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신구약 중간사 시대에 있었던 마카비의 독립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카비 전쟁과 유대 통치
1. 마카비 독립전쟁
안티오쿠스4세의 유대교 박해는 많은 순교자를 냈었다. 그는 특히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학살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아무 저항도 없이 순교해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도 경건한 하시딤외에 율법에 충실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루살렘 북서쪽 마데인(Modein) 마을의 제사장 마타디아는 왕의 관리로부터 이방의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자 거부하였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이 앞으로 나와 희생 제사를 드렸는데 그는 이것을 보고 분노하여 왕의 관리를 죽이고 제사드리는 자도 죽였다.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은 마타디아 그의 다섯 아들들과 함께 뭉쳤고 하시딤도 그들에게 동조하였다.
마타디아가 죽자 (B.C 166) 마카비라 불리는 그의 셋째 아들 유다가 저항 운동을 지휘하게 되었다. 매우 유능하고 과감한 유다는 저항운동을 전면적인 독립전쟁으로 바꾸어 놓았고 또 성공적으로 싸웠다. 이 유대인의 투쟁은 그의 별명에 따라 마카비 전쟁이라고 불린다.
셀류커스 왕조에서는 그들의 반란 초기에 그들을 과소평가하여 하급 장군들에게 분견대를 보내었으나 마카비는 유격전으로 계속적인 승리를 하게 되었고 이에 심각성을 인식했을 때에도 안티오쿠스 당시 파르디아의 반란을 진압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군대를 유대에 보낼 수 없었다. 이후 상당수의 시리아 군대가 유대에 파견되었으나 엠마오에서 유대의 마카비에게 대패하게 되었고 마카비는 승전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였고 대제사장인 메네라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도주하였다. B.C 164년 12월 유다 마카비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쥬피터의 제단을 허물고 새로운 제단을 쌓았다.
마카비는 시리아의 요새인 아크라를 공격하자 안오쿠스4세의 사망 후 실질적인 권한을 쥐게 된 리시아스가 직접 많은 군대를 끌고 진격해 왔다. 마카비는 그들에게 패하였고 그들은 권력투쟁의 문제로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화해를 제의해 왔다. 유다 마카비는 종교적 자유와 더불어 정치적 자유의 획득도 목표로 하였으나 하시딤의 목적은 종교적 자유의 획득에 있었다. 결국 종교적 자유를 주장하던 하시딤의 의견이 관철되었다. 그러나 유다 마카비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의 추종자들과 계속적인 정치적 자유를 위한 전쟁을 해 나갔다. 결국 유다 마카비는 예루살렘을 다시 포위하였다가 B.C 막강한 시리아 군대에 의해 B.C160년 사망하였다.
2. 하스몬 왕조
유다 마카비의 전사 후에 그의 동생 요나단이 저항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시리아군은 여러 차례 요나단의 유대 저항세력과 싸웠으나 그들을 완전히 진압할 수 없었다. B.C 153년 알렉산더 발라스가 안티오쿠스4세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데메트리우스1세를 대적하였다. 권력투쟁에서 양자는 다 같이 유대인의 도움을 청했는데 요나단은 발라스를 지지하였다. 여기에 대한 답례로 발라스는 요나단을 대제사장 및 유대지방의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왕권과 제사장 권한은 한 사람에게 통합되었고 마치 옛날의 신정정치가 부활되는 듯하였다. 요나단이 시리아 장군에 의해 살해된 후 그의 형제인 시몬이 그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다. 당시 시리아는 또다시 내분 상태에 빠졌다. 이때 시몬은 데메트리우스를 지지함으로써 데메트리우스는 유대인들에게서 받던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이후 유대 국민들과 사재는 진정한 예언자가 나타날 때까지 시몬을 영구적인 영도자와 대제사장으로 삼을 것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의에 의해 하스몬왕조가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시몬은 B.C 134년 프톨레미에 의해 살해되었고 두 아들마저 죽을 뻔했으나 요한만이 살아남아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정식으로 요한힐카누스1세라는 칭호로 시몬의 뒤를 이었다. 몇 개월 후 프톨레미호의 요청에 의해 안티오쿠스7세는 그의 지배권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였고 요한힐카누스는 항복하였다. 안티오쿠스는 유대의 자치권을 보장했지만 예루살렘의 요새를 헐어버리고 시리아에 조공을 받치게 하였다.
