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넘치는 역사가 일어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사순절 기간에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제목: “성령님 강림과 교회시작” (행 2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사도행전 2:1~47
요절: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거기에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그들 모두가 성신님으로 충만하여 성신님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행 2:2-4)
주제: 교회의 시작과 운행은 오직 성신님으로 이뤄지니 항상 성신님 충만하자.
지난 주일에 이어서 사도행전 2장을 강해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대로 기도와 간구에 전념하고 있었던 120성도에게 성신님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 후인 오순절(칠칠절)에 임하신 것입니다. 유월절 후 일곱 주간(weeks)이 지나면 보리와 밀을 추수하여 감사를 드리는 칠칠절을 맞이하게 되는데 7x7=49일 다음날인 오십일 째 날을 한문으로 오순절(五旬節 Pentacost)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십계명 및 율법을 받으러 올라간 날이기도 합니다. 세계 흩어진 유대인들이 일년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참석하러 오는데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장막절(수장절, 초막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해 칠칠절에도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전으로 와서 예배에 참석 중이었는데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 120명이 모여 기도하던 중 방언의 은사를 받고, 세계 각처에서 온 순례객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듣고 신기해서 모여든 회중들 가운데 베드로의 전도설교를 듣고 3000명이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초대 교회가 시작된 일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을 한절씩 읽겠습니다.
1. 성신님의 강림(降臨) (행 1:1-4)
(1) 그 후 오순절 날이 되자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한 장소에 모였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 (3) 거기에 불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4) 그들 모두가 성신님으로 충만하여 성신님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렀고 그들은 다같이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 오순절은, 유월절과 무교절 주간에 밀과 보리의 첫 이삭을 안식일 후 첫날 곧 초실절에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 요제(搖祭)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날 아침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신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이 모여 있었던 곳은 행1:13에 언급한 ‘저희 유하는 다락(연회장)’ 즉 마가의 집이었습니다. 기도와 간구에 전념하고 있었던 120명 성도의 모임에 이날 아침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고, 그들은 다 성신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신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신님의 강림은 이와 같이 외적인 현상들을 동반하였습니다. 성신님께서는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동반하면서 내려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성신님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신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아버지의 약속하신 분이 바로 성신님(Holy Ghost, 킹제임스 성경 요일 5:7)이십니다.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노라. 그러나 높은 곳으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 도성에서 기다리라."고 하시니라.”(눅 24:49) “또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고,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리라.”(요 14:16) “그러나 내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니라. 만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가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가면 내가 그 분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 그 분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7-8) 오순절의 성신님 강림은, 구약의 요엘 대언자[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것입니다(욜 2:28-29) 성신님께서 오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의 성취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속(救贖)하신 자들을 실제로 구원하시는 일 즉 그들을 중생(重生)시키고 성화(聖化)시키는 일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은 성신님께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는 시대입니다. 성신님의 오심은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복입니다. 예수님의 빈 자리에 성신님께서 성도들 속에 영원히 거하셔서 그들에게 보혜사 곧 위로자가 되십니다. 또 성신님께서는 성도의 신앙생활과 성화(聖化)를 도우시고 특히 전도를 위해 능력을 공급해주십니다. 우리는 성신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성(罪性)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영혼들을 구원하십니다. 성신님은 (1) 불 (2) 바람 (3) 물 (4) 기름 (5) 비둘기처럼 임하십니다.
2. 군중들이 방언을 듣고 놀라 모임(행 2:5-13)
(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6)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7)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가 각자 태어난 나라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이집트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의아해하며 서로 말하기를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더라. (13)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더라.
