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성경지명 하나님 말씀] 루스드라 Lystra

두란노 서원 2020. 12. 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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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지명 하나님 말씀 중에서 루스드라라는 신약성경 지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성경 지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믿음 생활에 큰 도움을 얻게 됩니다.

 

루스드라 Lystra

 

루스드라의 위치와 지형적 특징을 보면 초기 역사에 의하면 루스드라라는 이름은 분명히 루가오니아(Lycaonia)일 것이다. 1885년에 스테렛(J.R.Sterrett)은 루스드라의 위치를 루가오니아 지역의 이고니온(Iconium) 남남북으로 약 29Km 떨어진 터어키의 마을인 하툰 사라이(Hatun Srai:숙녀의 저택) 북쪽에 있는 커다란 언덕으로 보았다. 이 지역은 두 개의 커다란 강이 교차하는 후미진 곳에 들어선 마을이었다. 아마도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헬레니즘이 루스드라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했다.

루스드라의 역사를 보면 지리적 약점에도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비시디안 안디옥과 함께 루스드라를 주후 6년에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하였다. 따라서 두 도시를 연결할 로마 도로(황제로)가 개설되었다. 로마는 이전의 셀루시드와 아타라리드 통치 이후에도 루스드라를 한동안 다스렸다. 갈라디아의 아민타스(Amyntas)는 죽을 때 이 성읍을 로마 인들에게 유증(遺贈)하였다(주전 25). 아우구스투스의 장군들은 갈라디아 지역의 방어를 위한 로마 수비대에 어울리는 지역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루스드라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루스드라의 식민지 동전들과 2세기 말엽에 안디옥에 보낸 '화해의 입상'이 발견되었다.

 

루스드라의 언어와 종교관을 보면 헬라어보다 고대 지역의 언어인 루가오니아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루스드라가 헬레니즘에 대항하여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 말은 주후 6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더베와 동일지로 여겨진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낫게 하였다(행14:8-18). 그때 몰려든 사람들이 라틴어로 말했는데 이는 그들이 로마의 식민지에 있던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주민들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루스드라가 로마의 식민지였을지라도, 사도행전의 기사는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 법한 로마의 치안이나 사법의 암시가 없다. 신약에서도 이곳이 식민지였다고는 밝히지 않는다. 루스드라 성읍의 성문들 바로 앞에 제우스 신전이 있었다. 칼더(W.M.Calder)가 발견한 3세기 중엽의 비명은 '제우스의 제사장들'과 제우스에게 헌증 된 헤르메스(Hermes)의 입상을 말한다따라서 사도행전 기사의 역사적 가능성을 확증한다. '기도를 듣는 자'(Hearer of Prayer:제우스)와 헤르메스에게 헌증된 제단도 발견되었다.

 

<원어 설교>

 

루스드라 Λυστρα : 뤼스트라

 

행 14: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루스드라는 루가오니아 지역의 한 성읍이며 갈라디아 속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지로 로마 국도가 통과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고친 후 신으로 추앙되었던 곳입니다.

 

행 14: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행 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행 14: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 14: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행 14: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행 14: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후에 이곳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 제자로 삼습니다.

 

행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행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행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루스드라는 종교심은 강했지만 지식은 없었던 곳입니다. 선교 여행 중이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칩니다. 이때 시민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그들을 경배하고자 합니다. 제우스는 날씨를 지배하는 신으로 신과 인간을 지배하는 최고 통치자이며, 헤르메스는 그의 대변자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얼마나 종교심이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섬기고자 하는 열망은 있으나 지식이 없었습니다. 아테네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모습은 참된 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섬긴다는 자체에 관심을 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종교는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 구원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행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주실 때 인간은 회개하고 그를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계시는 αποκαλυπτω(아포칼뤼프토)'덮개를 벗기다, 열어젖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우선적인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그러고 나서 인간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서나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기의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어 온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창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서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온 세계를 복음화시킬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바울 다음 세대를 이끌어 복음을 증거 할 디모데를 루스드라에서 부르셨습니다.

행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제자로 삼아 같이 다녔습니다. 제자란 μαθητης(마세테스)로 그의 인격에 영향을 받아 종이 주를 섬기듯 순종하고 고난을 함께 받는 자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모습에서 그 뜻이 확연해집니다. 한 마디로 예수가 가는 곳이면 제자들도 예외 없이 따라다녔습니다. 이런 제자의 본을 따라 이제 우리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초대 교회 때에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렇듯 제자를 생성합니다. 그저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신앙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을 따라 그대로 살아가는 자들을 부르십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수를 배우고자 하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듯 하는 안일한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예수의 제자로 그가 가신 곳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따라갈 마음의 자세가 되어야 진정한 제자의 삶으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고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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