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원어 설교말씀 중에 감람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감람산은 주님이 기도하셨던 장소입니다. 감람산 지명을 통해서 설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명연구 : 감람산 Mount of Olive
1. 명칭
1) 성경에서는 '예루살렘 앞 산'(왕상11:7), '성읍 동편 산'(겔11;23), '멸망산'(왕하23:13) '감람원이라는 산'(눅19:29) 등으로 불린다.
2) 영어로는 'Mount of Olives', 히브리어로 הר הזתים(하르 하제팀), 헬라어로는 Το όρος των ελαιων(토 호로스 톤 엘라이온), 즉 '올리브의 산'이다.
3) 현대의 아랍인들도 이산을 '예벨 자이툰'(Jebel Zaitun), 즉 감람산이라고 부른다. 명칭은 바로 이 감람 나무 숲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2. 위치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약 3.2 Km 지점에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다.
3. 지리
1) 감람산 봉우리들 중 가장 북쪽의 봉우리를 (이사야)사10:32의 놉이나 요세푸스가 기록한 스코푸스산(Mt. Scopus)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가장 북쪽의 봉우리가 북쪽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보통 사용되는 길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오늘날에는 이 봉우리를 라스엘-메샤리프(Ras el-Mesharif)라고 부른다. 이 봉우리 남쪽 부분에 하닷사 병원(Hadassah Hospital)과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독일 루터 병원(Augusta Victoria German Lutheran Hospital)이 현재 서 있다.
3) '갈리리봉'은 예루살렘 구성읍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똑바로 가서 다시 산으로 오르면 우묵하게 들어간 곳이다.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간 곳에 마을이 있는데 '엣- 투르'(et-tur), 즉 '산' 혹은 '망대'란 뜻이다. 제일 남쪽에 있는 봉우리는 '멸망의 산'이다. 성경에서는 '멸망의 산'으로 불리는 이 산이 '범죄의 산'으로 불린 이유는 솔로몬이 이곳에서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왕상11:7).
4) 감람산의 중앙 지역은 예루살렘보다 약 30m 정도 높으며 해발 높이는 약 822m이다. 이 감람산 동쪽에는 요단 계곡과 사해의 웅장한 경치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요단 계곡과 사해 너머로는 모압의 산들이 있다. 또한 감람산의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광대한 유다 광야를 볼 수 있다.
5) 감람산 제일 남쪽의 봉우리는 아라비아 사람들이 예벨 바튼 엘 하와(Jebel Batn el-Hawa)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중부에 있는 봉우리와의 사이에 있는 계곡을 통하여 바람이 몹시 강하게 불기 때문이다.
6) 감람산은 성전산(약740m)보다 760m 높으며, 또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예부터 예루살렘 성을 전망하던 장소이다.
4. 지질
감람산은 백악질(白惡質)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올리브 나무는 가장 튼튼한 나무 가운데 하나로서 이 산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소나무들도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5. 성경적 배경
구약에서는 예상외로 감람산에 관한 언급이 적으며 그 언급은 주로 다윗과 연관된다.
1) 첫번째 언급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감람산 길로 피신한 것으로 나타난다(삼하15:30). 감람산에 있는 성소와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과 제사장인 아히멜렉을 연관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삼상21:1;삼상22:9,11,19). 제사장들이 살던 성읍인 아나롯과 감람산 바로 북쪽에 있는 지금의 아나타(Anata)가 동일한 곳이라는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렘1:1).
2) 두번째 성서 인물은 솔로몬이다. 그는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렉을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다. 그것은 모두 이방에서 얻은 후비들을 위한 것이었다.
3) 구약 성서에서 감람산에 대한 언급은 스가랴서에서 나타나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강림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슥14:4).
4)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연관된다. 우선 예수께서는 스가랴의 예언대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로부터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막11:1;눅19:28,29). 베다니는 여리고로 가는 길의 중턱에 있으며 감람산의 남동쪽에 있는 오늘날 아랍 마을인 엘-아자리에(el-Azariyeh)인 것 같다. 벳바게는 베다니와 인접하여 있어 베다니보다 감람산 정상에 가깝다. 현대의 아부-디스(Abu-Dis)가 벳바게이다.
5) 예수께서는 감람산을 평소에도 즐겨 찾으셨으며(요8:1) 감람산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 성을 내려보며 울기도 하셨다(눅19:41).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쉬셨으며(눅21:37) 마지막으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도 감람산 안에 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곳에서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셨고(마26:30,36), 제자들이 보는 자리에서 승천하신 곳도 감람산이다(행1:12눅24:50)
6. 현재의 감람산
1) 현재의 감람산은 예루살렘 다음으로 성소가 많은 곳이다. 확실한 것은 감람산의 위치와 이 산의 남동쪽에 있는 베다니의 위치뿐인데도 종려주일 길이 세 개, 겟세마네 동산이 세 개, 승천한 장소가 두세 개, 여리고로 가는 길이 두 개나 된다.
2) 예루살렘을 향해 우신 자리에는 피가 있고, 예수께서 종려주일에 나귀를 탔다는 자리에는 같은 지점에 예수께서 타고 나귀에 오르셨을 것 같은 돌을 놓았다.
3) 감람산 허리 중앙에는 비잔틴 양식의 막달라 마리아의 교회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각기 다른 교파가 세웠으며 각기 주장하는 내용도 크게 다르다.
