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창세기 아브라함 하나님 말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창 12:1-5)

두란노 서원 2020. 11. 2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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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아브라함 하나님 말씀 중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란 땅에 아버지와 정착하면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갈 바를 모르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데로 갔습니다. 하란 땅을 떠날 때에 하나님이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실 때도 하늘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에 대한 약속을 받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창 12:1-5)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은 두 번에 걸쳐 거듭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그처럼 거듭 받은 약속의 내용은 곧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시리라는 것과 또 그 후손들은 능히 셀 수 없으리만큼 번성하리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그 두 번의 약속은 내용이 동일한 것이지마는 그 약속을 받을 때의 환경이 달랐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약간 다른 점이 있다고 느껴진다. 이제 그것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첫 번째 약속을 받을 때의 환경

 

창세기 13: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란 말로써, 첫 번째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시작된다. 위에 기록된 본문이 바로 그것이다. 창세기 13:1-13지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무엇 때문에 서로 갈라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것을 본 아브라함은 그러한 부끄럽고 비참한 꼴을 이방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창 13:7).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선 골육 형제(삼촌과 조카)가 얼마 안 되는(?) 풀밭 몇 평을 놓고 이방인들 앞에서 서로 다툰다는 것은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이었던가. 아브라함은 슬픈 마음으로 롯을 불렀다. 13:8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것은 아브라함이 롯에게 한 말이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얼마나 처량한 말이었던가. 롯은 물이 넉넉한 기름진 땅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떠났다. 슬픈 마음으로 롯을 떠나보내고 쓸쓸히 돌아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셨다. <바로 그 후에(창 13:14)> 하나님께서는 온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이러한 약속을 주신 것은 바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13:14)의 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재 명심할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을 양보했을 때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주시는 하나님 적은 것을 양보했을 때에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포기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까지 내려주실 것이다.

 

2. 두 번째 약속을 받을 때의 환경

 

창세기 15:1에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란 말로서, 또 두 번째 약속은 시작된.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것이 두 번째 약속의 말씀이었다. 첫마디의 "이후에"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은 첫 번째 약속을 받을 때의 "롯이... 떠난 후에"란 말과 잘 호응되는 말이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한 후에 크신 상급으로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또 다음 어떤 사건 후에 그에게 크신 상급을 약속하셨을까. 이제 그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창세기 14장은 롯이 소돔 땅에 가서 거할 때에 시날 왕 아므라벨의 연합군이 소돔과 고모라를 쳐 왔을 때에 되어진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왕이 패하였을 때 그곳의 모든 재물과 양식은 빼앗기고 롯도 포로가 되었고 그 재물과 가족들도 다 빼앗겼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르던 사병 318 명을 거느리고 원수들을 쫓아가서 그들을 치고 롯을 구원했다. 모든 "재물과 부녀와 인민들을 다 찾아왔다.(14:16). 이때에 구원을 받은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사례하여하는 말이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창 14:21)했다.

 

이러한 소돔 왕의 제안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그것을 깨끗이 거절했다. 14:22에 보면 "천지의 주재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했다. ! 이 얼마나 깨끗한 거절인가. 본래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 세상의 상징이었다.

 

그들의 부귀와 영화는 세속적인 향락의 상징이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오는 기쁨을 원치 않았다. 그는 그것을 깨끗이 거절하였다. 거절한 이유인즉 그것을 취하여 내가 부자가 되면 소돔 왕 네가 나로 부자 되게 하였다는 그런 말을 남기로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부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아브라함의 신앙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귀해 보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거절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그의 상급이 되셨다고 선포하셨다. 창 15:1의 '이후에'란 바로 그러한 일들이 있어진 '후에'를 가리킨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의 제의를 거절한 바로 그 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과 약속이 있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고 하셨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은 원수들을 이긴 후에 오히려 두려워했음을 본다. 그들이 대오를 다시 정비하여 쳐 올 것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격려했다. 두려워 말라고 했고, "나는 너의 방패"라고 하셨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캄캄한 하늘을 우러러보게 했다. 하늘의 저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면서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다. 그리고 가나안을 그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을 삼게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 본 바와 같이(창 13:1-13) 아브라함이 이방 사람들 앞에서 골육이 서로 다투게 된 것을 슬프게 알고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첫 약속을 상급으로 주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제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 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4-17).

그러나 또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악 된 소돔의 부귀를 거절했음을 보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방패가 되시며 또 지극히 크신 상급이 되심을 확약하시면서 두 번째의 약속을 주셨던 것이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했었고 계속해서 가나안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을 삼게 하셨다.

 

그러면 그 첫 번째 두 번째의 약속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먼저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3:14)는 말과 "하늘을 우러러... 보라(15:5)는 말에게 오는 것이 아닐까? 첫 번째 약속의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녀에게 주리라는 것과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으리라는 것은 육신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고 거기에서 그의 후손들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이라면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는 그 말은 영적 가나안의 영적 신령한 믿음의 자녀들의 별과 같은 창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육신의 가나안의 기업을 말할 때는 그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했고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 진대 그 자손도 셀 수 있으리라" 하셨는대 이것이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면(왕상 4:20) 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있어 질 아브라함의 영적 신령한 자녀들을 가리킴이 아닐까.

 

창 15:5에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는데 여기 "네 자손"이란 원어는 복수가 아닌 단수이다. 그것은 여럿을 가리킴이 아니요, 곧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갈라디아 3:16에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킴이라고 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했음을 본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캄캄한 하늘의 뭇별을 우러러보았을 때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 생겨질 영적 후손들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 같은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감사하자. 본래 이방 백성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그저 "땅의 티끌 같은 후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라 생각할 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받은 언약 즉 ".... 내가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이 하리라..."는 것과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두 개의 언약을 구태어 구별하여 전자는 아브라함의 육신의 가나안에서의 번성을 약속함이요 후자는 그의 영적 믿음의 후손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적 축복을 약속함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영적 해석이라고 하는 자들이 있을 줄 안다. 즉 그들은 꼭 같은 내용의 약속을 대구적으로 땅과 하늘. 티끌과 별로 표현한 것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굳이 구별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이 두 번째 언약이 주어진 직후였다.(창 15:5, 6)는 사실과 둘째는 "땅의 티끌 같으리라"는 그 첫 약속은 열왕기상 4:20에 보면 벌써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왕상 4:20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이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이며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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