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성경공부자료

결혼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준비와 기도에 관한 방법

두란노 서원 2021. 9. 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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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결혼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준비와 기도에 관한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생각 없이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결혼 상대자를 만나는 데 있어서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기도한 그대로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배우자 기도는 필수입니다. 평생 반려자를 만나는 일인데 소홀하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 멋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배우자 기도는 필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하셔서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혼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준비와 기도에 관한 방법

 

1. 기도의 필요성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해결해야 할 너무나 않은 숙제를 안고 있고 그러므로 그만큼 많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 다른 여러 문제들을 어느 정도 포괄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진학과 직장과 결혼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은 바로 좋은 직장을 보장하고 심지어 좋은 결혼을 가능케 하기도 하며 평생의 행복이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위해 사는 인생이 12, 중학교 때부터 계산하더라도 6년은 족히 된다. 그것도 잘하면 6년 후에는 안식년을 얻게 되지만 7, 8년 후에야 안식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고 3이 되면 거의 지옥을 경험하고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한다. 좋은 일이다. 주권자 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섭리를 인정하고 도움을 바라는 기도는 신자의 마땅한 도리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도 많이 노력하며 기도하고 여러 동역자들에게 기도 부탁도 한다. 그래서 기도와 노력의 결과로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결혼과 배우자 선택을 위해서는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중요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말할 뿐이다. 그 중요한 것을 위해서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너무나 믿음이 좋은 연고일까? 아니면 바울처럼 독신 사역을 지망해서일까?

앞서 말한 직장이나 진학은 참 중요한 것이고 제 때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기회는 또 있지 않은가? 진학은 재수도, 삼수도 있고 진학했다가 잘못되었다 싶으면 학교를 옮겨서 공부할 수도 있다. 직장도 선택했다가 옮길 수 있고 다른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은 도무지 제 2의 기회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세속적 결혼관에 물들어 이혼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그리스도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마 19:6)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명령에 불순종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진실로 결혼은 실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학과 직장을 위해서보다 결혼을 위해서 기도를 적게 하거나 전혀 기도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나는 결혼과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몇 가지 유형이 있음을 발견했다. 혹자는 이러한 내용을 기도하거나 언급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마 당신은 잘못된 결혼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부모들로부터, 친구에게서, 떠도는 말들에서 아무렇게나 수집한 자료들로 당신 나름대로의 결혼관을 가지고는 있지만 진정한 성경적 결혼관은 가지지 못한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참고할 만한 많은 서적들이 있고 도움받을 교사(목사)들이 있다. 올바른 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충고하고 싶다. 당신은 진학을 위해 6년간 준비하는 것보다 결혼은 덜 준비해도 좋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실제로는 자신의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또 혹자는 시간이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 살고 있다. 당신은 기도생활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제자훈련 초급반부터 다시 공부하고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런 것에 관심 없다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하나님은 남녀가 짝이 되어 살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나 주로 자매의 경우에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남자를 위해 여자를 만들었지 여자를 위해 남자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러나, 정작 여자가 필요성을 느낄 때가 되면 이미 적령기가 지나 있다는 사실은 슬픈 현실이다. 관심을 가지지 못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다시 말하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더욱 어떤 사람을 만나는 가에 따라 나머지 인생이 판이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는 6년간 배우자를 위해 기도한 후 7년째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한 자매를 만나고 안식년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사실 결혼은 그 정도로 기도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이 남은 생애가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 가장 적합한 배우자, 그를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도할 것인가? 그리고 적합한 배우자란 과연 누구인가?

 

2. 적합한 상대자

 

앞에서 나는 미혼자는 누구나 결혼할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첫 번째 제목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도대체 어떻게 기도 할 것인가 어느 만큼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합당한가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어느 만큼 기도할 것인가를 다루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어떤 사람을 달라고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상당한 대답이 되기도 한다.

