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느헤미야 5장 주석 성경말씀] 가난한 자들의 비탄에 대한 구제(느 5:6-13)

두란노 서원 2022. 12. 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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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5장에서는 느헤미야가 부자들을 책망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이 힘들어서 부르짖고 있다. 귀족들은 가난한 자들의 고역을 짜 먹고 있었다. 높은 이자를 취하여 자기들의 배를 채우고 있었다. 느헤미야가 부자들을 행하여 책망하자 그들은 느헤미야의 말에 순종했다. 

 

가난한 자들의 비탄에 대한 구제(느 5:6-13)

 

앞에서 느헤미야에게 고해진 호소는 성벽을 건축하는 공적인 일을 위해 머리와 손을 총동원하던 바로 그때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불평이 타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부당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거절하지 않았다. 일에 바쁜 사람은 흔히 사람들이 그를 귀찮게 군다고 해서 잘못을 범하게 되는데도, 느헤미야는 그들이 그가 할 일이 많은 것을 보고도 그를 교란시킨다고 하여 청원하는 자들을 꾸짖지도 않았으며, 또한 화를 내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가해질 때까지 그들의 호소를 듣는 것을 연기하거나 변론을 중지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신속한 해결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루살렘 성벽을 높게, 두껍게, 그리고 강하게 쌓더라도, 백성들이 이처럼 학대받고 있는 한 그 성읍이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이 문제에 대해 즉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처럼 대중들의 위협적인 원성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어떤 방법을 택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Ⅰ. 그는 “크게 노하였다”(6절). 그런 일은 매우 악한 일이므로 그는 거기에 대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지도자들이 죄에 대하여 분노를 표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한 분노 그 자체만으로도 자기들의 의무를 충실히 행할 마음을 먹게 되며, 그런 말로 다른 사람들의 악을 막을 수 있다.

Ⅱ. 그는 “중심에(속마음으로) 계획했다”(7절). 이것은 그가 자기의 분노가 지나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비록 매우 분노했을지라도, 그는 좋은 충고가 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귀족들을 꾸짖기 전에 그는 스스로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책망이 훌륭한 의도였을 지라도 처리 솜씨가 부족하면 그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는” 것은 “훈계의(교육적인) 책망”이다. 지혜로운 사람들까지도 스스로 자문해 보고 심사숙고해 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때로는 그 지혜의 유익함을 상실하게 된다.

 

Ⅲ. 그는 “귀인(귀족)과 민장(民長)을 꾸짖었다”(7절). 이들은 부유한 자들이요, 아마도 그들의 권력으로 백성들을 더 많이 압제했을 것이다. 귀족이나 민장들일지라도 자기들이 악을 행했을 때에는 적당한 사람으로부터 책망을 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책망을 피할만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생각지 말자.

 

Ⅳ. 그는 대회를 열어 저들을 쳤다. 그는 백성들을 불러모아, 그가 하는 말의 증인이 되게 하고(백성들은 대체로 나와서 그렇게 하기를 자진했을 것이다) 압제와 강요에 대한 증언자가 되어 민장들에게 죄책을 느끼게 해 주었다(12절).

 

1.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모두 매우 지혜롭고 선하며 쓸모 있는 자들이었지만, 비슷한 경우에 있어서도 처사는 매우 달랐다. 즉 에스라는 민장들이 이방 여자들과 결혼하여 죄를 범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기의 옷을 찢고 울면서 기도했으며, 그들을 다시 바로잡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집요하게 설득시키면서 개혁을 시도했다. 에스라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악한 소식을 들었을 때, 즉시 분노하여 그 비행을 책망하고 백성들도 그 일에 대해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강력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강압적으로 개혁시키기 전까지는 결코 안정하지를 못했다. 그는 뜨겁고 격렬한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들도 그 성품에서는 기질이 서로 많이 다르며, 따라서 그들이 하는 일의 결과도 다르다.

 

2. 하나님의 사업은 훌륭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행해질 것이나, 그 일을 하는 데 택해진 방법은 다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처사를 비난하거나 우리 자신의 방법을 표준으로 주장할 수 없는 좋은 이유다. 역사(役事)는 모두 다르지만 같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Ⅴ. 느헤미야는 그들과 함께 이 사건의 시비를 공명정대하게 따져, 그들이 행한 악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인간들의 삶을 개혁시키는 일반적인 방법은, 제일 먼저 그들의 양심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제안을 내어 그들로 하여금 신중히 생각하도록 했다. 이것은 매우 적절하고 당연한 처사로서, 그는 자기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그들 앞에 내놓았다.

 

1. 그들이 학대하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형제라는 점.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취리를 하는도다.” 이방인을 학대하는 것도 물론 매우 나쁜 일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형제를 학대하는 것은 더욱 나빴다. 하나님의 율법은 형제에게서 “이식을 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신 23:19, 20).

