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롬 11:1-36)
[1-6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7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 증거는 그들 중에 남은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신자들이 유대인이었고 바울 자신도 그러하였다. 선지자 엘리야의 시대는 배교의 시대이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두셨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교회가 배교한 시대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종들과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7-12절]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 중 소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으나, 남은 대다수는 완악하여져서 그를 거절하고 이제껏 믿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에 예언된 바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방인들의 구원이 되었고 이스라엘이 시기나게 되었다.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들의 풍성한 구원이 되었다면, 장차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면 온 세상이 얼마나 더 충만한 구원의 복을 누리는 것이 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신다. 여기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의 회복을 암시한다.
[13-16절]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을 구원함으로 자기 골육 이스라엘 사람들로 시기케 하여 그들 중 얼마라도 구원하기를 소원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제사하는 곡식 가루의 처음 한 줌이 거룩하면 그 전체가 거룩하며, 나무의 뿌리가 거룩하면 그 가지들도 거룩하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 조상들과 후손들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고 구약교회와 신약교회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신약교회인 이방인 신자들은 구약교회인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에 참여하였다.
[17-18절]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참감람나무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 때문에 가지들 중 다수가 꺾이었고 그 대신 돌감람나무 같은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고 그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방인 신자들은 원나무 같은 유대인들을 향해 자랑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19-24절]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仁慈)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이방인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가지들인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끼지 않고 꺾어버리셨다면 접붙임 받은 가지들인 이방인 신자들도 꺾어버리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자 안에 거하지만, 불신앙과 죄 가운데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처분이 있을 것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불신앙 때문에 버림을 받았지만,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들도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거든 하물며 원가지들은 얼마나 더 잘 접붙임을 받겠는가?
[25-26a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지만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국가적 대회심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는 아닐지라도, 이스라엘의 선택된 충만한 수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예수 믿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 본다. 만일 그렇지 않고 그 말이 단순히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의 선택된 총수를 의미한다면 구태여 ‘비밀’이라고 표현할 것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이스라엘의 ‘더러’가 대조되고, 또 이스라엘의 ‘더러’와 ‘온’ 이스라엘이 대조되는 것을 생각할 때도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국가적 회개를 암시하는 것 같다.
[26b-29절]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은 본문에 인용된 이사야 59:20-21에 예언된 바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 복음을 거절함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이제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은 지금도 폐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날이 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이 있을 것이다.
[30-32절]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다. 이방인들은 전에는 불순종하였으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제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고, 이와 비슷하게 유대인들은 지금 불순종하고 있으나 훗날에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긍휼이 임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불순종 가운데 버려두심은 그들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시다. 32절의 ‘모든 사람’(2회)이라는 원어(투스 판타스)는 ‘그 모든 사람’이라는 말이며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통틀어 말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33-36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구원의 복음 진리를 다 해설한 후에 이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고 부요하심과 그의 판단과 행하심의 깊고 측량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피조물인 인생이 어찌 창조자를 다 이해하며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실상 억만 분지 일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만큼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일에 대하여 알며 이해하며 전하며 설명할 뿐이다. 하나님의 계시하신 그 내용은 오늘날 성경 신구약 66권에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본절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진리를 보인다. 이것은 웅대한 일원론적(一元論的) 우주 철학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며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일반적인 모든 일들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특히 사람들의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처리하시는 주권자이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남겨두셨다. 그것은 선지자 엘리야 시대에 잘 증거되었다. 사도 시대에도 그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의 역사도 결국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방인들의 구원이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할 것이다. 오늘날 이 배교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남겨두실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현실 속에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옛신앙을 소유하고 옛길을 붙든 자들이 온 세계 곳곳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기대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를 생각하고 항상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우리는 이방인들이었다. 이방인 신자들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와 같다. 참감람나무 가지인 유대인들이 범죄함으로 잘림을 당하고 돌감람나무 가지인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받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믿음과 순종으로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인자함을 보이시지만,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엄위함만 보이신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함으로 복음이 이방 세계로 전파되었고 이방인들이 구원의 복을 받게 되었다.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할 것이나,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 속에 펼쳐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구원 역사 속에 있다.
[역대상 25장 주일 성경말씀] 노래하는 성가대(대상 2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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