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신약 지명 중에서 나사렛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나사렛 Nazareth
1. 지명의 의미와 위치
1) 나사렛의 그리스식 지명은 '나자렛'(Ναζαρεθ)이며 히브리어의 '네트세르'를 번역한 것이다.
2) 구약성경에는 단 한번도 도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 유다 전쟁 당시 군 작전을 위하여 갈릴리 지역을 담당한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의 글에 갈릴리 지역의 45개 지역에 대한 명칭을 적으면서도 나사렛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3) 구약성경이나 요세푸스, 그리고 탈무드에 단 한 번도 나사렛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렛이 오래 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다는 증거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입증되고있다.
4) 가이사랴에서 발견되어진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의 유적에는 나사렛이라고 하는 도시명이 등장한다. 유세비우스는 "다볼 산 근처에 있는 나사렛"(onom.138-24)이라고 나사렛의 지리적 확실성에 대하여 말한다.
5) 나사렛의 지명은 '쏘다'혹은 '싹,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학설에 따르면 도시의 이름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마을 뒤에 위치한 언덕의 이름과 연관되었음이 분명하며, 의미 역시 망을 보는 것과 관련된 히브리어 노트세아(notserah)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6) 나사렛은 370m의 고지에 세워져 있으며 지리상의 위치는 갈릴리 아래쪽으로 22.4Km가 떨어져 있고, 다볼 산에서는 서쪽으로 9Km의 지점에 위치하여 하이파 근처의 북쪽 이스라엘에 있는 조용한 분지 마을이다.
2. 과거와 현재
1) 과거의 모습
① 예수님 당시 나사렛은 30-50호 가량 되는 400명이 안되는 주민들이 살았던 아주 작은 마을이었으며 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장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다.
② 제2차 성전이 무너진 후 유대인들이 살았었다. 나다나엘의 말에서 보듯이(요1:46) 나사렛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이는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무례하고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로 취급되었던 까닭이다. 당시의 갈릴리 지역의 거주민들이 폭넓게 이방인과 접촉하고 있어서 순수함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생각이 유대인들 가운데 편만해 있었다.
③ 하지만 다른 견해에서 본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베들레헴(미5:2)이라고 굳게 믿은 까닭에 다른 도시에서의 메시아 출현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2) 현재의 모습
① 나사렛의 현재 이름은 엔나지라(en-Nazirah)이며 거주민은 약 52,000명(1990년)이다. 현재의 도시는 고대의 도시보다 약간 더 아래쪽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② 이집트와 아시아 내부 사이의 주요한 도로는 다볼 산 아래의 나사렛을 지나며 계속해서 북쪽으로 다마스커스에 이어진다. 고대의 도시는 단 하나의 우물만을 남기고 있다.
3. 성경적 배경
1) 나사렛은 그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자(눅2:39) 예수님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수태고지를 하였다(눅1:26-28). 예수께서 이 마을에서 자라셨고(눅4:16), 젊은 날을 보내신 이유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 부르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을 '나사렛당'이라 명했다.
2)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연유에서 크리스천을 '노쯔림'이라 부르는데 이 말의 뜻이 나사렛당이다. 이곳 회당에서 공생애시 설교하셨다(마13:54).
3) 예수님은 공생애 당시 이곳에서 두 번 쫓겨나시자(눅4:16-29마13:54-58) 그 주민들의 불신앙을 꾸짖으시며 그곳을 떠나셨다.
4) 예수님의 부모들이 나사렛에 살게 된 것은 아마도 유대의 왕족의 하나로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 이곳에 머물게 된 조상들에 의하여 정착하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곳에는 예수님의 육신 부모와 형제인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자매들이 살고 있었다(마13:55,56).
4. 역사적 변천 과정
1)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북쪽 왕국이 멸망되고, 주전 586년에 바벨로니아에 의하여 남쪽 유다가 멸망된다.
2) 멸망한 후 이스라엘은 바사(페르시아)의 소유가 되었고, 이 땅은 3개의 큰 지역으로 분할된다. 북부 지역은 갈릴리, 중부 지역은 사마리아, 남부 지역은 유다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3) 나사렛이 속해 있는 갈릴리는 '굴러간다'라고 하는 길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고, 사9:1에 이방의 갈릴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갈릴리는 이방인들로 싸여 있었고, 예수님 당시에는 이단자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불리었다.
5. 유적 소개
1) 나사렛에는 마리아의 집이라 알려져 있는 곳에 1968년에 세워진 수태고지 교회가 있다.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 뮤지오에 의하여 설계된 교회인데 성지에 있는 교회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2) 그 가까이에는 요셉의 작업장이라고 알려진 곳에 1914년 세워진 요셉 교회가 세워져 있다. 교회 왼쪽 벽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그 작업장에 있는 아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성가족 그림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지하실에 남아 있는 비잔틴의 침례탕은 예수님 당시 요셉과 그의 가족들의 결례탕으로 추정된다.
3) 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던 샘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리아의 우물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 우물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을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바로 이곳에 희랍 정교회가 세운 수태고지 기념교회가 있다. 아마도 마리아는 자주 이곳에 물을 길러 왔을 것이고 예수께서도 이 우물가에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자주 다녔을 것이다. 마을을 벗어나 남쪽 동산에 오르면 그곳에는 이스르엘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어설교 : 나사렛 Nazareth
나사렛 Ναζαρεθ : 나자렛 Nazareth
요1: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사렛은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의 한 성읍으로 성경 외의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나사렛은 뜻이 다양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 마을과의 관계에서 볼 때 נצר(나체르) 즉 '싹, 어린 가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요, 그 이유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의 메시지를 거부했습니다(막6:1).
1. 세상에서 약자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나사렛은 작은 마을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 누구도 관심두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사9:1). 빌립이 나다나엘을 초청했을 때 나다나엘은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희망이 없는 곳, 존재 가치도 없는 곳, 발전이라고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곳이 나사렛입니다. 그곳은 약자들의 고향입니다. 병들고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그들에게 아무도 희망을 걸지 않습니다. 세상은 힘없고 능력없는 자에게 희망을 두지 않습니다. 오직 강한 자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가 연약한 자요, 세상에서 도태되기 쉬운 자들입니다.
2. 하나님만이 약자들의 희망입니다
연약하고 희망이 상실된 갈릴리 나사렛에 예수께서 오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빛이십니다(요8:12). 그분이 가장 어둡고 희망이 없는 곳에 오신 것입니다. '싹'과 같고 '어린 가지'와 같은 나사렛에 오셔서 싹을 틔우고 어린 가지를 강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어느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창기와 세리와 죄인에게, 한 인격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아이들과 여자들에게 가치있는 존재임을 선언하십니다. 나사렛 예수, 그 이름은 가장 연약하고 희망없는 그곳에 가장 큰 희망으로 다가가십니다. 그분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활활 타오르도록 기다리시고 힘을 주십니다(마12:20). 다윗 역시 약자요, 가정에서조차 소외받는 인물이었지만(삼상16: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 영화로운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께로부터 비롯됨을 고백해야 합니다(시119:49). 그럴 때 비록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천국의 가치관이 약함을 극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환난과 핍박이 있고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또한 연약함으로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소망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골1:5). 하늘에 있는 소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면, 세상에 목표를 둔 소망은 곧 넘어집니다. 이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 목표를 이루는 자는 별로 없기에 약한 자, 능력이 없는 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쟁의 원리가 우리의 가치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독인은 비록 약하지만(고전1:26) 섬김으로 나누는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함으로 이 세상에 희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섬김으로 모든 것을 나누는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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