창세기 2장을 영어판과 대조해 읽으면서 나는 무릎을 친 적이 있는데 바로 18절의 말씀 때문이다. 우리말에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가 영어에는 적합한 조력자(Fit Helper)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Helper 가 아니라 Fit Hilper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전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배우자는 바로 각자에게 적합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서 배우자를 선택할 기회를 주기로 하고 짐승들을 지나가게 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그들의 이름만 지었을 뿐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그 짐승들의 속성을 잘 파악했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서 자기에게 적합한 배우자를 찾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배필이 없으므로 하와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아담이 아름다움을 첫째로 꼽았다면 공작새도, 사슴도 있었겠고, 노래를 잘하는 것을 좋아했다면, 힘센 것을 원했다면, 재롱을 잘 부리는 것을 원했다면(애교를 원했다면), 귀여운 것을 원했다면, 거기에 적합한 동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그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적합한 상대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의 참된 친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참으로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있다. 왜 소위 인텔리들이 짝을 이루고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불화하고 이혼으로 끝맺는 경우가 생기는가?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어요.”

좋은 배우자를 달라고만 기도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나만 조건 좋은 배우자를 고르고 나면 나머지 사람은 찌꺼기만 차지하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각자는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상대가 있다. 자기의 부족을 상대가, 상대의 부족을 자기가 메꾸어 줄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3.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사람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는 형제들보다 자매들이 많은 경향이다. 이유야 무엇이든지 간에 이러한 사실은 적령기에 이른 자매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그 결과 불신앙적인 결론을 내리게 한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경험 중심이 아닌 성경구절 중심의 원리들을 나누고자 한다.

 

고린도후서 6:14의 의미

바울은 여기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구절의 원문의 의미는 잘못된 짝짓기를 (수동적으로) 당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다. 그 이유로 바울은 하나님과 사탄이 하나 될 수 없다는 것을 들고 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들도 사탄의 자식들과 하나 될 수 없는 것이다. 짝짓기에서의 하나 됨의 어떤 사업상의 하나 됨 즉 동업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4-6에서 창세기 2:24를 인용하여 해석하시면서 결혼의 하나 됨이 특이한 연합임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 6:2의 의미

노아 홍수가 전 인류를 멸망시킨 것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의 입장에서 사상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의 직접적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람의 자녀와 혼인한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분분한 주석적 논쟁이 있지만 대체로 셋계와 가인계의 어지러운 혼인 관계를 의미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혼인하게 될 때 세상은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없도록 타락하게 되고 심판은 앞당겨지게 된다.

신명기 7:3-4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속하는 계명을 주시는가? 그것은 명백히 우리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이교 숭배자와 결혼하면 필연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과 혼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강한 팔로 건짐 받은 것처럼 죄의 절망스러운 구렁텅이에서 건짐 받았기에 다시 혼합될 수도, 다시 세상에 빼앗길 수도 없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불신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사탄과 그 하수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은 내가 누구랑 결혼했네하고 뻐기기 위해서 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함께 생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다. “신앙과는 관계없이 인품이 훌륭해서.”라는 말은 얼마나 자기기만인지?

결혼의 하나 됨은 신비이다. 두 사람의 고상한 인품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연합을 시켜주기에는 부족하며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불신자는 항상 자신이 기준이며 사회의 도덕적 윤리가 그의 법이다. 우리의 객관적인 기준은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만 한다. 각자 자기의 습관보다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할 때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모든 율법은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성을 충분히 아시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하여 은혜의 길을 예비하신다. 여기서 문제를 잘 해결한 한 경우를 소개하여 비슷한 처지에 있을지도 모르는 형제, 자매들을 돕고자 한다.

어떤 직분자의 자녀가 불신자와 결혼하기를 원하였다. 목사님은 그에게 먼저 새 가족반을 이수할 것을 권하셨고 그 5주 동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녀)의 간증문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정말로 이 사람이 초신자인가 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만일 이러한 변화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교회에 따라 나와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당신은 상대의 연극에 속고 있는지도 모르며, 지나친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한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는 사탄의 프로그램에 따라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자매들이여, 교회 안에 형제들이 모자란다는 말은 속임수이다. 내가 선택하고 나면 다른 자매들은 어떻게 되나 하고 지나치게 경건한(?) 걱정 일랑 하지 말자. 당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것인가? 걱정된다면 전도하자.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급류에 쓸려가는 사람에게 뛰어들어 수영을 가르치겠다는 것처럼 무모하다.

그리스도인인 형제, 자매들이여! 나의 배우자는 다른 동물이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조건과 마찬가지의 입장으로 그(그녀)가 반드시 그리스도인이어야만 한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바로 그런 사람을 달라고 기도하자.

