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히브리서 5장 주일 설교말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히 5:1-14)

두란노 서원 2022. 3. 13. 12:52
반응형

히브리서 5장에서는 아론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히 5:1-14)

 

1-10,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1-3]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대제사장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되었다. 천사가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하나님께서 직접 그 역할을 하시는 것도 아니다. 대제사장을 사람들 중에서 택하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을 위해 속죄제물을 드릴 때 무식하고 미혹에 빠진 자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백성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였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는 사람이시다. 이미 서신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2:18; 4:15).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자격을 갖추셨다. 그는 과연 우리를 위해 가장 적절한 구주이시다.

[4-6]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대제사장은 스스로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아론처럼 불러 주셔야 될 수 있었다. 예수께서도 대제사장의 존귀와 영광을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를 높이셨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자신을 종으로 묘사하셨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 관해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들은 각각 시편 2:7110:4의 말씀들이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는 말에서 반차라는 원어(탁시스)반열혹은 특질이라는 뜻이며, 시편 본문에 나오는 원어(디브라)모습, 모양이라는 뜻이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는 말은 멜기세덱의 특질 혹은 모습을 좇는 제사장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본문은 예수님의 인성(人性)의 신비를 증거한다. ‘육체에 계실 때라는 말은 세상에 계실 때라는 뜻이다. 그는 부활, 승천하신 지금도 사람으로서 영화롭게 된 몸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세상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는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일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 일에 대하여 누가복음 22:41-44는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예수께서는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셨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그는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들으심을 얻었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과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셨다는 말씀이나,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는 말씀은 참으로 신비하다.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연합된 것은 신비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

[8-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께서는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난을 당하며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다(2:8). 그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은 특히 그의 인성(人性)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의 신성(神性)은 본래 완전하셨다. 그러나 그의 인성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완전함이 증거되셨다. 그의 순종과 의는 완전해졌고 그의 속죄사역은 십자가로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과 구주와 중보자가 되셨다.

이렇게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며 온전케 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다(6:17-18). 비록 믿는 이들의 순종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믿고 실제로 순종하고자 하는 자들은 구원받은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 곧 한번 받으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을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1절부터 10절까지의 내용은 몇 가지 진리를 증거한다. 첫째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인간으로서 인간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림과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도 드렸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동정하실 수 있는 사람이신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둘째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스스로 대제사장의 존귀를 취하신 것이 아니고,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모습을 좇는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우리를 위한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 그는 우리를 위한 복된 대제사장이시다.

셋째로, 인성을 가지신 예수께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해 들으심을 얻었으며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온전케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우리에게는 이런 놀라운 대제사장이신 구주가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자! 우리는 확실히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확신하자! 또한 우리는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세상에서 어떤 고난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믿고 순종하자.

11-14, 영적 미성숙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즉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렀다(110:4).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싸우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맞으며 축복했던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14:18-19).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14:20). 살렘 왕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이며 그의 이름에는 깊은 예표적인 뜻이 있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에 대해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7:1-3), 지금은 듣는 자들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신 수신자들이 듣는데 둔한 까닭은 그들의 영적인 미성숙 때문이었다. 성도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점점 더 경건해지고 의로운 인격이 되며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의 지식이 많아지고 그 뜻의 깨달음이 깊어진다. 그러나 서신의 수신자들은 아직 그렇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듣는 이들의 영적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데 설교나 성경강해의 어려움이 있다.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되었음이라].” 멜기세덱에 대해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영적 미성숙 때문이었다. 본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은 믿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영적으로 성장하여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선생들이 되어야 했었다. 신자는 믿은 지 여러 해가 되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말해, 성도는 복음 진리를 듣고 중생(重生)하여 믿고 회개함으로 새 생활이 시작되고, 성경말씀으로 양육되어 점점 성화(聖化)되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들을 성경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들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들은 우유나 마시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들이었다.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교인들이 있다. 하나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이다. 전자는 엄마의 젖이나 우유만 먹는 어린아이들과 같고, 후자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성장한 자들과 같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들 즉 성경의 기본적 진리들만 받을 수 있는 정도의 교인들이고, 후자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즉 성경의 모든 교리와 모든 생활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교인들이다. 세례 대상자들을 위한 학습반 공부의 내용들은 전자를 위한 것이지만, 신구약성경의 자세한 강해나 조직신학이나 현대교회문제의 강의 등은 후자를 위한 것이다.

[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계속 실천함으로 인해 지각이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서신의 수신자들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영적 어린아이와 같았다.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성경말씀의 내용과 목적은 의()이다. 그것은, 의가 없었던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은혜의 복음과 또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이 실제로 의롭게 살아야 할 교훈들이다. 의의 말씀을 경험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또 실제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수신자들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부족했다. 영적 성장은 단지 이론적 지식으로 되지 않고 계속적 실천을 통해 우리의 지각이 연단되어 선악을 분별하게 됨으로 이루어진다. 영적 성장은 성도가 실제로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또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자람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1절부터 14절까지의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교회에는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진리들만을 이해하고 어려운 말씀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밥을 먹지 못하고 우유나 젖만을 찾는 어린아이들과 같다. 그들에게는 아직 남을 가르치거나 돌볼 힘이 없고 진리를 위해 싸울 힘도 없다.

둘째로, 교회에는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을 감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믿음에 굳게 서서 의를 실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계속적 실천을 통해 지각이 연단되어 선악을 분별하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들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붙들어 줄 수 있다.

셋째로, 우리는 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진리들에 머물지 말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쉬운 말씀뿐 아니라 어려운 말씀도 읽고 연구하며 배워야 한다. 또 모든 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초신자들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붙들어주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워야 하며 또 의의 말씀을 계속 실천함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힘을 배양해야 한다.

[로마서 11장 주일 예배 설교문] 하나님의 구원 계획(롬 11:1-36)

 

[로마서 11장 주일 예배 설교문] 하나님의 구원 계획(롬 11:1-36)

로마서 1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롬 11:1-36) [1-6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