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레위기 7장 성경강해] 속건제법과 번제 및 소제와 화목제(레 7:1-38)

두란노 서원 2022. 11. 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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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7장에서는 제사를 보충하는 규례에 대해서 말씀한다. 속건제와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규례에 대해서 말씀했다. 피와 동물 기름에 대한 식용을 금지하는 내용도 함께 기록되었다. 화목제는 사람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나누어주었다.

 

속건제법과 번제 및 소제제(레 7:1-10)

 

Ⅰ. 속건제에 관한 규례. 속건제는 속죄제와 성격이 거의 같으므로, 같은 규칙을 적용한다(6절). 속죄를 위해 속건 제물의 피와 기름을 하나님께 드릴 때 제사장들은 그 고기를 속죄제와 마찬가지로 성소에서 먹어야 했다.

유대의 전승을 설명하는 패트릭 주교는 “단 사면에” 속건 제물의 피를 뿌리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단 사면에 붉은 줄이 있었는데, 제단을 정확히 그 중앙에 놓고 번제물의 피는 그 줄 위에 뿌렸다. 그러나 속건제와 화목제의 피는 그 줄 밑에 사면으로 뿌렸다.”

속건 제물의 고기는 그 제사를 집행한 제사장에게 권리가 있다(7절). 일한 사람은 품삯을 받아야 한다는 이 사실은 제사장들을 격려하여 제단의 일을 부지런히 하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일하면, 그만큼 더 많이 받게 된다. 신앙의 일을 더욱 부지런히 하면, 거기에서 더 많은 유익을 얻게 됨을 명심하자. 그러나 다른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 중 남자 역시 그 제사를 집행한 제사장의 초대를 받아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을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며”(6절). 직무상의 소득은 제사장들이 다 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관례였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우정과 친교가 유지되었다. 값없이 받은 자는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속건 제물을 가져온 사람은 이 제물을 함께 먹을 수 없었던 것 같다(화목제와 다른 점이다). 속건 제물은 모두 제단과 제사장만 나누어 가졌다.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해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으로 잔치를 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러나 속건제는 죄에 대한 슬픔 가운데 드리는 것이므로, 거룩한 애통의 표시와 죄를 삼가겠다는 결단으로 제물을 가져온 장본인은 그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Ⅱ. 번제에 관한 규례. 그것을 집행한 제사장이 제물의 가죽을 취하게 하셨다(8절). 물론 그것도 재산이 되었겠지만, 유대인들에 의하면 그것은 특정한 사람이 드린 번제에만 해당되었고, 회중을 위해 매일 드리는 번제물의 가죽으로 얻은 수익은 성전 수리비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런 명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첫 조상에게 “가죽 옷”(창 3:21)을 지어 입히신 것을 좀 더 잘 이해하게 해 준다고 하며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 가죽의 주인공인 짐승은 온전히 번제로 드려졌을 것이며, 아담은 그 제사를 드린 제사장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품삯으로 아담에게 가죽을 주시고, 그와 그 아내를 위해 옷을 만들어 주셨으며, 이것을 기념해 그 후에도 계속 가죽은 제사장에게 돌아갔을 것이다”(창 27:16 참조).

Ⅲ. 소제에 관한 규례. 소제물을 요리해서 바쳤다면, 즉시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를 집행한 제사장에게 그것을 먹게 하셨다(9절). 너무 급하게 드리느라 마른 것으로 드렸다면, 당시 집무를 맡은 모든 제사장이 똑같이 나누어 가지게 하셨다(10절).

화목제법(레 7:11-34)

 

본문은 모두 화목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명시한 율법의 반복이요 설명인데, 몇 가지 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Ⅰ. 화목제의 성격과 의도를 매우 특별하게 규정했다. 화목제는 세 가지 경우에 드린다.

1. 어떤 특별한 자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화목제를 드렸다(12절). 즉 병이 나았다거나 여행을 무사히 했다거나 항해를 안전히 했다거나 포로에서 풀려났을 경우,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했다.