원어설교 : 감람산 Mount of Olive
감람산 מעלה הזתים : 마알레 핫제팀 Mount of Olives
삼하15:30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편 해발 814m의 산으로,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나아갔던 곳이요(삼하15:30), 예루살렘 멸망의 산 증인입니다(슥14:4). 이곳은 특별히 예수께서 즐겨 찾으신 곳으로, 예수님은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이곳에 물러나 쉬시며, 영육 간에 기력을 회복하셨습니다(요7:53). 이런 감람산의 구약 명칭인 מעלה הזתים(마알레 핫제팀)은 '올리브 산의 언덕길'이란 뜻이며, 신약 명칭인 Το όρος των ελαιων(토 호로스 톤 엘라이온)은 '올리브 산의 비탈'이란 뜻입니다.
1. 성부 하나님을 만나던 처소입니다
מעלה הזתים(마알레 핫제팀)에서 מעלה(마알레)는 가파른 비탈 바위를 깎아 만든 넓은 계단을 암시합니다(삼하15:30). 이 넓은 계단은 산 정상의 예배 처소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건한 영혼의 열심을 반영해 줍니다(삼하15:32). 또 성경 문학적으로, 산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거룩한 처소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감람산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이요, 참된 예배가 있는 거룩한 처소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곳, 참된 예배와 교제가 있는 곳은 그 어디나 거룩한 처소입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심령처럼 거룩하고 복된 영혼은 없습니다.
2. 성자께서 기도하신 처소입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1Km 내에 위치해 있고(행1:12), 예부터 감람나무(Olive Tree)가 숲을 이룬 조용한 곳입니다. 따라서 묵상하며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그중에서도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순간에 이곳을 자주 찾으셨습니다. 낮 동안 피곤해진 육신을 쉬시며, 성부와의 신령한 교제를 통해 영적 기력을 회복하려고 밤 시간에 이곳을 찾으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감람산은 경건한 교제의 동산이요, 소생의 동산이라 할만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자는 누구나 그분으로부터 신령한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정해 놓은 기도 처소를 가져야 하고 세상에서 낙심될 때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3. 성령의 강림을 경험하게 하는 처소입니다
감람산은 올리브 나무가 울창하여 예부터 올리브기름을 채취하던 곳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상징적으로 번영(신8:8), 융성(신33:24), 즐거움(시45:7)을 의미합니다. 또한 영적으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마25:3). 성도는 감람산과 같은 한적한 처소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강림과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성도는 매일 감람산을 오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은총을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이 내주 하는 심령은 결코 빈핍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순간마다 도우시고 후원하시기에 그 인생은 항상 즐겁고 풍성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감람산과 같은 한적한 기도의 처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새 힘을 얻고, 성령의 충만함을 누렸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는 바로 이 감람산의 은혜, 즉 기도하는 생활을 꾸준히 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1 : 감람산 Mount of Olive
하나님의 신이 머문 산
겔11: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중에서부터 올라가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고
눈 덮인 히말라야 산을 등산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텐트는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매우 중요한 장비입니다. 그런데 이 텐트가 바람에 날려 갔다고 가정해 본다면 아마 그 사람은 눈보라와 추위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고 말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또한 눈보라 속에서 바람과 추위를 피하게 하는 텐트와 같이 절대 필요한 존재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신이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 산에 머문 환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 동편 감람 산에 오르셔서 예루살렘 멸망을 예견하시며 우셨음을 기억한다면, 감람 산은 예루살렘 멸망을 증언하는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신이 감람 산에 머문 것은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좌정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1. 하나님의 신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1)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임
여호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보호 아래 있던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자 금세 위기를 맞았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대(주전 597-586년)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구속 경륜을 예루살렘에서 옮기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떠난 예루살렘은 짙은 전운에 휩싸이고, 마침내 침략자 바벨론의 말발굽 아래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당시 유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던 예루살렘 성만큼은 결코 이방 군대가 쳐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성읍이라면 이방 군대가 감히 훼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뒤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호할 만한 것이라곤 '하나님의 성읍'이라는 그릇된 자존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선민에 대한 보호 은혜를 거두신 것임
바벨론의 침략을 받은 예루살렘 거민들은 침략자의 맹렬한 약탈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예루살렘 거민들을 괴롭게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떠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바벨론의 압제가 심해도 벗어날 희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시면 그 순간 그 백성들은 모든 희망을 잃고 맙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 산에 머문 그 순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 떠나신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1) 바벨론이 곧 침범했음
예루살렘 거민들은 선민의식에 젖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루살렘 거민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하나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약한 이웃을 수탈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왕으로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범죄 한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벨론의 침입이 그것이었습니다.
2) 멸망의 심판만이 있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곳에는 선민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나 인도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죄에 대한 영원한 죽음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며 결코 멸망치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면 그곳에는 오직 심판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전에 자랑하던 것도, 굳게 믿고 의지했던 어떤 전통이나 역사도 헛된 것이 될 뿐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 산에 머문 순간 예루살렘의 운명은 정해진 것입니다.
3. 감람 산으로 옮기신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영원한 예루살렘의 모형임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 감람 산에 머문 것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높은 산 위에서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겔 40:1-2). 그것은 바벨론을 통하여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후 장차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범죄한 이스라엘을 떠나시고 바벨론을 들어 심판하셨으나 새 예루살렘에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곧 여호와의 영광이 새 예루살렘에 임하심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결코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되,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연단의 의미였으며 영원한 구속 섭리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표 해 줌
감람 산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입니다(행1:11-12). 그리고 다시 오실 곳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여 택한 백성들을 회복시킬 새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는 더 이상 심판도 침략자의 약탈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는 곳이요, 온전케 된 주님의 백성만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장차 이루어질 천국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바로 새 예루살렘의 평안과 복락을 선포하시고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곳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인생들을 위해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복락은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감람 산은 범죄 한 이스라엘로 인하여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신 곳이자, 장차 완전한 모습으로 이루실 새 예루살렘을 기대하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구약의 예루살렘 백성처럼 하나님께 큰 징계받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영원한 통치가 완전하게 이루어질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자료
◈ 시드기야 왕
유다 최후의 왕이다. 바벨론의 두 차례에 걸친 침공으로 유다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왕위에 등극하여 우유부단하고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정책으로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잃고 자신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눈이 뽑히는 등 비참한 여생을 마친 비극의 왕이다.
