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약 히브리어 성경말씀 중에서 성경 숫자 666의 비밀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다 보면 666이라는 숫자를 읽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성경 숫자는 많은 사람이 베리칩과 연관 지어 생각합니다. 이것은 짐승의 표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신약 히브리어를 통해서 짐승의 표를 보려고 합니다. 베리칩과 666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짐승의 표는 구원받은 백성들은 절대 받지 않습니다. 창세전에 구원받은 백성은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구원받았기 때문에 베리칩이라는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짐승의 표가 베리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 숫자 666의 비밀(요한계시록 13:11-18)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계 13: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계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계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계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 13: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데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사람들에게 표를 새기고 있습니다. 짐승은 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복음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짐승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고 복음이 없는 백성은 땅을 바라보면서 살게 됩니다.
이 짐승은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합니다. 성경에서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히브리어로 어린양이라는 단어가 하세라고 해서 그 어린양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성도를 의미하는 양은 촌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주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어린양이라는 단어가 신약히브리어로 세라는 단어입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어린양이 아니라 어린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흉내만 낼 뿐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영혼을 죽이게 됩니다. 용처럼 말을 한다고 했는데 거짓 복음을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 13: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입니다. 먼저 나온 짐승은 종교적인 권세를 가진 짐승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성도들을 괴롭히던 자들입니다. 땅에서 나온 짐승도 이와 같이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을 죽이게 됩니다. 처음 나왔던 짐승의 권세가 꺾였던 때가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죽게 되었다가 상처가 낫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나았다고 했는데 니르페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라파라는 동사에 왔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죽었다가 상처가 나을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짐승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되어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게 됩니다.
계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큰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단의 교주들에게도 이런 기적과 이적이 나타나고 있음을 말합니다. 사탄의 권세를 받고 하늘에서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하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거짓 단체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기적 때문에 그렇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쫓아내는 기적도 일어나기 때문에 진짜인 줄 알고 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이런 기적과 이적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런 자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계 13: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합니다.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해야 함을 말합니다. 거짓 이단과 사이비들은 우상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때에 성도인 나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무장하여 그들과 싸워야 합니다. 구원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계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는 짐승에게 생기를 주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이게 만듭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성도는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우리는 고통스럽게 하고 가둔다 할지라도 주님은 선택받은 백성은 반드시 보호해 주십니다.
계 13: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이 세상의 모든 자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표라는 단어가 타브입니다. 이것은 표시라는 뜻인데 히브리어 알파벳 마지막 글자입니다. 십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른손은 성경에서 권능을 의미합니다. 이 표를 받으면 짐승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이마는 사상을 상징합니다. 거짓 사상을 받아들여 결국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됩니다. 이단의 교주를 섬기게 됩니다. 그럼 이 표를 받은 사람이 왜 이단의 교주인 인간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는 것일까요? 타브는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거짓 복음과 참 복음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 복음이 진짜인 줄 알고 빠지게 됩니다.
겔 9: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겔 9: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나님은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했습니다. 이 표가 타브입니다. 하나님은 이마에 표를 그린 사람은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회개하고 구원받은 자의 표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는 십자가 복음으로 이마에 표가 그려졌기 때문에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가 그려진 타브는 가짜 복음의 표를 그렸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의 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영적인 책이기 때문에 영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매라고 하니까 물건을 사고파는 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은 구원을 주는 책입니다. 영적으로도 매매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상이 맞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은 거짓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매매가 되지만 우리가 거짓 복음을 가진 자와 대화를 하면 사상이 맞지 않기 때문에 매매가 되지 않습니다.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구원받은 우리는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는데 그와 함께 144,000명이 서 있습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온전한 복음의 표를 이마에 새긴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과 매매하려고 해도 절대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짐승의 수인 666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1) 숫자풀이를 통한 해석입니다. 혹자는 '그 수를 세어 보라...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이것이 누구의 이름을 가리키는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Barclay, Abbott, Gunkel). 이러한 해석은 666이 수많은 사람들, 즉 로마 황제 칼리굴라, 트라얀, 배교자 유리안, 반달족, 교황 베네딕트 9세와 바오로 5세, 마호메트, 마틴 루터, 존 칼빈, 그리고 나폴레옹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 중에서도 숫자에 의한 해석법을 취하는 대다수의 학자들은 666이 '네로 황제'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네로 황제의 히브리음이 네론 가이살(NRON KSR)로서 각 철자 자체가 내포하는 숫자, 즉 50 + 200 + 6 + 50 + 100 + 60 + 200을 모두 합치면 666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이 666은 아라비아 숫자를 1에서 36까지 합한 수이기도 한데 본서에서 짐승의 활동이 36번 나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Abbott, Gunkel). (2)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해석입니다.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의 예로서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십사 장로, 십사만 사천 명의 인 맞은 자, 새 예루살렘 성곽의 144규빗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666은 어떤 사람 이름의 알파벳 숫자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완전수인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 6을 3번 포개 놓은 것으로 이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저주 등을 의미하며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666은 베리칩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종교적인 것으로서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의 거짓 사상을 받아들이면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출현할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짐승을 숭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표를 받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베리칩이라는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짐승의 표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주님만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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