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베드로전서 3장 설교말씀] 고난 앞에서의 선행(벧전 3:8-16)

두란노 서원 2021. 5. 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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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베드로전서 3장 설교말씀 중에서 고난 앞에서의 선행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 보면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 말씀을 붙잡고 가야 하겠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선행으로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고난 앞에서의 선행

성 경: 벧전 3:8-16

 

<서론>

본문에서 베드로는 고난에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원칙에 대하여 이야기합니. 고난 앞에서도 신자의 본문을 잃지 않고 선을 행하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쓰며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론>

 

I. 성도의 바른 삶(8-12)

벧전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 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 형제를 사랑하라(긍휼, 겸손)(8)

 

본문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 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여기서 중심 되는 단어는 `형제 사랑'입니다. `체휼'한다는 것은 남을 동정한다는

뜻으로서 다른 사람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런다음 `제를 사랑하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형제란? 물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적으로 거듭난 신앙의 한 형제를 의미합니다. 신앙의 한 형제 된 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겸손을 가지라고 또 권면하고 있습니다.

같은 지체끼리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에 나아가 사람들을 향해 사랑과 동정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같은 지체끼리 감싸주고 이해해 주지 못하면서 그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비방하거나 욕한다면 그건 분명히 위선적인 신앙이고 주님께 책망받을 일입니다. 성도는 먼저 형제 사랑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세상을 향해 주의 사랑을 외치는 것이 순서입니다.

 

2.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9,11).

 

본문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11절에서"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선을 실행해야 하는 이유는 화평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악한 자의 악행을 격한 말로 충고하게 되면 그 충고는 도리어 반발을 촉발하게 되어 결국 분란만 일어나게 됩니다. 선을 행하게 되는 것도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을 제시하는 것이 본문의 `복을 빌라!'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어떤 사람을 좋게 말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 악행을 행하는 자를 비난하여 또 다른 악행을 유발시킬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선한 말로 계도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렇게 될 때에 화평을 이루게 되고 그다음에 주의 진리가 전파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성도의 선한 의도는 단순한 선행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을 향한 중보기도까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이런 모습을 견지할 때에 주의 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3. 성도의 바른 삶에는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9)

 

본문 9절 하반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가 이 세상에서 바른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내세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성도가 아무런 일도 행함이 없다면 큰 축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화평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면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지만 내세에 소망과 상급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분열이 있는 가정,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직장, 다툼과 욕심만이 가득한 사회에서 먼저 자신을 희생하여 썩어지는 밀알로 결실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은 희생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교만이요, 신앙적 이기주의입니다. 낙심되거나 힘이 약해졌을 때도 주님께서 화평을 이루셨음을 기억하여 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II.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행(13-16).

벧전 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벧전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는 말세에 성도들이 받을 고난을 바라보면서 베드로 사도가 권면하고 있습니다. 악한 세상에 물들지 말고 슬기로운 생활을 하면서 선행을 열심히 하라는 권면입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행은 세상의 위협을 이깁니다(14)

 

본문 14절에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시 로마 황제들로부터 당하는 핍박과 고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교훈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에 죽어도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 얼굴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주님께서 행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데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선을 행함으로 이 세상의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을 행함으로써 이 세상 불의한 자들을 책망하고 그들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선행에 대한 의지가 꺽여서는 안됩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2. 성도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15).

 

보문 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고 즉, 푯대로 삼고 나아갈 때에 성도는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어 그분만 따라갈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면 우리도 세상의 모든 시험과 환란을 견디고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물 위를 걸었을 때에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었습니다. 그러나, 물결, 즉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에 그는 물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그리스도를 주로 삼지 않고 살면 세상 유혹에 빠져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세상만 바라보고 살면 우리 마음속에 늘 잠재되어 있는 악한 본성이 사탄을 불러 믿음을 타락시키고 우리로 세상의 환난과 고통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합니다. 그러나 승리하신 보좌의 주님을 바라볼 때에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선행을 포기하지 않는 힘과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선행을 욕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해야 합니다(16).

 

본문 16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기독교를 박해하는 자들이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불길을 더 맹렬히 타오르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을 부그럽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우리로 악한 자로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선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결론>

 

고난 중에도 주님의 인내와 승리를 본받아 거룩하고 선한 양심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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