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누가복음 5장 헬라어 강해]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 비유(눅 5:36-39)

두란노 서원 2021. 5. 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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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5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 비유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합니다. 만약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새 포도주는 복음을 상징하고 낡은 가죽 부대는 율법을 상징합니다. 율법주의 신앙을 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상도 복음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사상으로 바뀌지 않으면 결국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새 가죽 부대입니다. 이제는 새 포도주인 천국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 비유(눅 5:36-39)

 

36절 엘레겐 데 카이 파라볼렌 프로스 아우투스 호티 우데이스 에피블레마 히마티우 카이누 에피발레이 에피 히마티온 팔라이온 에이 데 메게 카이 토 카이논 스키제이 카이 토 팔라이오 우 쉼포네이 에피블레마 토 아포 투 카이누

눅 5: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5:36

비유(譬喩) - 이 단어는 '곁에', '옆에'를 나타내는 '파라'라는 단어와 '두다', '놓다'라는 뜻의 '발로'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옆에 두다', '도를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특히 수사학에서는 '유사', '비유'라는 뜻을 나타낸다. 비유는 친근하지 않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일상생활 중 많이 접하는 친근한 것들을 예로 들어 비교한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마솰'('비유')을 번역한 것인데 지혜문학에서 이 단어는 현명한 말을 나타내며, 생활로부터의 본보기, 신중함과 정중함의 원칙들, 직업적인 충고, 도덕적 훈계들, 종교적인 지도들을 포함한다.

또한 묵시문학에서 비유들은 종말론적 가르침을 주는 방법들이다. 지상의 사건들은 하늘의 사건들을 설명해 준다. 하늘과 미래의 신비들에 대한 환상(심판, 부활, 축복받은 자들의 거처)도 역시 비유들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는 물론 많은 비유를 베푸셨는데, 이 비유는 알려지지 않은 것(그 나라, 하나님의 본성과 행위) 안에 있는 새로운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알려진 세계의 분명한 진리를 사용하는 유비법(類比法)이다.

4:33, 34은 예수께서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더디기 때문에 비유들을 많이 사용한다고 언급한다.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본성과 일, 인간의 운명 등을 취급한. 랍비들의 비유나 율법을 상술하지만, 예수의 비유들은 대부분이 종말론적(묵시적은 아닐지라도)이다. 대부분의 예수의 비유들은 교훈적인 문맥으로 짜여져 있으나 어떤 것들은 베일 뒤에 있는 메시지를 찾아내도록 청중을 자극한다(12:1). 그의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빛이요 구원이지만, 응답하지 않는 대중들에게는 어두움이요 심판이. 그들은 동일한 말을 들으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 6:9, 10의 예언 아래 있게 된.

새 옷에서...합하지 아니하리라 - 여기서 또다시 새 옷과 낡은 옷이 대비를 이루어 나타나고 37, 38절에 가서는 낡은 가죽 부대와 새 부대가 대비되어 등장한다. 이는 누가의 독특한 기술 방식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의 의미의 선명성 부각에 적절한 효과를 나타낸다. 한편 '새 옷'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낡은 옷'은 유대주의를 가리키는 말로서 율법을 오해하여 가르친 유대주의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로 합쳐질 수 없음을 나타낸다. 특히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형식과 위선에 치우친 유대교의 폐단은 복음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시키기까지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내어 낡은 옷에 붙이면 새 옷 자체를 버리게 됨은 물론이고, 또한 빨면 새 옷 조각이 줄어들어 낡아빠진 헌 옷을 잡아당겨 뜯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훼손시키는 유대주의자들과는 반대로, 수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5:17).

37절 카이 우데이스 발레이 오이논 네온 에이스 아스쿠스 팔라이우스 에이 데 메게 렉세이 호 네오스 오이노스 투스 아스쿠스 카이 아우토스 에크퀴데세타이 카이 호이 아스코이 아폴룬타이

눅 5: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5:37

낡은 가죽 부대 - 고대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으로 부대를 만들어 그 속에 여러 가지 액체를 보관하였다. 이 가죽 부대는 동물을 잡은 후 머리 부분과 다리 부분을 잘라내고 그 가죽을 벗겨낸 다음 털이 나있는 쪽을 바깥쪽으로 하여 목 부분만을 제외하고 모든 구멍을 꿰맨 다음 가죽에서 기름기를 제거하고 일정 기간 손질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팔레스틴은 물론 유럽, 남미에서 최근까지도 사용되던 방법이다. 한편 이 가죽 부대는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면 주름이 잡히며 그 탄력성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발효력이 강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게 되면 새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발생하는 강하고 독한 가스가 가죽 부대를 부식시켜 그 부대를 이내 터뜨리고 만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항상 새 가죽 부대에 담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경우 그 부대가 이내 터져 포도주도 버리고 가죽부대도 못쓰게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서 '새 포도주'는 예수의 가르침을,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형식주의를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의 은혜로운 가르침이 형식 위주의 율법의 낡은 형태 속에 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와 같은 사실을 비유로 사용하신 직접적인 이유는 유대주의적이고 율법주의적이며 기쁨이 없는 금식은 그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38절 알라 오이논 네온 에이스 아스쿠스 카이누스 블레테온 카이 암포테로이 쉰테룬타이

눅 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원칙론적으로 유대교의 형식주의적 의식과 종교 체제로서는 생명력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을 담지 못함을 가르시기 위해서였다. 원어상 (1) 새 옷, 새 가죽부대에서의 ''(카이노스)'()과 그 신선함'을 강조하고 (2) 새 포도주에서의 ''(네오스)'시간'을 강조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비유한 본문의 '새 포도주'(2)의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우리는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넘어가는 시간적 추이를 보게 된다.

예수는 옛 언약을 온전히 성취시키는 완성자로 오셨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이제 예수에 의해 새롭게 제시된 정신과 생활 방식을 요한이나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따르는 낡고 형식적인 종교 형식으로는 보존될 수 없다. 발효력이 강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할 수 있는 것 같이 역동적 생명이신 예수와 그 복음의 수용을 위해선 이미 고착화된 낡은 형식주의적 신앙 형태가 아닌 신선한 새 부대 즉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 심령과 새로운 신앙 형태가 요구되는 것이.

39절 카이 우데이스 피온 팔라이온 유데오스 델레이 네온 레게이 가르 호 팔라이오스 크레스토테로스 에스틴

눅 5: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5:39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 여기서 예수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논지를 뒤집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그의 새로운 교훈이 옛 것만큼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 강조점은 옛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 옛 것을 원하고 새 것을 배척하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항상 묵은 포도주만 마시던 사람들은 새 포도주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묵은 포도주만을 고집하며 새 포도주를무시하며 거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낡은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진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통하여 전해지고 제시되는 새로운 영생의 진리를 느끼지를 못했다. 새로운 영생의 진리를 맛보며 새 복음에 참여하려면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옛 종교에 언제까지나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율법을 통해 형식주의에 빠진 유대인 특히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 대하여 율법이 계시한 그 메시아가 곧 당신 자신임을 드러내셨으며 자기를 통해 성취될 새 언약으로 돌아오길 촉구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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