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장로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은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젊은 성도들에게도 권면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장로들에게 주는 교훈(벧전 5:1-14)
1-6절, 장로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 . . .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장로들’은 일반 성도들 가운데서 감독자로 선택되어 세움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증거한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었다(요 21:15, 16, 17). 또 사도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이었고, 다 그의 부활의 증인이기도 하였고(행 1:21, 22; 2:32; 3:15; 5:30-32 등), 또 그의 재림 때에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자들이었다. 진실한 모든 성도들은 다 주의 재림 때에 그 영광에 참여할 자들이다.
[2-3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준비된 마음으로, 열심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본문의 장로는 목사와 장로를 다 포함한다. 신약성경에서 장로는, 장로교 헌법에 표현한 대로, 설교와 치리의 일을 맡은 목사와 치리의 일만을 맡은 장로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말했다(딤전 5:17). 그러므로 장로의 직무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성실하게 그 직무를 다해야 한다. 양무리를 치는 일 즉 목양(牧羊) 혹은 목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담임목사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고 장로들에게도 맡겨진 일이다. 그들은 다 목양의 직무를 맡았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칠 때 다음 세 가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첫째로, 그들은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 ‘부득이함으로’라는 원어(아낭카스토스)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선한 일이라도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한 일들 중에 가장 귀한 일인 이 목양의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장로들은 이 직무를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수행해야 한다.
둘째는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한다. 목사들과 장로들은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 봉사는 항상 순수하고 깨끗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들과 장로들은 가능하면 교회 재정에 직접 관계하지 말고 만일 재정에 관계할 때에는 돈 계산에 있어서 정확하고 깨끗해야 한다. ‘즐거운 뜻으로’라는 원어(프로뒤모스)는 ‘준비된 마음으로, 열심으로’라는 뜻이다. 장로의 직분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동기와 준비된 마음과 열심이 필요하다.
셋째는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교인들의 대표자가 되고 인도하는 위치에 있을 때 다른 이들에 대해 높은 마음을 가지고 권위 의식을 가지고 대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악덕이다. 주께서는 이런 점에 대해,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교훈하셨다(마 20:25-27). 장로들은 주장하는 자세를 갖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4절]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목자장은 예수님이시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그의 재림의 날에 그는 충성된 종들에게 영광의 상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 주시는 분이시다(히 11:6). 주께서 마지막 날 복음의 일꾼들과 교회 장로들에게 주실 영광은 시들지 않는 영광이다. 그러므로 현재 목사들과 장로들은 주께서 주신 직분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이 많을지라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바라고 또 우리는 부족투성이이지만 감히 그의 상 주심을 기대하며 충성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충성해야 할 것이다.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서로에게 순복하고](전통사본)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엥콤보사스데)[옷을 입으라](원문, KJV, NASB, NIV).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는 장로들에 대한 권면과 더불어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을 하였다.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은 일반 교인들에게도 적절한 교훈이다. 베드로는 젊은이들에게 세 가지의 권면을 하였다.
첫째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받아야 할 교훈이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특히 젊은이들은 대체로 아직 인생의 고난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만하기 쉬운 때에 있다. 고난의 환경은 대체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양약(良藥)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법을 배움으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둘째로,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순복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21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교훈하였다. 또 빌립보서 2:3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교회의 구성원이 된 우리 모두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며 그러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일치단합된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셋째로, 젊은이들은 겸손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잠언의 말씀대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다(잠 18:12). 겸손한 자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는 자이다.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장로들에게 순복할 수 있고 또 서로에게 순복할 수 있을 것이다.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다. 그가 세우면 세워질 것이고 그가 파하면 파해질 것이다. 그가 높이면 높아질 것이고 그가 낮추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무엘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우리를 높이 들어 쓰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들을 결코 쓰지 않으실 것이다.
1절부터 6절까지의 교훈은 목자와 양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첫째로, 목사와 장로는 좋은 목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과 열심으로 하고,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목사들과 장로들은 이 교훈을 명심하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 좋은 목사들과 장로들은 둔 교회들과 양들은 참으로 복되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교인들은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좋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잘 듣는 자이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러려면 양들은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본문은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또 서로에게도 순복하고 겸손으로 옷을 입으라고 교훈한다. 이것은 모든 교인들의 의무이다. 모든 교인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목사들과 장로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교만은 불순종과 거역을 만들고 멸망에 이르게 하지만, 온유와 겸손은 순종을 가져오고 영생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또 교회 전체를 위해서 필요하고 유익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일치단합된 모습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그러려면 양들은 목자들의 바른 교훈에 즐거이 순종하고 따르며 행해야 할 것이다.