 

2. 그들이 “이방인의 손에서” 해방된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라는 점. 그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 해방되었다. 즉 일반 포로가 된 자들 이외에도, 어떤 사람들은 이방인의 주인에게 종살이를 하고 있었으나 느헤미야와 그리고 다른 경건하고 뜻있는 자들이 비용을 들여 그들의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켜 주었다. 그는 말했다. “이제 이방인의 손에서 벗어난 그들의 자유를 탈취하고, 그들의 민장이 그들을 종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이 모든 수고를 하였느냐?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우리가 바벨론에서 그들을 속량 하기 위해한 것처럼 똑같이 수고와 비용을 들여 그들을 너희로부터 속량 해야겠느냐?”(8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자유케 된 자들에게 다시 “종의 멍에”를 씌워서는 안 된다(갈 5:1; 7:23).

 

3. 이처럼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것은 큰 죄라는 점(9절).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 비록 너희가 그렇게 해서 돈을 얻었지만 그것은 죄와 결탁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에 행할 것이 아니냐? 너희가 신앙을 고백했고 그와 언약을 맺었으므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한다면, 너희는 세속적인 이익을 탐내거나 너희 형제들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행하는 자는 감히 사악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욥 31:13, 14, 23).

 

4. 이것은 그들이 고백한 그 신앙에 대한 큰 수치요, 모욕이라는 점. “우리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우리의 적이며 우리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적이다. 하나님께 깊이 헌신할 것을 고백한 유대 사람들이 얼마나 야비하게 서로를 대했는가 보라고 말하는도다.” 이것을 주목하자.

 

(1) 신앙을 고백한 자들은 누구나 불 신앙인들의 비방을 받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침해를 당하기 때문이다.

 

(2) 믿음을 고백한 자들이 세속적인 태도나 냉혹한 마음을 지니는 것은 믿음의 대적들에게 가장 큰 비방 거리가 된다.

 

5. 그는 자기 자신이 그들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제시했다는 점을 말했다(10절). 이것은 14절 이후에서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 자기들의 권리를 냉혹하게 주장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것을 반환하라는 가혹한 강요를 받을 것이다.

 

Ⅵ. 그는 가난한 이웃들이 더 이상 냉혹한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할 것은 물론이요, 귀족이나 민장들의 손에 들어간 재산을 되돌려 주라고 진심으로 간청했다(11절). 그가 그들에게 얼마나 다정하게 말하는가를 보라. “우리가 그 이식받기를 그치자”라고 했다. 비록 그 자신은 이 범죄에서 별 상관이 없었지만, 그는 그 자신도 책망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그들을 설득시키는가를 보라. “청컨대(한글 개역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이식을 취하지 말자. 청컨대 그것을 돌려주자”라고 했다. 그는 명령할 만한 권력도 지니고 있었지만, “사랑을 위하여 오히려 간청했다.” 그가 그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저당을 잡지 말고 그들의 재산을 다시 돌려주며 이식을 면제해 주고 원금을 갚을 수 있는 시일을 주라는 당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가 보라. 그는 그 귀인들이나 민장들이 손해를 보도록 타일렀고, 그들의 의무를 행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에 그들의 이익이 될 것이었다. 우리가 자비롭게 용서한 것은 자비롭게 구제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되며, 보상될 것이다.

 

Ⅶ.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의무를 다하라고 제의했다.

 

1. 그는 그들의 약속을 받았다(12절). “우리가 돌려보내리이다.”

 

2. 그는 제사장을 불러 그들이 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받도록 했다. 그들의 결심은 매우 대단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결심한 듯 보였을 때,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 결심을 지키라고 했다.

 

3. 그는 그들에게 엄숙한 경고의 말을 들려주어 그 말이 그들의 두려움을 일깨우기를 원했다.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떨치시리라”(13절). 이것은 그가 분명히 해야 할 경고였다. 백성들은 여기에 “아멘” 하고 답했다. 이것은, 맹세하고서도 약속을 이행치 않는 자들의 목은 그들의 혀와 함께 베여 버리겠다고 경고함으로써, 약속을 잘 지키게 하도록 한 에발산의 저주와도 같았다(신 27:11-26). “아멘”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여호와를 찬송했다. 그들은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를 나타내는 최선의 마음으로 약속했다. 다윗도 하나님께 맹세할 때 이처럼 “찬송했다”라고 했다(시 56:12).

이렇듯 약속을 기쁨으로 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다음에 한 일은 더욱 잘한 것이다. “그들은 그 말한 대로 행하였다.” 석방해 준 뒤 다시 노예로 만든 그들의 조상과는(렘 34:10, 11) 달리, 그것을 끝까지 지켰다. 선한 약속은 훌륭한 것이나 약속의 선한 이행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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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7장 성경강해] 속건제법과 번제 및 소제와 화목제(레 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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