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재림 설교말씀 중에서 재림의 시기 그날과 그 때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예언인 재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재림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게 되면 시한부 종말론자가 되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90년 대에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날짜를 맞추어 놓고 믿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주님은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지만 시간과 때를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날짜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이 도둑같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재림의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고 영적이 게으름과 나태에 빠지면 안 됩니다. 주님이 재림은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영적으로 깨어 거룩한 신부의 삶을 살면서 신랑이신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재림의 시기 - 그날과 그때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이 구절은 예수 재림에 적용될 말씀이라고 믿는다. 예루살렘 멸망은 많은 징조가 있지만 예수 재림은 특별한 징조도 없고 날짜와 시간을 모른다는 것이다.
35절까지의 예루살렘 멸망에는 징조가 있고 그 징조에 대처하는 행동 방식도 있다.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산으로 도망하라',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라'
그러나 36절 이후의 에수 재림에는 구체적인 대처 방안이 없다. '깨어 있고' '예비하고 있는 것'은 영적인 각성을 말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다. 밭에서 일하고, 매를 갈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은 주님의 청지기로서 해야 할 평소의 의무를 말하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는 최후의 심판의 모형이고 방주는 성도들의 구원의 모형이다.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는데 인자의 임함은 갑자기 오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평상의 일 가운데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아들도 모른다'라고 하시는 그날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가 아니다.
암 3:7절을 근거로 '그날과 그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36절 말씀을 왜곡 해석한다. 그들은 36절 말씀을 바로 앞절 35절에 적용시킨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34절까지의 말씀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신 말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의 '천지가 없어지는 날'의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지만 예수 재림의 날짜는 참 '선지자'에게 알려 주심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천지가 없어지는 날은 천년왕국 후인데 마귀가 잠시 놓이는 그 기간을 예측하지 못하므로 천지가 없어지는 정확한 날과 시간을 알 수 없단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또 그날(day)과 그때(hour)는 모르지만 해(year)는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막 13:36에는 홀연히 온다고 했고 살전 5:2에는 도적같이 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인지?
"너희가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눅 12:40)이 말씀은 '지금은 주님이 오실 때가 아니라'라고 단정하고 있을 때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항상 깨어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깬다'라는 것은 재림하는 주를 대망하며 늘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살전 5:2, 벧후 3:10, 계 3:3, 16:5에는 도적같이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예비하고 있으라'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 때 오시든 당황함이 없이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말씀이다. 예비한 자에게는 도적 같이 오지 않는다.(살전 5:4) 예수께서 반복해서 그때를 알지 못함을 말씀하고 계시다."그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디모데 P. 웨버 목사는 신학교의 신학생들 중 몇 명이 잘못된 종말관으로 장래를 망친 경우를 보았다고 한다. 그들은 '곧 주님이 오신다'라고 믿고 헬라어와 히브리어, 조직신학, 구약학, 신약학, 그리고 교회사 같은 어려운 학문을 배우느라 3년 세월을 허송해야 하는가 하면서 몹시 괴로워했다.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학교를 그만두고 잃어버린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 학생들 중 얼마는 결국 장래의 선교보다 당장의 전도를 위해 학교를 떠났다.
세월은 흘렀고 학교에 남아 신학을 끝까지 공부한 학생들은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보다 더 많은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들은 나가서 더 많은 봉사와 선교를 하고 있다. 그중에 한 명이 웨버 목사 자신이다.
어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신의 생애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이 마음 놓고 살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고 하지만 경계하거나 준비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살 것처럼 재물을 모으고 세상일에 몰두한다.
주님의 재림을 확실히 믿는 우리는 세상 것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세상의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세상일을 너무 소홀히 해서도 안 되지만 세상일에 너무 매달려서도 안 된다. '이제 곧 임박했다'라고 강조하며 사는 것과 '아직은 그때가 아니라'라고 안심하며 사는 것, 이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살아야 한다.
지금 당장 오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는 모른다는 신앙이 매일매일의 삶을 충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지켜주기도 한다. 부끄러운 곳에 갔다가 예수님 재림한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어떤 목사님들은 예수를 믿는 성도라 하더라도 교회가 들림 받은 후에 남게 되어 대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이론으로 교인들을 억누르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차라리 육신의 죽음을 통해 영혼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더 원하게 되지 않을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7년 대환난이 있다고 주장하며 환난 후 휴거설을 주장하는 목사님들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예기치 않은 때" 주님 오신다고 했는데, 적그리스도가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는 것을 보고 난 후, 혹은 대환난 때 깨어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한국 교계는 1992년 시한부 종말론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는데, 사실 '7년 대환난'을 신봉하고 가르치는 모든 자들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다. 왜냐하면 7년 대환난 시작점부터 정확히 7년 만에 재림과 종말이 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실상 7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시점에 서 있든지 주님의 재림과 종말의 때를 알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홀. 린세이는 마태복음 24:8을 해석하면서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수님이 열거했던 징조들이 보다 잦아지고 심해질 때, 종말이 가까이 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지난 10년 사이의 이러한 징조들이 가속화되었다고 말하면서, 따라서 종말이 임박했다고 주장한다. '재난'으로 번역된 헬라어 '오딘(Odin)'은 '해산의 고통'을 뜻한다. 문제는 그가 '해산의 고통'이라는 1세기의 글을 가지고 20세기에 적용시키려는 데 있다. '해산의 고통(Odin '오딘')이 쓰인 데는 또 찾아보면 살전 5:3이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저희가)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여기서 빈도나 심도가 증거 한다는 개념은 없다. 우리는 이미 말세를 살고 있고 말세에 대한 징조는 없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주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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