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 23장에서는 의인이 악인과 교제하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의인을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악한 자들과 함께하지 말고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술을 먹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질, 자녀 징계, 술(잠 23:1-35)
1-8절, 탐식, 재물, 악인의 대접
[1-3절]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그 진찬(珍饌)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
‘네 앞에 있는 자’라는 구절을 영어성경들은 ‘네 앞에 있는 것’이라고 번역했다(KJV, NASB, NIV). 그것은 앞에 차려진 식탁을 가리킨다. ‘진찬(珍饌)’은 ‘맛 좋은 음식’을 가리킨다. ‘간사하게 베푼’이라는 원어(케자빔)는 ‘속이는’이라는 뜻이다(NASB, NIV).
본문은, 관원이 베푼 진수성찬을 조심하고 그것을 탐하지 말고 네 목에 칼을 두라고 교훈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간사하게 베푼 식물, 즉 속이는 식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순수한 대접이 아니고 나쁜 의도를 가진 계산적인 대접이며 시험과 올무가 될 식탁이며 흠 잡힐 빌미가 될 식탁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대접받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악인이 베푸는 대접은 피하는 것이 지혜이다. 악한 자의 대접을 받으면 악한 일에 동참하기 쉽고 한번 대접을 받으면 그 후에는 악한 자를 끊거나 물리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는 순수한 대접을 주고받아야 한다. 순수한 대접이란 존경이나 사랑을 가지고 베푸는 대접이다. 그것은 나사로의 형제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 잔치하며 대접한 것과 같은 것이다(요 12:2). 또 주께서는 자기를 식사에 청한 어떤 사람에게 교훈하시기를,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청하라고 하셨다(눅 14:12-13).
[4-5절]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애쓰다’는 원어(야가)는 ‘수고하다, 피곤케 하다’는 뜻이고, ‘버리다’는 원어(카달)는 ‘끊어버리다’는 뜻이다. 성도는 부자 되려고 피곤하게 수고하거나 애쓰지 말아야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지혜도 끊어버려야 한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였다(딤전 6:9-10).
성도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돈 버는 지혜를 버려야 할 이유는 돈이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느 날 독수리처럼 날아가 버릴 것이다. 또 내가 죽으면 그것은 남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시편 39:6,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누가복음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야고보서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또 그의 공급하신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6:7-8,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6-8절]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하지 아니함이라.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악한 눈’은 악한 마음을 반영하는 눈이다. 그것은 상대를 미워하고 약점을 잡고 해치려 하며 인색한 눈이다. 모세의 율법은 제7년 면제년이 가깝다고 가난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꾸어주지 않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였다(신 15:9). 잠언 28:22도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다고 말하였다.
성도가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고 그 진수성찬을 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의 마음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더러 먹고 마시라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입술의 말뿐이며 그 마음은 우리의 흠을 잡고 우리에게 시험과 올무를 놓으려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낸다(마 12:35). 악한 자의 대접은 진심이 아니다. 그것은 가식적인 것이며 속이는 것이다. 그것은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한 자의 대접을 조심해야 한다. 이미 1-3절에서도 관원이 간사하게 베푼 진찬을 탐하지 말고 네 목에 칼을 두라고 교훈하였었다. 악한 자의 대접은 나쁜 의도를 가진 대접이므로 거기에 빠지면 해를 당케 될 것이다. 우리는 악한 자의 대접을 좋아하지 말고 그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남의 대접받기를 좋아하지 말고 남을 대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남을 대접할 때는 선한 눈으로, 진심과 사랑과 겸손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음식 대접을 받을 때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속이는 음식일지 모르므로 그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대접할 때는 아무 조건 없이,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야 하지만, 부자가 되려고 피곤하게 수고하며 애쓰지 말고 돈 많이 버는 지혜도 끊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돈의 헛됨을 알고 하나님만 믿고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우리는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고 그 풍성한 식탁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대접받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대접할 때에는 진심과 사랑과 겸손으로 대접해야 한다.