7-14절, 하나님만 의지하라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돌보심]이니라.”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염려거리가 아주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성도들도 예외는 아니다. 인생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염려거리가 항상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시며 친히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며 날마다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염려를 다 그에게 맡겨버려야 한다.
[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본절은 마귀 혹은 사탄의 존재를 증거한다. 마귀는 실제로 존재하는 영이다. 마귀의 성격은 대적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대적한다. 그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대적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불신앙에 떨어지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서로 미워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마귀는 악하다. 그는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을 삼키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한다. 그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줌으로써 그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어떤 때는 질병으로, 또 어떤 때는 가난으로, 또 다른 때는 가정적, 사회적 환난으로 성도들을 시험한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던 시대이었다. 마귀는 매우 활동적이다. 그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공격할 대상을 찾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은, 예를 들면, 우리가 게으르거나 욕심을 품거나 세상이나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서 믿음을 굳게 하고 도리어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야고보서 4:7-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려면,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물리치는 검이다. 주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기록된 성경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물리치셨다(마 4:4, 7, 10).
[10-11절]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권세와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도들은 세상에서 마귀의 시험과 고난을 당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은혜가 풍성하시고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부르셨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그것이 바로 영광스런 천국이며 거기에서의 영생 복락이다. 로마서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원한 천국에 비교해 볼 때, 성도들이 현실에서 당하는 고난은 ‘잠깐 고난’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무리 길어도 100년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실상 100년 중 고난의 기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천국과 영생은 영원하고 영광스럽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후서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다(고후 4:16-18).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를 남김 없이, 실패 없이 다 이루신다.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는 우리의 구원이 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성령을 보내셔서 활동하게 하셨다. 이렇게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케 하실 것이 분명하다. 과연 그러하다.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고 든든한 보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성실하자.
[12절]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이것이 너희가 그 안에 굳게 선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라].”
실루아노는 바울의 협력전도자이었던 실라를 가리키는 것 같다(행 15:22; 고후 1:19; 살전 1:1; 살후 1:1). 원문에는 ‘신실한’이라는 말이 ‘너희에게’에 걸려 있다. 실루아노는 베드로전서가 보내졌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등의 성도들에게(벧전 1:1) 신실한 형제로 인정받고 있었고 베드로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지금 베드로를 위해 이 서신을 대필(代筆)하고 있다. 실루아노가 실라라면, 그는 바울의 협력자인 동시에 또한 베드로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는 바울이 전한 복음과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동일한 복음이라는 것을 잘 증거하는 인물이 된 셈이다.
베드로는 또 자신이 증거하고 권면한 내용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였다. 또 전통사본에는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는 구절이 ‘너희에 그 안에 굳게 선’이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수식하고 있다. 즉 베드로는 자신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성도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확신 가운데서도 그는 또 그 은혜의 말씀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격려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아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또 듣고 또 음미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13-14절]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문자 그대로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 같다. 복음이 널리 바벨론에까지 퍼져 교회가 세워졌던 것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또 마가에 대한 언급도 앞절에서 실로아노에 대한 언급과 같이 초대교회의 같은 신앙과 사랑의 교제를 나타내는 것 같다. 마가는 바울에게도 협력자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베드로에게도 그러하였고 본절에서 ‘나의 아들’이라고 불리었다. 진정한 기독교는 일치된 진리와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진리와 이 신앙을 확인하고 확신하고 이 진리와 이 신앙 안에서 일치된 기독교를 확증하고 혹은 회복시키고 그것을 널리 전파하고 후대에 전수시키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7절부터 14절까지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과 진리를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다. 그는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우리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짐을 그에게, 오직 그에게만 맡겨야 하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염려 대신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마귀는 온 세상의, 특히 온 교회의 대적자이며 우는 사자같이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해야 한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마귀를 대적하자.
셋째로, 우리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작정하셨다. 그 계획은 실패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터를 견고케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여건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직 그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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