2. 어떤 재난을 겪고 있을 때에 서원하기 위해 화목제를 드렸다(16절). 이 경우의 화목제는 위에서 언급한 경우보다 영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빠뜨리는 것은 죄다.

3. 뭔가 추구하거나 바라는 것이 있어서 특별한 자비를 탄원할 때 화목제를 드렸다. 이것은 “자원의 예물”이다. 이 예물은 인간의 기도에 수반되며, 앞의 두 예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수반된다.

죄지은 경우에는 반드시 속죄제를 드려야 하지만, 스스로 서원하여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한 화목제를 드리는 이 율법은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속죄제를 의무화한 것은 그들에게 위대한 화해의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기도와 찬양 역시 회개 못지않게 우리의 중요한 의무라는 것을 명심하자. 또 은혜에 대한 표현은 죄의식의 표현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자유에 맡기셨는데,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깊이를 시험하시려는 것이다. 자유 의지로 예물을 드릴 때, 그 제사는 하나님께 더욱 칭찬받고 더욱 기쁘게 열납된다.

 

Ⅱ. 화목제의 의식과 예식을 자세히 설명했다.

1. 감사를 위한 화목제를 드릴 경우에는 소제를 함께 드려야 한다. 즉 여러 종류의 과자와 전병(12절), 그리고 유교병(이것은 화목제에만 쓸 수 있다)을 드려야 한다. 그러나 제단 위에서 불사르지 말고(2:11), 희생 제물의 고기와 함께 먹어야 했다. 이것은 화목제가 완전하고 즐거운 잔치(절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시려는 것이다. 무교병은 맛이 별로 안 좋으므로, 유월절 때는 특별한 이유로 사용하지만, 다른 축제 때는 맛있고 먹기 좋은 유교병을 쓴다. 이제 인간들은 자신의 식탁에서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식탁에서도 잔치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사의 화목제는 물론 모든 화목제에 소제가 요구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즉 화목제의 예물을 더해 제단뿐 아니라 식탁까지도 준비하게 한 율법(29절)이 그것을 요구한다고 설명한다.

 

2. 화목제의 고기는 제사장과 제물을 가져온 자가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그 고기를 먹을 때는 속히 먹어야 하며, 날고기로든 요리해서든 냉장해서든 오래 보관하지 말아야 했다. 감사의 화목제일 경우에는, 제사드린 당일에 모두 먹어야 했고(15절), 서원제나 자원하는 예물인 경우에는 당일이나 그다음 날까지 다 먹어야 했다(16절). 그리고 만약 정한 기일을 넘기면 남은 고기를 불살라야 했다(17절). 만일 그런 고기를 먹으면, 지극히 큰 죄를 범한 것이 되었다(18절).

지극히 거룩한 제사라고 부르는 속건제나 속죄제와는 달리 이 화목 제물은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할 의무는 없으며, 각자 장막으로 가져가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사 그 잔치를 경건히 치르게 하심으로써 그 잔치가 다른 식사와는 구별됨을 알리셨다. 즉 식사 음식이라면 적당한 기간 동안 냉장해 두었다가 필요하면 데워서 3, 4일 후라도 먹을 수 있었으나, 화목제의 고기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즉시 먹어야 했다.