◈ 예루살렘 멸망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었다. 이후 예루살렘 성은 포로 귀환 시대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할 때까지 약 70년 간(주전 586 -516년) 버려진 성읍으로 황폐하게 되었다(렘25:11).
◈ 하나님이 떠난 삶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의 삶, 소망없는 삶의 모형이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범죄한 자(애2:7)
② 여호와를 버리는 자(대상28:9)
③ 우상 숭배자(사2:6)
④ 교만한 자(삼상16:1)
⑤ 말씀을 청종치 않는 자(호9:17)
◈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
바벨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심판받아 마땅한 이방 제국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바벨론을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방 제국이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었지만 택한 백성의 죄악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바벨론을 사용하신 것이다. 결국 바벨론은 그들의 임무, 곧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도구 역할을 마친 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다.
◈ 예루살렘 멸망 당시 사회상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예루살렘 성읍 가운데서 활기를 찾는 무리는 압제자요, 불의한 자들 뿐이었다. 예루살렘 멸망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은 법과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을 죽이고, 착취하고, 불의를 자행했다. 또 불안에 싸인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 우상 앞에 엎드려 구원을 청했다.
◈ 새 예루살렘
구약 시대 예루살렘이 선민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성으로 여겨졌듯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살게 될 천국을 상징한다. 때문에 새 예루살렘은 이 땅에서 모든 불신 세력의 총집결한 바벨론과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는 것.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해 고난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크신 영광과 권위를 받으시게 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에언한다.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림과 달리 영광 중에 임하시며, 하늘로부터 오셔서 최종 심판의 보좌에 앉으실 것을 예언한다.
◈ 그리스도의 재림 목적
①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시기 위함이다.
②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함이다.
③ 죽은 자를 부활시키시기 위함이다.
④ 천년 왕국을 시작하시기 위함이다.
설교2 : 감람산 Mount of Olive
주께서 강림하실 산
슥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주와 함께 하리라
이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때는 언제인가 하는 문제는 수많은 철학자와 성인들의 머리를 혼란하게 하는 주제였습니다. 시대가 악하고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이 질문에 대한 고민도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석가(釋迦)는 해탈을 생각하였고, 공자(孔子)는 도덕을 주창하였습니다. 모두 한 시대를 고민한 사람들의 각고(刻苦)의 결론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들은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었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곳입니다
1) 심판이 이루어질 처소임
스가랴 선지자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역사의 마지막 시점에서 이루어질 일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슥14:1-21).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모든 고난의 역사가 마침내 메시아 왕국의 도래로 완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심으로써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백성들의 왕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구약 시대 감람산은 주의 왕국이 이루어질 때 주께서 강림하실 산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감람산이 문자적인 의미에서 예루살렘 동편의 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람산은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주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상징적인 처소라 하겠습니다.
2) 죄와 불신에 대한 심판임
선지자 스가랴는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실 때, 감람산의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큰 골짜기를 이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슥 14:4). 이 큰 골짜기는 '여호사밧 골짜기'와 같은 판결 골짜기일 것입니다(욜3:2). 주님이 감람산에 강림하시는 것은 곧 심판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시는 날은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죄와 불신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악인들에게 이 날은 그분의 준엄한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실 그 날을 대비하여 항상 깨어 경성하고, 대적자의 핍박과 유혹이 있을지라도 신앙의 정절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곳입니다
1) 심판 가운데서의 구원이 있음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시는 것은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메시아 왕국은 성도가 고대하던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원받은 성도의 본향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시는 날 이 날이 바로 성도가 고대하던 메시아 왕국이 완성되는 그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강림하시는 처소가 바로 감람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판결 골짜기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곧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악인에게 멸절의 날이요, 의인에게는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감람산에 임하시는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험한 세상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성도의 완전한 회복이 있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이라고 해서, 메시아가 오시는 날 다윗의 왕권과 영광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실 때 메시아 왕국에 대한 백성들의 염원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모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열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연단을 거친 정결한 자들이 회복된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에 모여들어 그의 나라와 영광을 찬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시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 즉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성도들 모두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의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성도는 오늘날 처한 험한 세상에서 고난 받을지라도 신앙의 정절을 지켜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이 넘치는 곳입니다
1) 성도의 승리가 있음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시는 사건은 두 가지 양면성을 띠고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악인에게는 심판이, 그분을 사모하고 의지하는 성도에게는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심판과 구원은 악인에게 핍박받고, 고난 받은 성도들에게는 승리를 의미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성도는 악인에게 고난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인하여 핍박받았습니다. 반면에 악인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적으로 번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성도는 주께서 오시는 날에 의의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계19:17-21).
2) 온 천하에 거룩함이 넘침
스가랴 선지자는 악이 진멸된 후에 말에 다는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겨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슥14:20).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쓰는 관에 부착된 글귀였습니다(출28:36-37). 이는 여호와 앞에 서는 제사장이 항상 거룩함과 성결함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말의 방울에까지 이 문구가 쓰였다는 사실은 주께서 강림하실 때에 하찮은 말의 방울까지 거룩하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곧 성도의 일상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와 악이 완전히 사라지고, 거룩함과 성결함과 사랑이 넘치는 때는 바로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시는 때입니다. 곧 주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그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영적 감람산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렵고 괴로울 때, 핍박을 당하고 좌절할 때, 영광과 승리의 감람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어 주께서 감람산에 강림하실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예비해야 하겠습니다.
