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로마서 6장 강해 설교말씀] 성화(聖化)의 이유(롬 6:1-23)

두란노 서원 2022. 1. 25. 14:30
반응형

로마서 6장에서는 구원받은 백성이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은 거듭남으로 중생한 것입니다. 다시 태어났으니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성화는 태어난 사람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세상에서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성화(聖化)의 이유(롬 6:1-23)

 

1-11, 세례의 원리

[1-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에이스)[안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에이스)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지만(5:20)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없다는 말은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성도가 이미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해 죽은 자가 어떻게 계속 죄 가운데 살 수 있겠는가?

성도가 거룩해야 할 이유는 세례의 원리로 설명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한 것이다. 세례는 첫째로 죄씻음을 표시하고 확증하지만, 그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표시하고 확증한다. 죄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오고, 죄씻음은 하나님과의 영적 연합을 가져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그를 믿는 우리는 그와 연합하여 그의 죽음에 참여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그와 연합된 성도가 계속 죄 가운데 거하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구원의 이치에 반대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4-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장사된 것은,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려 함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또한 그와 함께 사는 것이며, 그의 부활의 생명이 그와 연합된 이들 속에 역사하여 새 생명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이치가 그러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가 죄 가운데, 즉 영적 죽음 가운데서 산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구원받은 자들은 새 생명을 받았고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구원받은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옛 사람’은 죄로 인해 죽었던 옛 자아, 곧 구원받기 전의 자신을 가리킨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새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 옛 사람이 죽은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죄의 몸은 ‘옛 사람’과 같은 뜻으로 죄성(罪性)의 주체를 가리킨다. 이제 죄의 몸인 옛 사람은 죽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새 사람이 살았다. 우리의 구원은 죄 안 짓게 하는 구원이다. 그것은 죄에 대해 죽는 구원이며 의를 향해 사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죄 가운데 산다면 그것은 구원의 목적과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다.

[8-11]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연합되어 그와 함께 죽은 자가 되었다면, 우리는 또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삶으로 나타난다. 비록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거룩함은 구원의 당연한 과정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영원히 사시고 다시 죽지 않으시듯이, 예수 믿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살고 범죄치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해 단번에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은 영원히 제거되었다. 죄와 사망은 설 곳이 없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사역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을 향해 사신 것이었다. 이제 죄와 사망은 끝났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만이 그에게 있다. 그의 부활의 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 성도의 거룩한 삶 곧 성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가 의미하는 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의 연합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사신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가 거룩해져야 할 이유, 곧 성도의 성화(聖化)의 당위성을 증거한다. 그것은 세례의 원리로 설명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그와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살았다. 그것은 죄의 몸인 옛 사람이 죽었고 새 사람이 새 생명 안에서 산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성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죄에 대해 죽었고 하나님을 향해 산 자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죄와 결별하고 산 자처럼 의와 거룩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12-23, 순종의 원리

[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몸의 욕심들로 말미암아 그것에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는 몸의 욕심들을 통해 활동한다(1:15). 몸은 의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성도는 죄에 대해 죽은 자이므로 죄가 몸을 주장치 못하도록 욕심들을 통제하고 절제해야 하고 죄에 복종치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몸을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지체는 몸의 부분들, 즉 눈과 귀와 입, 손과 발 등을 가리킨다. 성도는 이제 몸의 모든 부분을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며 더럽고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말하며 만지고 그런 곳으로 갔을지라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 몸을 거룩하게 드리고 의롭고 선한 것만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해야 한다.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성도가 자기 몸을 죄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이유는 죄가 그들을 주관치 못하기 때문이다. 또 죄가 그를 주관치 못하는 이유는 그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기 때문에 율법이 요구하는 법적 책임과 그 형벌이 제거되었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말한다. 의롭다 하심 곧 칭의(稱義)는 법적인 구원이다. 성도는 법적으로 완전한 의를 이미 얻었다.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럴 수 없다는 원어(메 게노이토)는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바울은 6:1-2에서도 성도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계속 머물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 후 그럴 수 없다고 분명하게 대답했었다. 그는 여기서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되는가 하고 질문한 후 그럴 수 없다고 다시 한번 분명하게 대답한다. 그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가 죄짓는 생활을 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성화는 성도의 당연한 길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죄 가운데 거해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계속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하나님께로서 나지] 아니하니라”고 말하였다(요일 3:9-10).

[16-17]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성도가 거룩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순종의 원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의 종이 된다. 죄에게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어 죄 안에 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고 의 안에 살다가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바울은 성도가 구원받았던 처음 순간을 언급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순간이다. 우리는 본래 죄에게 순종하고 죄만 짓고 살았던 죄의 종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이었고 그를 믿는 자에게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받았다. ‘마음으로라는 원어(에크 카르디아스)마음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라는 뜻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마음에서 우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순종한 결과 죄에게서 해방되고 의에게 종이 되었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에 근거하여 우리의 모든 죄는 씻음 받고 우리는 단번에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았다. 우리는 죄에게서 자유케 되고 의에게 종이 되었다.

[19-22]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육신이 연약하다는 것은 우리 속에 남은 죄성을 가리킨다.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에게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거룩함에 이르라는 권면이 필요한 것이다. 성도는 성화(聖化)가 당연한 목표라는 권면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다.

성도가 죄의 종이었을 때는 죄만 지었기 때문에 의에 대해 자유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에 맺은 열매라는 것은 더러운 죄들이었으므로 부끄러운 것들뿐이었고 그 결국은 사망이었다. 진실로, 모든 죄들은 비록 범죄할 당시에는 혹시 즐거워보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부끄러운 것들이다. 의는 칭찬받을 만하지만, 죄는 수치와 후회를 남길 뿐이다. 이제 성도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으로 인해 죄에게서 해방되었다. 죄의 종이 죄에게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하나님께 종이 되는 자유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종이 되는 것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다(11:30).

거룩함의 열매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당연한 열매이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는 반드시 성화(聖化)를 동반한다. 법적인 구원에 실제적 구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구원이 아닐 것이다. 출생한 아기가 성장하는 것은 정상적 일이듯이, 중생한 성도가 지식이 더하고 거룩하여지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정상적이고 당연한 성화는 성도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도는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의 열매를 맺다가 영생에 이른다. 하나님께 종이 되는 것과 거룩의 열매를 맺는 것은 영생과 한 줄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끊어질 수 없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이 정상적 과정이 없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일 것이다.

[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恩賜)[은혜의 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영생임이니라].

성도가 영생을 확실히 얻을 것이라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죄에 대한 대가(代價), 즉 보응과 형벌이 죽음이지만 택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말씀은 복음 진리의 요약과도 같다.

성도가 거룩해져야 할 이유는 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는 아직도 죄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성화는 성도의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위해 힘써야 한다. 거룩은 구원의 본질이요 목적이며 방향이다. 우리는 의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거룩함을 이루어야 한다.

[민수기 히브리어 원어 성경 강해] 레위 아들 게르손 고핫 므라리(민 3:14-26)

 

[민수기 히브리어 원어 성경 강해] 레위 아들 게르손 고핫 므라리(민 3:14-26)

민수기 3장에서는 레위 자손들이 아론의 대제사장 직분을 도와서 성막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입니다. 레위 아들 게르손 고핫 므라리(민 3:14-26) 15절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