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룻기 하나님 말씀] 룻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두란노 서원 2020. 12. 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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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룻기 하나님 말씀 중에서 룻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룻기는 교회에서 보아스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룻과 같은 이방 여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룻기를 읽으면서 보아스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본 문: 룻 1:1-5

 

룻 1:1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룻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룻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룻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룻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1. 독서의 차원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경 읽기에 여러 가지 차원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 읽기는 최소한 세 가지의 차원을 갖는다. 첫째는 저자 중심의 읽기이고, 둘째는 본문 중심의 읽기, 셋째는 독자중심의 읽기이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본문을 이 세 가지 차원 가운데 어느 것에 초점을 두고 읽느냐에 따라서, 읽어내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본문 중심의 성경 읽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본고가 현장에서의 선포를 임무로 하는 설교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본문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하고, 또 실제적인 도움을 위해서, 성경 읽기의 결과인 설교문도 간략하게 제시하도록 하겠다.(설교문은 산문 형태가 아닌 형태로 쓰려고 한다. 그 이유는, 문체상으로 볼 때, 설교문은 산문 형태보다는 시형태로 쓰는 것이 내용 전달과 선포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룻기 1:1-5 읽기

이야기는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룻기는 문학 형태로 보았을 때, 이야기이다. 그래서 룻기가 갖고 있는 이야기의 특징을 최대한 찾아내어서 룻기를 이야기로 읽는 것이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독서 원칙이다.

본문은 `전원일기'이다: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대로, 엘리멜렉 일가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전혀 위대한 인물들이 아니다. 룻기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룻기의 이야기는 다른 어느 이야기보다도 우리에게 더 상당히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표면적인 관찰에서 찾아낸 사실들도 메시지로 삼을 수가 있을 것이다:

 

룻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사기나 왕들의 행적과 국제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펼쳐가는 역사서들과는 달리, 룻기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마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나 사무엘, 열왕기를 읽을 때는 70밀리 대형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룻기는 16밀리 소형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스케일이 웅장하지도 않고, 영웅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전원일기처럼, 그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엮어가는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네 장에 걸쳐서 정말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룻기는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본문의 문학적인 기법들: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학 기법들이 사용되었다. 우선 '대조'인데, 이스라엘 땅과 모압 땅이 대조되고 있다. 이스라엘 땅은 기근이 있고, 모압 땅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묘사된다.(이러한 대조는 룻기를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나타난다: 이스라엘 땅을 떠날 때에는, 엘리멜렉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돌아올 때는 나오미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는 전환의 기법과도 관계가 있다: 죽음의 땅으로 생각했던 이스라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바뀌게 된다; 엘리멜렉으로 시작해서 오벳의 탄생으로 끝난다; 또 죽음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삶의 이야기로 끝나고, 엘리멜렉의 계보로 시작해서 다윗의 계보로 끝난다.)

그리고 `아이러니' (irony)가 있다.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가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또 엘리멜렉이 가족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간 것은 가족들과 더불어서 더 잘 살기 위해서였는데,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10여 년이 지나면서, 세 남자들이 모두 죽는다. 그리고 생존력이 더 강할 것으로 보이는 남자들은 다 죽고, 여자들만 남는다.(그리고 룻기에는 이외에 여러 가지 기법들이 나타난다. 룻기는 특히 전형적인 옛날이야기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정확한 시점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시대설정의 자유를 갖게 해 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성경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그렇게 명확하게 밝혀놓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리고 1:1-2를 보면, 여기에는 반복의 기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런 것이 전형적인 옛날이야기 문체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전반부의 내용이 후반부에서 더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이야기를 완결된 형태로 보았을 때, 우리는 이러한 발전적인 반복에서 본문의 내재적인 저자의 문학적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본문을 보면,

 

1절과 2절에는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2절에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룻기 기자의 특별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을 약간 기법을 달리하면서 두 번 반복하는 데에는 룻기 기자 나름의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어떤 사람이 가족들을 다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고 인간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모압으로 갔단 말인가? 그 사람이 바로 엘리멜렉이다.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요단 동편 모압으로 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엘리멜렉이다.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그 사람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가서 그 나라 백성이 되었다. 본문 기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엘리멜렉이다: 본문에서는 `엘리멜렉'이 주인공의 역할을 한다. 이미 말했지만,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의미를 갖는다.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이름이 매우 상징적임을 느끼게 된다.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이름은 여호와를 왕으로 여기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또 아직 왕이 없던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사상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엘리멜렉은 이야기 속의 한 개인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본문의 주인공의 이름이 엘리멜렉이 아니고 다른 이름이었다면, 이야기 풀이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설교문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주인공은 엘리멜렉입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 룻기의 주인공이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여기서 엘리멜렉은 한 개인만이 아닌, 온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이라는 말은 이 시대의 이스라엘의 신앙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신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할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반드시 지키며 살 것이다." 이것이 엘리멜렉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이 가진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이 가족들을 다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 되는 것을 포기하고 모압 사람이 되어 모압 땅에서 살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정체성: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과 엘리멜렉의 행동이 정반대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아이러니), 우리는 내재된 저자가 엘리멜렉의 정체성을 문제 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룻기 기자는 이 구절들을 통해서 정체성을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엘리멜렉인데 실제로는 정반대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룻기기자는 엘리멜렉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는 너희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스라엘 사람이냐? 아니면 모압 사람이냐?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엘리멜렉이 살던 곳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이다.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하면, 상식적으로도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먼저 그곳은 다윗의 고향이다. 그리고 주전 8세기 남왕국의 예언자 미가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또 그 예언이 신약성경에서는 예수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이곳을 떠나서, 그들이 기적적으로 건넜던 그 요단강을 다시 건너서, 이방의 땅 모압으로 간 것이다.

 

엘리멜렉의 고향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며 신앙의 모델이 되는 다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2700여 년 전에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 미가는 바로 이곳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미가의 예언대로 예수께서 이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엘리멜렉은 이곳, 이 위대한 역사의 현장을 떠나서 모압으로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뒤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건너야 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건넜던 그 요단강을 거꾸로 건너서,

그 기적적인 건넘을 기념해서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지나서 모압 땅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엘리멜렉처럼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버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여 세상으로 가면 결국 엘리멜렉처럼 고난 가운데 살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환경과 상황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기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근이 있어도 주님 안에서 견디면 끝내는 승리의 역사가 있고 축복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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