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2장은 욥기서의 핵심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욥의 회개와 갑절의 축복으로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욥이 회개한 것은 율법주의 신앙에서 복음주의 신앙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욥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았지만 자기의 의가 드러났습니다. 의인이라는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 욥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교만을 책망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는데 직접 보았다고 했습니다. 체험적 신앙이 들어갔습니다. 욥이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은 고난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율법주의 신앙에서 복음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행위의 신앙에서 믿음의 신앙으로 돌어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갑절의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욥의 회개와 회복(욥 42:1-17)
[1-6절]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 . .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말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자이시며 무엇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주권자이시다. 2절의 ‘경영’이라는 원어(메짐마)는 ‘생각, 목적, 계획’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께 사람은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 3절에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라는 말은 38:2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되받아 말한 것 같다. ‘이치’라는 원어(에차)는 ‘의논, 뜻’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고 본다. 욥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도전적인 말들을 하였다. 이제 그는 그런 말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잘 모르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해 무례한 말을 삼가야 한다.
욥은 하나님께 또 말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과거에 선진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귀로 듣기만 하였으나 이제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다고 고백한다. 욥이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다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친 음성을 듣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한다. 그는 의로운 자이었지만 고난 중에 하나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복하지 못하고 몇 번 도전적인 말을 하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그 무례한 말까지 회개하는 것이다. 욥은 그가 당한 고난과 그의 부족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고 있었다.
[7-9절]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 . . .
여호와께서는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에게 노하셨다. 그 까닭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말이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욥은 그 친구들보다 하나님에 대해 비교적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는 자신이 의롭게 사는데 왜 하나님께서 그를 고난 중에 두시는가 하고 불평스런 말을 했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이 그와 그의 자녀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줄곧 말했었다. 그것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욥을 정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 없이 남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노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번제 같은 제사 형식은 모세 시대 이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번제’는 속죄와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는 제사이었다. 욥에게 잘못된 말을 했던 친구들은 욥에게 가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들을 위해 번제를 드려야 했다. 사람에게 잘못한 것은 그 사람에게 가서 푸는 것이 옳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은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으나, 인간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벌 때문에 온다고만 알고 있었고 욥을 그릇되이 정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드린 번제를 받으셨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셨고 그 중심을 받으셨다.
[10-17절]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 . . .
욥이 그 벗들을 위해 빌매 여호와께서는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이전의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 자신을 비방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주께서는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마 5:44).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해 빌 때 하나님께서는 욥의 곤경을 돌이키셨다. 그는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셨다. 물질의 복도 하나님의 복이다(창 26:12-13).
욥이 회복되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들과 또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해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다. 그것은 욥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욥의 노년에 복을 주셔서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셨다. 그는 양 14,000마리와 약대 6,000마리와 소 1,000겨리[2,000마리]와 암나귀 1,000마리를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다. 그는 첫째 딸을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을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을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다.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없었다. 사람의 외적인 아름다움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욥은 그들에게 그 오라비들에게처럼 기업을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욥에게 물질적 유여함과 가정적인 행복을 주셨다.
그 후에 욥은 140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다. 욥은 장수하였다. 그는 200세 이상을 살았다고 추측된다. 그의 연령을 보면, 욥은 아브라함과 이삭 때의 인물이라고 보인다.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를 살았다.
우리는 고난 중에 무례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판단하지 말고, 겸손히 믿고 참고 순종하자. 나의 죄로 인한 징계의 고난이라면 즉시 회개해야 하지만,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고난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맡기며 참고 기다려야 하고 결코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하는 불평스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욥기의 교훈이다.
우리는 욥의 친구들처럼 고난당하는 이웃에 대해 함부로 정죄하지 말아야 하고 특히 그의 고난의 이유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 더욱 그러해야 한다. 모든 고난이 다 특정한 죄의 징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행한 사람이 와서 사과하면 용서해야 하며 그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교훈하셨다(마 18:22).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애가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그에게 복종하자. 우리는 욥처럼 경건하고 의롭게 흠과 점이 없이 온전하게 살아야 하고, 그러나 고난 중에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레위기 14장 좋은 성경 말씀] 나병환자의 정결법(레 1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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