마카비 일가는 마카비 시대 초기에 하시딤과의 동맹을 맺었었다. 그러나 요나단의 통치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두개 당파와 바리새당 그리고 에세네파 등 세 당파가 있어 이들과 관계를 가졌다. 처음에 힐카누스는 바리새파와 좋은 관계를 가졌으나 그들 중에서 힐카누스에게 대제사장직을 내놓으라는 사람이 나타나자 그들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사두개파와 손을 잡게 되었다. B.C 104년 힐카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가 권좌에 올라 일 년간 다스렸다. 힐카누스는 자신의 아내가 여왕이 되는 것을 원하였으나 아리스토불루스가 권력을 빼앗았다. 그는 어머니를 감옥에 가두어 굶겨 죽였고 자신의 동생들은 투옥시키고 한 동생은 암살했다. B.C 103년 아리스토불루스가 죽자 그의 처가 세 동생을 석방시켰다. 그녀는 그중 큰 형제인 알렉산더얀네우스를 대제사장 자리에 앉히고 그와 결혼하였다.
얀네우스는 하스몬가에서 최초로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얀네우스는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며 특히 바리새파와 분쟁하였다. 백성들은 바리새파의 편에 서 있었으며 시리아의 원조를 받아 얀네우스와 싸웠기 때문에 얀네우스는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여 800명의 바리새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그들의 처자를 살해하였다. 얀네우스의 사후 그의 처 알렉산드라는 권자를 이어받고 대제사장직을 그의 맏아들 힐카누스2세에게 맡겼다. 알렉산드라는 죽은 남편의 충고에 따라 바리새파와 화해하였다. 알렉산드라가 죽은 다음(B.C 67년) 그녀의 아들인 힐카누스와 아리스도불루스와 권력문제로 싸우게 되었고 이 싸움을 이용하여 로마는 유대를 쉽게 정복하게 되었다(B.C 63년).
Ⅴ. 결론
헬레니즘의 생성은 실로 유럽 세계와 전 세계에 주요한 사건이 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특히 헬레니즘 세계는 당시 유럽 지역과 지중해 지역의 문화를 동방의 문화와 접목시킴으로써 위대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이 문화는 고대 유럽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헬레니즘 문화와 역사는 초기 기독교와 유대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헬레니즘의 동서 융합정책으로 유대인들은 헬라군이 되어 다른 지역에 이주하게 되었다. 이에 유대인들은 제사드리기 위하여 서로 특별한 곳에 모여 살게 되었으며 프톨레미 왕조 하의 알렉산드리아 같은 곳에서는 히브리 성경을 당시의 세계 공통어인 헬라어로 번역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70인 경이다. 또한 언어적 통일로 로마시대에도 헬라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상이 쉽게 전파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물론 로마시대의 잘 닦여진 도로의 덕분도 있었지만 언어의 통일이야 말로 기독교 전파의 견인차적 역할을 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유대인들은 프톨레미 왕조의 통치 때 유대인과 사마리아의 분리가 있었고 셀류커스 왕조의 시대에는 대제사장직이 매매되기도 하였으며 많은 박해가 있었다 특히 안티오쿠스4세의 박해는 가장 심한 박해였다. 이에 마카비전쟁이 시작되었고 유대는 하스몬왕조를 성립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 가운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고 애를 썼으며 한 때는 쥬피터가 섬겨지던 그 예루살렘 성전을 지키려고 힘을 썼다. 이러한 가운데 메시아 대망(大望)사상은 싹이 텄으며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였다. 물론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리스도 대망 사상이 없었다면 예수의 부활 후 그리스도의 전파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같이 유대는 바벨론으로부터 앗수르 헬라 제국 프톨레미 왕조 셀류커스 왕조 헤롯가의 억압 속에서 메시아 대망 사상을 키워 왔으며 예수 그리스도 이후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기독교는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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