9-14절, 미련한 자, 옛 지계석, 교훈, 징계
[9절]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본문은 미련한 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가 너의 지혜로운 말 혹은 ‘너의 말의 지혜’(원문, KJV, NASB)를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26:16에는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고 말했는데, 미련한 자도 그러하다. 미련한 자의 특징은 자신의 미련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소에 경 읽기라는 속담이 있다. 소에게 성경이나 종교의 경전을 읽어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미련한 자는 깨닫는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7:6). 하나님의 진리의 자세한 내용을 미련한 자에게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진리를 무시하고 비방하고 모욕한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자주 말씀하셨다(마 11:15 전통본문; 13:9, 43 전통본문; 눅 8:8; 14:35). 미련한 자들에게는 먼저 심령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며 자신이 피조물이며 죄성을 가진 부족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지식을 사모하게 된다. 성도는 자신의 무지함과 미련함을 깨닫는 자이다. 시편 73편의 저자는 “[내가]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라”고 고백하였었다(시 73:22).
[10-11절]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救贖者)는 강하시니 너를 대적하사 그 원(寃)을 펴시리라.
본문은,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외로운 자식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한다. ‘지계석’은 ‘경계’ ‘경계 표시’를 말한다. ‘외로운 자식’(예소밈)이라는 원어는 ‘고아들’이라는 뜻이다. 본문은 옛 경계 표시를 옮기지 말고 고아들의 밭을 침범치 말라고 말한다. 사람이 옛 경계 표시를 옮기고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는 것은 불의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질적 이익 때문에 자기 양심을 속이고 자기 양심을 더럽히는 악한 일이다.
본문은, 이는 그들의 구속자(救贖者)께서 강하시며 너를 대적하사 그 원(寃)을 펴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의 아버지이시며 그들의 구속자(救贖者)이사다. 시편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고 진실하시다. 그는 의와 진실을 기뻐하시고 불의와 거짓을 미워하시며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는 억울한 일 당하는 고아들을 구원하시며 그들을 억울케 하는 자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성도는 물질 문제에 있어서 불의와 불법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정직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돈을 벌고 자기 재산을 관리하고 또 돈을 사용해야 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하고, 또 잠언 20:17은,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장로와 집사의 자격을 말할 때,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아니하는” 것을 들었다(딤전 3:3[전통본문], 8). 그것은 성도의 물질생활이 어떠해야 함을 교훈한다.
[12절] 훈계에 착심(着心)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훈계’라는 원어(무사르)는 ‘교훈, 훈계, 징계’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바른 길을 교훈하고 잘못된 것을 책망한다. ‘지식의 말씀’은 진리의 지식의 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의 말씀이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식의 말씀이며, 교훈과 책망의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바른 삶에 대해 가르쳐준다. 그것은 경건과 의와 선에 대해 가르쳐준다. 잠언 1:7-8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였다. 또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증거하였다(딤후 3:16-17).
‘착심(着心)하다’는 말은 ‘마음을 가져오다, 마음을 두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마음을 가져와야 한다. 입술로나 겉모양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신 6:5). 귀를 기울이는 것도 마음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마음이 없고 다른 생각을 하면, 바른 말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들으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13-14절]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쉐올) [hell(KJV), Sheol(NASB), death(NIV)]에서 구원하리라.
본문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고 말한다. ‘훈계’는 교훈과 징계를 포함한다. 어른들에게도 훈계가 필요하지만, 아이에겐 더욱 필요하다. 어릴수록 교훈이 필요하고 매가 필요하다. 신명기 6:4-7,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에베소서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본문은 또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陰府)[지옥]에서 구원하리라”고 말한다. 징계는 참된 자녀 사랑이다. 잠언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9:18,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자유방임주의는 사랑이 아니다. 엘리 제사장이 죽은 것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自請)하였으나 금하지 않은 죄 때문이었다(삼상 3:13).
교훈과 징계는 자녀를 바른 사람 만드는 데 유익하다. 매는 그의 영혼을 음부(陰府) 곧 지옥에서 건져낼 것이다. 잠언 22:15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말했고. 잠언 29:15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다.
