 말씀을 강의하자, 아시아에 사는 자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년 동안은 안식일이 100번 이상입니다. 만일 일주일에 두 번씩 전했다면 그는 그곳에서 200번 이상 설교할 기회를 가졌을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중요합니다. 겟세마네 선교회, 신학교, 교회는 지난 34년간 선교지에 가서 교육 선교에 헌신해 오고 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풍성한 말씀의 잔치이었습니다.
11-16절.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special miracles)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마귀도 나갔습니다.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마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유대인 제사장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도 이런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대답하였고, 마귀 들린 사람은 그들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긴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행하는 기적을 통해 그가 전한 말씀이 진리임을 능력으로 증거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기적 행함은 그들이 전한 복음이 진리임을 확증하는 표이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 2:3-4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신님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17-19절. 에베소에 거주하던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은 많이 와서 회개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은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5만이나 되었습니다. 은 5만은 당시 보통 노동자가 5만 일 동안, 즉 약 137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매우 큰 금액(약 40억)입니다. 이 사건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어떻게 철저하게 회개했으며 죄악 된 일들을 청산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구원은 반드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죄의 청산은 회개의 열매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죄악 된 일을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20절.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 하여(grew mightily) 세력을 얻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전도의 역사로 특히 베드로와 바울의 선교 행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었고 흥왕하고 세력을 얻었습니다. 행 6:7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증거 했고, 행 12:24는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 하여 더하더라”라고 증거 했고, 또 여기 행 19:20은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 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힘은 곧 하나님의 힘이며 성신님의 힘입니다. 전도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힘 곧 하나님의 영, 성신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말씀행전(行傳)이며 성신행전입니다.
21-22절. 에베소에서의 약 2년 3개월간의 전도사역을 마친 후,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심령으로 계획하며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고 합니다. 로마는 당시 로마제국의 수도입니다. 그는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에베소에 얼마간 더 있었습니다. 그즈음에 쓴 고린도전서에서 그는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크고 효율적인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6:8-9). 그의 에베소 전도 사역은 많은 결실을 맺고 있었습니다.
행 19:8-22의 본문은 첫째로, 기독교는 말씀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3개월 이상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깨닫고 믿고 행하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무엇보다 설교와 성경공부가 중요합니다. 느헤미야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남자와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들이 다 수문 앞 광장에 모였고 학사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였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습니다(느 8:2-3, 8). 신약 성도들도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기적들로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성경에 증거 된 기적들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적주의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22-24).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불변하신 하나님이시므로 기적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지만, 사도 시대 이후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중생(重生)과 회개와 믿음 등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함께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셋째로, 참된 말씀의 사역은 회개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참된 회개는 죄의 청산을 동반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바른 말씀, 즉 성경적 설교와 강론을 통해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고 교회가 부흥하고 든든히 세워짐을 믿습니다. 히 4:12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날도 참된 말씀, 성경적 설교와 강론이 힘 있게 역사하기를 기도합시다.
3. 에베소 성의 소요와 바울의 탈출(행 19:23-41)
(23)그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24)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25)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26)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28)그들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외쳐 말하기를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29)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30)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31)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32)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33)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언하려 하나(34)그들은 그가 유대인인줄 알고 다 한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35) 서기장이 청중들을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36)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들이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37)신전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방해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38)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39)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동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41)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23절. 바울의 2년 3개월 사역을 통해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시아에 널리 증거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던 때,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 하여 세력을 얻었던 그때에, 이 말씀(道)으로 인해 적지 않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진리 운동에는 때때로 갈등과 싸움이 있습니다(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인간의 무지함과 사탄의 역사로 인해 그런 갈등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그런 소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24-27절. 그때 일어난 소란은 데메드리오(Demetrius)라 하는 어떤 은장색(silversmith)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그는 아데미(Artemis=Diana=Venus)의 은(銀) 감실(silver shrines)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였는데,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아데미는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던 여신이며 ‘은감실’이란 은으로 만든 신주 궤를 가리킵니다.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대적하여 사람들을 선동한 내용은 두 가지이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는 바울이 전하는 말 때문에 그들의 영업만 천해지고 아데미의 전각이 경홀히 여김이 되고 그의 위엄도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결과, 자기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가 되고 자기들의 유족한 생활의 기반이 되는 은감실 만드는 일이 쇠잔해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소득 감소의 위험, 다시 말해 그들의 이익 문제가 중요한 동기이었던 것입니다.
28-34절. 그들은 데메드리오의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해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말은 군중을 분노케 하며 선동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들의 소란은 확실히 감정적이었습니다.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갔습니다.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군중들이 산만하여 태반이나 왜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소동하는 무리들 속에는 오직 군중 심리만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군중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면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기를 두 시간 동안이나 하였습니다. 에베소 성의 소란의 실상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질서와 혼란뿐이었습니다.
35-41절. 서기장(townclerk)은 군중들을 안정시키고,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당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여러분들이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신당의 물건을 도적질 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방해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여러분들이 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소송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란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라고 말하고 그 모임을 해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의 사역 중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제자들을 양육하니 에베소 교회는 든든하게 서가게 되었고 말씀이 흥왕 하여 갔습니다. 소아시아 수도인 에베소에 복음을 전하니 전 아시아 지방에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날마다 말씀을 공부하며 이곳에 가끔 참석한 서기장이 에베소 사람들의 소요를 진정시키며 바울 일행이 어려움과 살해의 위험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가는 교회와 선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3장 주석 성경말씀] 교회 집사의 자격(딤전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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