 

4. 진주보다 비싼 대가

 

형제들 가운데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 , 어떻게 하면 좋은 여자를 얻을 수 있습니까?” 과연 어떻게 해야 될까? 세속에는 용감한 자가 미인을 구한다는 말이 있다. 미인이 바로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문제가 되겠지만 어쨌든 이런 속담이 원리가 된다면 미인 즉 자기가 원하는 상대가 나타났을 경우 용기를 내어 끝까지 매어 달리기만 하면 될 것인가? 혹 상대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 해도 소위 용기를 내어 매달리고 그렇게 해서 소유하게 된 아내(남편)가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 줄까? 또 그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배우자일까? 과연 우리 젊은이와 미혼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막무가내이고 여성들이 매우 불쾌해할 가르침 밖에는 없단 말인가?

어떤 선배 목사님의 명언을 기억한다. “좋은 아내를 원하느냐? 그러면 좋은 남편이 돼라” 바로 이것이다. 짚신에는 다른 짚신이 제격이지 결코 번쩍이는 구두랑은 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좋은(?) 짝을 찾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데 웃기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배우자를 위해서는 진주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상 이 값을 매긴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좋은 배필의 정의를 현숙한 여인이라고 내려놓고 그 값을 진주보다 더하다고 말하고 있다. (31:10) 또한 성경의 다른 곳에는 현숙한 여인과 함께 살면서도 스스로 미련하여 자멸해버린 사람을 예로 들어주고 있다. 삼상 25장에 나오는 나발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미련 때문에 죽게 되고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자연스럽게 다윗 왕의 아내가 되었다.

진실로 좋은 아내를 선택하고 얻을 수 있는 자격과 방법은 스스로 좋은 남편 감이 되는 길 밖에 없다. 나는 어떤 형제가 내뱉은 또 다른 종류의 명언을 기억한다. “혼자 사는 것이 편하지 여자랑 함께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야.” 이 말은 사실이다. 일단 결혼하게 되면 돈은 두배로 들고 시간은 세배로 필요하며 온갖 귀찮은 일들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어떤 목사님이 주례사에서 했다는 한 구절로 이 말을 반박하려 한다. “결혼은 하면 수천 가지 괴로움이 따르지만 결혼을 하지 않으면 한 가지 행복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덧붙여 나는 혼자 사는 것이 편하고, 함께 사는 것이 귀찮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향해 혹시 독신 은사가 아닌지 신중히 고려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학자는 말했다. “ 한 여인을 통해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결혼하지 말라. 실망할 뿐이니까. 오히려 그 여인을 일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결혼할 자격이 있다.” 이 원리는 선택에서부터 적용된다. 아담은 아내를 얻기 위해 자신의 갈비뼈를 희생했고 그리스도는 그의 신부(교회)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왜 망각하는가? 나랑 비교해서 A, B, C, D, E, F가 모두 뒤떨어지는 상대라 할지라도 내가 만들기에 따라서 훨씬 적합한 상대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아마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우리네 사회에는 결혼 안 한 사람은 있어도 결혼 못한 사람은 없어지리라.

결론적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헐값에 비지떡을 사지 말고 비싼 값을 치르고 진주를 구하라는 것이다.

 

5. 결단을 위한 기도

 

어떤 자매들은 묻는다. “전도사님,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 사람이다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한 사람이 좋아지면 다른 사람은 눈에도 안 들어오나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자기 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나를 로봇처럼 만들어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계획된 대로만 살게 하셨다면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초신자뿐 아니라 오래된 신자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일생동안의 고민이다. 그래서 시중에는 하나님의 뜻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고민에 빠졌을 때는 세상에서 나만이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고 시중의 많은 책들이 도무지 뾰족한 답을 주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직 바라는 바는 선택할 필요 없는 길이 있거나 유일한 길만이 있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을 위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자매가 괜찮아 보이는데 저 자매가 더 예뻐 보이고 이 형제가 멋있어 보이는데 저 형제는 더 똑똑해 보이고 그래서 이 사람의 이런 면과 저 사람의 저런 면을 합쳐 놓은 사람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혹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잘 되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후회하고. 이것이 우리 젊은이, 미혼 남녀들의 세계다.

