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창세기 성경주석 6장 강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창 6:1-3)

두란노 서원 2022. 11. 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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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창 6:1-3)

 

창세기 6장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면서 타락하게 된다. 셋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가인의 후손들과 결혼한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아내로 삼았다. 눈에 좋은 것만 취하고 영적인 것은 버렸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었음을 한탄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기간이 120년이 되고 인간이 육체로 있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했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그리고 악한 세상에 대한 경고가 되기 위해 옛 세계가 멸망한 이야기에 접하기 전에 그 세상의 타락성과 하나님에 대한 배신과 반항에 관한 기사를 우리가 충분히 보게 된다. 그 멸망은 절대 주권에 속한 행동이 아니라 필연적 정의에 속한 행동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의 영예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옛 세계에 악을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된 두 가지 사실을 보게 된다.

 

Ⅰ. 인류의 증가.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축복의 결과였으나(1:28), 인간의 타락은 이런 축복을 남용하고 왜곡시켜 그 축복은 저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죄는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큰 죄악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잠 29:16). 죄인이 많아지면 그만큼 죄악도 더 많아지는 것이며, 범법자들이 번성할수록 사람을 대담하게 만드는 법이다. 전염병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가장 세력을 떨치며, 죄악은 파급력이 있는 문둥병이다. 따라서 신약의 교회에서는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을 때에 원망하는 말도 야기되었던 것이다(행 6:1). 민족의 수효가 증가된다고 하여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을 더하게 하는 것은 아님을 볼 수 있다(사 9:3). 수가 많은 가정은 악한 가정이 되지 않도록 잘 다스려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Ⅱ. 잡혼(2절). “하나님의 아들들(즉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신앙 고백자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지라”. 사람의 딸들은 속되고 하나님에 대해 이방인들이며, 경건치 못한 자들이었다. 셈의 자손들은 마땅히 그들 자신의 순결을 보존하며 배신을 증오해야 했지만, 자신들을 지켜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라고 했으니, 파문당한 가인의 종족과 혼합된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결혼의 잘못은 무엇인가?

 

1. 그들은 단지 외모만으로 상대를 택했다.

 

2. 저들은 저들 자신의 타락한 욕정이 시키는 대로 택했다. 그들은 누구의 충고를 듣거나 의논할 것도 없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를 아내로 삼았다.

 

3. 그러나 그 결과는 악하게 드러났으니,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고 이방인 아내를 취했다”(고후 6:14)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인에게는 금지된 사항이었다(신 7:3, 4). 그것은 솔로몬의 변절의 불행한 계기가 되었고(왕상 11:1-4),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사악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스 9:1, 2). 신자들은 그들 자신이나 그 자녀들의 결혼에 있어서, 신앙 고백의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함을 알자. 선한 자가 악한 자를 개심케 하는 것보다는 악한 자가 선한 자를 더 속히 타락시킨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동의 없이 결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원수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면 그의 자녀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이방의 여인들과 결혼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의 표징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이 그들에게서 물러나리라고 위협하신다. 신앙에 위배된 결혼으로 그들은 비탄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은 심판으로 벌받게 된다. 옛 세계의 큰 악의 또 다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여호와의 영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의 신앙이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그들에게 경고하셔서 성령을 진노하지 않게 하고 기도로써 늘 성령과 함께하도록 했었다. 이 구절 가운데서 다음 사실을 살피자.

 

Ⅰ.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영으로 사람과 함께할 것만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당시에 하나님의 성령은 노아의 전도를 통해(벧전 3:19, 20), 또한 양심의 가책을 통해 인간들과 함께하셨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헛되게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영이 영원히 함께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해야겠다.

 

1. 성령은 양심의 가책과 권면으로써 죄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

2. 비록 성령은 오랫동안 함께 한다 해도, 훼방하고 억제하고 거부하면 영원히 함께하지는 않으신다(호 4:17).

3. 은혜의 성령이 떠난 자들은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Ⅱ.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결단의 이유.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이는 그들이 어찌할 수 없이 타락하고 육욕적이며 음탕해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흑인이 자기의 피부를 바꿀 수 있겠는가? “그도 역시”, 즉 그 모두가 한결같이 육체의 오욕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이 있다.

 

1. 성령이 깃들이기를 거부하고 그것을 헛되게 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요 육체를 따르려는 영혼의 경향 때문이다.

2. 죄인이 오랫동안 그런 관심에 집착해 성령에 반대하고 육체의 편을 들게 될 때, 성령은 마땅히 그 역사를 그만두고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 성령과의 동행을 박탈당한 자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내주(內住)를 잃어서는 안 된다.

 

Ⅲ.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된 집행 유예.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그토록 오래도록 그들이 받아 마땅한 심판을 연기하노라. 돌이켜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여유를 주노라.” 정의는 “그들을 잘라 버리시오”라고 하고, 자비는 “일 년만 더 기다려 주시오”라고 한다. 면할 수 있는 자비가 정의보다 우세를 지키는 한 120년 동안 집행 유예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내하고 관용하는 시간은 상당히 길지만 항상 한계가 있다. 집행 유예가 용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비록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오랫동안 참기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참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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