우리는 미련한 자들에게 성경 진리의 지식을 다 말해줄 필요가 없고 단지 하나님과 인간의 죄에 대한 기초적인 진리들을 말해주면 될 것이다. 미련한 자들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이 죄악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고 고아와 과부의 밭을 침범하지 말자. 우리는 남의 재산을 빼앗지 말고 불의의 이익을 탐하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항상 정직하고 의롭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우리는 훈계에 마음을 두고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계와 지식의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두고 우리의 귀를 기울이자. 그 말씀에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다.
우리는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필요하면 체벌도 함으로 그 영혼들을 죄와 지옥에서 구원해야 한다. 우리는 매의 유익을 알고 자녀들이 잘못 행할 때 매 들기를 싫어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15-19절, 지혜, 정직, 하나님 경외, 정로(正路)
[15-16절]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본문은 경건한 부모가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지혜롭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마음이 지혜로우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계명대로 행한다. 반면에, 마음이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신임하고 그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며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또 우리의 입술이 정직을 말하기를 원하신다. 마음에 지혜가 있으면 입술이 정직을 말할 것이다. 사람은 마음에 든 것을 입으로 말한다. 마음이 미련하면 미련한 것, 곧 불의하고 거짓된 것을 말할 것이나, 마음이 지혜로우면 지혜로운 것, 곧 경건과 의와 선과 진실을 좋아하고 말하고 전파하고 행할 것이다.
본문은, 그러면 “내 마음이 즐겁고 유쾌하리라”고 말한다. 자녀들이 지혜롭게, 정직하게 살면, 부모에게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또 우리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신다. 요한이서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한삼서 3-4,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이것은 목사의 기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다.
[17-18절]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죄인의 물질적 부요와 세상적 성공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들의 형통을 부러워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대신, 세상의 것을 크게 여기는 자이며 세상 사랑과 세상 욕심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섬기며 그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지혜이고 의이며, 참된 평안과 행복과 승리의 길이다.
본문은 그렇게 할 때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사람은 장래가 있어야 한다. 현재 좋은 것만으로는 안 된다. 현재 좋은 것 같아도, 내일 망하는 자들이 있고, 또 마지막 날 지옥 가는 자들이 많이 있다. 주께서 주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부자는 이 세상에서 부요하게, 호화롭게 살았지만, 죽은 후에 지옥, 고통의 장소에 던지웠다(눅 16:19-23).
그러나 현재 환경적으로, 세상적으로 나쁜 것 같아도 내일 잘 되는 자들이 있다. 다윗이나 모르드개가 그러하였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잠 24:16). 현재 불행하게 죽는 것 같아도 장차 영생할 자들이 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러했고, 주의 이름 때문에 죽은 순교자들이 그러하다. 주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5:10-12). 성도들의 복된 부활과 천국과 영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19절]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正路)로 인도할지니라.
“너는 들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과, 그것에 근거한 경건하고 바른 교훈을 들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지혜를 얻는다. 성경은 항상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대조시킨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이지만,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뜻과 계명을 거역하고 죄만 짓는 자이다. 모든 사람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 이 둘 중에 하나이다.
본문은,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지혜를 얻고, 또 지혜를 얻어야 우리의 마음을 정로(正路)로 인도할 수 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다. 잠언 23:7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爲人)[사람의 됨됨이]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영혼의 활동 곧 지정의(知情意)의 활동이다. 사람의 마음이 곧 그의 인격을 형성한다. 마음에서 말과 행동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잠언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정로로’라는 원어(베데렉)는 ‘그 길로’라는 뜻이다. ‘그 길’은 인생의 바른 길(正路)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교훈하신 길이다. 세상에는 정로가 아닌 길들이 많다. 사사 시대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다(삿 21:25). 그러나 성경만이 인생의 정로를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였다(딤후 3:16-17).
우리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가 되고 입술로 정직을 말하는 자가 되자. 이것이 부모에게, 또 하나님과 목사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죄인들의 물질적 부요와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의 명하신 계명들을 즐거이 순종하고 그의 약속하신 복된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소망하자. 복된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어 우리 마음을 정로(正路)로 인도하자. 인생의 정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적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성경적 생활을 하자.
