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장에서 소발은 욥의 결백에 대해서 정죄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회개하여 안식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인간을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우리는 같은 성도를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소발—욥에게 회개를 촉구함(욥 11:1-20)
[1-6절]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말이 많으니 어찌 . . . .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바드)(혹은 ‘어리석은’)(BDB)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소발은 욥이 자기의 말이 정결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고 말한다고 증거한다. 그렇다. 욥은 자신이 악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소발은 또 말하기를,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다”는 원문은 “하나님께서 너의 악을 네게 다 돌리지 아니하신다”는 뜻이다(BDB).
소발의 말은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단지 그것이 욥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욥의 고난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격한 벌은 죽음, 곧 지옥형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며, 비록 징벌하셔도 엄격히 하지는 않으신다. 시편 103: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에스라 9:13,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평안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다.
[7-9절]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 . . .
소발은 계속 말한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지옥]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도량’이라는 원어(밋다)는 ‘연장, 외연(extension)’이라는 뜻으로, 크기나 길이를 가리킨다.
사람은 하나님의 본체와 그의 지혜와 지식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섭리의 모든 일들, 그 목적과 그 방법도 알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고 오직 성경말씀을 통해 또 하나님의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조금 알 수 있을 뿐이다.
욥기 5:9,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시편 145:3, “여호와는 광대하시니[크시니, great]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크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신명기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전도서 3:11,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始終)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8:17,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10-12절]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 . . .
소발은 또,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開廷)하시면[모이게 하시면, 법정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 되심을 고백한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고 말한다.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모든 행위, 특히 사람의 모든 악한 행위를 보시고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소발은 그러나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고 말한다. 원문은,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허망한 사람이 지각이 있으리라”(NASB)고 번역할 수 있다. 본문은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듯이, 허망한 사람이 지각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시편 10편에 보면, 악인들은 잘못 생각한다. 4절,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11절,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3절,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물론 악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큰 잘못이며 큰 착각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모든 일을 감찰하신다. 14절,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15절,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13-14절]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 . . .
소발은 또,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가다듬고, 준비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옳은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뢸 때 우리 손에 죄악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멀리 버려야 하고 회개해야 한다. 또 우리는 죄와 불의가 우리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손에 죄악이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손은 우리 몸의 매우 중요한 지체이다. 우리는 손으로 사물을 만지고 붙잡고 물건을 집고 또 옮긴다. 우리의 손은 우리의 행위를 가리킨다. 이사야 1:15는,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인간은 손으로 우상을 섬기며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손이 깨끗한지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죄악을 멀리해야 한다. 죄는 무서운 질병이나 더러운 오물과 같다. 우리는 밖에 나갔다 오면 건강 위생을 위해 손을 비누로 한두 번 깨끗이 씻는다. 이와 같이, 죄성의 잔재를 가진 우리는 이 죄와 마귀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 살 때 우리의 손이 죄로 더러워지기 쉬우므로 늘 손을 씻듯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 버려야 한다.
또 우리는 불의로 우리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장막’은 집 곧 가정을 말한다. 사람은 자기 집에서부터 잘 해야 한다. 사람은 가족이 함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아간은 멸망할 물건을 장막 땅 속에 묻었다가 온 가족이 멸망을 당하였다(수 7장). 아나니아 부부는 함께 하나님과 사도 베드로를 속이다가 즉사하였다(행 5장).
[15절]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 . . .
소발은 또 말한다.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라.” ‘그리하면’은 앞절에 말한 대로 “그가 손에 죄악이 있으면 그것을 멀리 버리고 불의로 그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한다면”이라는 뜻이다. 본문은 담대함의 비결을 말한다.
‘네가 정녕’이라는 말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소발의 말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일반적인 진리와 일치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얼굴을 못 든다. 죄를 짓고도 얼굴을 드는 자가 있다면 그는 뻔뻔한 자이거나 위선적인 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면 담대함을 가질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는 불안함이나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성경은 담대함의 비결이 의를 행하는 데 있음을 증거한다. 레위기 26:36, “내가 그들[계명을 어기는 자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여호수아 1:7- 8,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시편 119: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요한일서 3:21,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죄는 양심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오지만, 의는 양심의 평안과 담대함을 준다.
[16-17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 . . .
소발은 또 말하기를,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죄 때문에 환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신명기 28장은 범죄하는 사람이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이사야 48:22는 악인에게 평강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손을 깨끗이 하고 악을 철저히 회개하면 그 환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에서 그를 건져주실 것이다. 그는 곧 환난을 잊을 것이며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다. 와디(wadi)라는 강은 비가 온 직후에는 요란스런 물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비가 그치고 얼마 지나면 흐르던 물은 다 없어져버리고 다 말라버리고 조용해진다. 회개한 자에게도 그렇다. 지금 아무리 환난이 요란한 강처럼 흐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지나갈 것이다.
소발은 또,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두움은 환난을 가리키고 대낮이나 아침은 평안과 행복을 가리킨다. 회개하며 의를 행하는 자는 평안을 얻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다.
신명기 28:2-6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한다. 또 이사야 48:18은,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의는 평강을 가져온다.
[18-20절]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지며 두루 살펴보고 . . . .
소발은,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할지며 두루 살펴보고 안전히 쉬리라”고 말한다. 성도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며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반석이시며 요새시며 방패시요 산성이시라고 고백하였다(시 18:2). 성도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 또 하나님을 소망하는 성도에게는 안전함과 편안히 쉼이 있다. 그러므로 시편 3:5-6은,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소발은 또,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고 말한다. ‘첨을 드린다’는 원어(킬라 피엘형)는 ‘호의를 구한다’는 뜻이다. 그 어떤 사람도, 원수 마귀까지도 성도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게 호의를 구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소발은 또,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고 말한다. 악한 자는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 회개치 않는 자를 가리킨다.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 재앙을 피하여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한다. 그는 재앙을 피할 수 없고 거기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잠언 10:25는,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24:16은,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말하였다.
소발은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고 말한다. ‘기운이 끊친다’는 말은 영혼의 호흡이 끊어진다는 뜻으로 죽는다는 말이다. 악인은 소망이 없다. 악인의 소망은 절망이다. 그의 소망은 죽음뿐이다.
하나님의 벌하심은 우리의 죄보다 가볍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나 자기 자신의 죄라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정확히 다 아신다. 또 그는 공의로 모든 일을 판단하시고 보응하신다. 자기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벌하심이 우리의 죄보다 가볍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달게 받아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악인은 환난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 것이다. 죄는 환난의 원인이며 악은 불행을 가져온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손을 깨끗이 하고 우리 집을 깨끗이 해야 한다. 우리는 허망한 사람이 되지 말고, 주권자 하나님과 그의 감찰하심을 아는 지혜를 구하며 얻고 특히 악을 버리고 힘써 선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손을 살펴보고 혹 죄가 있으면 즉시 그것을 회개하고 멀리 버려야 한다. 또 불의가 우리 집에, 우리 가정에 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담대함을 얻고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이다.
[고린도전서 강해 설교말씀] 순전함과 진실함의 빵(고전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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