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관한 여러 가지 교훈들(잠 25:1-16)
잠언 25장에서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잠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왕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기록했다.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고 했다. 그리하면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선다고 했다. 사람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1-7절, 왕의 영광, 악인 제거, 교만
[1-3절]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한[필사(筆寫)한] 것이니라.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
잠언 30-31장을 제외한 잠언의 대부분의 내용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내용이며, 25장부터 29장까지는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필사(筆寫)한 것이다. 솔로몬은 잠언 3천 개를 썼다(왕상 4:3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다 알 수 없다. 신명기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러나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이다. 일을 계획하고 행하며 그것을 부지런히 살피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잠언 18:9,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잠언 27:23,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로마서 12:8,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할 것이니라].” 나라 일들을 힘써 살피는 왕은 훌륭한 왕이다. 물론 왕의 깊은 마음을 백성이 다 알지 못한다.
[4-5절]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位)가 의(義)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불순물이 섞인 은에서 찌끼를 제거하면 은장색이 쓸 만한 순은(純銀)이 나오듯이, 왕의 신하들 중에 악한 자를 제거하면 그 왕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설 것이다. 악한 자란,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 비양심적인 자, 아첨하는 자, 남을 해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가 왕에게 약간 도움을 주었을지 모르나 참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실상 그는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자이다. 그는 결국 왕의 나라를 어지럽히며 평안을 무너뜨리고 왕의 명예도 땅에 떨어뜨릴 것이다.
왕의 왕위는 악인들이 제거되고 의인들이 세워짐으로써 견고하게 된다. 잠언 16: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잠언 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왕의 보좌와 나라는 공의로 굳게 서며 평안을 누릴 것이다.
또 하나님의 의(義)는 내용적으로는 인자함과 사랑이다. 그러므로 의로운 왕은 백성에게 인자함과 사랑을 실천하여 나라 안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볼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나라와 그 왕위는 견고해지고 평안을 누릴 것이다. 잠언 20: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잠언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伸寃)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교회도 비슷하다. 교회에서도 악인들이 징계를 받고 의롭고 선한 자들이 세움을 받을 때 교회는 평안 가운데 든든히 세워질 것이다.
[6-7절]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大人)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너더러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 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
왕은 겸손한 신하를 사랑하고 신임할 것이다. 왕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나타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주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귀한 사람이 오면 상석을 내어주어야 할 것이며 그러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주께서는 무리에게 자신을 높이지 말고 낮추라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눅 14:8-11).
주께서는 겸손에 대해 자주 교훈하셨다. 그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20: 26-27), 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마 23:12). 또 사도 바울도 교인들에게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고 교훈하였고(롬 12:10), 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했다(빌 2:3).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을 알고 있다. 우리는 지옥 갈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큰 구원을 받았다. 또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고린도전서 4:7,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또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독생자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를 존중해야 한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므로 오직 그를 의지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잘 계획하고 행하고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면 그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해질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쓰임을 받어야 한다. 또 우리는 교회에서 믿음이 없고 악한 자들을 징계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을 세움으로 교회를 견고하고 평안케 해야 한다.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크게 여기거나 자신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모든 진실한 성도들을 다 사랑하고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
8-12절, 다툼, 경우에 합당한 말, 책망
[8절] 너는 급거히[성급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수치]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우리는 성급히 나서서 이웃과 다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잘 파악하고 판단하기 전에 성급히 나서면 수치를 당할 것이다. 잠언 18:13,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수치]을 당하느니라.” 잠언 29: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또 원고의 말이 옳은 것 같으나 피고가 와서 밝히는 경우도 있다. 잠언 18:17,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사람이 성급히 나서서 다투면 실수하기 쉬운 까닭은 사람이 누구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식과 이해력은 한계가 있고 사람의 기억력과 판단력도 그러하다. 말의 표현력도 불완전하다. 또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기 쉽다. 사람이 감정이 앞서면 사리판단력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화가 났을 때는 조금 참는 것이 좋다. 그래야 실수를 안 하고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잠언 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잠언 17: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또 우리는 노하기도 더디 해야 한다.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그러므로 야고보서 1:19-20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하였다.
[9-10절]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남의 은밀한 일’(NASB, NIV)이라는 원문(소드 아케르)은 “은밀한 일을 남에게”(KJV)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것은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의 액센트에 맞고(소드에 분리액센트가 찍혀 있고, 아케르에는 연결액센트가 찍혀 있음) 또 문맥에도 맞는 것 같다.
