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욥기 22장 하나님 말씀] 그릇된 위로자(욥 22:1-30)

두란노 서원 2020. 12. 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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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욥기 22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그릇된 위로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욥이 고난 받을 때 욥의 세 친구가 와서 말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위로를 한다고 하지만 위로가 아니라 분노만 더 나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때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여건과 자신의 처지에 따라 말하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릇된 위로자(욥 22:1-30) 

 

<서론>

이제 욥의 친구들과 세 번째 변론이 시작된다. 변론 내용은 1, 2차 변론과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역시 엘리바스의 3번째 변론도 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본론>

 

1. 그릇된 전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1-5)

엘리바스는 인간의 선악 간 행위로 어떤 영향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에게 욥의 불행의 원인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이든 악이든 무슨 영향을 미치겠느냐고 말합니다. 곧 하난님은 완전하시며,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인간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시거나, 인간의 어떤 행위로 인해 영향을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엘리바스의 전제는 스스로 자가당착적인 오류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엘이바스는 하나님을 상벌에 무관하신 분으로 말하고 나서 욥의 고난에 대해서는 인과응보적인 신앙관을 고집하고 있기 매문입니다.

 

결국 엘리바스의 관심은 하나님의 자 충족성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욥을 정죄하는 데 있었습니다. 곧 고난은 죄의 결과이다. 욥은 고난 받는다. 그런고로 욥은 죄를 범했다는 논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교제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안타까위 하시고, 근심하기 까지 하십니다(3:17). 엘리바스는 이 같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을 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집스러운 신념을 무리하게 적용시키기 위해 그릇된 전제를 세웠습니다. 진정한 위로자라면 욥이 처한 고난의 자리에서 묵묵히 그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구원의 은총을 구했어야 했습니다.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 자신의 그릇된 지식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일은 말아야 한다.

 

2. 순전한 자를 정죄했기 때문입니다(6-10).

 

엘리바스는 욥이 고난 받는 이유가 죄에 있다고 전제하고, 욥의 죄상을 낱낱이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마치 목격한 듯이 말한다. 욥의 죄상은 부자와 권세 있는 자들의 죄상을 연상케 한다. 곧 엘리바스는 부당하게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과부와 고아를 학대하는 파렴치한 죄를 욥이 저질렀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엘리바스가 지적하는 것과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욥은 구제와 선행에 앞장섰던 순전하고, 후덕한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엘리바스는 자신의 속 좁은 논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순전한 욥을 가장 파렴치한 자로 모함하고, 정죄한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을 위로하러 온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엘리바스의 위로란 곧 욥을 괴롭히고 정죄하는 것이었으니, 엘리바스는 욥에게 있어 고통을 가중시키는 자일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참된 위로자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엘리바스처럼 위로자가 아니라 고난 받는 자를 더 괴롭히는 경우는 혹 없습니까? 고통을 나누며,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신비를 무리하게 적용했기 때문입니다(11-20).

 

욥은 불가해한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서 깊은 고난에 빠졌다. 육체적인 고난은 물론 정신적인 고통에 이르기까지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때문에 욥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디 온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하나넘께 대한 욥의 이 같은 태도롤 오히려 가증스러운 불신앙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엘리바스에게 있어서 욥의 문제는 고난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지었다는 전제 하에 욥에게 내려진 고난을 해석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절대성, 하나님의 공의를 내세워 욥의 고난을 해석하였습니다. 곧 하늘에 계시사 초월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에 따라 죄를 지은 욥은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바스는 능숙하게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한 고난이라면 그 해결책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바스 권면은 욥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해 말하고, 하나님과 화목할 것을 촉구하는 등의 위로는 욥의 상황과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태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위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는 엘리바스가 자기의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그릇 해석하는 깃과 같은 오류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항상 말씀에 깨어 있어서 먼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과 말씀의 능력으로 위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들은 신앙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독선적인 성향을 띠기 쉽다. 그러나 신앙 연륜이 깊어간수록 자가가 강해지기보다는 자기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주권이 높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엘리바스처럼 교만의 길로 그릇된 신념을 고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웃의 아픔을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의 칼날을 들이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즉 우리는 신앙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긍휼과 자비의 심정으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동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든 자기주장을 절대화한다든지, 자기 논리나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정녕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열심을 내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때 우리 또한 참된 신앙의 위로자가 되지 않겠삽니까?(요 9:2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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