20-25절, 탐식, 부모 청종, 진리, 의인
[20-21절]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이는]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본문은,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친구는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잠언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고린도전서 15:33,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그러므로 술을 즐겨하는 자와 사귀면 술 마시는 것을 배우고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성도는 술 취함을 경계해야 한다. 술 취하는 것은 방탕한 것이며(엡 5:18) 술 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 6:10). 그러므로 장로의 자격 중에 술을 즐기지 않는 것이 포함되고 집사의 자격 중에도 술에 인박이지 않은 것이 포함된다(딤전 3:3, 8). 또 고기를 탐하는 자와 사귀어도 나쁜 영향을 받는다. 먹는 것을 탐하는 것은 좋지 않다. 먹는 것이 즐거움의 하나이지만, 사람은 일하기 위해 적당하게 먹어야지, 먹는 것 자체에 너무 빠져서는 안 된다. 천국 소망을 가진 성도는 먹을것과 입을 것이 어느 정도 있으면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딤전 6:8). 또 잠도 너무 많이 자는 것은 게으른 일이므로 그런 자와도 친근히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잠도 적당하게 자고 부지런하게 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본문은, “이는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술을 즐겨하는 자나 고기를 탐하는 자와 사귀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런 삶이 무절제하고 낭비적이고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또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게으른 삶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게으름도 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자들과 친근히 하지 말아야 한다.
[22절]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십계명에 명시된, 사람의 기본적 의무이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레위기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 속에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포함된다.
부모 공경의 법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인간 관계의 법들 중에 가장 첫째 되는 법이다. 이 법을 잘 지켜야 다른 법들도 잘 지킬 수 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이 법은 사회의 기본적 질서를 지키는 법이다. 가정은 사람의 마음과 인격을 단련시키는 훈련장이며, 가정에서 잘 하는 사람이 사회에서도 잘 할 수 있다.
신약성경도 여전히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할 것을 강조한다. 에베소서 6: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골로새서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를 멸시하고 거역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구약의 율법은 자기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는 자, 또 순종치 않고 거역하는 자를 정죄하며 반드시 죽이라고 엄히 명하였다(출 21:15, 17; 신 21:18-21; 잠 30:17).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바른 것을 말하고 자기 자녀가 바른 사람 되고 좋은 사람 되기를 원하며 교훈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죄 지으라는 말 외에는 부모의 교훈을 잘 듣고 순종해야 한다. 또 어머니가 늙고 힘이 없고 정신이 흐려졌다고 해서 그를 경히 여겨서는 안 된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과 수고를 잊지 말고 보답해야 한다.
[23절]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본문은, “진리를 사라”고 말한다. ‘산다’는 원어(카나)는 ‘얻는다, 산다’는 뜻이다. 잠언 4:5,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사람은 진리를 어떻게 사며 얻는가?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포도주와 젖’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킨다. 사람이 진리를 얻는 것은 돈으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그러나 참된 회개와 믿음과 기도와 간구로 얻는다.
잠언 2:1-6,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본문은 하나님의 진리를 산 후에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와 명철은 세상의 그 어떤 것들, 즉 육신적 쾌락이나 세상 권세나 명예와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시편 19:10은 “[하나님의 말씀은]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고 말했고 시편 119:72, 127은,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지혜는 금과 은이나 진주보다 낫고, 그것은 또한 장수(長壽)와 부귀(富貴)와 평강의 길이며 또 영생의 길이다(잠 3:13-18).
[24-25절]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과 상급이다. 시편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과 상급이며 선물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말씀의 교훈대로 잘 교육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했다(엡 6:4).
부모는 자녀들을 의롭고 지혜롭게 잘 양육할 때 그 자녀들로 인해 크게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명대로 살며 죄 짓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평안의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그 자녀들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0:1은,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한다”고 말하며, 잠언 15:20도,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미련하고 악한 자녀는 부모에게 슬픔과 고통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자녀는 하나님의 징벌과 재앙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언 10:1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라”고 말하였고, 잠언 17:25는,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이 자녀들에게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교훈한 것이다.
