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장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명령을 받았다. 요단강을 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여호수아는 동편의 땅을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하나님이 주셨기에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선봉에 설 것을 말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돌아오라고 했다. 세 지파는 여호수아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순종(수 1:10-18)
[10]-[11]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1. 명하여
여호와의 명에 의하여 강하고 담대함을 얻은 여호수아는 이제 명령을 발할 수 있으리 만큼 강하여졌고 담대하여졌다. 명을 받아 명할 수 있고 받은 명에 순종하여 내린 명에 순종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고,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것이 질서의 원리이다.
나는 명을 받지 않고 살면서 또는 명을 순종하기 싫어하면서 명하기만 좋아한다면, 심지 않고서 거두고자 하는 심사이다. 명을 기다리는 이만큼 말씀이 내게 행사하면서 순종에 정비례한 권위가 내게 서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명은 권위 있는 명령이었다. 모든 백성의 유사들은 여호수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명이 떨어지자 곧「예」의 태세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계승이 진리의 원리이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말씀을 바로 전한다. 또 내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게 된다. 말씀을 전함에 반응이 없음은 내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증거이다. 명에 순종하지 않은 표시라 보아 틀리지 않는 것이다.
2. 진중에 두루 다니며
주신 명령은 골고루 전달되어야 한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땅 끝까지 골고루 성령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이는 다한 명에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교파 간에 약간 알력도 없지 않고 교회 간에 분쟁도 더러 생겨지나 실상은 다한 명에 움직인다 함은 틀림없으니 그 알력이나 그 분쟁도 한 명령 준행의 것이 되어 만족한다. 때로 사심(私心)에서도 없지 않음은 유감일 뿐 아니라 주님의 몸을 찢는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교파문제를 논할 때 혹 분쟁 문제를 생각할 때 이렇게 빗나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명에 바로 순종하지 않는 경우에 이런 빗나가는 일이 있을 뿐이다. 여호수아의 명은 이스라엘 진중에 골고루, 음식에 소금 맛이 골고루 퍼지듯 온전히 명을 받게 된다. 이 명이 곧 여호와의 명인 것이다.
3. 양식을 예비하라
명령의 내용이다. 이스라엘 온 진은 각각 먹을 양식을 예비하라는 것이다. 아직은 만나를 매일 주시는 대로 거두었는데 하루하루의 양식을 거두는 것이요 다음 날 것을 거두지 못한다. 거둔댔자 먹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이 골고루 전한 명엔 「양식을 예비하라」고 만나를 더 거두란 말인지 혹 기타 양식인지 모르나 명에 순종할 뿐이요, 그 무슨 양식인지 분별하는 데에 머리 쓸 것이 없다.
벳새다 뜰에서 5천명을 먹이실 때에 그 많은 사람들 중, 자기 먹을 양식을 준비한 사람은 어린아이 한 사람이 자기 먹을 점심인지 한 개인의 양식이 있었을 뿐이다.
이 어린 사람의 예비한 양식으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다 함은 착념해 둘 사실이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인자가 올 때에 먹을 영의 양식을 준비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의 말씀인 듯하다.
양식이란 칼로리의 원천으로 활동하게 하는 힘이다. 생명을 소유한 사람에겐 칼로리의 소모가 있고 이 칼로리의 보충은 양식에서 얻게 마련이다. 신령한 가나안을 향하고 있는 성도로서의 양식은 그 말씀인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명에 의하여 애굽을 떠났고 명에 의하여 홍해를 건넜고 명에 의하여 요단을 건널 선민들은 명에만 움직이면 그것이 양식이다. 물론 지금 여기 예비하라는 양식은 육신의 양식이기도 하다. 영으로 저들의 명을 순종하는 그 일이요 또 명령을 순종함으로 출애굽 하여 가나안에 진군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에 살아야 한다. 가나안 입주의 힘은 영의 양식, 곧 말씀을 먹는 일이다. 여호수아는 이 양식을 언제나 예비하였고 온 백성도 이 양식이 예비되어 만족한 것뿐이다.