사람이 이웃과 가급적 안 다투는 것이 좋으나 부득이 다툴 경우가 있다. 어떤 오해가 있을 때나, 억울하게 비난을 받았을 때나, 또 물질적 손실을 당했을 때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때 관계된 문제만 변론해야지, 그가 다투다가 알게 되었거나 평소에 알고 있던 상대의 은밀한 일을 남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사적인 문제를 남에게 누설하는 것은 인격의 결함이며 그런 사람은 인격적이지 못하다는 비난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남의 비밀을 또 다른 사람에게 누설치 않는 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 예의와 덕이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이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고 또 남의 비밀을 누설치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레위기 19: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잠언 11: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11절]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상황에 적절하게 말해진 말’을 가리킨다. 그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말이나 동문서답같이 엉뚱한 말이나 주제나 핵심에서 벗어난 말은 아무 가치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사리나 이치에 맞고 이성과 양심에 맞고 더욱이 성경에 맞는 말이다. 또 그것은 회중에게 말할 때에는 말하는 때의 상황과 듣는 회중의 눈높이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 ‘아로새긴 은쟁반’이라는 원어(마스키요스 카세프)는 ‘은으로 만든 전시물, 은으로 만든 조각상’(BDB, KB)이라는 뜻으로 영어성경은 ‘은 그림’(KJV) 또는 ‘은으로 만든 틀’(settings of silver)(NASB, NIV)이라고 번역하였다.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는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어 보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기쁨을 얻게 할 것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 바로 이와 같다.
그러므로 잠언 15:23은,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한다. 의인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 적절하고 유익한 말을 하는 지혜가 있다. 그러므로 잠언 10:20은,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고 말하였고, 잠언 15:28은,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하였다. 신약성경에도 비슷한 교훈이 있다. 야고보서 1:19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하였다.
[12절]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슬기로운 자 곧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이다. 슬기로운 자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과 조언을 주며 필요한 경우는 책망도 준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다. 물론, 듣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도 소용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씀이라도 그에게는 유익이 없다. 그러나 좀 부족한 전도자나 설교자의 교훈이라도 듣는 자에게는 유익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이들의 권면과 충고를 듣는다. 잠언 12:15는,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고 말한다. 겸손한 자는 어린아이에게서도 무엇을 배울 것이다.
‘금고리’는 ‘금 귀걸이’(KJV, NASB, NIV) 같은 것을 말한다. 정금 장식은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 등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이 그렇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슬기로운 자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고 오히려 사모해야 할 것이다.
잠언 1:8-9는, 부모의 훈계는 자녀의 머리에 아름다운 관이요 목에 금사슬이 된다고 말한다. 또 잠언 3:22는, 지혜의 말씀은 영혼의 생명이 되며 목에 장식이 된다고 말하고, 잠언 4:9는, 지혜는 그것을 얻은 자의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두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잠언 27:5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고 말하고, 잠언 27:9는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툼을 가급적 피해야 하지만, 부득이 다툴 때는 성급히 나서서 다투지 말자.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자.
우리는 이웃과 다툴 때 그때 관계된 문제만 변론하는 것이 옳다. 감정이 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대방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남에게 감추고 싶은 부족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다. 우리는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삼가고, 경우에 합당한 말, 상황에 꼭 필요한 말을 하자.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지혜자의 교훈과 책망을 잘 듣자. 또 친구에게 좋은 충고와 책망을 해줄 수 있는 지혜자가 되자.
13-16절, 충성, 거짓 자랑, 인내, 꿀
[13절]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원문에는 ‘얼음 냉수 같다’는 말이 강조되어 있다. ‘얼음 냉수’라는 원어(친낫 쉘렉)는 ‘눈(雪)의 차가움’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오늘날 말로 하면 얼음을 띄운 물이나 물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뺀 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추수하는 날은 추수하느라고 땀 흘리고 덥고 목마른 날이다. 그때 얼음 냉수는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 것인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주인에게 이러하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그 주인의 마음을 얼음 냉수같이 시원케 할 것이다. ‘충성된’이라는 말(네에만)은 ‘변함 없는, 믿을 만한’이라는 뜻이다. 충성이란 자기가 맡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변함 없이, 계속 전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용두사미(龍頭蛇尾) 즉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흐지부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조석변이(朝夕變移) 즉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작심삼일(作心三日) 즉 결심한 것이 3일밖에 못 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충성이 아니다.
충성된 사자는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교회의 직분자들과 봉사자들, 목사, 장로, 권사, 교사 등에게 적용될 것이다. 보낸 자와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회와 회중을 통해 일꾼들을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은 영혼 구원의 전도와 목회의 일이다. 특히 전도는 신약교회의 최대 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일꾼들로 부르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한다.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다(고전 4:2). 주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계 2:10).