(1)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고기가 부패하거나 파리가 들끓는 지경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며, 불로써 소금 치듯 하는 것(막 9:49)을 원치 않으셨다. 만일 보관해 쓰려면, 소금으로 절여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인색하거나 지나치게 절약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당신이 베풀어 주시는 것을 백성들이 즐겁게 누리고 그것으로 만족하길 원하시며(전 8:15), 내일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3) 화목제의 고기는 하나님께 기쁨을 주는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 뜻대로 처리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것을 당신의 친구들이 마음껏 즐기도록 하셨고, 가난한 이에 대한 구제책이 되도록 배려하셨다. 하나님은 은혜를 풍성히 베푸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고”(딤전 6:17) 매일의 떡을 주시는 분임을 보이시려는 것이다. 감사의 제물일 경우에는, 특별히 거룩한 잔치를 하도록 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즐기는 거룩한 기쁨을 입증할 수 있게 하셨다. 이 율법은 매우 엄중한 것으로(18절), 감사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자기와 자기 가족과 친구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함께 불러서 율법이 정한 기일 내에 그 고기를 다 먹어야 하며, 만일 남은 것이 있는데 불태워 버리지 않으면(제단의 희생물도 불로 소멸되므로 불태우는 것은 가장 거룩한 처리 방법이다), 그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 되지 않으며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우리가 그것을 잘 활용하지 않거나 거기에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 유익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명심하자. 예배가 우리에게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열납 되지 못한다. 화목 제물을 가져오는 데에는 너그러운 것같이 보였으나, 그 처분에 있어서 거짓됨이 있거나 인색함이 드러난다면, 그런 제사는 드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가증한 것”이 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물과 미워하시는 예물이 있을 뿐, 그 중간쯤에 있는 예물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의 인격과 실행이 성실하고 정직할 때에만 하나님께 열납 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다(잠 15:8). 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그 고기를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19:8)고 경고하신다.

사흘이 되기 전에 화목 제물을 먹으라는 이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지 이틀 후에 부활하신 일에도 적용된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기에 부패될 수 없었던 것이다(시 16:10). 이 율법이 오늘날 우리에게 믿음으로써 속히, 지체하지 말고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에 참예하여 그로 더불어 먹고 잔치를 즐겨야 함을 교훈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오늘 먹지 않으면 곧 너무 늦어질 것이기 때문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히 3:13, 14) 은혜에 참예하라는 것이다.

 

3. 그 고기와 그것을 먹는 자는 정결해야 한다.

(1) 그 고기는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살라야 한다(19절). 만일 제단에서 먹을 장소로 운반하는 도중에, 개가 그것을 건드리거나 시체나 그밖에 부정한 것이 닿으면, 그 제물은 경건한 잔치를 베풀기에 부적당한 것이 되고 만다. 거룩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은 정결해야 하며, 아무것에도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평범한 물건이 거룩한 고기에 닿는다고 해서 그 평범한 물건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판결이 성경에 나와 있다(학 2:12). 그러나 본문의 율법은, 거룩한 고기가 부정한 것에 닿으면 그 부정한 것에서 오염이 옮겨 온다고 규정한다. 이것은 은혜의 향기보다 죄악이라는 전염병이 더 잘, 더 자주 옮겨진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2) 부정한 사람은 그 고기를 먹을 수 없다. 의식적으로 부정한 사람이 화목 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다(20, 21절). 거룩한 것은 거룩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 음식은 의식상 성결한 것이므로, 의식상 조금이라도 부정한 자는 참여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규례를 통해, 어떤 죄악의 오염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스스로 잘 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벧전 2:1, 2).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유익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우리의 양심이 죽은 행실에서 떠나 깨끗하게 되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해진다(히 9:14).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죄의 오염 아래 있는 자가 감히 주의 식탁(성만찬)에 참여하여 거룩한 일을 모독한다면, 그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고전 11:29), 부정하면서도 화목 제물을 먹는 사람이다.

이 율법이 이렇게 엄중해야 했던 훌륭한 이유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여호와께 속한”(20, 21절) 것이라며 화목 제물을 설명한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 여호와께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한 것이므로 깊은 경외심과 부정하지 않은 손으로 대해야 한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 11:44; 벧전 1:16).

 

4. 다시 한번 피와 내장의 기름을 먹는 것을 금하신다. 이 금령은 앞에서 다룬 화목제법에서도 이미 선포했다(3:17).