설교자료
◈ 감람산의 종말적 의미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지역적인 개념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감람산 역시 지리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성도가 공중에서 주를 맞이할 것이라고 한 것이나, 예루살렘이 성도와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종말적 의미에서 감람산은 성도에게는 구원을, 불신자에게 심판을 가져다주는 심판의 상징적 처소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곧 그리스도는 성도를 구원하고, 불신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감람산에 서실 것이다.
◈ 판결 골짜기
여호사밧 골짜기라고도 하는데,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심판의 처소이다. 장차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을 이곳 판결 골짜기에서 진멸하고 택한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 메시아 왕국의 이중성격
메시아 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구원하시고, 불신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 왕국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성도가 험한 세상 가운데서도 신앙의 정절을 잃지 않고 메시아 왕국을 소망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불신자에 대한 심판과 주를 영접한 자에 대한 구원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 메시아 대망 사상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큰 소망으로 그들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사상이다. 하지만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정치적 메시아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단순한 세상의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완성하실 영원한 왕으로 오신 것이다.
◈ 악인의 번영
인생의 부조리에 대해서 사람들은 번민한다. 왜 악인은 "하나님이 어찌 알랴"(시73:11)하고 교만하게 굴어도 번영하는 것일까? 성경은 악인의 번영이 일시적이며(욥5:3-5), 경각간에 끝날 것(욥21:17-18)이라고 한다. 악인은 비록 번영할지라도 헛 것이요, 현세로 제한되어 있다(눅16:25).
◈ 여호와께 성결
제사장의 관에 부착될 정금 성패(聖牌)에 쓰여진 글귀이다.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성패를 제사장의 관에 부착한 이유는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제사장은 아담의 죄로 인해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다. 때문에 제사장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진 성패로 성결하다 인정을 받아야만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성패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을 예 표한다고 할 수 있다.
설교3 : 감람산 Mount of Olive
고난의 산을 넘을 때
삼하15:30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1807∼1882, 미국의 시인)는 "저는 무엇이든지 요구가 있을 때에 주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저를 무안하게 아니하시고 필요한 것을 주셨나이다. 제가 당신의 풍성하시고 부드러우신 사랑을 느낄 때에 저의 모든 어려움은 다 풀어져 버립니다. 당신을 사모하는 마음은 죄와 고통과 슬픔보다 더욱 강하오니, 당신은 저의 생명이요, 기쁨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문의 다윗도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치는 가운데 감람 산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고난의 산을 넘을 때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다윗의 고난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압살롬의 반란 때문임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어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2대 왕에 즉위한 왕입니다. 사사 사무엘과 함께 과도기적인 왕국 체제를 유지했던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왕정 국가로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으로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다윗 시대 이스라엘은 전국이 한 나라로 통일되었으며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통치 말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지만 아들 압살롬으로 인해 큰 난관에 부딪힌 것입니다.
2) 자신의 죄 때문임
다윗에게 반기를 든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습니다.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자 일생을 바친 다윗 왕에게 아들 압살롬의 반란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물론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피하는 다윗을 돕는 잇대 같은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삼하15:18). 하지만 잇대의 도움을 사양하고 도피의 길에 올랐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자신의 죄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삼하11:1-5삼하14-21). 그러므로 성도들도 고난이 닥치거나 시험이 올 때 그것들의 근본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2.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1) 죄에 대한 회개임
사람은 편안할 때 범죄 하기 쉽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때, 대부분 안일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신앙의 긴장을 푸는 순간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을 이루는 동안에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체험하였습니다. 하지만 통일 왕국의 왕으로 권좌에 올랐을 그때에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통일왕국을 이루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안정된 왕국을 통치할 동안에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의 반란은 단순한 반란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다윗도 사건의 진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압살롬과 대적하여 싸우지 않고 도피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다윗의 기도는 지난 세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저버리고 자기 정욕대로 행하며 범죄 한 것에 대한 회개였습니다.
2) 사죄의 간구임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도피하는 중에 감람 산에 올랐습니다. 다윗은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행하였습니다(삼하 15:30). 다윗은 극한 슬픔과 수치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 나아갈 때 범죄 한 자로서 다윗은 왕으로서 위엄과 체통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고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과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벌하시면 달게 받을 것이라고 결심하였습니다. 다만 다윗은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비를 구한 것입니다. 자신의 죄과로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그저 감사함으로 받겠다는 갈급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다윗처럼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간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다윗은 하나님께 응답받았습니다
1) 조력자를 얻음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치는 가운데 감람 산에서 드린 다윗의 회개와 간구는 즉각 응답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란을 피해 도망치는 다윗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조력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조력자란 다윗의 친구요, 지략가인 후새였습니다(대상27:33). 후일 후새는 다윗을 도와서 압살롬의 모사 아히도벨의 음모를 분쇄하고 반란을 진압하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삼하17:14). 이처럼 다윗은 과거의 안일과 범죄로 압살롬의 반란이라는 큰 징계를 받았지만 회개하고 자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겸손히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구원받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인함
다윗은 자신이 권좌에 있을 때보다도 더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에 감격하였습니다.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오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범죄 한 후 하나님의 긍휼로 위기에서 구원받았을 때 그분의 도우심을 더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죄를 깨닫고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써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은총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공로에 의지하여 어려울 때, 고난 중에, 일상에서, 감람 산에 오르는 다윗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설교자료
◈ 압살롬의 반란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다윗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복 형인 암논이 누이동생 다말을 욕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암논을 벌하지 않자 기회를 엿보다가 암논을 살해하였다. 이를 계기로 다윗과 사이가 멀어진 압살롬은 민심을 다윗에게서 떠나게 하고, 자신은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위에 등극함으로써 반란을 일으켰다.(삼하15:7-12) 하지만 압살롬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노새를 타고 달아나다가 요압과 그 부하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 압살롬의 비석
압살롬은 생전에 한 비석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삼하 18:18), 그 비석이 오늘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약 250m 남쪽 기드론 골짜기에 남아 있다. 압살롬은 이 비석을 세움으로 자신의 반란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치적을 과대 포장하려고 하였다.
