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구약 성경 지명 강해 설교문 중에서 나욧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나욧 Naioth
1. 위치
1) 라마(Ramah)에 있는 지역으로 사무엘의 지도하에 선지자 무리가 거주했던 곳이다.
2) 라마는 현대의 에르-람(er-Ram)으로 알려져 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마일 떨어져 있다.
3) 나욧은 성경 밖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예루살렘 북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베냐민의 라마 근처 혹은 라마에 있는 지역이다.
2. 성경에서의 언급
사무엘이 선지자의 공동체를 지도했던 라마에 있는 지역으로 다윗은 사울에게서 달아날 때 그곳으로 피신했다(삼상19:18-24). 사울이 그곳으로 다윗을 찾으려고 사자들을 보냈을 때, 그들은 차례로 예언을 하였다. 후에, 사울 자신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도 예언을 하였다.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사울도 선지자 가운데 있는가?'라는 것이다.
3. 유래
1) 나욧이라는 히브리어는 '목초지'(pasture ground) 혹은 '거처'(abode)를 뜻하는 נוה(나웨)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거처'로 번역된다.
2) 나욧이라는 이름의 어원적인 배경은 대단히 모호하다. 나욧이라는 말이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것은 라마라는 말과 함께 연결되어 '라마에 있는'(in Ramah) 것으로 언급된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사무엘과 그의 선지자 생도들의 거주지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20절).
① '거주'(dwelling)를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가 유래하게 된 것은 근거가 없다. 그러나 본문에 나욧이 '라마에'(삼상19:19,22,23) 있었다는 것이 반복해서 언급되기 때문에, 격리된 장소로서의 이름으로는 분명히 의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② 다른 한편으로 나욧에 있는 거주지에 대한 언급(18), 선지자적 활동이 널리 행해지고 있는 것(20), 초자연적인 보호(20-24)는 적당한 수용시설이 있는 성소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높은 장소와 집회장이 딸려 있었을 것이고 거기서 사울은 과거에 사무엘의 손님이었을 것이다(삼상9:19-22-25). 이와 관련한 유사한 모습은, 선지자들의 거주의 가능성이 왕하 6:1-7에서 강력하게 암시된다. 그러한 가능성을 지지하여, 탈굼은 나욧을 '가르침의 집'(house of instruction)으로 해석하여 일종의 선지자 학교일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원어설교 : 나욧 Naioth
나욧 נוית : 나요트 Naioth
삼상19:23 사울이…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어떤 학자는 나욧을 특정한 지역이라기보다 선지자의 공동체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사무엘의 지도하에 있는 예언자 집단의 거주지임을 나타내줍니다. 나욧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잠시 머물렀고, 사울과 그 부하들이 다윗 체포를 위해 왔다가 감동을 받고 예언한 곳입니다(삼상19:18-24). 나욧은 '쉬다, 정착하다, 주거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을 때 시기와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계속되는 다윗의 승리는 이스라엘에서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자신보다 능력있는 다윗을 시기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시기와 두려움으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의 뒤쫓음으로 다윗은 사무엘의 고향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예언자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명령으로 다윗을 잡으러 왔던 군사들이 예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라마 나욧에서 사울도 자기의 시기와 두려움을 내려놓고 벌거벗은 채 예언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 한 예언자들과 만난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만날 때 시기와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지게 됩니다.
2.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거느린 예언자 무리와 함께 할 때 일시적이지만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남을 속이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했던 야곱도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았습니다(창32:28). 뽕나무 밭을 일구며 평범하게 살던 아모스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언자가 되었습니다(암7:15). 하나님을 만나는 자는 변화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결과는 쉼입니다. 나욧의 뜻이 쉬다는 의미가 있듯이, 다윗은 예언자의 무리와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이 참 거처이며 안식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어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심을 깨달은 것입니다(시23: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안식일을 통하여 안식을 주십니다. 인간뿐 아니라 육축에게도 기계에게도 주고 안식년을 통하여 땅과 자연 만물에도 쉼을 허락하십니다(출20:10레25:4).