5-13절. 오순절 성신님 강림의 독특한 한 표시는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방언이라는 원어(글로싸 glossa)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성신님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방언들, 즉 다른 언어들로 말하였습니다. 본문은 순례온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15개의 나라들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적어도 약 15개의 언어들로 말하였습니다. 바대인(Parthians), 메대인(Medes), 엘람인(Elamites), 메소보다미아(Mesopotamia), 유대(Judaea), 갑바도기아(Csppadocia), 본도(Pontus), 아시아(Asia), 브루기아(Phrygia), 밤빌리아(Pamphylia), 이집트(Egypt), 구레네(Cyrene)에 가까운 리비야(Lybia), 로마(Rome), 그레데인(Cretes)과 아라비아인(Arabians)들입니다. 신약성경의 방언은 이와 같이 언어를 가리킵니다. 사도시대의 방언은 외국어, 즉 제자들이 아직 배워본 적이 없는 외국어입니다. 이미 믿은 자들은 성신님께서 그들 속에 거하시는 표시로 꼭 방언을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시대의 방언은 성신님 강림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이미 믿은 자에게는 방언보다 인격적 신앙생활, 즉 바른 지식과 믿음과 사랑의 인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고전 13:8; 14:19). 하나님께서 제자들로 방언을 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세계복음화의 일을 이루게 될 것도 암시합니다. 세계복음화의 큰 장애물은 언어의 장벽일 것입니다. 인류는 본래 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창 11:1). 그러나 홍수 심판 후 노아의 자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연합을 도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인류는 의사소통의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로 하여금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택한 백성들을 다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신님께서 예수님 믿는 자들 속에 들어와 계심을 감사합시다. 성신님께서는 모든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성신님을 받지 못한 자는 중생치 못하고 참된 회개와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성신님께서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성신님의 위로와 인도하심과 능력을 항상 구합시다. 또 우리는 오늘날 방언을 구할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믿음의 바른 지식과 온전한 사랑의 인격을 사모합시다. 그것들은 성신님께서 우리 속에 행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방언들로 암시된 세계복음화의 일을 위해 힘씁시다. 교회는 같은 말을 쓰는 동족들에게 뿐만 아니라, 또한 말이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까지, 즉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행 2:14-36)
(14) 그때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아,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으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지금은 겨우 세시니 너희가 짐작하는 것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니라. (16) 이것은 대언자 요엘로 말씀하신 바이니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 (18) 또 그날들에는 내가 내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도 내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하리라. (19)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을,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을 보이리니, 피와 불과 연기라. (20) 그 위대하고 찬란한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흑암으로, 달이 피로 변하리라. (21)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느니라. (22)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씀들을 들으라. 너희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너희 가운데서 행하신 능력과 이적과 표적으로 너희에게 확증되신 분이니라. (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어주신 그분을 너희가 붙잡아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25) 이는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기를 '내가 주님을 항상 내 앞에서 미리 뵈었으니, 이는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어 나로 요동치 못하게 하심이라.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즐거워하였고, 내 혀가 기뻐하였으며, 또한 나의 육체도 소망 속에 안식하리니 (27) 이는 주님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또 주님의 거룩하신 분이 부패되는 것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28)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들을 알게 해 주셨으니, 주님께서 나를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리로다.'라고 하였느니라. (29) 형제 여러분, 내가 조상 다윗에 관하여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죽어 장사되어서 그의 묘가 오늘까지 우리 가운데 있음이라. (30) 그러므로 그가 대언자가 되어 육신을 따라 그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시어 그의 보좌에 앉게 하신다는 맹세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것을 알고 (31)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하되 '주님의 혼이 지옥에 내버려지지 않았으며, 또 주님의 육신도 부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 하였느니라. (32)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으니, 우리 모두가 그 일에 관한 증인이라. (33)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임을 받고, 또 아버지로부터 성신님의 약속을 받아서 지금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들로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스스로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온 집이 분명히 알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처형한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라."고 하더라.