◈ 다윗의 죄
사울의 뒤를 이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위대한 통치자였지만 인간적인 약점도 지닌 사람이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함으로 범죄 하였고,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그 남편 우리아를 사지에 몰아 죽게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금하신 인구 조사를 강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온역을 치렀다. 다윗의 죄는 인간적인 정욕에 이끌린 것과 인간적인 교만이었다.
◈ 다윗의 회개
다윗은 범죄 하였지만 또 즉각 회개하였다. 다윗의 시에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회한의 시가 많이 나타난다. 다윗은 회개할 때 눈물로 자기 침상을 적셨으며(시6:6), 근심함으로 눈이 어두워졌다고 하였다.(시6:7) 다윗은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 즉각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죄가 도말되기를 기도했다. 범죄 한 자가 죄악에 빠져 더욱더 타락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 회개하는 자의 태도
다윗의 회개는 회개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를 보여준다. 회개하는 자는 범죄함을 지적하는 충고를 귀담아듣고, 즉각 죄를 자복하여야 한다. 그리고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요한 사도는 회개할 때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권면하고 있다(계3:19).
◈ 다윗의 모사 후새
모사는 책략가라고 할 수 있는데, 왕의 측근에서 온갖 꾀를 내어 왕을 돕는 자를 가리킨다. 다윗의 본래 모사는 아히도벨이었는데,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한 후 후새가 다윗의 모사가 되었다. 후새는 다윗의 친구이기도 했는데, 압살롬의 반란 때에 다윗의 모사가 되어 아히도벨의 계략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설교4 : 감람산 Mount of Olive
멸망의 산이 거룩한 산으로
왕하23:13-14 또 예루살렘 앞 멸망 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오늘날 기독교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과거를 살펴보면 어떻게 그가 성인으로서 기독교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 향락과 이교인 마니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감람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산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의 뜻도 '향유의 산'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감람산은 멸망 산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멸망 산이 기도의 산으로 바뀌게 된 사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랍고 기이한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의 산이었습니다
1) 솔로몬은 향락의 대가였음
솔로몬의 영광은 인간이 누린 최고의 부귀영화를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영화로웠습니다. 그는 많은 치적을 남겼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두었는데, 이는 모세의 율법에서도 경계하는 바입니다(신17:17). 더욱이 솔로몬은 아내들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우상이 만연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수많은 아내들은 대부분 이방 여인들이었는데, 이들이 가져온 이방 신상을 위해 수많은 산당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라다 보이는 감람산에도 수많은 이방 산당이 널려 있었습니다. 실로 향락을 위해 치른 대가 치고는 너무도 엄청난 결과였습니다.
2) 그 우상숭배는 민족의 위기를 초래했음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이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왕국이 분열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이 나타나서 백성들을 그릇 인도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이 있기 전 두 왕, 아하스와 므낫세 또한 남왕국 유다에서 우상숭배자로 악명 높았던 왕들입니다(왕하16:10왕하21:11).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분을 떠난 이스라엘은 신앙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그분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우상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멸망 산이라 불리웠습니다
1) 산당이 있었음
우상을 모신 산당은 솔로몬 이후 300여 년 동안 유다 전역에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감람산에도 각종 산당이 널려 있었습니다. 때문에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시대에 감람산은 멸망 산으로 불렸고, 요시야 왕은 이 산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일로부터 종교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솔로몬 이후 300여 년 동안 유다 전역에 뿌리내리고 있던 우상들을 치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신앙을 위협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일 수 없게 만든 우상을 제거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섰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요시야 당시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2) 해골로 채워졌음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 일환으로 산당이 제거된 감람산에는 죽은 자들의 뼈로 채워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체를 버리는 일은 극한 저주나 화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해골이 버려진 감람산 기슭은 저주받은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우상숭배로 인하여 멸망의 산으로 불렸던 감람산은 시체를 버리는 죽음의 산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이렇게 함으로써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었던 감람산을 버려진 산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었던 산을 저주받은 산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우상숭배의 결과가 곧 죽음과 저주라는 사실을 경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죽은 것이요, 그 결과는 영원한 심판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거룩한 산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 기도의 산으로 기억됨
산당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멸시를 받았던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감람산에서 구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생명(生命)을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22:44).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나(엡2:1)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2) 거룩한 산으로 기억됨
이처럼 저주받은 산, 멸망의 산이 기도의 산 감람산으로 바뀌게 된 것은 예수님의 기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우리의 의와 거룩함 또한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기도와 사역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곧 변화의 원인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입니다. 주께서 기도하실 때 멸망의 산이 기도의 산이 되었고, 죄인 되었던 우리는 주님의 피 공로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명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죽은 생명입니다. 주님은 죽음의 멸망 산을 기도의 감람 산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는 세대에 감람산은 기도의 산으로 기억되고 칭송될 것입니다. 그러나 감람산을 기도의 산으로 바꾸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심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삶을 변화시켜주시고 새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엡4:22-24).
설교자료
◈ 향유의 산 감람산
감람산이라는 이름은 산 전체에 널리 퍼져있는 감람나무 숲에서 유래되었다. 그만큼 감람산은 감람나무가 무성하고, 또 산에 들어가면 감람나무 향기가 넘쳐났다.
◈ 솔로몬의 결혼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불린다. 하지만 솔로몬은 노년에 이르러 무리한 결혼 정책으로 온갖 이방 우상이 범람하게 했다. 솔로몬의 결혼은 정략 상의 결혼으로 이방 왕실과 인연을 맺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 같은 정략결혼으로 이스라엘 내에는 이들 이방 여인들이 가져온 우상으로 들끓게 되었다.
