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느헤미야 2장 주일설교말씀] 주님의 교회를 사역하는 원리(느 2:11-18)

두란노 서원 2021. 7. 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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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느헤미야 2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주님의 교회를 사역하는 원리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불탔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파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고 노력합니다.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어떻게 성벽을 재건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몰래 탐사하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싫어하는 악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재건하려고 하면 싫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면 율법주의 신앙자들은 싫어합니다. 우리는 무너진 강단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제 목 : 주님의 교회를 사역하는 원리

본 문 : 느헤미야 2:11-18

느 2: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느 2: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느 2: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느 2:14 앞으로 나아가 샘 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느 2: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느 2: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느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느 2:18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히브리 노예의 후손입니다. 포로로 이방 땅에서 자랐지만 그가 가진 기지와 영특함으로 인해 출세를 했습니다.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곁에서 국사를 함께 논하는 `비서실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정치적 지위에서도 그는 조국 이스라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특별히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늘 염려하였습니다. 심지어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듣고 며칠 금식을 하며 마음이 아파서 울었다고 합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자기 생활에만 만족하고 고국의 현실이나 예루살렘 성전에는 외면할 수도 있었습니다. 800마일이나 떨어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이 무너졌거나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어도 모르는 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했고, 조국을 사랑했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마다 희생과 상처를 감수해야 합니다. 아픔 없는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할 때, 어떤 민족을 사랑한다고 할 때, 시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것은 곧 상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러면 이 교회를 위한 눈물이 있어야 하고 희생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역하는 원리는 첫째,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과 조국의 현실을 앞에 두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경신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능력과 기도의 비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계시지요? 그러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를 위해 기도하세요. 자녀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흔히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쉬운 말로 비난합니다. "기도만 하면 뭐해?" 여러분 중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기도해 보신 분은 기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우리가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건 내 생명을 자식에게 나눠주는 일입니다. 북극에 페리칸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새끼를 위해 먹이를 구하는데 전혀 구하지 못합니다. 지친 어미새는 할 수 없이 새끼들 앞에서, 예리한 부리로 자기 앞가슴의 살을 쪼아 먹입니다. 피가 나옵니다. 결국은 심장까지, 내장까지 먹이다가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희생입니다. 기도는 자기를 주는 일입니다. 느헤미야는 황폐한 성전을 바라보고 무릎 꿇어 기도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될 사람, 수산 궁에서 잘 살 수 있는데 아픈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으로 응답해 주십니.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인 줄 압니다. 밤 기도도 중요하지만 새벽에 드리는 기도는 더 중요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첫 시간은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이 먼저 있습니다. TV나 라디오 광고도 황금 시간대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 광고는 단 10초에도 몇 백만 원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우리의 마음이 가장 깨끗한 시간입니다. 머리도 정리되어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이 만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시간이 새벽시간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홍해가 갈라진 것이 새벽입니다. 신약에도 예수님 부활이 새벽에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사건이 출애굽 사건이고, 신약에서 가장 큰 사건이 부활 사건인데 모두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새벽에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드렸고, 주님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 잠들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새벽에 잠들고는 홍해가 갈라질 수도 없습니다. 무덤 문이 열릴 수도, 사망의 세력이 물러갈 수도 없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시간입니다. 모든 제직들은 한 주간 동안 나와 교회를 위해, 가정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왜 기도합니까? 기도하면 심령이 강건해집니다. 아름다워집니다. 심령이 맑아지고 깨끗해집니다. 재산 많고 건강한 사람은 다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도하냐고 합니다. 심령 때문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약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예방약, 치료약, 보약입니다. 기도는 예방약입니다. 내 사업과 가정의 어려움을 예방해 줍니다. 기도는 내 교회와 국가의 병든 부분을 고쳐주는 치료약입니다. 죄악으로 우리가 병들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깨끗하게 치료될 줄 믿습니다.

기도는 또한 보약과 같습니다. 우리르 강건하게 해서 병들지 않게 합니다. 기도는 귀합니다. 구하는 것은 다 주십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참모들을 모아놓고 계속 승리하니까 `당신들이 원하는 것 하나씩 말하시오." 집을 사 주시오, 휴가를 주시오, 여러 가지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신하는 "대왕이시여, 대왕이 정복한 나라 중 한 나라를 주시오" 아무도 그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들어주리라는 생각을 안 했습니다. 대왕은 "나라를 주마, 너는 내가 커다란 나라를 하나 줄 수 있는 커다란 사람으로 나를 믿었다. 내가 주겠다" 여러분 크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백성과 약속한 것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계획이 있습니까? 결혼입니까? 진급입니까? 건축입니까?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시고 응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협동의 원리로 하나님의 교회를 사역합니다.

느헤미야 3장에 보면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한 장에 75명이나 기록되었습니다. 또 이들의 직책이 15가지 이상입니다. 이걸 볼 때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이 한 두 사람에 의해 된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합심해서 했습니다. 지도자는 느헤미야입니다. 이 사람의 리더십과 비전 때문에 성전은 건축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건축을 마무리하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면서 고백하는 말이 "여러분,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한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각각 다른 배경과 다른 성품과 다른 모습으로 모였지만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물어볼 때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킬 줄 믿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도, 마음을 합치지 아니하면 큰 힘을 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더구나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관해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 중에 <하나의 교회> 임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단일성이요, 연합성입니다. 에베소서 2:13절 이하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모두가 하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강자와 약자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덜 배운자도 하나 되어야 합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늘에는 강철의 딱딱함이 있고, 실에는 섬유의 부드러움이 있다. 이 두 개를 함께 가졌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헤진 것을 깁고 조각난 것을 이을 수 있다. 옷을 찢긴 사람들이여! 두 토막이 난 우리의 땅이여, 그것을 이을 바늘과 실은 어디 있는가?" 바늘과 실은 강함과 연약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둘이 합해지고 융화할 때 구멍 난 천, 찢어지고 분열된 상처를 이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늘과 실이 각각 제 잘난 맛에 강함과 부드러움을 자랑하며 헤어진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서로 자신을 낮추고 하나 되고 연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세계를 벗어나야 합니다. 합력하고 하나 되려면, 자기를 객관화시키고, 드넓은 화합과 협력의 마당으로 나와서 손에 손을 잡아야 합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면 실수합니다.