14-21절.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여러 나라 말들로 방언을 말할 때 그 소리를 듣고 그 곳으로 모여든 많은 군중들이 놀라고 또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성신님 충만을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마치 새 술에 취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고 자기도 알지 못하는 언어로 주절주절 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보여진 것입니다. 이에 사도 베드로는 그들 앞에 담대하게 말씀을 전한 것이 그의 첫 설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대제사장 감옥에 갇혀있을 때 그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우선 그들이 방언을 하는 것이 당시 시각이 제3시 즉 오늘날 개념으로 6시간을 더하면 오전 9시이니 제자들이 이른 아침에 술취한 것이 아니고, 성신님께서 임하신 모습이라고 설명후 단지 성신님의 감동과 힘에 이끌리어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는 요엘서 2:28-32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베드로의 최초설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헬라어로 케리그마적 메시지라고 합니다. 케리그마(kerygma)란 설교(preaching) 혹은 선포(proclamtion)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핵심인 천국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대언자 요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성신님을 받은 현상이라고 증거합니다.
22절. 그는 먼저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나사렛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셨음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그분의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십니다. 그는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하기 불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역사상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이 있었으며, 떡 다섯 덩이로 오천명을 먹인 일이 있었으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사람을 살린 일이 있었는가요? 이 모든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풍성히 증거합니다. 또 이 기적들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도 아는 바에,” “너희 가운데서,” “너희 앞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을 증거하셨습니다.
23-24절.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신성(神性)을 밝히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영접지 않고 배척하였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았고 믿을 만한 많은 일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부정하고 멸시하고 배척하고 대적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심히 악함을 증거할 뿐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
25-32절.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다윗의 시편에 예언된 바임을 증거하며 시편 16편을 인용했습니다. 거기에서 다윗은 주님께서 그의 혼을 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로 하여금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다윗은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무덤은 그때까지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 그의 육체는 다 썩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편에서의 그의 고백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의 뒤에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편의 말씀은 곧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33-36절.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해서도 시편 110편을 들어 성경의 예언대로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심으로 주님과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또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다는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통치권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앉으신 주님께서 이제 제자들이 받은 성신님을 약속대로 보내신 것입니다.
4. 삼천명의 새신자의 결실(結實) (행 2:37-42)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기를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리이까?"라고 하니 (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한 것이며, 또한 먼 곳에 있는 모든 사람과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더라. (40) 또 여러가지 다른 말로 열심히 증거하고 권고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이 사악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하더라. (41) 그러자 그의 말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침례]를 받더라. 그리하여 그 날에 약 삼천 명의 사람이 더 늘었더라. (42) 그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데 전념하더라.
37절. 오순절에 모인 군중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었습니다. “마음이 찔림을 받는다”(카테뉘게산 테 카르디아 κατενύγησαν τῇ καρδίᾳ “they were pricked in their heart”)는 뜻은 벌에 찔림(sting)을 받듯이 양심에 침을 찌를 때 느끼는 아픔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마음이 굳어 찔림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의 화살이 그 마음에 꽂히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마음에 찔려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군중들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주장하며 외친 이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36절 “너희가 십자가에 처형한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에 마음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Men and brethren, what shall we do?”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케류그마의 설교는 효력이 있었습니다. 들은 무리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역사하심입니다.
38절.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① 회개하라. ②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③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④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이에 베드로는 이 기회를 포착하고 놓치지 아니했습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마음에 찔림을 받아 자신이 행했던 과정을 이 군중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첫째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메타노에사테 μετανοήσατε “repent”) ‘회개’라는 원어는 ‘생각의 전환’로 하나님의 길로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곧 모양으로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땅의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데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의지하는 데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죄의 낙을 누리던 데서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데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정하던 데서 예수님을 믿는 데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과 생각을 바꿈으로써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삶이 바뀔 것입니다. 둘째 세례[침례]를 받아야 합니다(밮티스쎄토 βαπτισθήτω “be baptized”)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몸을 물에 풍덩 집어넣고 다시 일으키는 세례[침례]는 죄씻음을 상징합니다. 세례[침례] 자체가 죄를 씻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의 피[보혈]로 죄씻음을 받는 것을 표시합니다. 셋째,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에페신 하마르티온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for remission of sins”). 죄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은 흠도 티도 없고 정결하고 정상적이고 건강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죄씻음은 가장 중요합니다. 죄 때문에 죽음과 불행이 왔으나 죄씻음으로 의와 영원한 생명과 평강이 옵니다. 넷째로 성신님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렙세스쎄 텐 도레안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λήψεσθε τὴν δωρεὰν τοῦ ῾Αγίου Πνεύματος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라’는 것은 사람이 죄사함을 얻으면 성신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후 오늘 아침 성신님을 선물로 받은 과정입니다. 성신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모신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성도는 성신님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가며 거룩하여지며 또 하나님을 힘있게 섬기며 전도할 수 있게 됩니다.
