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5장 성경말씀 중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성령 속임 사건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초대 교회는 물건도 서로 통용하면서 살았습니다. 초대 교회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입니다. 이 부부가 성령을 속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땅을 팔고 얼마의 돈을 숨겼습니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성령 속임 사건(행 5:1-42)
1-16절,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1-6절]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차적 문제는 탐심과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헌금을 하긴 해야 하겠는데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을 사도들 앞에 다 드리기가 아까웠던 것 같다. 그들에게는 물질적 욕심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골 3:5). 그것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마음이다.
더욱이, 아나니아는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그의 속에는 사탄이 가득하였다. 그는 단지 사도 베드로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고 성령을 속이려 한 것이며, 단지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한 것이었다. 거짓은 곧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성도들의 회(會) 속에 이런 거짓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교회가 거짓을 용납한다면, 교회는 급속히 부패하고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7-11절]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사도직의 권위를 세워주셨다는 데 있었다고 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함께 꾀하여 사도들 속에 특별하게 역사하시는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복종하였을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는 사도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단지 욕심이나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사도직의 권위의 문제이었다. 그것이 중요한 까닭은 사도들이 선포하고 가르치고 기록한 말씀 곧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12-16절]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주랑]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손으로 많은 기적들이 행해지게 하셨다. 그것은 단순히 병자들이 불쌍해서만이 아니었다. 만일 그것뿐이라면, 왜 사도 시대 이후에 그런 기적들이 계속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도들을 통해 이루어진 기적들은 그들의 권위를 확증하고 그들이 전한 복음과 교훈들이 진리임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브리서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여기에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권위의 근거가 있다.
본몬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물질적 욕심을 버리자. 탐욕은 우상숭배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에게 매우 큰 시험거리이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거짓을 버리자.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요 지옥 갈 죄악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큰 악이다. 거짓을 용납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고 마귀의 회(會)일 것이다.
셋째로, 교인들은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성경적, 바른 교훈과 치리를 존중하고 복종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권위가 확립되고 그들이 전파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치셨다고 본다. 그것은 두려운 사건이었으나 그만큼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였다. 사도직은 존중되어야 하고 교회는 그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복종해야 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다(요 21:15-17). 목양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말씀의 권위이다. 그가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은 권위 있게 전달되고 받아져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권위가 무시되고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무시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용납하지 않으셨다. 사도들의 전한 교훈이 바로 신약성경이다.
사도들의 직분은 오늘날 목사들과 장로들에게 계승되었다(행 20:28).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들, 곧 당회의 권위와 그들의 성경적, 바른 교훈과 치리는 교인들에 의하여 존중되어야 하고 복종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디모데전서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베드로전서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교회는 성경적 교훈과 치리 안에서 세워지고 진행되어야 한다. 그들에 대한 비난은 매우 신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교인에게 있어서 목양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큰 불행이다.
17-32절, 공회 앞에서 또 증거함
[17-21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시기는 교만에서 나온다. 그들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르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거나 핍박을 받는 것은 복되다. 주께서는 그에게 큰 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5:11-12).
주의 사자는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늘 함께하셨고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식으로 일하셨다. 사도 시대에는 여러 가지 기적들이 일어났다. 물론 사도 시대 이후에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의 말씀’인 복음을 전해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어 구원과 영생을 얻는 것이다.
사도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을 가르쳤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사도들을 통해 이미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과 공회원들과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그것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사도들을 해하며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모였을 뿐이다.
[22-26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함이러라.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위하시고 그들을 도우신다는 것을 알리시며 느끼게 하셨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달리, 일반 백성들은 사도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고 그들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일반 신자보다 못하게 되고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고 비방할 수 있다.
[27-28절]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敎)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이 예루살렘에 가득히 퍼지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예수의 핏값이 자기들에게 돌려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핍박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힘있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29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은 옳은 말이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이나 견해나 주장에 매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 즉 바른 교리와 교훈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성경 강해와 성경 공부의 중요성이 있다. 누구든지 어떤 사상을 주장하고자 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주장해야 하고, 또 누구든지 어떤 사상을 반박하고자 하면 성경에 근거해서 반박해야 한다. 성경의 건전한 해석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은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30-31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들은 공회 앞에서의 발언의 기회를 이용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들이 증거한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우리의 임금과 구주가 되심, 사람들이 죄를 회개함, 죄사함 등이었다. 이것들은 기독교 복음의 요지들에 관계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임금과 구주이심이 확증되셨다. 또 우리는 회개하고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다. 이것이 교회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요지이다. 우리는 오늘날도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구주 되심과 회개와 죄사함을 전파해야 한다.