(1) 기름을 먹지 말라는 명령은, 소·양·염소가 희생 제물로 사용된 경우에 국한된 듯하다. 수노루나 수사슴 등 정결한 짐승이 제물인 경우에는, 그 기름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전자만 본문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23-25절). 이것은 내장 기름을 불사름으로써 하나님의 제단에 대한 경외심이 그들 마음속에 보전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금지된 기름으로 요리한 음식을 공공연히 먹으면, 그는 하나님의 손에 죽임 당할 위험에 빠진다. 모르고 그랬다면 속죄제를 드려서 자기의 부주의함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저절로 죽은 짐승이나 찢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도 불법이다. 그러나 그런 고기의 기름을 먹는 것은 이중의 불법이다(24절).

(2) 피는 더 널리 금지된다(26, 27절). 기름은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피는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는” 것이며(레 17:11),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예표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린 단번의 제사에서 완성될 때까지는, 피를 기름보다 더 경외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이 금령을 “생명체의 피”에만 해당된다고 적당히 설명한다. 그러므로 그레이비(gravy, 고깃국)는 먹어도 된다고 한다.

5. 화목 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을 설명하신다. 그 제사를 집행한 제사장은 화목제로 드린 모든 짐승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를 받도록 지정하신다(30-34절).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살펴볼 수 있다.

(1) 희생 제물은, 그것을 바치려는 자가 직접 하나님의 몫을 가지고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 제물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과 또 그것이 열납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표시한다.

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표시로 자기 손으로 직접 그 제물을 “들어 올려야” 했다(거제).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온 땅의 주인이며,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하나님께 즐거이 영광을 돌리겠다는 표시로 제물을 드리고 “앞뒤로 흔들어야 했다”(요제). 그런 의미에서 기름과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를 들고 흔들면, 그 짐승을 전체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 된다.

그런 다음 기름은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고 가슴과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주어야 했는데, 제단과 제사장은 모두 하나님을 대신한 수납원이기 때문이다.

(2) 기름을 불사르고 나면, 제물을 가져온 사람과 그의 식구들은 물론이요, 제사장도 자기의 몫을 취해 식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거룩한 기쁨과 거룩한 감사에 있어서, 사역자들이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또 먼저 맛보는 것이 합당하다. 씨를 뿌린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며 부르는 노래는 아름답다.

혹자는 제사장이 차지할 몫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는다. 즉 가슴과 뒷다리는 사랑과 행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 사랑과 행동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야 하는 것이요, 또한 모든 제사장이 교회의 예배를 위해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위대한 화목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든 영적 제사장에게 가슴과 뒷다리, 곧 가장 깊은 사랑과 가장 맛있고 영양 있는 양식으로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 그분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삼기로 작정했을 때에, 그는 사울 앞에 화목 제물의 뒷다리를 갖다 놓게 했다(삼상 9:24). 이것은 사울에게 어떤 위대하고 신성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위대한 화목 제물이다. 그 분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으니, 그것은 죄를 속해 우리를 저주에서 구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축복과 온갖 자비를 베풀어 주기 위해서다. 구속의 은혜에 기쁨으로 참예함으로써, 우리는 그 제물을 먹는다. 이것은 곧 주의 만찬이라는 의식을 상징한다.

 

제사법의 결론(레 7:35-38)

 

이후에 반복되어 나오는 부분도 있지만 본문은 제사법의 결론으로 제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Ⅰ.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돌아갈 몫이다(35, 36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제사장에 임명되는 그날에, 그들의 생계를 안전하게 보장하시기 위해 이런 식량을 마련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에 종사하는 자들을 보호하사 보수를 충분히 받게 하시고 식량을 넉넉히 공급받게 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사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신 자들에게는 그 몫이 있다. 그것은 값진 것이요, 주께 드린 예물 중에서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 자체에 급료가 있으나, 복종하는 자는 현재의 상급도 받는다.

 

Ⅱ. 백성들은 그것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야 한다. 즉 그들은 규정대로 예물을 드려야 하며, 기쁜 마음으로 제사장들에게 제사장들의 몫을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하셨다”(38절). 예배라는 엄숙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임을 명심하자. 우리의 재량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의 마음대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모든 예배를 때에 맞추어 실행하는 것이 우리의 절대적인 의무다. 그것을 빠뜨리는 것은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비해 조금이라도 덜 필수적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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