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가복음 헬라어 성경 강해 중에서 안드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선택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게 됩니다.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너희는 나를 따르라고 부르게 됩니다.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보게 됩니다. 그들을 불렀는데 그들도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천국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우리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복음의 그물을 세상에 던져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하겠습니다.
안드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선택(막 1:16-20)
16절 페리파톤 데 파라 텐 달랏산 테스 갈릴라이아스 에이덴 시모나 카이 안드레안 톤 아델폰 아우투 발론타스 암피블레스트론 엔 테 달랏세 에산 가르 할리에이스
성 경: [막1:16]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처음 네 제자를 부르심]
갈릴리 해변 - 갈릴리 바다는 보통의 담수호(淡水湖) 중의 하나이지만 성경에서는 흔히 바다로 불리고 있다. 이는 다른 곳에서 '게네사렛 호수'(눅 5:1) 또는 '디베랴 바다'(요 6:1, 23;21:1)로도 불리고 있다. 이 아름 다운 바다는 길이 약 20km, 너비 약 10km, 수면은 해발-240m 정도이며, 가장 깊은 곳이 약 50m가량 된다고 한다.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업이 번창했다. 그리고 이 바다 서쪽과 북쪽 해변에는 많은 읍과 어촌들이 밀집해 있었다(Josephus, Wars. III, x).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 - 예수께서는 갈릴리 전도에 있어서 최초로 이 어촌을 '지나가시다가'(따라 걸어가시다가) 갈릴리 어부 출신 형제인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셨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어부의 직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형제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요단강에서 이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바로 이 메시아라고 가르쳐 준 세례 요한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요 1:35-39). 특히 세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모세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개하였다(요 1:29). 따라서 그들 두 형제는 그때부터 예수를 따라다녔으며 인격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인격적 관심의 결과는 그들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을 받게 된다(3:13;마 10:1 등).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 먼저 여기 제시된 '그물'(암피블레스트론)은 예수께서 비유 중에 흔히 거론하셨던 큰 그물, 즉 '예인망'(사게네)이 아니라 손 그물, 즉 '투망'(投網)을 가리킨다. 한편 마가는 안드레 형제의 모습을 매우 생동적으로 묘사하면서 그들이 손 그물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도중에 예수께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사실을 현장감 있게 긴박감을 더하여 기술해 주고 있다.
17절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 이에수스 듀테 오피소 무 카이 포이에소 휘마스 게네스다이 할리에이스 안드로폰
성 경: [막1:17]
막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처음 네 제자를 부르심]
나를 따라 오너라(듀테 오피소 무) - 원문에서'오너라'(듀테)는 말 앞에 '이리로...' 또는 '다라'(오피스)라는 부사어가 첨가되어 있는 점에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그러한 방향으로 가 아니라 예수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리로' 혹은 '이 새로운 방향으로'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주님의 이러한 부르심(calling)에는 '...되게 하리라'(포이에소)는 목적이 수반되어 있다. 즉 그분의 부르심은 허황되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건설의 위대한 주역의 역할을 맡기시리라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예수의 부름에 응답하기만 하면 그들은 복음 전파와 구원 사역의 위업을 맡게 될 것이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 - 주님의 부르심은 부름 받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기보다 오히려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부르심이었다. 실로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은 사람들을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구해내어야 하는 긴급한 임무를 맡기시기 위함이었으며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즉각적인 순종이 요구되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심판과 관련해서 '낚는다'는 말이 사용된 경우를 볼 수 있다(렘 16:16 겔 29:4, 5;38:4;암 4:2). 한편 본문의 '사람'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단수형으로 나와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나 흠정역에서는 복수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안드로포이)이란 이 말은 단순히 갈릴리 주변 사람들이나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범 인류적이고 보편적인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Lenski).
18절 카이 유데오스 아펜테스 타 디크튀나 아우톤 에콜루데산 아우토
성 경: [막1:18]
막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처음 네 제자를 부르심]
곧 그물을 버려 두고 - 여기에서 '곧'(유뒤스)이란 마가의 표현은 긴급하고도 생생한 장면을 강조하는 특별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예수께서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에는 종말론적인 긴박성(緊迫性)이 짙게 깔려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모든 삶을 과감히 청산(淸算)하고 주님을 따라나섰던 것이다. 진정 어부들에게 있어서 '그물'은 배와 더불어 그들의 생존의 근거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버리는 데에는 과감한 의지적 결단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한편 두 제자의 이 같은 즉각적 순종의 배후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의 절대적 능력과 권위이다. 실로 그분의 권위 앞에 모든 피조물은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빌 2:10).