39절. 회개하고 세례[침례]를 받아 죄사함을 받은 이들에게 성신님을 선물로 주신다는 약속은 이들 청중들인 유대인들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신 것임을 힘있게 증언합니다. 여기에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한 백성에게 마음의 변화를 주시며 부르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르심으로 사람은 구원에 이릅니다.
40절. 베드로는 이어서 몇가지 간증과 예화를 들면서 회중들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권면을 합니다. 전도는 진리의 선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확증과 권면’도 필요합니다. 설교학에서 이를 “적용 application”이라고 합니다. 말씀의 생활화, 육화(incarnation), 삶의 변화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여러 말로 복음을 확증하며 권면하였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책입니다. 성경책을 읽고 연구하는 자들은 다 확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구원은 이 세상과의 구별도 가져옵니다. 세상은 악하고 하나님 앞에서 패역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목이 곧고 완악합니다. 사람이 세상대로 살면 결국 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41절. 베드로의 전도와 설교의 결과는 엄청난 결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고 성신님의 역사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들은 세례[침례]를 받았고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예수님께 복종한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120명의 무리에 3천명의 신입교인이 더하여져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즐거운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크신 일을 하셨습니다.
42절. 이제 설립된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초대교회는 네 가지 일에 힘썼는데 이것은 후시대의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일들입니다. ①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바른 가르침이 중요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며 믿어야 할 교리적 내용과 행해야 할 윤리적 내용을 다 포함합니다. 설교자나 주일학교 교사는 바른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가르침이 혼란하면 교회가 혼란해집니다. 요즘 교회들은 교육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연합운동, 신복음주의, 은사운동, 번영(prosperity)신학 등 별별 풍조들이 교회들 안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 교단 안에 머물러 있고 자유주의자들과 거리낌 없이 교제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가톨릭까지 포용하려 합니다. 그것은 참된 복음주의가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는 그런 오류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타협적 복음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바른 교리, 성경공부, 제자훈련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며 배워야 합니다. ② 그들은 서로 교제(코이노니아 fellowship)하기를 힘썼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교제입니다. 그것은 서로 문안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교제입니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거나 비난하거나 해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오래 참고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친절하고 진실을 말하며 상대방에게 선을 행하는 교제입니다. ③ 그들은 또 성찬식과 식탁교제(Agape meal)도 힘썼습니다. 식탁의 교제는 성도를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의 띠입니다. ④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습니다. 성신님을 선물받기 전 온 교회가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교회는 기도로 힘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하며 또 실천할 힘을 얻습니다. 특히 교회는 기도로 전도와 봉사의 능력을 얻습니다.
5.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모습(행 2:43-47)
(43)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이 임하였으며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적이 행해지더라. (44)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으면서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쓰며
(45) 또 자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더라. (46) 그리고 그들은 날마다 하나가 되어 꾸준히 성전에 모이며, 또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즐거움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47)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더라.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그 교회에 날마다 더해 주시더라.
43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두려워하는데 이는 사도들로 인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그들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구원과 성화(聖化)에 이르게 하는 유익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단지 몇 가지의 기적들만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확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들을 통해 구원의 진리들을 확증하셨습니다(히 2:3-4).