◈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은 솔로몬 시대에 이미 배태되었다. 말년에 정략결혼으로 우상의 혼란을 가져왔던 솔로몬은 백성들에게는 압제와 학정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솔로몬 왕에 대해 등을 돌렸다. 그 후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도 아버지처럼 학정으로 일관했다. 이미 민심이 이반 되었던 솔로몬 말기부터 솔로몬의 신복이었던 에브라임 사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백성을 현혹하여 자신의 집권 야욕을 실현시켜 이스라엘 열 지파를 중심으로 북왕국을 세웠다.
◈ 솔로몬 시대의 우상 숭배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하는 등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선정을 베풀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칭송받는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방과의 정략결혼을 통해서 많은 우상이 들어오게 하는 실책도 범하였다. 성경은 솔로몬 왕이 여호와 섬기는 일에 게으른 반면 그의 아내들은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고 한다.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이방 신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혼란케 하였다.
◈ 요시야의 종교 개혁
요시야 왕은 집권과 동시에 선조들의 실책과 우상숭배로 인해서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고 예배 의식을 확립하는데 주력하였다. 요시야 왕은 이 같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백성들 사이에 만연되었던 우상을 제거하고 이교의 예배를 폐하였다. 특히 요시야 왕은 성전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서로 인해서 대대적인 회개 운동을 전개하고, 재위 60여 년 동안 이스라엘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우상 숭배와 사악한 제도를 철저하게 제거했다.
◈ 기도의 산 감람산
예루살렘 성에서 가까운 감람산은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산으로 유명하다. 본래 감람산은 숲이 우거지고 조용해서 기도하기에 알맞았다. 우상이 만연되었던 때에는 감람산에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이 즐비했던 이유도 이 같은 산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는 조용하고 한적한 감람 산에 자주 오르셔서 기도하시고 쉬시기도 했다.
설교5 : 감람산 Mount of Olive
감람산 강화-종말 신앙의 지혜
마24:3-51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가로되…
예수님 당시 유다 백성들은 장엄하고 찬란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황금색 지붕과 빛나는 대리석의 장엄한 색조는 성전의 위용을 더없이 찬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꿰뚫어 보셨던 예수님은 성전의 쇠락과 유대 민족의 처참한 운명을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마24:1-2). 이 예언은 실제로 주후 70년경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하게 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대환난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과 관련하여 제자들에게 "환난의 때를 대비하라"고 가르치셨는데, 그 장소가 감람산이기 때문에 '감람산 강화'(講話)라고 부릅니다.
1. 종말 징조를 분별해야 합니다
1)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함
세상의 종말에는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여 성도를 미혹할 것입니다(마24:4-5).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한 시기에 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유대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거짓 메시지로 백성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기말적인 종말론 사상이 성도를 유혹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거짓 선지자들은 당대의 최대 관심사에 야합하여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마지막 때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성도를 미혹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교회 내의 평화와 하나 됨을 해치고 파멸과 분열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온전케 하시는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마지막 때 더욱 날뛸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을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딤후3:16-17).
2) 전쟁과 기근, 자연재해가 일어남
종말이 가까울수록 크고 작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천재지변(天災地變)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날 것입니다(마24:6-8). 전쟁이나 기근, 천재지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대혼란입니다. 세상 종말에는 대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 끝날에 사람들은 안정을 잃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전쟁과 기아만 해도 처절한 상황을 가져올 것인데, 천재지변이 겹친다면 그 혼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점점 더 포악해지고 날카로워져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종말에 있을 대혼란에 휘말려 버릴 것이 아니라 대재난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성도는 종말의 환난 가운데서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담력과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3) 신앙의 핍박을 받음
세상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사단에게는 멸망의 때가 다 되는 것이요, 성도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복락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당하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사냥하려는 사단의 세력들이 우는 사자처럼 날뛸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힐 극렬한 박해로 나타날 것입니다(마24:9-10).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수많은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더욱 극심한 핍박이 성도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수난당하심으로써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해야 합니다(마16:24). 그러므로 성도는 종말의 때에 핍박에 타협하거나 굴복할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고난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 된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도우시는 주께서 핍박을 이기는 힘과 담대한 용기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2. 종말에 대비한 신앙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1) 말씀대로 행해야 함
환난의 때에는 여러 가지 재난을 이기는 방법들이 속출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의지할 것은 그리스도 예수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종말의 때에 행하라고 가르치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입니다(마24:16-20). 그 외의 다른 방법은 미혹하는 말이거나 더 나쁜 길로 끌고 가는 편법이 될 것입니다. 특히 종말의 때에는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한 때 성도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면 환난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재난이 닥쳐오더라도 오직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생명의 길을 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환난의 때에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 돌이켜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우리 온 마음을 다하여 주께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시37:39). 그러기 위해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종말의 때를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
아무리 종말의 환난이 극심하다 할지라도 그것의 강도와 기간과 대상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떤 대상도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재난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세상적인 방법에 귀 기울인다면 성도는 거짓 선지자들(벧전5:8)의 미혹에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환난의 와중에서도 택한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합3:2).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은 항상 그분과 교제하는 가운데 쌓인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데서 준비되는 종말 신앙입니다.
3) 깨어 준비해야 함
종말은 대환난을 초래하지만 단지 환난과 핍박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후 심판의 때는 성도가 기다리는 때요, 구원이 완성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종말의 때는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다(눅12:39-40).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으로 깨어 빈틈없이 경계하고, 주님과 늘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종말의 때를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직전에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경계가 됩니다. 그리하여 도적처럼 임할 환난의 때를 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설교자료
◈ 겟세마네 기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최후를 준비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역을 목전에 두고 땀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간절하게 기도하신 이유는 십자가 사역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잠시나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하는 십자가 사역의 성격 때문이었다.