이제 앞에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해보자. 한 사람이 좋아지면 다른 사람은 아예 눈에도 들어오지도 않을까? 그렇다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람이다. , 더 예뻐 보이고 더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과 비교되기를 결혼하는 그날까지 계속한다. 또한 비교 대상자가 없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놓고도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회의하기를 역시 결혼하는 날까지 계속한다. 이런 때는 하나님이 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이 형제(혹은 자매)를 주셨다는 강한 확신으로 지켜 나가야 한다. 만일 이 확신이 없으면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충고하건대 기도는 길게 하고 약혼(약속) 기간은 가능한 짧게 잡도록 하라. 사정에 따라 순리적으로 할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약혼기간은 6개월이 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도를 길게 하건 짧게 하건 그 기도 응답을 받는 것과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오늘날은 구약시대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어떤 형제와의 대화 내용이다.

어쩌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도하고 있어요?”

물론 하고 있죠. 그렇지만 확신이 잘 안 서서...”

그렇다면 결단을 위한 기도를 해야겠네요.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을 수야 없으니까.”

결정해야 할 때가 되긴 했는데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둘이 의논해서 기간을 정하라. 기간은 충분하게 하되 정확하게 하라. 그리고 기도하기를 바로 이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감정은 끓어올라 하나가 되고 주위 환경은 자연스럽게 열리도록 해 주실 것을 기도하라. 또 만일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고 두 사람의 좋아하는 감정은 일시적 충동에 불과하다면 그 감정은 식어지고 환경은 닫히기를 기도하라. 아마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그 하나님이 아직 늙지 않으셨다면 그 기도는 명백히 응답될 것이다.

 

6. 비 온 뒤에 굳어진 땅

 

현대의 젊은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고생이나 어려움을 모르며 인스턴트를 좋아한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곧잘 듣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며 또한 이것이 이성교제와 결혼에도 적용되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으로 먼저 생각한다. 우리는 신문에서 이혼녀 20대가 45% 라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주님이 분명히 금하신 이혼에 관한 태도가 이렇다면 약혼(약속) 기간 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오죽하겠는가? 오랫동안 기도하며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상대를 평가했고 그래서 둘이 함께 기도응답이라고 결정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약혼기간, 이제 둘은 상대방이 드디어 자기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며 비로소 맹목(盲目)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사람이 될 것이기에 더 많은 욕심을 가지며 그래서 때로 그런 것으로 인한 불만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방의 자기에 대한 헌신도를 최대한 떠보기도 하는데 이것이 더욱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 그러다 봄은 서서히 지나고 여름이 되면 소나기가 오고 동시에 천둥 번개도 친다. 이제 이 소나기는 우리가 봄에 심은 사과나무를 뿌리째 뽑아갈 것인가? 달려있는 사과열매를 모두 떨어뜨려 버릴 것인가? 아니다. 아무리 태풍이 지나가도 가을에는 탐스럽고 빨간 사과는 맺힌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으리라.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버리고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으리라.

나는 두 명의 자매한테 속은 경험이 있다. 자기는 교제하는 사람이 정말 없다면서 사람을 소개해 달라기에 그대로 믿고 다리 역할을 했더니 한, 두 달 만에 이들은 전에 교제하던 사람과의 결혼을 발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밉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기까지 하면서 교제 중이던 형제에 대한 생각을 굳히고 싶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사인, 코사인 곡선이 그려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만약 약혼(약속) 기간 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결혼생활에서 또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혼 생활은 사랑과 의무 중 어느 것이 우선적 지배원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사랑이라고 대답하겠지만 그 반대이다. 의무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하고 싶은 의무, 즐거운 고생(Happy Burden)이다. 이것은 고통스럽지 않은 의무이다. 그러나 때로는 서로 간의 관계에 (인간의 죄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그럴 때면 이것이 하기 싫은 의무가 되어 버린다. 내가 이 일련의 글을 쓰는 것도 바로 이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아무쪼록 약혼(약속) 기간에 생기는 문제에 있어 싫은 의무를 즐거운 의무로 바꿔 성공하는 재미를 누리고 그 후에야 비 온 후에는 땅이 굳어진다고 후배들 앞에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시편 4편 주석 설교말씀]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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