좇으니라 - 헬라어 '아콜루데인'은 복음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의미상으로는 (1) 예수를 따르는 것, (2) 예수의 부르심에 자원하여 순복 하는 것, (3) 예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뜻한다(8:34;마 4:25;9:38 등). 이 말에 대한 문자적인 뜻을 세분하여 살펴보자면 '아콜루데인'은 접두어 '아'(여기서는 '일치', '닮음'이란 의미)와 '길'이란 뜻의 '켈류도스'의 합성어로서, '같은 길을 함께 가다'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은 즉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는 선포에 대한 증인으로서 주님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19절 카이 프로바스 에케이덴 올리곤 에이덴 이아코본 톤 투 제베다이우 카이 이오안넨 톤 아델폰 아우투 카이 아우투스 엔 토 플로이오 카타르티존타스 타 딕튀아
성 경: [막1:19]
막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처음 네 제자를 부르심]
조금 더(올리곤) - 이 부사는 마가의 세밀하고도 정확한 사건 묘사 기법을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요한 -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 다음으로 중요한 제자들로서 이들의 어머니는 살로메였다(마 10:2 참조). 한편 여기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이름의 서열상에 있어서 야고보가 언제나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가 형으로 보인다. 후에 그는 12 사도 가운데 최초로 순교하게 되는데(행 12:2), 이에 비해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 교회를 파수(把守)하고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등 여러 서신들을 기록하였다. 한편 이들은 베드로의 경우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즉각적으로 주님과 밀접한 관계에 들어갔으며 사도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소지(素地)는 얼마든지 있었다. 즉 그들은 마 13:55;요 6:42 등의 경우처럼 그들도 "이는 나사렛에서 온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왜 우리는 이 사람의 제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거부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었을 더 큰 근거가 될 수 있었다(요 19:25). 실로 예수와 이종 사촌 간이었던 그들은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의구심을 다른 누구보다도 많이 갖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예수의 형제와 친척들은 심지어 예수를 보고 '미쳤다'라고 하지 않았던가(3:21). 이러한 불리한 가정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위엄과 능력과 사랑의 부르심에 조금도 주저 않고 따라나섰다.
그물을 깁는데 - 베드로와 안드레가 호수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던 와중에 부름 받은 것과 짝을 이루기나 하듯이 야고보와 요한은 다음 출어(出漁)를 위해 그물을 수선(修繕)하고 있던 상황에서 부름을 받는다. 실로 이것이 현장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마가의 묘사 기법이다. 즉 그들은 어떤 종교적 분위기나 헌신의 순간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생업에 충실하고 있을 때 주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한편 팔레스틴에서는 보통 저녁 이후 시간에 고기를 잡고 낮에는 그물 수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문을 베드로 형제의 소명 받음이 있은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Bultman).
20절 카이 유데오스 에칼레센 아우투스 카이 아펜테스 톤 파테라 아우톤 제베다이온 엔 토 플로이오 메타 톤 미스도톤 아펠돈 오피소 아우투
성 경: [막1:20]
막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주제1: [종의 출현]
주제2: [처음 네 제자를 부르심]
곧 부르시니(카이유데오스 에칼레센) - 예수께서는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의 그것처럼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긴급하게 두 제자를 부르셨다. 실로 예수의 선교사역은 이처럼 신속하고도 민첩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는 당신께서 항상 다가올 종말에 대한 기대와 예비를 하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삯군들과 함께...버려두고 - '삯군들'에 대한 언급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것으로서 '삯군'(미스디오스)이란 임금(賃金)을 받고 고용된 일꾼들을 가리킨다. 적어도 이러한 삯군들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따라서 세베대의 가정이 비교적 부유했음을 알 수 있다. 삯군들이 있었기에 야고보와 요한은 주저함 없이 그들에게 아버지 돕는 일을 맡기고 예수를 따라갔다. 그들은 예수의 부르심에 의해 이전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온전한 헌신의 길에 나섰음에 틀림없다. 실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떠남의 결단이 요구된다(창 12:1-3). 이 떠남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크고 풍성한 은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마 19:29).
[에베소서 히브리어 성경말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성도(엡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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