겟세마네란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스도는 땀을 핏방울처럼 짜내며 기도하신 것이다.
◈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언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다(마24:1-2). 예루살렘 성전은 주전. 20년경 헤롯이 재건하기 시작하여 주후 63년에야 완공되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는데 예수께서는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것이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의 침공을 받아 파괴되고 말았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것은 단순히 성전의 파괴만을 예언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 파괴 예언을 통해서 종말의 심판을 예언하신 것이다.
◈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거짓 선지자들의 발호(跋扈)는 종말의 징조 중 하나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포교하기 때문에 분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사단의 힘을 빌어 능력을 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성도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날뛰는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경계해야 한다.
◈ 전쟁과 기근
전쟁과 기근, 지진과 질병, 천체의 이상 현상 등 두려운 사건들이 종말의 징조로 예언되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징조들이 나타나더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그 이유는 이러한 현상들이 종말의 징조이기는 하지만 종말이 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종말의 징조를 보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종말의 징조가 나타날 때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넘어가는 일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신앙의 핍박
성도에게 닥치는 핍박 또한 종말의 징조 중 하나이다. 그러나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 된 길을 걸으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에 동참한 자들이다. 따라서 성도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고난 가운데서 참 신앙인을 구별하는 불시험을 발견하고 능히 견디어 낼 신앙을 갖추어야 한다.
◈ 환난을 이기는 길
환난은 '압박하다, 고통을 주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도에게 닥칠 환난 또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도는 환난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궁구 하며, 기도할 때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다. 특히 성도는 환난의 때가 구원의 때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불신자에게는 심판과 멸망을 가져올 것이지만 성도에게는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다.
설교6 : 감람산 Mount of Olive
예수님의 기도처
눅22:39-46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깊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도 아니고 육지 동물도 아닌 동물 부류가 있습니다. 이 동물들의 생활 터전은 심해인데 때때로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해면 위로 올라와야만 합니다. 성도도 깊은 심해와 같은 세상에 살지만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영혼의 호흡을 위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하늘나라의 공기를 호흡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호흡이 바로 기도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도의 본을 보이신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기도의 장소입니다
1) 습관을 좇아 늘 기도하심
예수님께서는 자주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그분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눅22:39).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도 그분이 자주 가시는 기도처를 알고 있을 정도로 시시 때때로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심으로써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신령한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공기를 호흡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신령한 힘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골방으로 삼으심
예수님은 감람산을 기도하는 골방으로 삼으시고 때때로 그곳에 오르셨습니다(막1:35).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처소, 곧 자기만의 기도의 골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고요히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과의 교제는 바리새인처럼 대로나 광장에서 드러내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골방에서 은밀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 성도가 나누는 영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한 교제를 나눌 때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의 기도의 골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된 우리 성도들에게 바로 감람산과 같은 기도의 골방을 모범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2. 휴식과 활력을 얻는 장소입니다
1) 일과를 마치신 후에는 감람산으로 향했음
프래드릭 윌리엄 로버트슨(1816∼1853)이라는 영국의 성직자는 "진정한 휴식은 동면(冬眠)과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쉬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때로 예루살렘 성에서 말씀을 선포하신 후 감람산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휴식은 사역을 완전히 멈추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감람산은 예수님께 있어서 휴식의 장소이자, 동시에 새 힘을 얻는 기도의 장소였습니다(눅21:37요8:1)
2) 교제의 장소였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선포하신 후 감람산에 올라가 제자들에게 말씀을 풀이해 주시고, 교훈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장차 이루어질 일들에 관해서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내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면 깨달음이 오고, 그 깨달음은 성도의 장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감람산과 같은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교훈과 쉼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과의 교제의 장소입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셨음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오르셨다"라고 할 정도로 자주 있었던 일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분과 끊임없는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결코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보면 자기 생각과 욕심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에는 등한시하곤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마6:33). 예수님께서는 감람산 기도를 통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2)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애써 기도하심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는 감람산에서 이루어진 기도입니다(마 26:36-3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땀이 핏방울로 변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그분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가르치고 교훈한 기도의 본을 온전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셨으며,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이라는 수난을 앞두고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그분께 버림받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땀이 핏 방울이 되도록 애써 기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를 본받아 내 생애를 걸고 기도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고, 또 가르치신 예수님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감람산에서 성도들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가르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 맞추어진 삶, 하나님 중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좇기 위해 성도는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며, 기도의 골방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대로 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아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역사를 베푸실 것입니다.
설교자료
◈ 심판의 주관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진노의 큰 날에 심판하신다(계 6:17). 성도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환난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 임할 환난도 주관하셔서 참 신앙인을 구원하시고, 불신자와 대적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
종말은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때이다. 따라서 종말은 모든 것의 완전한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로서 이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할 자들의 멸망과 완전한 파괴가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여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영혼의 호흡인 기도
호흡(pnohv, 프네)은 '숨, 생명'이라는 의미. 산 영혼이 그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살전5:17). 기도하는 영혼이 살아 있다.
◈ 시간을 정해 놓은 기도
기도의 목적보다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는 의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내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 기도하는 생활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생활이다.
◈ 유대인들의 기도
유대인들은 새벽, 아침, 정오, 오후 3시, 저녁 등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였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단6:10).
◈ 기도처
① 그리스도의 기도처 : 정해진 곳은 없었으나, 감람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시기를 즐겨하셨다. 그중에서도 겟세마네 동산은 그리스도께서 평소 즐겨 찾으시던 기도처요, 십자가 사역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곳이다.
② 겟세마네 동산 : 그리스도의 마지막 기도처. 겟세마네는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기도의 골방과 같은 곳이었다.