우리는 술을 즐기고 고기를 탐하고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와 사귀지 말고 또 그런 삶을 본받지 말고, 바르게, 절제 있게, 부지런하게 살자.
사람은 자기를 낳고 기른 부모님, 특히 늙으신 부모님을 경히 여기지 말고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와 지혜를 사되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와 믿음으로, 기도와 간구로 사자. 그러나 산 후에는 그것을 세상의 것들과 바꾸지 말자.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과 지혜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부모님도 기쁘게 하자. 또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그들로 복된 자녀가 되게 하자.
26-35절, 경건, 금주(禁酒)
[26-28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그는 강도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강도같이’(KB, NASB, NIV)라는 원어(케케세프)는 ‘먹이감을 위해’(BDB, KJV)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궤사한 자’라는 원어(보게딤)는 ‘배신적이게, 불신실하게 행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본문은 우리에게 음행의 죄를 경계하라고 교훈한다. 부부의 거룩한 관계를 벗어난 음행의 죄는 인간의 죄악들 중에 큰 죄악이다.
본문은 음녀가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며 먹이감을 위해 매복하여 사람을 넘어뜨리며 배신적이게, 불신실하게 행하는 자들이 많아지게 한다고 말한다. 음녀는 의도적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여인이다. 그는 사람이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과 좁은 함정 같다. 음행하는 자는 배우자와 가정에 또 사회에서 불신실한 자이다.
음행을 피하는 대책은 무엇인가? 본문은 그 대책으로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성경적 교훈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잠언 4:23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해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길을 즐거워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길과 교훈을 눈으로 즐거워할 때, 그 말씀은 우리를 음행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시편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잠언 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잠언 6:23-24,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음행은 음행에 떨어질 위험이 있는 환경을 피하는 것도 지혜이다. 잠언 5:7-8,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또 하나님께서 주신 부부의 관계도 잘 지켜야 한다. 잠언 5:18-21,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살피시느니라(원문).”
[29-35절]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본문은 술의 폐해에 대해 자세히 증거한다. 술 취하는 자들에게는 재앙과 근심과 분쟁과 원망과 까닭 없는 창상과 붉은 눈이 있다. ‘술에 잠긴 자’라는 말은 ‘술을 오래 마시는 자’라는 뜻이다. 술은 뱀같이 물며 독사같이 쏠 것이기 때문에 보지도 말아야 한다. 또 술 취하는 자들의 눈에는 괴이한 것(자로스, ‘이상한 여자들’[KJV])이 보일 것이요 그들의 마음은 망령된 것[패역한 것]을 발할 것이며 그들은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다. 또 사람이 그를 때리거나 상하게 하여도 아픈 감각이 없을 것이다.
술의 폐해들은 크다. 술은 슬픔과 재앙, 분쟁과 원망과 상처 등을 가져오고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쏘며 눈에 이상한 여자들이 보이고 마음에 패역한 것들을 말하게 만든다. 또 마음은 허황하게 되고 감각이 없어지며 비정상적이고 비인격적이고 불성실한 자가 된다. 오늘날 음주는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것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교통사고의 주범이 되었다. 술취함은 방탕한 것이며(엡 5:18) 특히 술 취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전 6:10; 갈 5:21).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감독의 자격으로 술을 즐기지 않는 것을 들었고 집사의 자격으로도 술에 인박이지 않는 것을 들었다(딤전 3:3, 8).
음행은 큰 죄이며 거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음행을 피하는 대책은 경건한 삶이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두며 그의 모든 교훈을 즐거워하며 힘써 행해야 한다. 또 우리는 음행에 넘어질 수 있는 환경을 피하는 것이 지혜이며 또 결혼과 부부 관계를 잘 지켜야 한다.
우리는 술의 여러 가지 육체적, 경제적, 도덕적 폐해들을 알고, 특히 술취함은 방탕함이며 천국에 못 들어갈 큰 죄악임을 알고, 술을 멀리하고 쳐다보지도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와 능력을 얻고 맑은 정신으로, 절제 있게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출애굽기 27장 주일 성경말씀] 번제단, 성막뜰, 등불(출 2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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