[32절]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친히 보고 들은 자들이었다(행 1:21-22). 하나님의 복음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되었다. 이것은 사도 시대 이후의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확실한 근거는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이다. 기독교 복음은 진실한 증인들의 진실한 증언들에 근거한 확실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의 증거하심이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을 행하심으로 복음을 확증하셨다. 히브리서 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오늘날 성령께서는 기록된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신다. 오늘날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성경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경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17절로 32절까지의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시기하지 말자. 우리는 교만과 명예심을 버리고 남을 시기하거나 미워하는 자가 되지 말자.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높여주지 않는다고 화내는 것은 아직도 우리 속에 교만과 명예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기의 영광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의 교훈대로 행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고난의 삶을 각오하자. 예수께서 가신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를 지시는 길이었다. 사도들의 간 길도 고난의 길이었다.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바른 삶은 환경적 평안과 영광의 길이라기보다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며 가야 할 길이다. 우리의 바른 신앙생활 전반이 그러하며 우리의 바른 교회봉사 생활은 더욱더 그러하다.
셋째로,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널리 전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다. 그것은 증인들에 의해 확증된 말씀이며 성령께서도 많은 기적들로 확증하셨고 지금도 온 세상에 선포되는 구원의 말씀이다. 그것은 죄인들을 회개케 하는 말씀이며 회개하며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전도자를 위협하고 핍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남은 여생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다가 생을 마치기를 원한다. 우리를 통해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구원을 받도록!
33-42절, 사도들을 채찍질함
[33절]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유대의 공회원들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들을 죽이려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던 저들은 그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또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악한 일을 계속 행할 수 있겠는가? 사도들이 무슨 죽을 잘못을 범하였는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과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을 전한 것이 왜 죽을죄가 되는가?
[34-39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공회원 중에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엄격한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당시에 자유주의자들인 사두개인과 달랐다. 또 가말리엘은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교법사이었다. 교법사는 율법학자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았었다(행 22:3).
가말리엘은 공회 중에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라고 명한 후에 이전의 인물 드다와 갈릴리 유다의 예를 들어 동료들에게 예수의 제자들을 조심하여 다루라고 하면서 그들을 버려두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그의 제안의 이유는, 만일 예수의 제자들의 가르침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면 조만간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가말리엘의 충고는 정당한 충고이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 살벌한 공회 가운데서도 백성에게 존경받던 가말리엘 선생을 사용하셔서 사도들을 죽음에서 건져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 가운데서 무엇이나 자유로이 사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허락하심이 아니면, 사람은 누구나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었다(마 10:29-31).
[40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공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았다. 그들이 가말리엘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사도들은 이로써 죽음의 위험을 면하였다. 그러나 가말리엘 자신은 복음에 대해 무지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공회원들과 더불어 사도들을 채찍질하였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였다.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였다. 이처럼 초대의 성도들은 전도하다가 핍박을 당했고 매를 맞았다. 오늘날에는 자유로이 전도할 수 있는 지역도 있고 전도가 금지된 지역도 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전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41-42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11-12).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전도하지 말라는 유대 지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인간의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33절로 42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전도자에게 고난이 있음을 알자. 전도자에게는 때때로 감옥에 갇힘이 있고 매 맞음이 있고 심지어 죽음의 위험도 있다. 전도자는 그것을 각오해야 하며 오히려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한 고난이며 하늘에 큰 상급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것은 거짓 선생의 표이지만, 고난과 핍박은 하나님의 참된 일꾼의 표이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자. 사도들이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말리엘의 말을 통해 그들을 건지셨다.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주관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다. 우리가 죽을 때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자. 전도는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신약교회에 주신 명령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로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여호수아 히브리어 원문 강해]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 처형(수 7: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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