거울이 없던 옛날에, 한 총각이 예쁜 색시를 얻어 장가를 갔습니다. 복하게 사는데, 하루는 색시에게 "여보 우리 한 잔 합시다. 부엌에 가서 포도주 좀 떠 오시오"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색시는 기분이 좋아 부엌에 가서 술 항아리를 열고 술을 뜨려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항아리 속에서 예쁜 미인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기겁을 하고 달려가서 남편에게 따집니다. 날 사랑한다더니 전부 거짓말이라고, 남편이 어이가 없고 기가 찼습니다. "아니, 내가 독 안에 여자를 감춰두다니 기막힌 노릇이다. 가보기나 하자." 술항아리를 들여다본 신랑이 다시 기겁을 했습니다. 항아리 속에 잘 생긴 사내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두 부부는 욕을 섞어가며 대판 싸움을 벌였습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놀라서 뛰어나와 말리고, 자초지종을 들은 시어머니가 "그럼, 내가 확인해 본다"라고 술 항아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뛰어나와서 시아버지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면서 "이놈의 영감이 나 말고 다른 여편네를 감춰뒀다"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기막힌 시아버지가 다시 부엌에 항아리를 보니, 이렇게 네 식구가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데, 길가던 지혜로운 사람이 그들을 말리며 "내가 술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을 나오게 할 테니 보라"라고 하며 큰 돌로 항아리를 냅다 치니까 항아리가 깨어지고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로 자신들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자기가 보이지 않는 자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시민들은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자기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했습니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열심히 조화롭게 그 일을 이루어 갔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로 협력하여 이 귀한 교회를 섬겨나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격려의 원리입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가 기록합니다. 느헤미야가 제일 수고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를 다른 사람의 공로로 돌립니다. "여러분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신 겁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격려입니까? 얼마나 겸손해요? 사실 열심히 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하나님 보고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좌절과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건 죽게 일하고 제일 욕 많이 먹는 게 교회입니다. 열심히 하는 성도들에게 박수갈채는 못 보내도 그들의 맘을 행여라도 섭섭하게 하는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서로서로 격려했습니다. 320절 삽배의 아들 바룩이 나옵니다.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다른 사람만 죽 소개하다가 특별히 바룩은 힘써서 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했지만 특별히 힘써서 한 이 한 사람을 느헤미야가 소개합니다. 잊지 않았어요. 이 격려가 얼마나 중요해요? 우리에게 이 격려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우리가 뭘 바라고 합니까? 모든 교우들이 주님을 위해서 아무런 보상과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눈물 어린 정성을 드립니다. 물론 사람이 안 알아줘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면서도 아무런 격려도 없는 이 쓸쓸함이 우리의 열심을 조금은 가로막습니다. 때때로 교회가 이런 분에게 좌절을 안겨줘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위해 말없이 배후에서 수고하는 어느 누구를 만나서 따듯하게 "집사님 참 수고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이런 격려의 말씀을 해봤어요? 가정에서도 "여보 정말 수고했소" 이런 말을 했습니까? 자녀들에게 "얘 너 참 착하다" 이런 격려를 해봤어요.

요즘 한 집사님이 매일 같이 교회 나오셔서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을 봤어. 일이 있을 때마다 앞치마를 두르고 식당에서 말없이 수고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일일이 감사의 말씀을 못 드리지만 마음으로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재미난 인물을 한 사람 발견합니다. 별로 관심을 끌진 않지만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누가 바울을 모르고 누가 베드로를 모릅니까? 이 사람들은 하도 유명해서 잘 알지만 `바나바'(격려의 아들)사람은 잘 모릅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이들을 죽이는 일을 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완전히 변해서 새사람 되고 어느 날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나는 이제 변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바울을 보겠어요? 어림없습니다. 아니 만일 여러분의 아들과 딸을, 혹은 사랑하는 친구를 죽인 사람이 나타나서 "여러분 나는 변했습니다" 그러면 환영하겠어요? 바울은 싸늘한 냉대를 받았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나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울은 정말 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었어요"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위로받지 못하던 이 바울에게 위로하고 격려하여 그의 가슴에 소망의 불을 붙였던 사람, 바나바. 우리에게 바울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격려와 위로를 했던 바나바가 더 그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먼 훗날 천당에서 바울을 만나고 싶지요? "바울 선생님. 어떻게 그 큰 일을, 세계선교사역을 하셨습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바울께서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아니에요. 바나바의 도움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의 위로와 격려가 아니었다면 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격려의 원리가 교회에 있어야 해요.

저는 축구경기를 보면서 늘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언제나 스타는 골을 넣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준 선수는 골 넣은 선수의 그늘 속에서 늘 쓸쓸히 사라집니다. 골인 못지않게 어시스트가 중요합니다. 서로 돕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제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사람을 통해 교회를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그다음 서로 협동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세워갑시다. 또 서로 격려하는 가운데 소망 중에 기쁨으로 이 사명 감당하십시다. 그래서 몸 된 교회가 잘되고 모든 면이 흥왕 해서 기쁨을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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