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창세기 12장 히브리어 주석강해] 세겜 상수리나무의 아브라함(창 12:5-9)

두란노 서원 2021. 4. 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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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2장 히브리어 주석 강해 중에서 세겜 상수리나무의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란에 있을 때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을 바라보면서 갔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정착한 곳이 세겜 땅입니다. 세겜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겜 상수리나무의 아브라함(창 12:5-9)

 

5절 바이카흐 아브람 에트 사라이 이쉐토 베에트 로트 벤 아히브 베에트 콜 레쿠솸 아쎄르 라카슈 베에트 헤네페쉬 아쎄르 아슈 베하란 바예체우 랄레케트 아르차 케나안 바야보우 아르차 케나안

창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12:5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 - 연로한 부친 데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아니하게 체류하게 되었던(11:31) 하란 거주 생활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음을 나타낸 준다. 한편 당시 아브람과 롯은 유목인이었으니(13:5) 그들의 모슨 소유물은 대부분 가축이었을 것이다(13:2).

얻은 사람들 - 직역하면 '획득한 자들'. 대족장 아브라함 집에 속한 남녀 종들과 그들의 자식을 가리킨다. 일손이 부족한 아브람에게 많은 가축을 돌보기 위해서는 부득이 종들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 본절은 마치 아브람이 목적지를 알고서 길을 떠난 듯이 오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는 11:31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결과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작정된 땅이 바로 가나안임을 일깨워 주는 구절일 뿐이다<1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약 480Km 정도의 거리인데 당시의 여행로로 미루어 보아 아브람 일행은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 시리아에 도착, 그곳 광야를 횡단하여 다메섹에 이른 후 가나안으로 직진하였을 것이다.

1. 그는 자기 아내, 조카 롯과 동행했다. 그것은 강제로나 그들의 뜻을 무시하고 한 처사가 아니라, 설득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의 아내 사래는 그와 함께 가기를 바랐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서로 결합케 하셨으니, 아무것도 그들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아브람이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듯이, 사래도 역시 아브람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다. 아브람으로서는 그 여로에 그 같은 반려자, 즉 돕는 배필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 지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부부가 함께 하늘나라의 길을 가는 데 합의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안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주목하자.

그의 혈족인 롯 역시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자기의 보호자가 되었던 아브람의 선한 모범에 감화를 받아, 그와 함께 가기로 했다. 가나안으로 가는 자는 홀로 갈 필요가 없음을 기억하자. 좁은 길을 찾는 이가 거의 없다손 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그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저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들과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가 된다(슥 8:23).

2. 그들은 모든 동산(動産)을 함께 가지고 갔다. 즉 “그들이 모은 모든 소유”와 이동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갔다.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1)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처분에 온전히 맡겨 버렸고, 귀중한 것을 조금도 남겨 두려 하지 않았으며, 소유물은 훌륭한 기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철저히 모험을 했던 것이다.

(2) 어디든 그들이 가는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가정에 양식을 충당하는 데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기로 약속하셨다 하여 자기 소유물을 버리고 만다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소행이지 결코 신뢰하는 행위는 아닌 것이다.

(3) 그들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발자국마저도 뒤에 남기지 않았으니, 이는 발자국 때문에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지”(히 11:15)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6절 바야아보르 아브람 바아레츠 아드 메콤 쉐켐 아드 엘론 모레 베하케나아니 아즈 바아레츠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12:6

모레 상수리나무(엘론 모레) - '본다'는 뜻을 가지 '라아'로부터 파생된 '모레'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가르치는 자'를 뜻하는데 '예언'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강하다'란 뜻을 가진 ''로부터 파생된 '엘론'은 상수리나무처럼 재질(才質)이 강하며 병충해도 잘 견디는 나무를 가리킨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모레 상수리나무'를 고대 이교도들이 신탁(oracle)을 받을 때 사용하던 '예언자의 나무'로 본다.

그러나 '마므레'와 같이(13:18) '모레'가 단순히 상수리나무 숲의 주인 이름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Alford, Murphy, Kalisch).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 아브람이 세겜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벧엘과 남방으로 옮겨 가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8,9). '가나안 사람'은 함의 후예(10:6)로 우상숭배 행위에 탐닉하며 배타심이 강하던 족속이 었으니 아브람이 그들 가운데서 생활하기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Ⅰ. 당도한 땅에서 그는 별로 안위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1. 그가 그 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그 땅에 가나안 사람이 가득하고,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고 있음을 아브람은 알았다. 그들은 아마 사악한 이웃이요 악한 지주들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그들의 허락 없이는 자기의 장막을 칠 땅조차도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저주받은 가나안 사람들이 축복받은 아브람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땅을 더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2. 그는 거기서 정착할 곳이 없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6절) “산으로 옮겨”(8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9절). 여기서 다음을 살필 수 있다.

(1) 때때로 불안한 상태에 놓이고, 그 거주지를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이 선한 사람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경건했던 다윗도 유리하며 방황했다(시 56:8).

(2)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이동으로 인해 갖가지 조건에 처하게 된다. 아브람은 처음에는 평지에 머물렀고(6절), 다음에는 산에서 묵었다(8절). 하나님은 서로 대립되는 것을 나란히 놓아두신다.