44절. 믿는 성도들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였습니다. ‘다 함께 있어’라는 말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교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정상적 교회의 모습입니다. 또 그들의 교제는 그들의 물건들을 서로 통용하는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공동 소유로 생각하고 사용하도록 내어놓았습니다. 그것은 그 물건들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또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형제자매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지식과 믿음이 있는 자들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서로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45절. 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교제는 섬김과 나눔으로 표현됩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물론, 성경은 자기 손으로 성실히 일하여 먹고 살라고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친히 일하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성도들에게 일하는 본을 보여주었습니다(행 20:34-35). 또 그는 손으로 일하며 살라고 가르쳤습니다(엡 4:28).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살후 3:10). 그러나 재산이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은 선하고 좋은 일입니다. 물질은 구제와 같은 선한 일에 쓰는 데 가치가 있습니다.
46절. 또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입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 드리고 또 다른 이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기 위해 준비된 성전입니다.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면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히 10:25). 또 그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가정교회에서 성찬식과 식탁 교제를 가리킬 것입니다. 성찬은 성도들의 엄숙한 교제의 표시이며 식탁 교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거짓되지 않고 진실하였습니다. 서로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사랑의 식탁 교제를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인들의 사랑은 진실하였습니다.
47절. 그들은 또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찬양이 살아있는 초대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창조하셨습니다(사 43:2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 함입니다(엡 1장). 교회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무리들의 모임입니다. 찬송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며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히 13:15). 그들은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욕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건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며 구제를 힘쓰면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하나님도 칭송할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가까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며 기도하며 모범을 보여야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아름다운 행실의 본이 매우 좋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 교회에 구원얻는 자들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입니다. 그는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다른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수적인 성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이었습니다. 전통본문에 의하면, 47절에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개역개정이나 현대역에서는 없는데 반드시 보충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떤 인간적 조직이나 외형적 건물이 아니고 믿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순종하며 서로 교제하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참 교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신님의 역사로 운행됩니다. 성신님으로부터 하늘의 지혜를 받아 말씀이 선포되고, 회개의 역사가 이뤄지며, 세례[침례] 받아 죄사함을 받고, 성신님을 선물받아 성도의 교제와 구제를 실천합시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서로 형제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풍성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열심히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바른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서로 사랑하며 선한 일에 힘쓸 때 이루어지며, 또 그때 구원의 역사도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초대교회를 회복합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 둘째 주일에 사도행전 2장을 통해 초대교회의 원형을 배우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예루살렘 교회처럼 성신님 충만하심으로 은사를 받아 전도와 선교하며, 교제하며, 봉사하며,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성신님의 성전이 되며, 우리 가정이 교회가 되며,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배우고 새사람으로 거듭나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과 인정을 받아 전도하게 하옵소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 당선자에게 믿음과 하늘의 지혜를 주셔서 존경받는 지도자로 세워주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레미야 33장 성경 좋은 말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렘 33:1-11)
'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약 히브리어 성경 요한계시록] 넷째 인의 재앙 청황색 말 죽음(계 6:7-8) (0) | 2022.03.18 |
---|---|
[신약 히브리어 성경 요한계시록] 24 장로들이 어린양을 경배함(계 5:7-10) (0) | 2022.03.18 |
[히브리서 5장 주일 설교말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히 5:1-14) (0) | 2022.03.13 |
[로마서 11장 주일 예배 설교문] 하나님의 구원 계획(롬 11:1-36) (0) | 2022.03.13 |
[마가복음 예수님의 말씀]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막 16:14-20) (0) | 2022.03.02 |
[요한계시록 11장 주석 성경말씀] 일곱 나팔 재앙과 두 증인(계 11:1-19) (0) | 2022.02.28 |
[헬라어 성경 좋은 말씀 요한복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요 1:23-28) (0) | 2022.02.17 |
[마태복음 산상수훈 헬라어 성경말씀] 맹세에 대한 예수님 말씀(마 5:33-37) (0) | 2022.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