4. 요단을 건너... 들어갈 것임
“3일 안으로 요단을 건너서"에 허락해 주신 땅에 들어갈 것이란 말씀이시다. 애굽을 떠날 때에 목표한 곳이 가나안이었거니와 그 목표가 변할 리 없는 것이며 혹 변한 사람도 적지 않기도 하였다. 그 기한이 무한할 수는 없다. 극히 속한 시일 안으로 들어갈 것이란 말씀이시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웠음이니라」(롬 13:11) 날마다 가까워 오는 것은 사실이거니와 3일 안이란 임박함을 고해 준다. 요단이란 뚜렷한 금이 그어져 있어 희미하지는 않다.
이 금을 넘으면 여호와께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인 것이다. 구원을 받느니 못 받느니 교파 간에 때로 말썽이 있기도 하거니와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요 거기는 똑똑한 금이 그어져 있으니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안 믿으면 멸망인 것이다. 이밖에 우리 사람의 주관으로 요단 금을 긋는 것은 크게 방자한 일이다.
이 금만 넘으면 허락하신 복지에 입주한다. 앞으로 땅은 제비 뽑으려니와 요단 너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주시는 땅이다. 출애굽에서 꼴을 향한 선민은 마침내 골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12]-[18]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땀을 흘리면서 하루 종일 일하다가 밤을 맞이하여 푹 쉬는 것은 하루의 노고를 완전히 씻어 회복하는 가장 행복한 은사다. 일의 능률은 쉬는데 정비례한다. 그리하여 쉬는 안식의 복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40년 광야생활의 끝이 안식을 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민족의 안식처이다. 육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성도 인들의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뿐이다. 광야만을 헤매다가 가나안의 안식에 못 참여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유감이 아니다.
1.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쓴 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신들을 매고서 먹고 애굽을 떠났다. 홍해를 건넜다. 광야를 헤매었다. 적과 대결도 해야 했다. 어느 것이나 긴장 안 한 것이 아니었다. 40년 지친 백성에게 안식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순종한 사람들에게만 이 안식이 허여(許與)된다. 실상 광야 40년 생활도 완전히 하나님께서 책임지신지라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사람에겐 고달플 것이 없다. 먹을 것을 벌어야 되는 것도, 입을 옷을 짜고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홍해나 요단강에 가교(假橋)라도 놓고 건너는 것이 아니다.
광야 40년 이스라엘의 공과는 순종이다. 믿고 순종한 사람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는 교훈이다. 여호와께서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안식하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한 말이다. 이 두 지파반은 어떤 의미에서 가나안 진군의 의기를 약간 저하시킨 상도 싶다. 요단을 건너기 전에 모세에게 정착지를 요구하였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처음에 정중하게 거절하였으나 종당엔 선발대로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맡는 조건부로 그들의 가족과 우양들을 정착시켰다. 요단 이편 땅을 준 것은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 형제보다 앞서」 진군하기로 했던 것을 「기억하라」고 모세에게 약속했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다음에야 너희에게도 확실한 안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책임을 완수한 다음에야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시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안식의 복을 누리려 함은 투기하는 일이다. 신앙 인은 투기해서는 안 된다. 투기하는 사람에겐 안식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일한 사람에게 라야 쉬는 맛이 있다. 하나님께 약속한 약속을 지키며 그 책임을 그대로 감당한 사람에겐 여호와께서 「안식하게 」하신다.
3.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사도 바울은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빌 2:4). 내가 안식의 복을 누리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나의 형제가 안식의 복을 누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들은 이에 모세와 약조하고 요단강 동쪽에 기업을 얻었는데 이로써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너희들의 형제가 다 기업을 얻어 안식의 복을 얻을 때까지 그들과 같이 싸워야 한다. 그 후에야 자기의 안식의 기업이 확립된다.
4. 범사에...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을 완전히 누리려면 형제도 안식하게 하여야 한다는 여호수아의 부탁이며 명령에 두 지파반의 대답이 참 귀하게 생각된다.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전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의 말이다.
이 정도면 광야 40년 생활의 보람이 그대로이다. 이를 위한 공부뿐이다. 이만하면 다 만점으로 졸업한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우리 성도는 언제나 무슨 명령에나 이 정도의 대답이어야 신령한 가나안 안식의 복을 받는 것이다.
다시 다짐하기를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음을 당하리니」 통솔자의 권위를 통솔자 자신이 사용하려고 발표함이 아니라, 피 통솔자들이 권위를 바친 것이라 할까? 이것이 참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교권(敎權)이 이렇게 행사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하나님이 명하시고 백성들이 바치신 축복이다.
[창세기 성경주석 6장 강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창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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