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5장에서는 속죄 제사와 속건 제사의 규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제사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제사의 모형입니다. 선택받은 백성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제사를 예표 합니다. 속죄 제사가 우리의 원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제사를 상징한다면 속건제는 우리의 자 범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원죄와 자 범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대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레위기 제5장 속죄제와 속건제의 규례
먼저 1-6은 속죄제를 요구하는 죄의 유형에 대한 내용입니다.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거짓 증언을 했을 경우, 둘째는 부정한 것에 접촉하여 몸이 부정해진 경우, 셋째는 경솔하게 맹세한 경우로, 이런 경우 속죄제는 죄를 범한 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드려졌는데, 이때 헌제자는 먼저 자신의 입술로 잘못을 자백하고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1: 거짓 증언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떤 범죄 사건과 직, 간접으로 관련이 있거나 또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갖고 있는 자의 증언이 거짓일 때에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유대의 재판관들은 증인을 법정에 출석시키고 진술을 요구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는 후일 대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께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자백하라고 강요한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마 26:63, 64). 뿐만 아니라 사건의 증인 된 자 역시 법정에서 보고 들은 바 사실을 그대로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모세 율법은 사건의 정확한 심리와 판결을 위해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 35:30; 신 19:15; 마 18:16; 고후 13:1).
그런데 증인이 출석하여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제대로 진술치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증인으로 요청을 받은 자는 반드시 사실대로 증언해야 하고, 어떤 이유로든지 침묵으로 진술을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침묵이나 방조로 말미암아 재판 결과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증인도 그 책임에서 궁극적으로 회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정이나 피의자의 위협 등으로 인해 증언을 거부한 증인은 결국 죄인과 한편이나 다른 바가 없습니다(잠 29:24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자는 비록 고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간접적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간주되어 속죄가 필요하였습니다.
증언을 거부하거나 사실 그대로 진술치 않음으로써 죄를 범한 자는 속죄를 위해 속죄제를 드리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입술로 사실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진리 앞에서 침묵하는 자는 그 죄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는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증인이 재판관의 진술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 보고 들은 바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죄가 됩니다. 이처럼 성경의 규례는 인간의 양심의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동해야 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부정한 것과 접촉하였을 경우입니다. 정결 율법상, 부정한 들짐승이나 가축 또는 곤충으로 규정된 것들의 사체를 만진 자는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사체가 저주와 심판의 결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체와 접촉된 자들은 속죄제를 통해 정결을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도록 명령하신 이는 외적인 정결을 통해 내적인 정결, 즉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좇아 택하신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래서 부정한 것과 접촉한 것은 도덕적인 부정은 아니지만, 종교의식상 부정입니다. 이러한 부정은 일상 종교 생활 속에서 무심결에 범하기 쉬운 잘못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소한 실수조차도 엄격히 차단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든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귀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살전 5:22).
‘부지중에’ 죄를 범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유형의 부정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날마다 자신을 돌이켜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에 있지 않도록 삼가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3. 사람의 부정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종 피부병과 문동병에 걸린 자(13, 14장), 유출병에 걸린 자(15:1-15), 설정한 자(15:16-18), 혈루병 걸린 여자(15:25-30) 등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과 무의식 중에 접촉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고범죄로 분류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로 인해 부정해졌을 경우, 단순히 그날 저녁까지만 부정하였기 때문에, 옷을 빨고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정결해질 수 있었습니다.(11:24,39).
4. 잘못된 맹세입니다. 무심중에라는 말은 분별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함부로 맹세하는 것이니다. 어리석게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경솔하게 하는 맹세를 말합니다. 맹세는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민 30:2; 마 5:33). 따라서 이를 어기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호를 훼손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부주의 또는 연약함에 기인한 결과일 뿐 의도적으로 신성 모독은 아니었기 때문에,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하나님 앞에서 하는 모든 맹세를 말하는 것으로, 이런 맹세 뒤에는 인간의 허세와 만용이 자리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지 사악하게 보고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무엇이든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해야 할 성도의 자세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후일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심으로서(마 5:34) 순간적인 혈기나 흥분 또는 위선적인 교만이나 자랑 등으로 하는 모든 헛맹세를 엄히 금지시키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 들 중에 하나라도 범하였을 경우에는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속죄제를 통하여 용서를 받아야만 하였습니다. 즉 죄 사함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자신은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구원의 은총을 사모하는 복음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속죄의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6. 범과: 죄를 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속건제’로 드리되,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것 같지만 맞는 말입니다. 속건제는 원어상으로는 ‘죄’(guilt)인데, 이 단어는 단순히 범죄를 인하여, 그 범과로, 범과를 속하기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속죄제나 속건제나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는 측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문맥상 속죄제로 표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속건제로 번역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죄제가 대신 관계의 계명을(1-4) 범과한 것에 비중을 두고 있으나, 속건죄는(5:14-6:7)는 대인 관계의 계명(5-10)을 범과한 경우까지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제물로는 어린 암양이나 염소를 드립니다. 이 제물은 평민들의 속죄제에 사용된 제물과 동일합니다.(4:27-35) 만약 이때 드려진 제사가 속건제였다면 제물은 흠 없는 숫양이어야 합니다(5:15). 그러므로 이 사실만 보아도 1-4의 규정에 해당되어 허물이 있을 때 드려진 제사는 ‘속건제’가 아니라 ‘속죄제’가 맞습니다.