(3) 모든 선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요 거류 자라고 생각해야 하며, 또 믿음을 가짐으로써 이 세상은 타국인 것같이 생각하여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아브람 역시 그같이 처신했다(히 11:8-14).

(4) 우리가 여기 현세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나그넷길에 있으나,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자처럼 있는 힘을 다해 계속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7절 아도나이 엘 아브람 바요메르 레자르아카 에텐 에트 하아레츠 하조트 바이벤 솸 미즈베아흐 라아도나이 하니르에 엘라이브

창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12:7

그는 자기가 따랐던 하나님에게서 큰 위안을 찾았다. 가나안 땅에서 그들과 맺은 교제에서는 조금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으나, 그를 그곳으로 이끄시고 그를 떠나지 않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통해서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말씀과 기도로 유지된다. 이로 인해, 그리고 그런 섭리에 따라서 아브람과 하나님과의 친교는 그의 순례지에서 계속되었다.

1.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자한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다음을 주목하자.

(1) 어떤 장소나 조건에서든 인생을 은혜롭게 찾아주시는 하나님의 위안으로부터 우리를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브람은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정되지 못한 거류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거기서 자기에게 생명을 주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대적자들이 우리와 우리의 장막을,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제단 사이를 떼어놓을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이간할 수는 없다.

(2) 더욱이 본분에 충실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설사 그들을 친구 가운데서 이끌어 낸다고 하더라도 은혜를 주셔서 그런 손실을 보충해 주신다.

(3)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계율을 성실하게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만족을 주신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응하기 위해 자기의 귀중한 것을 버리거나 잃는 자는, 그 대신에 다른 보다 나은 것으로 풍성하게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아브람은 그의 “본토”를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 그럼 내가 이 땅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마 19:29).

(4)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 은총을 자기 백성들에게 점차적으로 계시하신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땅을 “지시하겠다”라고 약속하셨고, 지금 그 땅을 그에게 “준다”라고 약속하시니, 은혜가 성장하듯이 위로함도 성장한다.

(5)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위안을 받는 일이다. 그것은 섭리로써만이 아니라 약속으로써도 된다.

(6) 자녀에 대한 자비는 그 부모에게도 자비가 된다. “내가 그것을 줄 것이나, 네게가 아니라 너의 자손에게니라.” 그것은 그의 자손들이 장차 받을 은사인데, 아브람도 역시 장래 향유할 보다 나은 본향으로서 자신에게 주시는 은사로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이 그 한 형태였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히 11:16).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 '나타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증명하다', '보이다'는 뜻으로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이 꿈이나 환상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증거해 준다. 문법은 니팔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의미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4:24) 눈에 보이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그분의 임재의 상징이거나 표시일 것이다(17:22; 18:1,2; 3:2). 그러나 이것은 계시를 받는 자가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가라사대 -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현현(顯現)에는 선포되는 말씀이 동반된다. 따라서 계시 수납자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분의 특별 계시를 귀로 들을 수 있다(33:24,25,26,27,28,29,30).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 1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로써 아브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 가나안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허락된 '약속의 땅'임을 알게 되었다.

훗날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출애굽의 원동력이 되었으며(50:24; 3:15,16,17,18,19,20) 또한 민족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근본 동인이 되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은 자로는 아브람 이전에 이미 노아가 있지만(8:20) 자신에게 현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여 제단을 쌓는 자는 아브람이 처음이다. 이로써 아브람은 장차 그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에 대하여서도 함께 감사하였을 것인데 참된 신앙은 이처럼 보지 못하고 장래 일에 대하여서도 믿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11:1,13).

8절 바야에테크 미솸 하하라 미케뎀 레베이트엘 바예트 아홀로 베이트엘 미얌 베하아이 미케뎀 바이벤 솸 미즈베아흐 라아도나이 바이크라 베솀 아도나이

창 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12:8

벧엘 - '하나님의 집'이란 뜻. 아브람 당시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에 의해 벧엘로 바뀌었다(28:16,17,18,19). 예루살렘 북방 약 1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Beitin)으로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던 곳이.

아이 - '황폐한 작은 산'이란 뜻. 벧엘 동남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요새화 된 성읍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시 아간의 범죄로 일차 정복에 실패한 성읍이 바로 이 아이 성이다(7:1-26).

여호와를 위하여... 이름을 부르더니 - 여기서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뜻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찬송과 기도가 있는 공() 예배를 드리는 것을 뜻한다 <4:26>.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입성 후 처음으로 모든 식솔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께 대한 공 예배를 드림으로써 자신의 가정에 예배 규례를 확립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은 정처 없이 유리하는 중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지않았는데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은 성도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영적 호흡이다.

9절 바이사 아브람 할로크 베나소아 하네게바

창 12: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12:9

점점... 옮겨 갔더라 - 이러한 이주 원인은 원주민과의 마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6) 얼마의 시간 동안에 어느 만큼 이동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다가 장막을 치고, 다시 출발하곤 하는 일을 되풀이하였을 것이다. 부정사 절대형 문법을 사용하여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장막을 치고 옮기면서 남방으로 내려갔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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