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헌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골고다의 길(마 26:36-38, 27:33-36)
골고다라 하면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곳으로 압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곳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고다라는 이름을 주었는가 하는 문제가 학자들 간에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2세기 말에서 3세기 중엽에 걸쳐 산 오리겐의 문헌 중에서 발견되는 것으로서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골고다에는 아담의 해골이 묻혀 있는 곳이라는 유대인들 사이의 전설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4세기의 교부 제롬의 문헌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골고다는 유대인들의 사형집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고다의 길이라 하면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어려운 최고의 아픈 길이며, 골고다의 길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길이므로 골고다의 길에는 쓸개 탄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는 길입니다. 쓸개 탄 포도주는 로마 군인들이 사형 집행할 때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어버리게 하기 위하여 주던 마취제의 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각만 하여도 뼈저린 골고다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니 이는 과거에 골고다의 길을 걷는 다른 죄수들과는 달라 자기 자신이 이 길을 원하였니 이는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요, 만민의 죄를 지시고 골고다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원하시어 자발적으로 골고다의 길을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셨을까.
1. 십자가에서 당할 고통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을 나누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쉬시고 기도하기 위하여 가시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거진 감람나무숲 사이로 걸어 올라가시다가 가슴에서 숨 막히도록 복받쳐 올라오는 고민에 사로잡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을 데리고 조금 더 올라가서 답답함을 금할 길 없어 세 제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더 나가시다가 그대로 쓰러져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단 한마디 끝 말씀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시기를 "나의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시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라가시는 길은 골고다의 길의 시작이었습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감람나무들은 더욱 우거져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막는 듯싶었고 예수님 눈앞에 감람나무 가지가 눌어진 것이 나타날 때마다 로마병정들이 쥐고 있는 채찍, 즉 예수님 자신을 칠 채찍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여기에 있는 감람기름을 짜는 기름 틀을 예수님께서 지실 십자가의 형틀과 흡사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눈에 계속적으로 보일 때 예수님은 못 견딜 정도로 머리에 고민이 생기어 더 걸을 수가 없어 그대로 쓰러져 '나의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시는 기도가 저절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치는 로마병정들, 무 자비한 살, 기름틀 칼이 사람의 피와 기름을 짜내는 십자가의 형틀이 눈앞에 오고 갈 때 예수님의 심정이야 어떠하였으랴.
2.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참으시는 고통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신 것은 단지 앞으로 당할 육체적인 고난을 생각만 한 데서 이러한 기도를 올리신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 더욱 어려웠던 것은 얼마든지 이 십자가를 지지 않을 힘이 있었으나 더욱더 제사장의 종들과 로마병정들을 이제라도 피하여 달아날 수 있고, 또한 저들을 멸종시킬 능력이 있었으나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강자가 약자에게 잡히는 인내하게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 하사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하나님과 약속하시고 세상에 오셨으므로 예수님은 어떠한 고난을 무릅쓰고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만찬을 잡수실 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하시었습니다. 그때 모든 제자들은 "내니 잇가""내니 잇가"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하시는 말씀이 손을 같이 넣으시면서, "나와 함께 떡 그릇에 손을 넣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이때에 유다는 마음이 찔려하는 말이 "내니 잇가"하고 다른 제자들처럼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말하였도다"하시고 대답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어떻게 자기를 팔아줄 것을 미리 아시고 그 길을 피하려고 하신 주님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하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몇 걸음 나가실 때 유다는 제사장의 종들과 로마병정들과 군호를 짠 대로 예수님께 와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모여드니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목을 치는 것이 잘못 쳐서 귀를 쳤든지 한편 귀가 잘리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하시는 말씀이 "검을 가지는 사람은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하시고 도로 떨어진 귀를 주어다 붙여 낫게 하시었습니다.
3. 저주를 받으시는 고통
예수님께 닥친 골고다의 길은 지신 십자가와 또한 강자가 약자에게 복종하기 위하여 잡히신 고통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온 인류에게 내릴 저주를 한 번에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릴 때 그 무서운 저주를 처음으로 체험하는 예수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만찬을 잡수시고 겟세마네로 올라가시는 순간부터는 하나님의 은총은 떠나오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약속하시고 또한 세데 세대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자에게 내리시마 하신 그 저주만이 예수님에게 내리었습니다.
= 결론 =
골고다의 길을 걸으신 것은 인간을 구원하고자 자진하여 걸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쓰라린 골고다의 길을 걸으신 것은 예수께서 죄가 있어서 걸으신 것도 아니요 유대인들이 양을 잡아 제사하듯 무력하게 끌려 제사 장소에 올라가듯 제사당한 제물 양과 같이 돌아가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얼마든지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성경은 이루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복종하고 순종하신 것뿐입니다.
'나의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이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기도하시기를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신 것은 무조건 복종하시며 자기의 이견은 완전히 무시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 구령 사업을 위하여 모든 고난을 자진하여 받으셨습니다.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4월 둘째 고난주간 주일 낮 예배 대표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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