3.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자기에게 와서 쉬도록 초청하십니다(마11:28). 참 쉼을 얻고자 하는 자는 예수께 가면 지친 육체와 영혼을 쉴 수 있습니다. 이 쉼은 세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역사가 끝났을 때에 예수께서 쉬게 하셨던 그 초청의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지치고 고통스러운 나날일지라도 참 안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에서 자라고, 어둠에서 죽으면서도 가장 큰 희망을 품었던 믿음의 선진들을 우리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도 역사의 밑바닥에 흐르는 하나님의 안식이 우리를 품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희망꾼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1 : 나욧 Naioth
라마 나욧의 성령 역사
삼상19:19-24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우리 주변에는 우연히 교회의 예배나 부흥회에 참여했다가 갑자기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체험으로 인해 신앙인으로 변화된 성도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불신앙의 길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예를 볼 때 우리는 의아하고 안타까워합니다. 본문은 라마 나욧 선지 학교에 숨은 다윗을 없애고자 왔던 사울 왕과 그 부하들이 성령께 감동되어 예언까지 한 사건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라마 나욧에서 무사히 도피할 수 있었습니다(20:1).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성령 은사에 대해 바른 이해를 얻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죄악을 막으시는 성령 사역을 보여줍니다
1) 선지 무리와 더불어 예언한 군대
라마 나욧은 사무엘 선지자의 고향이며 후에 장지가 된 곳입니다. 사무엘은 이곳에 선지 학교를 세우고 생도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나욧'은 별뜻없이 '주거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라마 나욧은 선지자들의 주거지요, 기숙사인 셈입니다. 이곳에 사울 왕의 살의를 피해 다윗이 숨어들었으며 사울은 그 사실을 알고 다윗을 살해할 무장 군대를 보냈습니다(18,19절). 그런데 라마 나욧에 도착한 군인들이 사무엘과 선지자들이 예배를 드리며 예언하는 것을 보던 중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함께 예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같은 일은 추가로 파견한 군대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났습니다(21절). 군인들의 살기 등등한 마음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꾸신 성령님의 감화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변화시키려고 종종 은사를 나타내 주십니다. 악에 물든 자, 무지한 자, 불의한 자들의 황폐한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려는 목적입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어…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32:1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웃을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성령께서 강력한 은사로 감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2) 나욧에 이르기까지 예언한 사울
파견한 군대가 오지 않자 사울 왕이 직접 라마로 찾아와서 선지 생도들의 거처를 탐문했습니다(22절). 그러나 그곳으로 오는 중에 성령께 감화받은 사울이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23절)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와 같은 강권적이며 압도적인 성령의 일시적인 은사는 악인들의 악한 의지를 억제시키는 예입니다. 전날 광야에서 백성들이 악하게 모세를 원망하며 대항했을 때 모세가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께 호소한 적이 있습니다(민11:10-15). 그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대표인 70명의 장로들을 모을 것을 명했고 그 모인 장로들에게 강권적으로 임하사 일시적으로 예언하게 하셨습니다(민11:24,25). 이처럼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악한 의지를 성령께서 억제하셨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이나 방언 은사를 체험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한다면 성급한 판단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불의하고 악한 자들의 악을 일시적으로 억제하시려고 역사하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2. 성령 은사를 주신 일차 목적을 교훈해 줍니다
1) 회개하는 사울 왕
나욧에 도착하기 전부터 예언했던 사울은 하루 낮과 밤에 걸쳐 사무엘 선지자 앞에서 예언했는데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24절)고 했습니다. 본문에 '누웠더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나팔'인데 이는 '무릎 꿇고, 고개숙이고, 엎어지고'라는 의미입니다. 철저하게 회개하고 자복하는 자세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불신자에게 강력한 은사를 나타내 주셨을 때, 그 일차 목적은 먼저 은사를 받은 당사자를 회개시키려는 것임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사울의 예언 내용도 분명히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방향이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예언뿐만 아니라, 방언도, 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를 체험하거나 받은 사람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선 자신부터 고치는 일에 그 은사를 적용시켜야 할 것입니다.
2) 새사람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
사울이 성령의 역사로 예언한 예는 처음이 아닙니다. 전날 왕이 되기 전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한 적이 있었는데(10:10)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10:6)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결국 악하고 불의한 죄를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교회에 봉사하라고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새사람 되려는 노력에는 관심 없고 은사 체험만 자랑하고 그 은사 체험을 큰 신앙의 증표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은사를 주신 목적과 의미를 더 세심하게 연구하여 올바른 인식을 지녀야 합니다.
3. 가장 귀중한 성령의 은사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가장 귀중한 은사인 사랑
그러면 사울은 라마 나욧의 체험 후에 새사람이 되었습니까? 안타깝게도 전혀 변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된 삶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오직 다윗 죽일 일에 골몰했고 다윗과 조금만 관계된 사람이라면 제사장들도 살육했으며(22:17-19), 끝내는 귀신을 섬기는 무당까지 찾아갔습니다(28:8). 예언 은사를 받고도 죄악의 길로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께 사모해야 할 은사는 '사랑'입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고 했듯 그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을 닮은 성도만이 진정 영에 속한 사람이요, 교회와 사회에 빛과 소금처럼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비난받는 사랑 없는 은사
그러므로 사울의 이율배반적인 삶의 행로는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24절)는 이스라엘의 속담 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말은 종교적으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생활에 거룩한 변화가 없이 외적인 은사만을 앞세우는 사람은 사회로부터는 위선자요, 교회에서는 거짓 선지자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와 사랑의 열매가 없는 은사 체험은 헛것입니다(고전13:1,2).
라마 나욧의 예언 사건은 불신자의 악한 의지를 억제시키고 회개시키려는 성령님의 일시적인 역사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역사는 다양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올바르고 합당한 평가를 내리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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