[14절]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라는 원문(이쉬 밋할렐 베맛탓 솨케르)은 ‘거짓된 은사(gift)를 자랑하는 자’ (KJV)라는 말이거나 ‘선물을 거짓되이 자랑하는 자’(NASB)라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지 않은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자이거나 남에게 선물을 준다고 거짓말로 자랑하는 자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 즉 성령의 은사는 남에게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주지도 않으신 은사를 받은 것처럼 자랑하는 것은 허위 광고, 과장 광고와 같다. 그것은 거짓이며 허풍이다. 그것은 참으로 나쁜 일이다. 거짓된 은사를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다. 그것은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바람도 불지만, 비올 듯한 모양만 있고 비를 뿌리지 않는 것과 같다. 유다는 그의 서신에서 거짓 교사들을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고 묘사했다(유 12). 우리는 거짓 교사들의 허풍을 분별해야 한다.
또 남에게 선물을 주지도 않으면서 선물을 줄 것처럼 거짓말하는 것도 악한 일, 불신실한 일이다. 우리는 무슨 선한 일이든지 조용히, 은밀히 해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나 남에게 구제할 때 자랑하거나 선전하거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히 하라고 교훈하셨다(마 6:1-6). 메시아께서는 다투지도 않으시고 외치지도 않으시고 아무도 길에서 그의 소리를 듣지도 못하리라고 예언되었다(마 12:19).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생활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야단스럽고 떠들석하게 자기를 선전하며 하지 말고 조용히, 은밀히, 겸손히 해야 할 것이다.
[15절]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그 말을 용납한다’는 원어(예푸테)는 ‘설득 당한다’(be per- suaded)는 뜻이다. 관원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탄원했으나 들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포기하면 일이 그것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인내가 필요하고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 자존심과 감정을 버리고 상한 마음을 버리고 참고 인내하며 자신의 정직하고 정당한 소원을 계속 간청하면 마침내 관원이 설득 당하여 그의 말을 받아줄 것이다. 그것은 주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하신 불의한 재판관과 한 과부의 비유의 내용이기도 하다. 한 과부가 낙심치 않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간절히 탄원해 응답받은 것처럼, 오래 참고 관원에게 간청하면 좋은 응답을 얻을 것이다.
본문은 또,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유순한 말이 뼈같이 딱딱한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뜻이다. 잠언 15:1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한다. 성질을 내는 과격한 말은 상대방을 노하게 만들며 마음을 더 닫게 만든다. 그러나 유순한 대답은 상대방의 노를 쉬게 하며 닫힌 마음도 조금씩 열 것이다. 물은 가장 약한 물질이지만, 못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고 딱딱한 바윗돌도 깎아서 둥글게 만든다. 유순한 말도 이와 같다. 온유는 성도의 덕이며 하나님의 종들의 덕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2:24-25,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 .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16절]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잠언 24:13에서는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고 말했으나, 본문은 꿀을 과식하면 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절제에 대한 교훈이라고 본다.
꿀뿐 아니라, 모든 맛있는 음식이 다 그러하고 세상의 모든 즐거운 일들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을 절제 있게 사용해야 한다. 절제는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덕의 하나이다.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관해 전했다(행 24:25). 절제는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 . .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실상,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허무하다(전 1:2). 그러므로 시편 39편은 모든 사람이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다고 표현하며 우리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라고 말하였다(시 39:6-7). 사도 바울은,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저것을 다 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고전 6:12-13).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임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느니라”고 말한다(요일 2:15-17).
물론, 금욕주의가 대안은 아니다. 전도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중에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우며 허무한 세상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교훈하였다(전 2:24; 5:18; 9:9). 바울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며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딤전 4:1-5).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자가 되어 그가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끝까지 완수함으로 우리를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자.
거짓 은사를 자랑하거나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다. 우리는 세상 일이나 신앙생활이나, 기도도 구제도 허풍으로나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면서 하지 말고 조용하게 착실히 하자.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조급하게나 감정적으로 행하지 말고 범사에 참고 인내하며 온유한 말, 유순한 말로 자기 의견을 말하며 주장하자.
우리는 꿀을 적당히 먹고 과식하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의 즐거움을 적당히 누리며 지나치지 말고 절제의 덕을 가지자.
[헬라어성경 마가복음 1장 설교] 열병으로 고통당하는 베드로 장모(막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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