◈ 감람산의 그리스도
① 기도처 :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기도하신 곳.
② 휴식처 : 평소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오시면 감람 산에서 휴식을 취하셨다.
③ 교제의 장소 : 제자들을 가르치고 교제를 나누셨다. 이 땅에서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그리스도는 감람산에서 조그마한 안식(安息)을 누리셨다.
◈ 감람산 강화
종말의 때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예수께서는 십자가 수난을 목전에 두고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를 대비하라는 주제로 가르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가르침에서 많은 의혹을 갖게 되었고, 예수님은 열 처녀 비유를 비롯한 다섯 가지 비유를 통해서 종말의 때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해 가르치셨다(마24:1-25:46)
설교7 : 감람산 Mount of Olive
감람산에서 하늘로
눅24:50-53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이 모두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있어서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를 따르던 시기는 끝난 것입니다. 이후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육적인 눈으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랑과 능력으로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며, 성령께서도 언제나 도우실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더 높은 소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승천이 감람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리우신 것입니다.
1.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1) 부활 승천의 소망을 주심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침체되었던 제자들의 분위기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크게 고조되어 연일 말씀 듣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일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언제 이루실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리라고 생각한 제자들의 우문(愚問)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보혜사 성령의 깨우침으로 영안이 밝아진 후에 이 말씀을 올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이 성도에게 약속된 것임을 밝히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곧 우리 성도들의 장래 모습인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심
그리스도의 승천을 본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 중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하늘나라에 앉을자리를 놓고 논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다툰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그리스도의 승천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성을 믿게 되었고, 그 나라의 임재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생으로 끝을 맺는다면 험한 세상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고 승리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사 좌정하고 계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3)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심
그리스도의 승천은 이전에 제자들과 무리들이 그리스도에게 기대했던 것을 초월한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인해 펼쳐질 세계는 이 세상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세계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보증하신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바로 구원이 피상적이고, 정치적으로만 느껴졌던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한 실제로 드러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은 장래 소망이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임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지상 대명령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주님의 명령이 무거운 짐이 되어서라기보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이 너무도 감격스럽고, 그 은혜가 크기에 전심으로 전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하늘에서 감람산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1) 감람산으로 다시 오실 것임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께서는 올리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1:11). 그리스도의 승천은 자기를 비하시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 후, 본래 성자의 영광을 회복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은 바로 영광을 회복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다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이 중단된 것도, 성도와의 교제가 단절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와 성도의 교제를 영적으로 승화하였습니다. 신령한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감람산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신 바로 그 장소입니다. 재림의 장소가 그 감람산으로만 제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감람산은 주의 재림 언약을 확실하게 약속받은 장소로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감람산뿐만 아니라 주를 사모하는 모든 자가 영접할 수 있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2) 주의 재림을 삶의 큰 소망으로 삼아야 함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여 합심 기도하며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을 보았기에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눈에 그리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영광중에 올리우신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실을 확신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합니다. 때문에 초대 교회 성도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오심만을 기다리며 신앙생활에 열중했던 것처럼 재림 언약을 삶의 큰 소망으로 삼아야겠습니다.
감람산은 주님께서 처절하게 고통의 기도를 하셨던 겟세마네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고통의 산에서 주님은 저 영광의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성도도 고통 많은 감람산 같은 이 세상에 살지만 바로 이곳에 주님이 영광중에 오실 것을 확신해야 하겠습니다.
설교자료
◈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
① 희생 제사 :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흠 없고 무죄한 제물로 자신을 드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
②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에서 가장 두려워하신 것은 잠시나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주님의 승천 장소
① 승천에 대한 예언 :구약 성경에서(시24:7시47:5시110:1), 신약 성경에서(눅9:51요6:62요7:33-34요14:2-3요16:5) 등
② 승천 장소 :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행1:9).
③ 승천 교회 :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로 본래는 승천을 상징하여 천정을 만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장악하면서 승천교회 천정은 이슬람식 돔(dome)으로 덮이게 되었다. 오늘날 이 돔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승천 돔'이라고 부른다.
◈ 베드로의 부인(否認)
'부인하다'(απαρνεομαι아파르네오마이)라는 말은 '-로부터'(απο아포)와 '부정하다'(αρνεομαι아르네오마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자기와의 관계를 부정하다', '무시하다', '도피하다'라는 의미이다.
◈ 십자가 형(刑)
① 원어의 뜻 : σταυρος(스타우로스)는 단순히 땅에 수직으로 박힌 뾰족한 기둥을 가리킨다.
② 유래 : 수직으로 세운 기둥은 울타리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 울타리처럼 세운 기둥에 중범죄자를 매달아 수치를 느끼게 하는데서 십자가 형이 유래했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그리스와 페니키아를 거쳐 로마까지 전파되었다.
③ 형태 : 처음 수직으로 세웠던 기둥을 사람의 신체 구조를 감안하여 십자가형으로, 헬라어의 타우(T)자 형으로, 엑스(X)자 형으로 바뀌었다.
④ 절차 : 십자가 형이 정해지면 먼저 초죽음이 되도록 채찍질을 한 후 처형장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고, 옷을 벗긴 후 십자가에 못을 치거나 묶어서 매단다. 그리고 시신을 끌어내린 후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찌르거나 팔다리를 꺾었다. 이같이 잔인한 형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자세히 드러났다.
◈ 마가의 다락방
제자들과 무리들이 성령 강림을 고대하며 모여 기도하던 다락방. 이곳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신 곳이요, 성령 강림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곳이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이라고도 한다.
◈ 시온 산 교회
마가의 다락방이 있던 장소에 오늘날 시온 산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 교회로 향하는 포장도로는 교황이 방문하였다고 해서 교황로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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