7-13은 가난한 자의 속죄제 규례입니다. 이들은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드렸습니다. 어린양이나 염소도 준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속죄제는 의무제인 만큼 빈부귀천 없이 누구나 손쉽게 속죄 예물을 구함으로, 반드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사함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예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깨닫는 마음과 더불어 희생 제물의 피를 드림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둘기로 제물을 드릴 때에 그 피는 단순히 단 곁에 뿌린 뒤 나머지를 단 밑에 흘리도록 했습니다. 아마 그 양이 많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반 곁에 뿌리고 흘리는 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이 속죄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새 중에 한 마리 전체를 번제로 드렸습니다. 속죄제에서는 기름 부위를 드려야 했는데, 새의 경우에는 그럴 수가 없어서 전체를 번제로 드리고, 먼저 한 마리는 목을 자르고, 몸통을 가르되 완전히 자르지는 안 습니다.
가루로 들릴 때에는 에바 십분 일을 드립니다. 에바는 구약 시대에 고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단위로, 에바 십분 일은 약 2.2리터(1.2되)를 말합니다. 비둘기 조차도 준비할 수 없는 극빈한 자는 가루라도 속죄제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죄 사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피의 제사에는 합당치 않을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제물은 매일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의 화제물 위에 드려졌기 때문에, 결국 속죄 원리의 중심 사상인 피 제사의 원칙에는 위배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위에 드려지기 때문에 피 제사의 효력을 덧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루를 제물로 드릴 때에는 아무것도 첨가해서는 안 되고, 그중에 한 움큼을 화제물 위에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14-19절은 속건제의 규례입니다. 속건제는 죄사함과 아울러 손해배상의 성격의 제사입니다. 속건제를 드려야 할 때의 종류는 첫째, 여호와의 성물을 범과 했을 경우, 둘째 여호와의 금령을 범했을 경우, 셋째 이웃에게 범죄 했을 경우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물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려 진 거룩한 예물들, 즉 제물, 첫 열매, 십일조 등을 가리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그릇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방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무지나 실수나 경솔함으로 여호와의 성물에 누를 끼쳤을 경우, 속건제를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제사와 함께 반드시 배상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배상은 지정한 가치인데, 모세가 정한 것으로, 제사장 제도가 확립된 이후에는 제사장들이 속건 제물의 가치를 정했습니다(27:12).
성소의 세겔(세겔은 무게의 단위로 약 11.4g입니다)은 무게의 단위였으나 구약 시대에 종종 화폐의 단위로 통용되었습니다. 세겔은 무게로 통용되는 화폐였기 때문에, 그 가치가 시대나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의 도량형 단위를 기준하여 세겔의 무게를 측량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성소의 세겔’입니다. 이 단위는 주로 성전에 내는 세겔에 적용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시장에서 사용된 일반 세겔이 있고, 왕실에서 사용하는 왕실 세겔이 있는데, 왕실 세겔은 일반 세겔의 두배입니다.
16; 범과 하였을 때에 배상은 1/5을 더하였습니다. 제물은 수양으로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두서너 세겔 이상)의 은에 상당하는 흠 없는 숫양으로 유대 전승에 의하면 적어도 1년 이상 된 것이어야 한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17: 금령: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행동의 규범이 되는 여호와의 모든 율법이나 계명입니다(4:2) 원래 여호와의 금령을 어긴 경우에는 속죄제가 드려졌습니다(4:2). 그러나 이처럼 속건제로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보아 두 제사는 거의 구별 없이 드려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6)
부지중에 범하였어도 자신의 허물과 실수를 깨닫는 즉시 정해진 규례를 좇아 속죄제 또는 속건제를 드려야 하고, 죄를 속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벌과금이 부과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마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물질적 보상이 불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립니다.
속건제는 첫째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 한 경우, 둘째,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부지 중에 범하였을 때, 셋째, 이웃에 대하여 범죄 하였을 때에 드렸습니다.
[이사야 29장 주석 강해설교] 예루살렘에 대한 진노(사 2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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